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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에서 타자까지-129화 (129/137)

< 범선의 뱃고동 (2) >

129. 범선의 뱃고동 (2)

까득-

이를 악다문 해준의 허리가 폭발적으로 돌아가고, 경쾌한 파열음이 울려 퍼진다.

'What the fuc...'

동시에 당황한 투수의 고개가 황급히 돌아갔다.

'저걸 친다고?'

[투수의 옆을 스쳐 가는 타구! 안타, 안타입니다! 22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는 KANG! 최근 페이스가 무섭다 못해 두려울 지경이군요! 올 시즌 개인 최다 연속 경기 안타 기록을 연이어 갱신해나가고 있습니다!]

7월 3일, 마린스 파크.

해준의 타구가 외야에 떨어지며 관중석에서는 환호성이 울려 퍼졌다.

8회 초에 완성해낸 22경기 연속 안타.

다저스 벤치에서 그 광경을 바라보던 로니어 마토스 타격 코치가 감탄사를 터트렸다.

"기어코 또 쳐내는군요. 오늘은 힘들 것 같았는데 말이죠."

"시프트 탓인지 전체적으로 운이 따르지 않았지. 그걸 실력으로 뚫어내는군."

릭 베이츠 감독은 희미하게 빛나는 눈동자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해준은 분명 4할 타자지만, 사실 확률로 따지자면 20경기를 넘어 연속으로 안타를 쳐낼 가능성은 매우 낮다.

10번 중 6번은 출루에 실패한다는 소리니까.

그리고 그런 희박한 확률을 뚫고 22경기 연속 안타를 이어나간다는 의미는 간단했다.

그만큼 해준의 페이스가 천장을 뚫고 수직상승한 상태라는 것.

'무엇을 해도 되는 시기가 있지. 준은 지금 그런 시기에 들어선 거야.'

현재 해준의 시즌 성적은 .435/.529/.966.

시즌 전반기가 끝나감에도 OPS는 여전히 15할 부근을 유지하는 기염을 토해내고 있었다.

안타 갯수 또한 마찬가지.

해준은 이미 며칠 전 150개를 돌파하며 전반기가 끝나기도 전에 A급 선수들의 시즌 전체 안타 기록을 달성한 지 오래였다.

162경기로 환산한다면 282개.

2004년 시애틀 마리너스의 이치로 스즈키가 기록한 262개를 큰 격차로 경신하는 페이스에 해당했다.

'하지만 준의 진짜 가치는 단순히 안타에만 그치지 않는다.'

모든 수비 포지션을 소화하는 유틸리티성.

메이저리그 탑 티어 급의 재능인 장타력과 주루까지.

감독 입장에서 보자면 해준은 어떠한 역할을 맡겨도 100% 이상을 소화해낼 수 있는 마스터피스나 마찬가지였다.

릭 베이츠 감독이 굳은 신뢰가 담긴 시선으로 바라본 1루.

그곳에서는 베이스를 밟은 해준은 참았던 숨을 토해내고 있었다.

'이번에는 반 억지로 쳐냈어.'

배트를 타고 전해진 눈살이 찌푸려지는 반동.

손바닥이 울리는 느낌에 해준은 한 차례 손을 털었다.

'역시 가면 갈수록 버거워지고 있어. 확률에 먹혀가는 느낌이야. .'

사실 눈앞에 홀로그램이 떠올랐을 때까지만 해도 별생각은 들지 않았었다.

56경기 연속 안타에 도전하고 싶냐니?

헛소리도 이런 헛소리가 없었으니까.

'언제는 안 하고 싶어서 안 한 것도 아니고.'

자신은 본래부터 한 경기 한 경기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으며 플레이에 임하는 스타일이었다.

전력 분석부터 시작해 스트레칭, 수비 템포, 타석에서의 루틴까지. 모든 방면에서 철저함을 기하며 늘 최상의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지금 기록한 22경기 연속 안타도 그 과정에서 나온 것에 불과했다.

'이쯤 했으면 그만 끝나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렇기에 해준은 56경기 연속 안타라는 기록에 별다른 미련을 두지 않고 있었다.

중간에 몇 번이고 기록을 신경 써 스윙을 만들어 내보았지만, 아무래도 꺼림칙했으니까.

기록에 신경 써 스윙을 맞추는 것에 습관이 든 순간, 그 자체만으로 그것은 자신의 약점이 될 확률이 높다.

'게다가 이대로 간다면 곧 들통나겠지. 내가 볼넷을 꺼린다는 걸.'

본래 배드볼 히터 이미지가 있으니 잘 숨겼을 뿐이지, 선구안 위주로 게임을 풀어나가는 유형이었다면 진작에 들통났을 것이다.

그렇기에 해준은 결정을 내렸다.

'다음 경기에서부터는 본래 스윙으로 돌아가야겠어. 기록에 나를 맞추지는 않는다.'

게다가 본래 자신이 그렇게 결정하지 않더라도, 이 기록은 이른 시일 내에 끝날 가능성이 높았다.

'분명 그런 순간이 찾아올 테니까.'

어떤 발악을 해도, 결국 안타를 쳐낼 수 없는 확률의 순간이.

그때가 되면 어차피 연속 안타 기록도 끊길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다음 날.

"흐읍-!"

따아아악-!

[쳤습니다! 담장을 맞추는 KANG의 대형 타구! 오늘도 리드오프로서의 임무를 충실하게 수행해나가는 KANG입니다!]

2루 베이스를 밟은 해준은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보고는 마음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23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하셨습니다.]

[올 시즌 메이저리그 최다 연속 경기 안타에 해당합니다.]

[보상 블라인드가 해금됩니다.]

몰린 공을 받아쳐 기록한 2루타.

이 타석을 계기로.

'...이건?'

자신에게는 56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해야 할 동기가 생겨났으니까.

[레코드 아웃라이어 조 디마지오의 기록을 경신할 시, 특수모듈 '양키스의 기록 사냥꾼'을 획득합니다.]

LA다저스의 영원한 라이벌, 동부의 강자 뉴욕 양키스.

근 몇 년 들어 월드 시리즈에서 다저스의 앞길을 번번이 가로막았던 대적.

그런 그들을 무너트릴 무기가 그곳에 숨어있었다.

+++

양키 스타디움.

세계 최고의 도시답게 자유의 여신상, 월스트리트, 타임스퀘어, 맨해튼 7번가 등의 유명 관광 명소가 가득한 뉴욕이었지만, 이 거대한 도시에서도 이곳만큼은 특별한 장소였다.

악의 제국, 뉴욕 양키스New York Yankees

핀스트라이프로 정신 무장을 끝마친, 승리를 향한 갈망이 그 누구보다 강한 사나이들이 모이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명문 구단.

이들이 양키 스타디움을 자신들의 근거지로 삼고 있기 때문이었다.

"베이브 루스, 조 디마지오, 루 게릭, 미키 맨틀, 요기 베라까지.. 자네는 이들이 왜 양키스의 영구결번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는지 아나?"

그런 뉴욕 양키스를 진두지휘하는 조 파바노 사장.

그의 미간은 항상 깊게 패어 있었는데, 오늘따라 그 정도가 매우 심해 보였다.

단장 서먼 오닐이 그런 그의 눈치를 보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스타인브레너 가문의 절대적인 지지를 등에 업은 사장 조 파바노.

전성기의 조지 스타인브레너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승리에 대한 지독한 갈망은 품고 있는 이 남자는 때때로 다른 사람들의 피까지 바짝 마르게 하는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다.

골똘히 머리를 굴린 서먼 오닐이 대답을 내놓았다.

"그들이 항상 승리했기 때문이죠."

승리, 끊임없는 승리.

그것은 양키스의 존재 이유나 마찬가지인 단어였고, 눈앞에 앉아있는 남자의 삶의 목적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하지만 평소라면 고개를 끄덕였을 그 대답에 조 파바노 사장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반문했다.

"승리, 승리는 빌어먹을 정도로 당연한 소리잖나. 자네는 겨우 그런 말이나 하려고 그 자리에 앉아있나?"

그 예민한 반응에 서먼 오닐이 꿀 먹은 벙어리가 되자, 조 파바노는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

"그건 바로 그들이 우리 양키스에게 야구에서 가장 근본적인 것을 가져다주었기 때문이네."

"근본적인.. 것 말입니까?"

"그래, 근본적인 것. 바로 기록 말일세."

조 파바노는 불편한 기색이 잔뜩 담긴 눈빛으로 모니터를 바라보았다.

[Dodgers Rising! 역사를 부르는 질주, KBO에서 온 타자가 만들어낸 나비 효과!]

[조 디마지오 재현하나? SF전에서 23경기 연속 안타 기록을 이어나간 다저스의 리드오프, KANG.]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단 기간 40-40 달성 성공! 시즌 70-70 페이스로 내달리는 다저스의 폭주 기관차!]

그곳에는 양키스 최대의 라이벌, 다저스가 만들어낸 놀라운 질주에 주목하는 언론들의 설레발이 있었다.

하지만 조 파바노의 눈에 거슬린 것은 다저스의 승리 소식이 아니었다. 승률이라면 양키스 또한 뒤지지 않으니까.

그가 주목한 것은 어디까지나 한 선수의 이름이었다.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야. 우리 양키스가 세계 최고의 명문 구단으로 불리는 이유는 그 기록의 보유자이기 때문이지. 그런데 지금 다저스의 선수가 그 기록 중 하나와 함께 거론되는군. 서먼, 자네는 어떻게 생각하나?"

"만약 깨진다면 축하할만한 일 아니겠습니까? 어디보자... 87년 만에 경신되는 건가요? 이제 고작 반 밖에 오진 못했지만 정말로 깨진다면 한동안 떠들썩하겠죠."

단장 서먼 오닐의 태평스러운 말에 조 파바스 사장의 목대에 핏줄이 돋아났다.

"말도 안 되는 소리! 축하할 일이라고? 이봐, 서먼. 제발 정신 좀 차리게. 그 기록은 우리 양키스의 재산이야. 절대 누군가에게 내줘서는 안 되는 거라고!"

요즘 것들은 야구의 본질을 잃어버렸다고 조 파바노는 생각하고 있었다. 야구란 무릇 승리해야 하고, 그 과정에서 나오는 기록이란 절대 남에 의해 깨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양키스가 지금까지 명문 구단이라 불릴 수 있었던 이유도 그와 같았다.

승리와 기록을 양손에 모두 쥐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양키스라 불릴 수 있는 것이다.

그 격한 반응에 서먼 오닐이 떨떠름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조, 진정하세요. 이제 고작 23경기입니다. 56경기까지는 한참이나 남았어요. 강은 아직 내셔널리그 기록인 44경기에도 다가가지 못했습니다."

사실 정확한 지적이었다.

언론과 팬들이야 설레발이 일상인 곳이니 당장이라도 기록이 깨질 수 있을 것처럼 굴지만, 누구보다 가까이서 현장을 보아온 이들은 잘 알고 있었다.

23경기?

해준이 45경기 연속 안타를 치더라도 56경기 연속 안타가 깨질 확률은 여전히 희박하다.

그럼에도 조 파바스 사장은 고개를 내저었다.

"기록이 깨지는 거야 당연히 말도 안 되지. 그래서도 안 되고. 지금 내가 걱정하는 건 다른 것일세."

"다른 것이라면.."

"이스마엘, 그 친구도 기록에 도전 중이지 않은가?"

"..아, 그렇죠."

서먼 오닐 단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메이저리그가 나은 최고의 스타, 뉴욕 시민이 사랑하는 최고의 베이스볼 플레이어, 퍼펙트 히터 이스마엘 콥.

그가 벌써 4년째 조 디마지오의 기록 경신에 도전하고 있다는 것은 유명했다.

"45경기, 39경기, 49경기였던가요? 작년이 아주 가까웠지만.. 결국 조금 모자랐죠. 지금은 17경기 연속 안타를 기록 중이고.."

그 말에 조 파바스 사장이 심각한 기색을 띠었다.

"내가 걱정하는 게 바로 그거야. 언론들은 분명 이스마엘과 강을 비교하려 들걸세. 그리고, 이스마엘이 만약 이 경쟁에서 패배한다면? 그건 비즈니스적으로 어마어마한 손실이 될 거야."

조 파바스는 그동안 해준과 맞붙어 패배한 메이저리그의 스타들을 너무나 많이 보아왔다.

게릭 하우서, 마이클 오웬, 애런 테린까지.

이스마엘 콥과 함께 메이저리그에서도 손에 꼽히던 스타들은 해준에게 무너져 내렸고, 이들의 팬덤은 고스란히 해준과 다저스에게 흡수되고 있었다.

조 파바스가 걱정하는 것은 그것이었다.

"메이저리그가 전 세계적으로 팽창해나가는 중요한 시기야. 야구를 처음 접하는 잠재적 수요층? 알래스카의 천연가스처럼 무궁무진해! 그런 그들이 야구를 접했을 때, 어느 쪽을 응원하겠나? 당연히 승리를 거머쥐는 쪽이겠지!"

그동안 이스마엘 콥은 완벽에 가까운 커리어를 쌓아왔고, 전 세계의 많은 팬들은 그러한 이스마엘의 매력에 끌려 양키스의 팬으로서 유입되었다.

5년 사이에 큰 폭으로 뛴 중계, 스트리밍, 기타 사업들의 이익률이 그 증거였다.

미국에서 머물던 양키스의 아성을 전 세계로 성공적으로 확대해나가는 첨병, 이스마엘 콥.

그런 상황에서 이스마엘 콥과 해준의 기록 대결이 이루어지고,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혹시라도 그 대결에서 패배한다면?'

조 파바스 사장의 눈동자 위로 불안함이 드러났다.

유럽과 중국 시장의 팬들은 미국의 골수팬들과는 그 유형이 매우 다르다.

자리를 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충성심이 얕은, 언제라도 이동할 수 있는 철새와 같은 수요층.

해준이 이스마엘을 기록으로 억누르는 데 성공한다면, 양키스는 다저스에게 그러한 팬들을 눈 뜨고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서먼 오닐 단장은 그러한 조 파바스 사장의 생각을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일리 있는 생각이군요. 현재 확보하는 팬층이 앞으로의 100년을 좌우할 테니 말이죠."

처음 몇 년이라면 몰라도, 한 번 팀을 정하고 자리를 잡은 팬들은 대를 이어나가며 구단을 응원하는 경우가 흔했다.

그리고 그런 팬들의 존재는 구단의 영향력을 뒷받침하는 매우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서먼 오닐 단장은 난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렇다고 해도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다못해 같은 리그 소속도 아니고, 우리로서는 강을 막을 방법이 없습니다."

아메리칸리그 동부 지구 소속인 뉴욕 양키스.

내셔널리그 서부 지구 소속인 LA 다저스.

현재로서는 이들이 월드 시리즈 전까지 서로 만날 수 있는 접점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조 파바스 사장은 서먼 오닐의 눈동자를 뻔히 응시하며 입을 열었다.

"없긴 왜 없어?"

"..네?"

"올스타전이 있다는 걸 잊은 모양이군."

"..그건.."

그 말에 서먼 오닐 단장이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7월 16일.

메이저리그의 세계화를 의식한 사무국은 이번 올스타전을 사상 최대 규모로 개최할 것을 선포했고, 그런 만큼 어마어마한 수의 시청자가 몰릴 것이 뻔하다.

전 세계 예상 시청자 수 3억 8,000만 명.

이곳에서 겨뤄지는 승부 하나하나는 야구팬들에게 월드 시리즈 이상의 임팩트를 줄 수 있었다.

그때를 노리는 조 파바스 사장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루시아노 감독에게 전하게. 내셔널리그에 져도 좋으니, 강만큼은 어떻게든 박살 내라고. 아메리칸리그 에이스 투수들을 총동원하라고 해. 그리고 이스마엘이 거기서 활약만 해준다면.."

"..팬들의 첫인상 속에서 이스마엘이 강보다 우월한 선수라는 인식이 강하게 남겠군요."

"바로 그거지."

승리와 기록에 집착하는 조지 스타인브레너의 화신.

뉴욕 양키스의 사장 조 파바스.

그가 움직이고 있었다.

< 범선의 뱃고동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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