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lcome to Major League, Mr. Halley (4) >
124. Welcome to Major League, Mr. Halley (4)
다음 날, 다저 스타디움.
"포수, 2루!"
"제기랄, 이 자식이 어디서 감히!"
1루수의 외침과 함께 밀워키의 주전 포수 호세 네리스가 황급히 마스크를 벗어 던졌다. 그렇지않아도 경계심을 바짝 끌어올리고 있던 만큼 대응은 신속했다.
찰나의 순간에 오른손에 들린 공, 그리고.
"흐읍-!"
[호세 네리스, 2루를 향해 공을 뿌립니다! 빠르게 백업을 들어온 2루수 조 킨저리! 그사이 슬라이딩 동작에 들어가는 주자!]
빨랫줄 같이 쏘아진 공이 내야를 갈랐다.
그 사이 1루를 박찼던 주자 해준은 2루 상에 도달.
촤아아아아아악-!
해준이 몸을 날림과 동시에, 이를 악문 호세 네리스의 송구가 2루수의 글러브를 정확히 파고들었다.
퍼어엉-!
[Ohhhh! 호세 네리스의 송구가 핀포인트 제구로 2루수의 글러브에 들어가는군요!]
평소라면 스스로조차 감탄사를 내뱉었을 완벽한 코스.
그럼에도 호세 네리스는 곧바로 욕설을 내뱉었다.
"fuck! god damn it!"
어제에 이어 오늘까지 내준 도루만 해도 3개.
포수라면 열불이 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 번번이 이어지자, 호세 네리스의 얼굴이 흥분과 함께 붉게 물들어갔다.
[2루심이 세이프를 선언합니다! 세이프! 밀워키 전에서 기어코 29호 도루를 기록하는 다저스의 슈퍼 루키! 마치 폭주하는 기관차 같은 이 모습에 밀워키의 벤치가 동요합니다!]
한편, 지금의 상황을 끔찍이 여기는 밀워키 측의 반응과 달리 다저스 관중들의 휘파람 소리와 환호성이 다저 스타디움을 뒤흔들었다.
시즌 30호 도루까지 단 하나, 30-30이라는 대기록까지 한 발자국을 남겨둔 해준의 폭발적인 주루.
중계 스트리밍을 통해 그 활약이 흘러나가자, 전 세계 팬들에게 흥분이 서린 수천 개의 댓글이 이어졌다.
-어마어마하잖아! 진작에 왜 이렇게 하지 않은 거지?
-타석에서도 모자라 루상에서도 상대를 폭격하고 있어! 이건 반칙이라고, 당장 강에게 레드 카드를!
-이건 축구가 아니야 asshole. 퇴장이면 퇴장이지 레드 카드는 뭐냐? 강을 메이저리그에서 퇴출해야 한다는 것에는 동의한다만. 제기랄, 도루라고? 이 선수는 적당히라는 걸 모르는 것 같아.
-당장 명예의 전당에 입성시키고 은퇴 시키는 조건이면 합리적일 것 같아. 다들 어떻게 생각해?
-멍청한 소리들 하지 말라고. 강의 플레이는 앞으로 20년을 봐도 질리지 않을 거야!
-밀워키 배터리 자식들은 내가 살면서 본 가장 최악의 똥덩어리들이야! 볼넷으로 출루시키고 도루까지 내줄 거면 뭐하러 피해 가는 거야? 100% 확률로 2루타를 맞는 것과 다를 게 없잖아!
-그가 메이저리그의 질서를 파괴하고 있어. 제발 도루만큼은 다른 선수들이 활약할 수 있는 영역으로 남겨놓아 줘!
-밀워키 이 멍청한 자식들아. 강이 도루까지 하도록 내버려 두지 말라고!
-이 페이스라면 피츠버그전에서 메이저리그 최소 경기 30-30을 기록하겠군. 밀워키에 거주하는 어느 멍청한 자식들 덕분에 말이야 하하하!
해준을 응원하는 다저스 팬들과 기록의 희생양이 되어주고 있는 밀워키에 대한 비난, 소식을 듣고 몰려온 타팀팬들까지.
댓글창이 아수라장으로 변해갔다.
해준이 이미 타격과 수비의 전 분야에서 이미 최상위권을 독식하고 있었던 만큼, 이제는 루상까지 휘어잡아버리자 그 충격은 대단했다.
"..이건 정말 장난이 아니군."
"호세 녀석의 대응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닙니다. 평상시와 같아요. 투수의 셋포지션이 조금 굼뜨긴 했지만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당할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
그 모습에 밀워키의 감독이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오늘 경기까지 내준다면 갈길 바쁜 밀워키는 다저스에게 시리즈를 모두 싹쓸이 당하게 된다.
그 사실을 떠올린 포수 코치인 댄 로소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해준이 보여주는 모습이 사전에 이루어진 전력 분석에서는 계산 밖의 일이었던 탓이었다.
'shit, motherfucker! 하필이면 우리 차례부터 뛰기 시작하다니! 재수가 없으려니.'
본래 리드오프로서 해준의 파괴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초구를 공략해 만들어낸 홈런만 11개.
게임 첫 타석에 한정 짓는다면 장타율은 시즌 성적을 훌쩍 뛰어넘는 2.452에 이른다.
장타율의 의미를 생각해본다면, 이는 게임 시작과 동시에 2루타 이상을 때려내고 시작한다는 소리와 같았다.
그렇기에 그동안 많은 메이저리그 팀들은 해준에게 차라리 볼넷을 내주는 길을 택해왔다.
'승부를 택한다면 2.452의 장타율을 감당해야하지. 하지만 볼넷은 단타와 같으니 1.000의 장타율만을 감수하면 된다는 계산이었는데..'
심지어 첫 타석이 아니라더라도 장타율이 10할을 넘기는 것은 마찬가지니 걸러내는 것이 이득이다.
"하지만 인제 와서 도루라고?"
덕분에 밀워키가 상정했던 게임 플랜이 완전히 꼬여버리고야 말았다.
밀워키의 벤치에 깃들기 시작하는 패배의 분위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작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어낸 당사자는 마음에 안 든다는 듯이 미간을 살짝 모은 채였다.
"..후욱, 후욱."
차분한 눈빛을 띤 해준은 가슴을 크게 들썩이며 호흡을 진정시켰다.
[주루 파트]
*최대 주루 속도 32.2km/h
*주루 센스 65
*주루 기법 65
20-80 스케일에서 65점.
플러스 급의 높은 수준에 해당하는 레벨에도 불구하고, 해준은 만족스러운 기색을 조금도 내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그 이유는 너무나 간단했다.
'다른 시기라면 충분히 상위권에 들 능력이지만 지금의 메이저리그에서는 아니야. 도루의 수준이 너무 높아졌어.'
한때 KBO에서 주루 인스터럭터를 맡았던 구해형.
며칠 전 있었던 통화에서 그 또한 메이저리그의 발전을 강조했었다.
-시간이 지나며 메이저리그의 도루 기술은 발전을 거듭했지. 특히나 지금처럼 온갖 측정기술이 발달한 시대는 더 그렇고. 자본과 기술에 재능이 더해진 거나 마찬가지니까. 그런 놈들이 작정하고 파고들기 시작하잖아? 으으, 상상만 해도 몸이 떨리네. 감기인가?
KBO에서는 대주자만으로 레전드로 꼽히는 그조차 이런 반응이었다. 그만큼이나 현재 메이저리그의 도루 상향 평준화는 그 정도가 심했다.
팀마다 주루에서 65 이상의 평가를 받는 주자가 한 명쯤은 있을 정도였으니까.
즉, 지금의 자신은 어마어마한 출루수를 바탕으로 30개에 가까운 도루를 기록했을 뿐, 주루 자체는 메이저리그에 리드오프 중 평균에 가깝다는 소리였다.
-내가 주먹구구 시절에 뛰었으니 대주자의 전설이지 지금 거기서 뛰었으면 다섯 손가락 안에도 못 들었어. 특히 그 누구야, 텍사스에서 뛰는 애 있잖아. 레이저 반고흐?
"레인저 빈센트 말씀이시죠?"
-어, 맞다. 아무튼 걔, 걔가 미쳤더라. 작년에 리키 핸더슨 도루 기록 깨버렸다고 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 원.. 흐흐, 고생 좀 해라. 너도 조금만 일찍 태어났으면 지금보다 더 평가가 높았을 텐데 말이지. 아니, 이미 충분히 높긴 하지?
유독 유난스러웠던 구해형의 반응을 떠올리던 해준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구 선배님의 감각은 분명 뛰어나. 하지만 이걸 지금 메이저리그에서 써먹는 건 내 역할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투포수 배터리의 신경이 헐거워진 틈을 동물적인 감각으로 캐치하고, 그 틈을 파고든다.
하지만 바꿔 말하자면 그 편이 한계였다.
구해형 시절보다 진보한 데이터와 분석 기술을 감각에 적용하는 메이저리그의 포수들.
이들은 어마어마한 압박감으로 홈플레이트에서 루상의 주자들을 조여버릴 수 있는 송구와 기술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후우."
해준은 호흡을 고르고, 깊게 가라앉은 눈동자로 밀워키의 마운드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곧이다.'
다시금 일어나는 주루의 감각이 날카로운 송곳처럼 배터리의 견제 망을 찔러대며 빈틈을 탐색하기 시작했다.
물론 오늘 경기에서도 2번이나 당했으니 쉽사리 그 빈틈을 내주지 않는 밀워키의 투포수.
그럼에도 해준은 끊임없이 감각을 충돌시키며 신경을 날카롭게 가다듬었다.
'그때를 대비해서 감각을 최대한 갈고 닦아 놔야 해.'
결국 자신이 원하는 것은 평균적인 주루 따위가 아니었다.
투수들의 견제를 역으로 압박하기 위해 도루를 택하긴 했지만, 이미 시작한 이상 평범한 수준으로 끝낼 생각은 조금도 없었으니까.
지금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성장의 계기.
아웃라이어 구해형의 무언가를 보완해줄 계기가 필요했다.
해준은 어느새 다음 상대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한 선수를 떠올리고 있었다.
'파이어리츠의 코어, 캡틴 마이클 밀러.'
현 메이저리그에서 수비형 포수로 이름 높으며, 역사상 가장 뛰어난 도루 저지 능력을 갖췄다는 괴물.
그가 파이어리츠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 사람이라면 아웃라이어일 가능성이 높지.'
이미 그의 모든 기록을 샅샅이 살펴본 해준의 두 눈동자가 번뜩였다.
'그러니..'
그에 맞서기 위해, 다소 둔해졌던 주루 감각을 끌어올린다.
"흡-!"
스파이크가 다시 한번 그라운드를 박차기 시작했다.
[강이 다시 한번 베이스를 박찼습니다! 호세 네리스, 기다렸다는 듯이 송...]
다저 스타디움이 열광 속에 빠져들었다.
+++
밀워키와의 3차전이 끝난 다음 날 아침.
메이저리그를 다루는 스포츠 언론들은 하나같이 1면을 비슷한 소식으로 장식하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단 기간 30-30 달성. 다저스 슈퍼루키의 한계를 모르는 질주!]
[밀워키 감독 '그는 예측불허의 재앙과 같다. 다시는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역대 기록으로 살펴보는 30-30 달성자. 그곳에 가득한 전설들의 이름, 그리고 그 전설들을 뛰어넘는 새로운 전설의 등장.]
[다저스 7할 승률 복귀 코앞. 밀워키 전 싹쓸이.]
밀워키 브루어스와의 경기를 싹쓸이해버리며 다시 7할의 승률에 가까워진 LA다저스.
해준은 그 시리즈에서 불과 6월 초에 30-30이라는 대기록을 작성하며 다시 한번 메이저리그 팬들의 가슴을 뒤흔들기 시작했다.
-이 괴물은 메이저리그를 통째로 잡아먹으려 들고 있어. 도대체 어디까지 갈 작정이지?
-역사상 최초의 50-50을 보게 될지도 몰라! 도대체 누가 그의 앞길을 막을 수 있겠어?
-최근 경기 들어 타율도 다시 올라오고 있을 정도야. 볼넷으로 내보내도 도루를 해버리니 투수들은 승부를 할 수밖에 없게 됐거든.
-당장 다저 스타디움의 팀 스토어로 달려가! 그리고 저지를 사라고! 그는 전설이 될 거야.
최근 들어 도루를 시작하면서 상대 투수들에게 볼넷-도루, 혹은 2루타 이상의 장타를 강요하기 시작한 해준.
어떤 것을 택하든 게임 시작과 동시에 상대 투수를 압박하는 그 위압감은 수많은 팬들의 마음을 홀리고 있었다.
하지만, 다저스의 다음 상대는 그런 팬들의 사이에서도 힘든 상대로 통하고 있었다.
-그래도 다음 시리즈에서 페이스가 주춤하는 건 어쩔 수 없겠어. 다음 상대로 그 마이클 밀러가 버티고 있잖아.
-파이어리츠가 빈약한 타선에도 3위를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지.
-스틸을 스틸하는 빌어먹을 자식. 인정하기 싫지만 마이클 밀러는 해적선의 캡틴이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남자야.
다저스의 다음 상대는 내셔널리그 중부지구 3위의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그리고, 이들을 이끄는 선수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수비형 포수라 불리는 남자였다.
"내셔널지그 중부지구의 치열한 순위권 다툼이 한창 팬들 사이에서 화젯거리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1위 카디널스와의 승차가 2.5경기 차에 불과한데, 파이어리츠는 최근 상승세까지 타고 있죠. 이에 대한 비결이랄게 있을까요, 마이클?"
베테랑 포수이자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캡틴 마이클 밀러.
오늘도 결정적인 순간 도루를 2번이나 저지하며 시카고 컵스를 침몰시킨 그는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뭐, 비결이랄게 있나요. 즐겁게, 흥이 생기도록 야구를 즐기는 것뿐입니다. 알다시피 우리 팀놈들은 딱딱한 분위기에서는 오히려 몸이 굳어버리거든요. 천성이 가벼운 놈들이라서 말이죠."
"그렇다면 마이클 당신의 유쾌한 성격이 도움이 되고 있다는 말이군요?"
"그게 그렇게 되나요? 뭐, 부정하지는 않겠습니다. 솔직히 제가 봐도 저처럼 야구 잘하고 성격 좋은 놈 없거든요."
마이클 밀러의 농담에 뒤에서 지나가던 팀원들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지. 우리 캡틴은 '야구'를 정말 잘한다니까?"
"타석에서는 조금 그렇지만 말이야. 솔직히 처음 봤을 때 저게 무슨 메이저리거인가 싶었어. 싱글A에서 보던 유망주랑 수준이 비슷했거든."
"캡틴이 포수가 아니었다면 사실 관중석에서 야구를 봤어야 했겠지."
그 장난기 어린 말에 리포터가 웃음을 터트리자 마이클 밀러가 인상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저리 좀 가라 이 빌어먹을 자식들. 지금 캡틴께서 인터뷰하시잖아. 이미지 메이킹에 도움이 안 되네."
"메이킹 할 이미지가 있으셨다고?"
"그럴리가. 내가 알기로 우리 캡틴만큼 안티팬이 많은 파이어리츠 선수는 없는데?"
하지만 조금도 기죽지 않는 팀원들의 모습에 리포터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유쾌한 분위기네요. 다저스와 비슷하면서도 다르고요."
"음, 다저스도 이런 분위기입니까? 작년까지만 해도 거의 살인 날 분위기에 가까웠던 거로 기억하는데 말이죠. 아, 이거 마이크 꺼진 거 맞죠? 남의 팀 뒷담화 했다가 한동안 SNS 계정 내린 일이 있어서요. 아, 꺼졌구나."
리포터의 말에 마이클 밀러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로드리게스를 필두로 한 외야진과 내야진의 반목, 그로 인해 깨진 케미스트리가 투수들과의 관계까지 악화시켰던 사실은 유명했으니까.
"올해는 많이 다른 것 같더라고요. 강이 온 뒤로 그렇게 분위기가 좋을 수 없다던데요?"
"흠, 로드리게스 그 자식이 나가서 그런가? 역시 내 예감이 맞았어. 그 빌어먹을 로드 비프 자식이 만악의 원흉이었다니까."
인터뷰를 정리하는 리포터의 말에 마이클 밀러는 고개를 끄덕였다. 외야수 로드리게스의 행실은 예전부터 메이저리거들 사이에서도 어느정도 소문이 나 있었으니까.
"아, 이걸 잊었네. 한 가지만 더 물을게요."
"물론이죠. 얼마든지요."
"강의 도루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흠, 뭐."
마이클 밀러가 드물게 미간을 좁혔다.
이미 어드밴스 스카우트들이 다저스와의 경기에서 수집한 데이터는 전력분석화되어 그의 머릿속에 들어선 상황.
생각을 정리한 마이클 밀러가 웃으며 말했다.
"빠르긴 하지만.."
"하지만?"
"제 어깨 앞에서는 아무래도 힘들 것 같던데요?"
도루가 범람하는 메이저리그.
그 시대를 지배하는 남자, 마이클 밀러가 거대한 자신감과 함께 해준을 기다리고 있었다.
< Welcome to Major League, Mr. Halley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