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베즈 레빈에 떠오른 별 (8) >
137. 샤베즈 레빈에 떠오른 별 (8)
"이스마엘 콥 선수의 2루 베이스 위를 가르는 총알 같은 타구! 하지만 아웃, 아웃입니다! 강해준 선수의 슈퍼 플레이는 올스타전에서도 그 빛을 잃지 않습니다!"
"하하, 당황하는 이스마엘 콥 선수의 표정 좀 보세요. 평소 포커페이스로 유명한 콥 선수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한숨을 내쉬면서 벤치로 돌아갑니다."
"이 광경을 바라보는 AL 선수들도 놀라는 표정이네요. 사실 소문으로 듣긴 했어도 눈앞에서 보는 건 처음이지 않겠습니까? 스윙과 동시에 수비 동작에 들어가는 강해준 선수만의 수비 시그니쳐! 직접 봤을 때 더욱 충격적인 광경이죠!"
MBW 스포츠국 중계진의 반응은 말 그대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전 세계인들의 시선이 모이는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그곳에서 KBO 출신 선수가 눈에 띄는 활약을 한다는 것은 남다른 의미를 가지기에.
"미친 듯이 올라가는 강해준 선수의 투표수를 보세요-! 모두들 아시다시피 이번 올스타전은 새로운 투표 방식이 적용됩니다.! 전 세계 팬들의 투표가 70%, BBWAA(미국야구기자협회)의 투표 30%로 결정되는 올스타전 MVP! 강해준 선수가 거기서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어요, 그것도 KBO 출신 선수가 말이죠!"
올스타전 MVP 레이스.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만, 방송화면 한편에서는 해준이 다른 선수들과 그 격차를 벌리고 있는 실시간 투표 집계 현황이 떠올라 있었다.
1. HAE-JUN KANG(LAD) 123,923▲
2. Aaron Terrine(PHI) 39,132▲
3. Ismael Cob(NYY) 38,990▲
4. ·········.
특히나 서재준 특별 해설위원의 표정은 무척이나 상기되어있었다.
KBO 레전드 플레이어 출신으로서 MLB에 진출, 통산 1승 1패 ERA 9.22라는 초라한 성적을 찍고는 돌아왔던 그.
그렇기에 같은 KBO 출신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저런 활약은 한다는 것은 그의 심정을 무엇보다 들뜨기 만들기에 충분했다.
"상금이 무려 1,000만 달러가 걸린 올스타전! 게다가 올스타전의 MVP에게는 올스타전에서 발생한 순수익의 5%가 지급됩니다! 그런 만큼 누가 그 트로피를 가져갈 것이냐! 많은 추측이 있었지만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는 2년 연속 올스타전 MVP를 수상한 이스마엘 콥 선수와 강력한 다크호스로 부상한 강해준 선수, 이 두 명이었죠?"
"하지만 이스마엘 콥 선수의 안타를 뺏어가 버린 강해준 선수! 이렇게 된다면.."
"강해준 선수가 이스마엘 콥 선수의 표를 뺏어옴으로써, 수상 확률이 더 높아지는 거죠!"
계속해서 이어지는 김동준 해설위원과 서재준 해설위원의 티키타카.
"..."
하지만 특별 해설위원으로 출연한 조대욱 감독의 반응이 미지근하자, 서재준 해설위원이 조심스레 물었다.
"조대욱 해설위원께서는 이번 MVP 레이스를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강해준 선수가 초반부터 치고 나간 만큼, 유리할 것으로 생각하는데요.."
그 말에 조대욱 감독은 무언가 생각을 정리하듯, 흠- 소리와 함께 입을 열었다.
"경쟁에서 유리하다? 이 전제부터가 잘못됐다고 봅니다."
"네? 그렇다면..?"
그 단호한 대답에 서재준 해설위원이 당황한 기색을 띠었다.
'혹시 제자라서 엄하게 평가하시려는 건가?'
현장에서도 선수들에 대한 평가가 짜기로 유명한 조대욱 감독.
특히나 유독 아끼는 애제자였던 해준에게는 더더욱 그랬다는 것은 유명했다.
"경쟁이 아니라, 독주라고 봐야죠."
그사이 무덤덤하게 충격적인 말을 내뱉는 조대욱 감독.
그 말에 김동준 해설위원과 서재준 해설위원 둘 모두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독주라면 설마 이스마엘 콥의.."
해준을 띄우기 위해 데려온 조대욱 감독.
그가 완전히 핀트를 어긋난 말을 해버리자, 조용수 PD 또한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하지만 이어진 말은 그들 모두를 어리둥절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콥의? 서 위원이 무슨 소리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저는 강해준 선수의 독주가 될 것이라 말한 겁니다."
"네?"
"강해준 선수의 독주요?"
타자와 타자가 경쟁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뿐이다.
누가 결정적 타점을 올리느냐, 누가 더 많은 홈런을 치느냐.
그렇기에 이스마엘 콥이 무안타에 그칠 것이란 확신이 없는 이상, 독주라는 말은 성립하지 않는다.
어리둥절한 분위기 속에서 서재준 해설위원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조대욱 해설위원님. 독주라고 표현하기 위해서라면 이스마엘 콥 선수가 무안타 그치고, 강해준 선수는 전 타석 안타와 함께 결정적인 타점을 만들어낸다. 이 정도는 돼야 가능한 이야기 아닐까요? 그렇지만 이스마엘 콥 선수가 강해준 선수의 활약에 짓눌려 페이스를 잃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생각됩니다만.."
그 말에 조대욱 감독이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말한 게 그겁니다. 보통 투수와 타자 간의 경쟁이라면 모를까, 타자와 타자는 서로의 성적에 간섭하기 불가능하죠. 보통 타자라면 이스마엘 콥 선수가 타석에서 안타를 쳐내는 것을 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그리고는 조곤조곤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강해준 선수는 다릅니다. 자료가 충분하고, 컨디션만 따라 준다는 가정하에. 감독과 팀원들마저 동의해준다면."
"해준다면?"
"강해준 선수는 수비를 통해 경쟁자를 압살해버리는 것이 가능한 유일한 선수입니다."
+++
[AL 0 : 0 NL]
1회 초, 아무런 소득도 거두지 못하고 물러난 아메리칸리그 올스타팀. 타석에는 내셔널리그의 리드오프로 나선 해준이 자세를 잡고 있었다.
마운드에는 AL 올스타팀 선발 투수 그렉 마우리시오.
올 시즌 전반기 10승 2패 119탈삼진 평균자책점 1.99를 기록하며 올스타전 선발 투수로 낙점된 메이저리그 3년 차 투수.
'저 자식이 200만 달러짜리란 말이지.'
그가 침을 퉷- 뱉으며 투구판을 밟았다.
뉴욕 양키스 사장 조 파바스가 건 현상금.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그에게는 연봉보다 많은 금액에 해당했기에, 지금 그의 두 눈빛을 의욕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 결과는 그리 좋지 못했다.
"흐으읍-!"
------터엉-!
[Double! 2루타입니다-! 담장을 직격하는 KANG의 타구에 다저 스타디움을 가득 메운 팬들이 환호하는군요!]
초구 스트라이크를 잡기 위해 맹렬히 회전하며 들어오던 포심 패스트볼. 하지만 지금에 이르러서 포심 패스트볼은 아무리 강력하더라도 해준의 스윙을 억제하기 불가능했다.
-초구 후려버리네 ㅋㅋㅋㅋㅋㅋ
-2루타 ㅅㅅㅅㅅㅅ
-MVP 먹으러 왔습니다 꺼억~
-이스마엘 콥 압살 ㅋ
-본인은 안타 뺏기고, 투수는 2루타 내주고 ㅋㅋㅋㅋ 양키스 사장 속 타들어 갈 듯 ㅋㅋㅋ
-? 양키스 사장 속이 왜 타들어감?
-양키스 사장이 강해준 아웃카운트에 상금 건 거 말하는 거 아님?
-뭔 개솔. 웬 상금?
-ESPM 짐 레이드가 트윗 올렸는데 신뢰할만한 소스가 그런 소리 했다는 듯?
-개솔 ㄴㄴ; 사무국이 그런 짓 가만히 두고 볼 리가 있나.
-암튼 강해준 호수비 + 2루타, 앙 기모띠. 시작부터 압도적 1위 먹으면서 출발하네 ㅋㅋㅋ
그에 한국의 야구팬들은 편한 마음으로 경기를 관람하고 있었다. 올스타 선발 투수를 상대로 타석에 들어섰을 때는 잠시 긴장하긴 했으나, 폭발적인 레그킥과 함께 장타를 때려낸 해준.
비록 조 파바스 사장의 수상쩍은 행동이 잠시 화제가 됐지만, 오피셜로 확인된 정보가 아니었기에 바로 묻혀버렸다.
그리고, 그 사이에도 해준에게는 투표수가 몰리고 있었다.
1. HAE-JUN KANG(LAD) 493,293-
2. Aaron Terrine(PHI) 299,832-
3..........
하지만 이스마엘 콥이라고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2번 타자로 들어선 뉴욕 메츠의 좌타자 로니 그린.
"흡-!"
그가 있는 힘껏 당겨침과 동시에.
[1루 강습-!]
그 타구가 몸을 날린 이스마엘 콥의 글러브로 빨려들어갔다.
퍼어어엉-!
[하지만 이스마엘 콥 선수, 역시 대단합니다! 리그 최상위급의 수비 실력을 보유한 선수답게 로니 그린 선수의 타구를 뺏어가는군요! 빠져나갔다면 발 빠른 KANG이 홈에 들어올 수 있는 타구였습니다!]
-Ismael! -Ismael! -Ismael-!
그 호수비에 이번에는 이스마엘 콥의 이름을 연호하는 팬들이 늘어났다.
1. HAE-JUN KANG(LAD) 499,841-
2. Ismael Cob(NYY) 348,234▲
3.......
그와 함께 NL 선발 투수 애런 테린을 누르고 순식간에 2위에 이름을 올리는 이스마엘 콥.
전광판에 실시간을 반영되는 그 결과를 바라본 AL과 NL 소속 선수들의 얼굴 근육이 긴장감으로 미세하게 굳거나 꿈틀거렸다.
꿀걱-
'강과 콥. 초반부터 미친듯이 치고나가는군. 이러다 역전할 기회가 사라질텐데..'
'fuck, 이거 장난 아니잖아..?'
'팬들이 플레이 하나하나에 바로 반응해버리네?'
'제기랄, 어떻게든 눈에 띄어야 하는데..'
'괴물 자식들. 처음부터 치고 나가겠다 이거지?'
기존과는 다른, 자신이 실시간으로 경쟁자들에게 쳐지고 있다는 느낌이 피부 위로 와닿는 시스템.
하나둘씩 굳기시작하는 선수들의 표정이 클로즈업되자, 조조 살라스 커미셔너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
'이거 제대로 건드렸나?'
도입되기 전에는 여러 우려가 많은 것이 사실이었다.
그렇지 않아도 승부욕과 경쟁심의 화신인 메이저리그 선수들.
그것을 한층 자극하고, 과열하는 분위기는 부상을 부를 수 있다는 의견이 많았으니까.
그럼에도 조조 살라스 커미셔너는 이 시스템의 도입을 적극적으로 주장했다.
'더 불타오르고, 더 경쟁해야해. 그 타오르는 분위기가 야구에 부족한 역동성을 채워줄테니.'
메이저리그의 부흥.
파격적인 우승 상금과, 새로운 시스템, 어마어마한 마켓팅 집행비.
그 모든 것은 그를 위해서였다.
'무대는 만들어줬다. 이제 남은 것은...'
배우들이 최선을 다해 관객들을 홀리는 일뿐.
그렇게 잠시 뒤.
'...응?'
조조 살라스 커미셔너는 자신이 기다리던 주연이 본격적으로 움직이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KANG? 어째서 벤치로?'
+++
퍼어어엉-!
"스트라이크- 아웃--!"
경쟁심이라면 내로라할만한, 최고의 스타들이 모인 올스타전.
1,000만 달러의 우승 상금, MVP에게는 올스타전 순수익의 5%를 지급하는 인센티브.
그에 더해 실시간으로 득표수를 보여주는 전략은 선수들의 마음 속에 불을 지폈다.
가장 먼저 불타오른 쪽은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아웃라이어, 벨기언스 미사일이라 불리는 애런 테린.
부우우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좋았어-!"
그가 마운드에서 한 차례 포효를 하며 벤치로 향하고 있었다.
2이닝을 마친 그의 기록은 1피안타 4탈삼진 무실점.
1회 초, 2번 타자로 들어선 데블린 스티븐스에게 안타를 허용한 것 외에는 라이언 더거(BOS) - 마틴 시에라(LAA) - 미구엘 디아즈(CLE) - 헥터 스니드(CWS) 등으로 이어지는 올스타들을 완벽하게 압도하는데 성공한다.
그럼에도.
1. HAE-JUN KANG(LAD) 102,953,002-
2. Aaron Terrine(PHI) 759,289▲
3. Ismael Cob(NYY) 593,903▼
해준은 여전히 압도적인 1위를 수성하고 있었다.
"...후우, 강을 따라가기 힘들겠어."
숨을 몰아쉬며 벤치에 자리를 잡는 애런 테린. 그가 씁쓸하게 조금 전의 광경을 떠올렸다.
"두 번인가."
단 두 번.
자신이 4개의 삼진을 잡아내는동안, 해준은 2개의 말도 안되는 수비를 펼쳐내며 팬들의 마음을 홀리고 있었다.
"강과 이스마엘 콥. 이 두 명 외에 다크호스는 나타나지 않는건가?"
이제는 자신의 등판이 끝났음을 알아차린 애런 테린이 아이싱을 하며 중얼거렸다.
2회 말, 이어진 NL측의 공세.
하지만 서로 이를 악물고 달려드는 올스타 선수들은 서로에게 쉽게 점수를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따아아아악-!
[큽니다-! 이건 커요! 데이비드 홀리데이, 그가 배트를 집어던집니다! 하지만... 캐치-! Holy shit! 담장 위에서 타구를 잡아채는 맥스 화이트!]
외야수에게 홈런성 타구가 잡히는가 싶더니.
퍼어어엉-!
[스트라이크 아웃-! 10구까지 가는 접전이었지만, 제이크 포드의 방망이가 헛돌고 맙니다! 영건 그렉 마우리시오의 놀라운 활약!]
AL의 선발투수라는 명성을 지켜내기위해, 투수는 월드시리즈에 임하는 각오로 공을 던져대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돌아온 3회 초.
다시 공격 기회를 잡은 AL 측의 공세는 매서웠다.
애런 테린에 이어 마운드를 밟은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마이크 디커슨.
[마이크 디커슨! 올 시즌 7승 4패 115이닝 128탈삼진 ERA 2.41를 기록하고 있는 명실상부한 애틀란타의 심장입니다. 그를 상대로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는 미네소타 트윈스의 조슈아 스테시! 전반기에서 17홈런을 날리며 건재함을 자랑하고 있는 트윈스의 주포 중 한 명이죠! 초구, 던집니다! 그리고...외야를 가르는군요!]
그는 이닝 리드오프에게 시작부터 장타를 허용하더니.
퍼어어엉-!
"볼-! 베이스 온 볼스-!"
9번 타자 밴 우드러프가 끈질기게 들러붙자 볼넷을 허용하고 만다.
0:0의 팽팽한 스코어, 그리고 상대를 짓누를 기회가 되는 무사 1,2루.
그 상황에서 NL 측에는 최악의 타이밍처럼 AL 최강의 타자 이스마엘 콥이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후우."
이전 타석에서의 어처구니 없는 아웃을 당하지는 않겠다는듯, 보기 드물게 숨까지 깊이 조절하며 집중력을 높이는 이스마엘 콥.
"좋아, 이스마엘. 이번에는 날려버리자고."
그 광경을 보고 있던 뉴욕 양키스의 조 파바스 사장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보였다.
타고난 슈퍼스타, 이스마엘 콥이라면 이 상황에서 높은 확률로 타점을 만들어낼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긴장감을 한껏 끌어올리는 NL측의 팬들, 그리고 기대감으로 목이 쉬어라 소리지르며 AL측을 응원하는 팬들.
'움직일 때가 됐나.'
해준은 그 광경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본격적으로 불이 붙기 시작 올스타전.
지금 이곳에서 선취점을 내준다면, 그 후로는 걷잡을 수 없을만큼 힘들어질 것이 분명하다.
그리고 그 중심이 되는 뉴욕의 슈퍼스타, 이스마엘 콥.
그렇기에.
"고마워, 제이크."
"고맙긴. AL 놈들이 너한테 현상금 걸었다며? 본 때를 보여주라고."
해준은 그들의 중심을 시작부터 제압해버릴 생각이었다.
[선수 교체인가요? 중견수 제이크 포드 선수가 글러브를 벗고 벤치를 향... 아니, 강도 벤치를 향해 가는군요? 무슨 일이죠?]
벤치로 향해 유격수 글러브를 건네받는 제이크 포드.
그리고, 중견수 글러브를 꺼내드는 해준.
[...이건?]
2027 메이저리그 개막전.
다저스의 천적,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를 침몰시키며 해준에게 프릭 필더라는 명성을 안겨주는 그 외야 포지션.
[Oh my goddess! 포지션 체인지--!! 강이 중견수 글러브를 끼고 외야를 향해 뛰어가고 있습니다!]
그것이 4억에 가까운 시청자들 앞에서 다시 등장하려 하고 있었다.
< 샤베즈 레빈에 떠오른 별 (8)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