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샤베즈 레빈에 떠오른 별 (3) >
132. 샤베즈 레빈에 떠오른 별 (3)
6.5피트(약 198cm)의 키.
그 속에는 완벽하게 짜여진 근골과 근육으로 이루어진 한 명의 인간이 있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완벽한 야구 선수 중 한 명으로 불리는 이스마엘 콥.
"조 파바스 사장이 또 쓸데없는 일을 벌인 모양이더군."
올스타전을 얼마 남기지 않은 날.
경기가 없는 날에도 철저한 컨디션 관리로 유명하던 그가 시티 필드에 모습을 드러낸 이유는 간단했다.
"아무래도 올스타전에는 걸린 것들이 많아서 그런 거겠지."
뉴욕 양키스 사장 조 파바스.
그가 AL팀 감독 루시아노을 통해 올스타전 투수들에게 내린 모종의 지령.
그는 그 사실을 해준에게 전해주고 있었다.
"AL 올스타 측의 모든 투수들이 자네를 박살 내려 들거야."
해준은 그 소리에도 차분한 시선으로 이스마엘 콥을 바라보았다.
'예상이 되면서도, 의외라고 해야하나.'
오래전 폐지되었던 월드시리즈 1차전 어드벤티지가 부활했다.
우승 상금은 10배 넘게 폭등한 1,000만 달러.
입장 수익 및 스트리밍, 광고 등을 통해 발생한 순수익의 5%가 올스타전 MVP에게 지급되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화려한 이번 올스타전.
아무리 천문학적인 벌이를 자랑하는 메이저리거들이라 하더라도 눈이 돌아갈 만한 요소들임은 분명했으니까.
'나를 박살 낼 거라고? 예상을 못 했다면 그게 더 이상하지.'
투수들은 자신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박살낼 생각으로 마운드에 오를 것이다.
즉, 당연한 소리란 뜻이었다.
오히려 의외인 점은 따로 있었다.
'바로 콥이 왜 나를 찾아와 이런 소리를 하느냐인데.'
해준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은 동공으로 그의 시선을 직시했다.
차분하면서도 서늘하게 가라앉은 눈동자.
그 속에는 한 분야에서 오랫동안 일인자의 자리를 유지해온 남자의 단단함과 여유가 깃들어있었다.
"집중 견제 정도야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콥, 당신도 지난 몇 년간 올스타전에서 NL 투수들에게 많은 견제를 당했잖아요? 이상할 건 없죠."
인지도를 높이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인지도가 높은 선수를 사냥하는 것. 그런 사실을 모르고 메이저리그에서 뛰는 선수는 없었다.
하지만 이스마엘 콥은 작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홍채빛 동공에 강한 흥미로움이 서렸다.
"아웃 카운트 하나당 200만 달러."
"..?"
"강, 조 파바스 사장이 내건 자네의 목숨값이지."
그 말에 해준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200만 달러라고? 너무 과한 금액이야.'
승리에 대한 조 파바스 사장의 집착은 메이저리그에서도 유명하다. 하지만, 올스타전에서 한 번 우승하기 위한 금액이라 생각한다면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그렇다고 조 파바스 사장이 그저 무식하게 돈이나 뿌려대는 사람도 아니다.
뒤따르는 이익이 없다면 그보다 더한 스크루지도 찾기 힘들 지경이니까.
'그렇다는 소리는..'
팀의 우승보다는, 다른 목적이 있다는 소리.
그 사실을 알아챈 해준의 눈동자가 순간 빛났다.
"마켓팅 목적이겠군요. 그것도 콥, 당신과 얽혀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되는데요."
"..놀라운걸."
예상치 못한 대답이 돌아오자 이스마엘 콥은 자신도 모르게 허- 소리와 함께 감탄사를 내뱉었다.
'야구 실력뿐만 아니라 상황 파악 능력마저 괴물인가. 포스팅 협상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는 소문이 사실일 수도 있겠군. 야구만 아는 무식한 누구와는 다른데.'
클럽하우스 한편에서 시끌벅적한 목소리로 떠들고 있는 드레이븐 래리. 이스마엘 콥이 그를 슬쩍 바라본 사이 해준이 말을 이었다.
"조 파바스 사장이 양키스의 영향력을 확장하는 데 혈안이 돼 있다는 사실은 유명하니까요. 사람들의 시선이 우리 둘에게 쏠린 시점에서 올스타전은 좋은 이슈거리가 되겠죠. 우리 둘 중, 누가 더 우위일지. 조 파바스 사장은 그 이슈에서 당신을 승자로 만들어주고 싶은 거고요."
해준의 말은 정확했다.
이번 조 파바스 사장의 움직임은 현재의 손해보다는 미래를 내다보는 투자에 가까웠으니까.
4억 인구의 눈길이 모일 것이라 예상되는 올스타전.
그리고 그 축제에서 형성되는 브랜드 가치.
그것을 위해서라면 조 파바스 사장은 200만 달러가 아닌 1,000만 달러라도 사용할 준비가 돼 있는 남자였다.
"기껏 말해주러 왔더니 한마디만 듣고 다 알아버리는군."
이스마엘 콥은 허탈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한 타자를 사냥하기 위해 준비된 올스타급 투수들.
그 사실을 전해 들었음에도 해준에게는 어떠한 두려움도 엿보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동기 부여가 된 것 같군.'
잠시 해준을 뚫어져라 바라보던 이스마엘 콥.
그가 곧 무엇을 떠올렸는지 웃으면서 입을 열었다.
"어때, 준. 아, 준이라고 물러도 되겠지? 아무튼 나랑 내기 하나 하지 않겠어?"
"내기?"
그 순간.
"조건은... 올스타 MVP. 그 정도가 적당하겠군."
해준의 눈앞에 오랜만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아웃라이어 '더 퍼펙트 히터The Perfect Hitter' 이스마엘 콥이 내기를 제시했습니다.]
[목표 - 올스타전 MVP 수상]
[성공 시 – 특수모듈 'AL의 지배자'를 획득합니다.]
[실패 시 – 이스마엘 콥에게 특수모듈 'NL의 지배자'가 적용됩니다.]
'AL의 지배자?'
내용을 확인한 해준의 눈동자가 순간 번뜩였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는 이스마엘 콥이 말을 계속했다.
"이긴 사람의 기부 재단 앞으로 20만 달러 기부. 어때, 괜찮은 조건이지? 대신 자네에겐 패널티가 있으니 내 쪽 조건을 더 올리지."
그리고는 잠시 고민을 한 뒤 말을 이었다.
"자네가 이기면 내가 아끼는 보스 429까지 얹어주는 거로 하자고. 1969년에 초기 수제작으로 50대밖에 안 뽑힌 녀석으로 말이야."
그 말에 해준은 잠시 고민하는 표정을 지었다.
머스탱 보스 429.
그 가치를 잘 알지는 못했지만, 돈을 주고도 구할 수 없는 물건이라는 사실은 잘 알았다.
그리고는 이내 입을 열었다.
"제 대답은.."
+++
생각보다 길어진 이야기에 이스마엘 콥은 뒤늦게 구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
'다저스의 슈퍼 루키가... 생각보다 배짱이 두둑한데.'
조금 전 있었던 대화를 떠올린 이스마엘 콥.
그는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시간을 확인했다.
메츠 측 선수들은 일찌감치 집으로 돌아간 상태였고, 다저스 선수들 또한 원정 호텔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고 있을 시간.
'이런, 너무 시간이 늦었나. 어서 돌아가야겠군.'
이스마엘 콥은 주차장을 향해 걸음을 재촉했다.
그리고, 그런 그의 앞에 의외의 사람이 나타났다.
"응? 잠깐. 이게 누구야?"
자신의 차인 머스탱 보스 429 앞에 서 있는 남자를 발견한 이스마엘 콥.
그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마르쿠스? 진짜 마르쿠스인가?"
"이스마엘. 오랜만이군. 작년 올스타전 이후로는 처음인가?"
다저스 역대 원탑 포수이자 현재 진행형으로 그 전설을 이어나가고 있는 마르쿠스 영.
그의 등장에 이스마엘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며 목소리에서 반가운 기색이 드러났다.
"이거 정말 오랜만이군! 자네팀이 월드 시리즈에 올라오면 조금 더 자주 볼 수 있었을 텐데. 자네만큼 타격 지론에 관해서 이야기를 나눌 사람도 드물단 말이지."
"...만나자마자 재수 없는 소릴. 올해는 다를 예정이니 그런 소리는 듣고 싶지 않군."
"흠, 뭐. 그럴 가능성이 높아 보이긴 하지만 말이야. 작년하고는 분위기가 완전히 딴판이니. 내가 살다가 다저스를 부러워할 날이 있을 줄 몰랐어."
이스마엘 콥은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저리그의 전설 중 한 명인 자신이다.
그런 그의 앞에서 조금도 주눅 들지 않은 시선을 보내던 영 플레이어. '우리 팀에도 그런 루키가 나타나야 할 텐데' 라고 중얼거린 이스마엘 콥에게 마르쿠스가 말했다.
"오래 끌 생각은 없어. 용건만 말하겠네. 조 파바스, 그 남자가 소문으로 퍼진 계획 말고 또 무슨 짓을 꾸미는 중이지?"
마르쿠스 영의 목소리에는 깊은 수심이 담겨있었다.
뉴욕 양키스의 사장 조 파바스.
그는 뉴욕 양키스로 들어오기 전에는 월가에서 악명 높던 변호사였다. 승리를 위해서라면 증인 매수, 증거 조작, 허위 진술 강요 등을 서슴지 않던 악마.
양키스의 사장직을 맡은 뒤로는 그런 소문이 들려오지 않았지만, 마르쿠스 영은 도저히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사람은 변하지 않는 법이지. 숨기는 것 방법이 더 교활해질지는 몰라도 말이야.'
그런 마르쿠스의 의심이 담긴 시선에 이스마엘 콥은 난감하듯 웃어 보였다.
"..이런 소문이 벌써 퍼졌나?"
"그 구린내가 뉴욕을 넘어 LA까지 퍼질 정도지."
마르쿠스가 그런 이스마엘 콥에게 적대적인 음성으로 말하자, 이스마엘 콥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마르쿠스. 자네는 예전부터 그랬어. 설마 파바스 씨가 무슨 짓이라도 할까 봐? 세계 최고의 스타로 떠오르고 있는 선수를 상대로?"
"이익이 된다면 또 모르지. 승리와 돈에 미친 남자 아닌가? 스타인브레너 가문이 왜 그런 자를 신뢰하고 있는지 모를 정도야."
이스마엘 콥은 그런 마르쿠스 영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막 나가는 면이 있는 분이긴 하지. 하지만 양키스에 들어온 뒤로는 자제하고 있다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하지만 마르쿠스는 고개를 저으며 그 말을 부정했다.
"내가 걱정하는 건 그만이 아니라 자네도 포함돼 이스마엘."
그리고는 한숨을 쉬며 이어말했다.
"조 파바스는 자네 대부 아닌가? 걱정하는 척 말을 전하러 올 시간에 말 한마디만 했다면 조 파바스 사장은 충분히 그 계획을 취소했겠지. 자네 말이라면 그 스쿠루지 같은 양반이라도 수백만 달러를 기부하니 말이야."
그 말에 이스마엘 콥이 재밌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나를 너무 잘 아는데? 우리 둘이 같은 팀이 됐다면 정말 좋았을 텐데 말이야."
뉴욕 양키스의 사장 조 파바스.
그는 어릴 적부터 이스마엘 콥의 뒤를 봐준 대부이자 스폰서였다. 이스마엘 콥은 마르쿠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
"난 그저 그 루키에게 동기를 부여해준 것뿐이야. 그동안 행보를 보아하니 억누를수록 강하게 튀어나가는 성격이던데. 이번에는 어떤 모습을 보여 줄지 궁금하잖아? 그런 루키는 정말 오랜만이라 흥미가 생긴 것뿐이라고. 자네가 생각하는 그런 일은 없으니까 안심하고. 시간이 늦었어, 이만 들어가지? 구단 버스도 곧 떠날텐데 말이야."
마르쿠스는 그런 이스마엘 콥은 굳은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퍼펙트 히터 이스마엘 콥.
오랜 시간 메이저리그에서 그와 동시대를 살아온 마르쿠스 영은 그의 저 호의적인 가면의 뒷면에 숨겨진 본 모습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자네.."
하지만 이스마엘 콥은 그런 마르쿠스의 말을 끊으며 무언가를 내밀었다.
"아, 그건 그렇고. 여기 공."
"..공?"
"이야기하는 김에 겸사겸사 주려고 갔다가 까먹었네. 꼭 전해줘, 빼돌리지 말고."
그렇게 이스마엘 콥은 하얀색 마세라티를 타고 묵직한 엔진 소리으로 뉴욕 밤공기를 울리며 순식간에 사라졌다.
"...미친놈인 건 확실하군."
그리고, 손에 들린 하얀 공을 내려다보던 마르쿠스는 어처구니없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해준의 31경기 연속 안타 공.
"..남의 공에다가 본인 사인을 해놓다니."
그곳에는 정성 들여 쓴 것처럼 보인 글귀가 사인과 함께 적혀있었다.
-위대한 루키에게, 위대한 플레이어가 by cob
< 샤베즈 레빈에 떠오른 별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