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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대위, 귀환하다-2화 (2/128)

이상한 곳에 떨어졌다. (2)

나는 후레쉬를 키고 주변 가까운 곳을 수색했다. 숲 곳곳에 널려있는 마른 나뭇가지들을 한 아름 집어 들었다. 가지고 있는 라이터와 널려있는 낙엽을 이용하니 불씨를 만드는 것은 쉬웠다.

중요한 것은 수분이 없는 썩은 장작이나 완벽히 마른 나뭇가지를 사용해야 한다. 산 나뭇가지를 꺾어 불을 피우면 연기가 많을뿐더러 애초에 불 붙이기도 힘들다.

그녀는 몸이 불편한 것 같고 나도 움직일 때마다 가슴팍이 아려온다. 게다가 야간 산행은 전문적으로 훈련받지 않으면 부상의 위험이 있다.

'날이 밝아질진 모르겠지만 이 상태에선 움직이기 힘들어. 일단은 여기서 휴식을 취하자.'

죽은 나뭇가지와 장작으로 쓸 작은 통나무 조각들을 구해 다가가자 불 피울 곳의 흙을 정리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보였다.

가만히 앉아 있을 줄 알았더니 공포스러운 공간에서 뭐라도 할 일을 찾는 모습이 제법이네. 그래도 눈치는 좀 있는 여자다.

탁- 탁-

라이터로 낙엽에 불을 붙여 나뭇가지에 불씨를 만들고 후우- 산소를 불어넣어 불을 붙였다. 레인저 교육 이수를 위해 2주간의 도피 및 탈출 훈련을 하다 보면 불 피우는 정도의 생존 기술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어느 정도 바람을 불어넣자 화르르하고 불이 붙었다.

"후- 됐다. 붙었다."

나는 가져온 장작과 통나무를 한 덩이씩 넣으며 불을 키우기 위해 노력했다.

그런 내 모습을 그녀가 앉아서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

모닥불이 올라오자 어둠 속에 묻혔던 그녀의 모습이 제대로 보였다.

저번에도 봤지만 어디 가서 외모로 불이익을 당할 것 같지는 않은 모습이었다.

"어휴-"

근데 왜 하필 일로 떨어져가지고.

한숨이 나왔다.

머리속이 복잡했다.

이 곳은 도대체 어딜까?

앞으로 이곳에서 무얼 해야할까?

나는 나무에 등을 기댄 후 눈을 감았다.

"그쪽은 제가 밉지 않으세요...?"

불 옆에 쪼그려 앉은 그녀가 적막을 깼다.

밉냐고? 갑자기 그 말을 들으니 살짝 거슬렸다. 그래. 솔직히 말하면 원망스럽다.

그녀가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조금만 주의했으면 이런 상황이 왔을까.

단지, 죄책감을 덜어내려는 건가?

"......"

신경이 예민해졌다.

그냥 눈을 감은 채로 무시했다.

그래... 참자, 참아.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침묵.

"저...기요?"

"......"

"저 때문에... 화나셨을 텐데... 해코지도 안하시고... 불도 피워주시고 이상.."

"야."

순간 이래서 하등 도움 될 게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성의 고리가 끊겼다.

"네.. 네?"

그녀는 갑자기 튀어나온 반말과 높은 언성에 놀랐는지 눈이 커졌다.

"원해?"

"뭐...뭘요?"

"해코지라도 해줄까? 뭐 어떻게 해줄까?"

내 말에 그녀가 화들짝 놀라 두 손으로 몸을 X자 모양으로 감싸안았다.

얼씨구. 지랄도 유분수다.

"죄... 죄송합니다!"

"하, 환장하겠네. 이 상황에 내가 왜 화를 안내는지, 왜 뭐라 안하는지가 그렇게 궁금해? 난 또 눈치는 있나 했더니만."

"......"

당황스러웠는지 무서운건지 어느새 그녀의 눈동자가 그렁그렁하다.

한바탕 쏘아붙이니 그래도 어느 정도는 예민함이 가셨다.

"이봐요. 선소연이라고 했나? 소연 씨."

"네..."

목소리에 물기가 차있다. 몸이 움츠러들어 눈을 내리깔고 있다.

그 모습이 너무 처량하지만 미안해지지는 않았다. 얘도 많이 힘들겠지만, 내가 누굴 생각할 정도로 여유로운 상황은 아니니까.

"솔직히 말할게요. 화났냐고요? 네. 소연 씨가 원망스러워요. 딱 봐도 위험해 보이는 암벽에서 도대체 안전장비 하나 없이 왜 서 있는 거야."

"정말 죄송합니..."

"그리고 해코지? 제가 지금 그쪽 목이라도 졸라 죽여드릴까? 당장이라도 그래 줄 수 있는데."

"......"

"아니면 뭐, 다른 죽고 싶은 방법이라도 있으면 말해보시던가."

히끅-

선소연의 딸꾹질 소리가 들려왔다.

그래.

이건 쟤가 신경을 거슬리게 해서 그렇다기보단 그냥 내 마음속에 쌓여있었던 울분과 억울함이 한꺼번에 표출된 것이다.

이제 그만 몰아붙이자.

어린애한테 이래봐야 도움 될 것도 없고.

한숨을 내쉰 나는 다시 말을 높였다.

"하아... 솔직히 어떻게 해야할 지 잘 모르겠어요. 이 곳이 어떤 곳인지도 잘 모르겠고... 머리만 아프지."

"......죄송해요."

"알겠으니 그 소리는 이제 그만합시다."

어느새 분위기가 싸늘하니 적막했다.

담배가 말렸다. 주머니를 뒤적뒤적 거려 한 까치 꺼내 물고 라이터를 켰다.

지금은 잘잘못을 따질 때가 아니다.

앞으로의 일에 집중해야지.

일단 분위기를 좀 풀어보자.

틱- 틱-

"근데 말이에요."

"...네."

"후우- 이 공간, 확실히 지구는 아닌 것 같죠?"

"네. 나무들도 그렇고, 생긴게 너무 이질적이에요. 으스스하니 무섭기도 하고. 으 추워라."

그녀가 추운지 입고 있는 바람막이의 앞을 꼭 잡고 웅크렸다. 떨어진 낙엽들로 보아 날씨는 지구와 똑같은 가을. 그런데 밤이기도 하고 산속이라서 그런지 쌀쌀하다.

고개를 들어 하늘로 담배연기를 내뿜자 시커먼 하늘이 보인다. 달도 없고 별도 적은 적막한 밤. 모닥불 연기와 담배연기가 어우러져 흐릿흐릿 허공에 산개한다.

"쫄지마요."

"네?"

"저는 이런 상황에서 안 쫄아요. 목숨 걸린 작전 나가면 제일 먼저 뒈질 것 같은 애들이 누군 줄 알아요?"

"아니요."

"공포에 잠겨서 자기 몸을 통제 못하는 애들. 그런 애들 보면 딱 죽을 각 나와요. 통제하기 귀찮죠."

후-

"당연히 두려울 수밖에 없죠. 근데 절대 그 두려움에 도망가지 말아요. 전 그렇게 살아왔고..."

어느새 반초만 남겨둔 내가 말을 이었다.

"또 반드시 여기서 살아남을 겁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저승인지, 천국인지, 아무것도 알 수 없지만 오감이 너무 현실성 있게 느껴진다.

의식도 또렷하니 내가 살아있음을 알린다.

그렇다면? 무조건 살아야지.

"그러려면 우선 이곳에 대한 정보가 필요해요. 소연 씨는 뭐 할 줄 아는 거라도 있습니까?"

"아..니요. 딱히..."

"후- 안되겠다. 그냥 해코지 해야겠다."

"잠.. 잠깐만요!"

진담 같은 농담에 화들짝 놀란 선소연이 내 말을 끊으며 긴급하게 주절 주절거렸다.

"그... 이곳은 우리 둘 다 처음이잖아요."

"그런데?"

"그러니까 백.. 뭐였지 아, 그래. 백지장!"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

"네. 그거요! 아무것도 모르는 곳에서 혼자 보다는 그래도 둘이 낫지 않을까요?"

"흠..."

"그리고 저 외형은 말라보여도 은근히 육체파에요. 운동도 많이 했어요. 여러 가지 잡일도 잘하고... 분명히 도움 되실 거예요. 그러니까 제발 살...."

그녀 속사포로 내뱉다가 마지막 말을 흐리며 눈을 내리깔았다.

***

처음에 정신 차렸을 땐 저 사내가 떨어지는 자신을 받아내 구해줬다고 생각했다.

그때 느꼈던 감정은 3개.

안도감. 미안함. 감사함 이었다.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후에 사내가 하는 말을 들었을 때는 믿기 힘들었다. 분위기와 주변 공간의 무거움이 절대 장난치는 것 같지는 않았고.

세 가지 감정이 죄책감으로 바뀌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조금만 주의했었어도 절벽에서 발을 헛디딜 일도 없었고, 저 사내도 이런 곳에 휘말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살인이었다.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한 사람의 목숨을,

인생을 앗아갔다.

내가 가족들이 보고 싶듯 그도 사랑하는 가족이 있을 것인데. 마음이 바위처럼 무거워졌다.

죄송함. 죄송함. 죄송함.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몰랐다.

사내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행동했고, 그 적막 속에서 급하게 미안함을 표현하고 싶었다.

실수였다.

그리고 이기적이었다.

내 감정이 중요하듯 저분의 감정도 복잡할 텐데. 내 감정을 앞세워 죄책감을 덜어내려 하다니. 사내는 쏘아붙였고 어느 순간 살려달라고 말하려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게 또 웃겼다.

미안하던 마음이 생존에 직결되자 나도 모르게... 또 살려달라니. 너무 죄스럽고 염치 불고한 마음에 눈물이 나오려 했다.

"아니에요... 시키는 대로 할게요. 정말 죄송합니다."

"......"

쓱- 쓱-

담배를 다 태운듯 사내는 신발 바닥으로 땅을 짓이겼다.

한참의 침묵이 흐른 후 그가 말을 꺼냈다.

"이렇게 된 게 그쪽이 의도했던 건 아니잖아요. 그쵸?"

"네...? 네...네!"

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며 황급히 대답했다.

"후- 그쪽도 많이 힘들 텐데, 죄책감까지 가질 필요는 없어요."

결국 난 참았던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죄책감 대신 한 가지만 생각해요."

"어떤..."

"우리는 어떻게든 이곳에서 생존해 나간다. 소연 씨는 미안하면 어떻게든 내 생존을 돕는다."

"......"

"죄송해할 시간에 어떻게 살아야 할까 궁리하란 말입니다."

"네... 네... 꼭 도움이 될게요."

"일단 눈 좀 붙여요. 휴식 좀 취하고 움직입시다."

***

그녀를 다독인 나는 나무에 등을 기댄 채 눈을 감고 생각했다. 그녀와 관련해서 머리속이 복잡하지만, 지금은 내 생존에 도움이 되는 것만 생각하자.

우선 이 공간에 가만히 있을 수는 없었다.

어느 정도 휴식을 취하고 이 새로운 공간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지. 무기력하게 있는 것은 내 취향이 아니다.

앞으로의 일의 계획을 세우려는 순간 어두운 시야에 어스름하게 빛이 찾아들었다.

다행이다.

이곳에도 아침이 있나 보구나.

생각보다 정찰하기 쉽겠어.

아차- 싶은 내 눈이 번쩍 떠졌다.

이런 멍청한 놈.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없이 잠에 빠지다니. 정신적으로도 육체적으로도 많이 피곤했었나 보다.

전에 피운 장작불이 검은 재만 남은 것 보니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내 몸 위로는 선소연의 등산용 바람막이가 덮여있었다. 그럼 그녀는?

선소연은 내 옆에서 굼벵이처럼 쭈그리고 덜덜 떨며 자고 있었다.

어휴- 추웠을텐데.

죄책감 가지지 말라니까.

나를 위해 본인의 옷을 희생한 것이다.

저러니까 또 괜히 안쓰러워 보였다.

바람막이를 들어 다시 소연에게 덮어주고 일어났다. 우선 이곳에 대한 수색을 할 생각이다. 담뱃갑을 열어보니 10까치 정도 남아있다.

'아껴야 하지만 그래도 아침이니까.'

한 까치를 입에 물고 불을 붙인 나는 숲의 위쪽 고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이곳의 지리를 높은 곳에서 한눈에 봐야 할 것 같다.

꼬르륵-

배가 고팠다.

식량으로 할 수 있는 식물이나 과일이 있는지도 확인해야 하고, 또 안전하게 지낼 수 있는 곳도 찾아야 한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본격적으로 파악하는 건 그다음이다. 혹시 위험한 생물이 있는지 파악하는 것도 필수다.

저벅- 저벅-

계속 걷고 있는데 묘한 이질감이 든다.

어제 하루 종일 아려왔던 가슴 부분이 멀쩡하다. 나는 급히 옷을 들춰 확인했다. 검게 들어있던 멍이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회복하려면 일주일은 필요하다 판단했었는데..."

나는 혼자 중얼거리며 걸었다.

회복 능력이 비상식적으로 빨라졌다.

상식이 깨진 공간에서 신체의 상식도 깨져버렸다. 이곳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갔다. 확실한 것은 정상적인 곳은 아니라는 것.

'그나저나 이곳은 아무것도 없군.'

약 20분 정도 걸었나.

나는 다시 뒤돌아 선소연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높이도 모르는 고지를 가는데 시간이 얼마나 소요될지 알 수도 없을뿐더러, 어떤 위험이 있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녀 혼자 오래 방치해 둘 수는 없기 때문이었다.

주변엔 장작용으로 쓸 수 있을 것 같은 이색적인 나무들만 보일 뿐. 먹을만한 것들이 보이지는 않았다.

꼬르륵-

이곳은 나의 빈속처럼 황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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