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elcome to Major League, Mr. Halley (2) >
122. Welcome to Major League, Mr. Halley (2)
6월 5일.
다저 스타디움에서 열린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1차전 홈경기.
퍼어어엉-!
"볼, 베이스 온 볼스-!"
묵직한 심판의 콜이 다저 스타디움에 울려퍼졌다.
낮은 비행 궤도를 그리다 홈플레이트 도달하지도 못한 채 처박혀 버리는 커브.
"...후우."
그 코스를 바라보던 해준은 자신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구심의 판단이 잘못되서가 아닌, 그 코스때문이었다.
'역시 대놓고 걸러버리겠다 이거지.'
이런 경험이 처음인 것은 아니었다.
KBO에서도 그랬고, 최근 들어 같은 지구의 투수들도 이런 모습을 보여왔으니까.
하지만 만나본 적도 없고, 오늘 처음 상대하는 아메리칸 소속의 팀이 이런다는 것은 상당히 난감하다.
인터리그에서는 시애틀에 이어 2번째.
앞으로 다른 팀들 또한 이렇게 나온다면, 공격적으로 휘두르던 타격 어프로치는 알맞은 대응이 아니었다.
'배드볼 히팅도 어느정도지. 이제는 배트가 아예 닿지 않는 곳으로 빼버리니 원.'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카운트는 3-0.
그 상황에서 땅에 박히는 공이 들어온다면 굳이 배트를 움직일 이유는 없다.
투수를 멀뚱히 바라보던 해준이 배트를 두고 1루로 걸어나갔다.
그 사이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쏟아져내리기 시작했다.
[스트레이트 포볼-! 이걸로 시애틀 전에 이어 두 경기 연속 3개의 볼넷을 기록하는 강입니다.]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쏟아지는군요. 그럴 수 밖에 없습니다. 애스트로스의 선수들은 이번 경기에서 단 한 번도 강과 승부하지 않았거든요.]
[심지어 강은 리드오프입니다! 3번이나 4번, 중심 타선에 배치된 타자가 아닌데 말이죠.]
[강에 대한 공포가 아메리칸리그까지 전해진 분위기입니다. 다저스의 릭 베이츠 감독은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군요.]
[하긴 공짜 출루라는 느낌이 강합니다만, 강의 장타율이 10할에 이른다는 점을 생각한다면 다저스 입장에서는 손해라고 느낄 수 도 있겠죠.]
휴스턴 애스트로스는 아메리칸 리그 서부 지구 소속으로 올 시즌 LA다저스와는 인터리그를 통한 4경기의 교류전이 전부다.
그리고 오늘 경기는 올 시즌 처음으로 예정됐던 게임.
그런 이들이 단 한번도 상대해보지 않았던 해준을 마치 당해보기라도 한것마냥 볼넷으로 출루시키고 있었다.
"..허, 이거 참. 우리 타자가 출루를 하면 기뻐야하는게 정상인데, 이건 그럴 수가 없군요."
로니어 마토스 타격 코치는 그 광경을 보며 작은 탄식을 터트렸다. 릭 베이츠 감독 또한 작게 침음성을 내뱉었다.
"계속 이런 분위기가 이어진다면 확실히 위험할 수도 있겠어."
투수가 타자에게 볼넷을 내주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크게 나누자면 두 가지 유형에 속했다.
컨트롤에 실패했거나, 의도적으로 내주거나.
타자가 전자의 이유로 볼넷을 얻어낸다면 이는 매우 좋은 현상이다.
투수와의 기세 싸움에서 이겼거나, 수많은 유인구들을 견뎌내고 얻어냈다는 것이니 컨디션이 괜찮다는 소리니까.
하지만 후자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로니어 마토스 타격 코치가 심각한 어투로 말을 꺼냈다.
"이대로 계속 가면 타격 사이클이 엉크러질 수도 있습니다 릭."
"..그럴 가능성이 크지. 당장이야 괜찮겠지만 장기적으로 본다면 절대 좋은 현상이 아니야. 대책을 찾아봐야겠어."
타격은 타격(打擊,Batting)이다.
볼넷은 그 과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에 불과할 뿐이지, 타자의 본래 수행 목적은 어디까지나 공을 강하게 때려내는 것.
저런 식으로 공을 때려내지 못하게된다면 타격 감각은 흐려질 수 밖에 없었다.
"하루라도 피아노를 치지 않은 피아니스트는 감각이 둔해짐을 느낀다하죠. 타격이 그 정도까지는 아니라지만, 이 과정이 반복되면 준에게도 매우 좋지 않을겁니다."
"..타석에는 들어서는데 공을 마음대로 때려내지 못한다면 답답하겠지."
하지만 정작 이들이 해줄 수 있는 조언은 매우 한정적이었다.
지금 해준이 겪고 있는 현상은 리그 탑 클래스 타자들 중에서도 일부만이 겪는 것.
리그 전체 투수들의 견제?
대부분은 그 수준에 도달하기 전에 성적이 자연스럽게 하락세에 들어간다.
그럼에도 이들이 이토록이나 우려하는 이유는, 이 과정을 이겨내지 못하고 평범한 타자로 돌아가는 선수들을 종종 보아왔기 때문이었다.
"이걸 이겨내냐 마느냐. 그에 따라 앞으로 준의 성적이 천차만별로 갈리기 시작할겁니다."
"너무 잘 치는 바람에 오히려 못 치게 된다니. 아이러니한 일이지. 이런게 야구이긴 하지만 말이야."
해준을 바라보는 릭 베이츠 감독의 눈동자에 근심이 어리기 시작했다.
+++
6월의 첫 주는 빠르게 지나갔다.
시애틀 마리너스와의 원정, 휴스턴 애스트로스와의 홈 경기를 거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원정 3연전을 끝마친 다저스의 시즌 성적은 46승 21패.
살짝 페이스가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뉴욕 양키스와 함께 메이저리그 전체 승률 1,2위를 다투는 맹주의 지위를 굳건히 유지하고 있었다.
[ESPM, MLB 파워랭킹 발표. LA다저스, 뉴욕 양키스를 누르고 1위에 등극]
[전문가 10인 중 7인, LA다저스 월드시리즈 우승 예측. 뉴욕 양키스는 3표.]
[유력 우승 후보 LA다저스 페이스 조절에 들어가나? 릭 베이츠 감독의 과감한 결단. 베테랑 주전들의 잇다른 결장과 신인 기용.]
이 기간동안 릭 베이츠 감독은 드레이븐과 노아, 마르쿠스 등의 나이 있는 베테랑들에게 최대한 많은 휴식을 부여했는데, 이에 대한 여론 또한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다.
[벌써부터 시작된 호흡 고르기. 지구 2위와 13.5경기 차가 만들어낸 이른 여유.]
[다저스 릭 베이츠 감독 '시즌은 길다. 초반에 내달린만큼 베테랑들의 체력 배분에 신중을 기울일 것.']
[작년 6월 10일 승률 0.511, 올해 승률 0.687. 악명 높던 슬로우 스타터 체질 개선에 완벽하게 성공한 다저스 선수단.]
성적이 뒤따라주는만큼 호의적일 수 밖에 없는 언론의 반응.
동일 지구 2위 애리조나 디백스와의 승수차이를 압도적으로 벌려놓았으니, 다저스 팬들 또한 여유를 가지고 이번 결정을 지지하고 있었다.
비록 몇몇 팬들은 불만을 나타냈지만, 이러한 의견들은 순식간에 반대 신고를 받고는 내려가는 것을 반복했다.
-올해의 다저스는 최강이야! 올해 인터리그 상대가 동부 지구가 아니라는 것이 아쉬울 정도라니까? 그랬다면 양키스 놈들은 박살 내줬을텐데.
-릭 베이츠 감독의 페이스 분배가 인상적인걸? 작년까지만해도 선수들과 불화설도 있었고, 허수아비라고 불렸을 정도였는데 말이지.
-왜 여기서 더 달리지 않는거지?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 승률을 노려보라고 릭 베이디엇!
└그래서 2001년 시애틀은 월드시리즈라도 갔니?
└다저스 투타진은 30대 중반에 들어선 선수들이 많아. 지금부터 관리하는게 최상이라고!
└이 자식은 다저스 팬이 아닌게 분명해. 분명 더 내달리다가 고꾸라지길 원하는 거겠지 asshole!
반면, 순풍을 타고 있는 다저스에 반해 해준의 페이스는 살짝 주줌한 기색을 보이기 시작했다.
[최근 7경기 타율 0.184. 극심한 슬럼프에 빠진 다저스의 슈퍼 리드오프.]
[끊임없이 내달린 부작용? 팀과 함께 페이스 조절에 들어간듯한 강의 최근 페이스.]
[STL과의 마지막 경기를 무안타로 끝낸 다저스의 강. 슬럼프의 본격화?]
[괴물에게도 찾아온 메이저리그의 높은 벽.]
시애틀 마리너스, 휴스턴 애스트로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
이들은 해준을 처음으로 상대한 팀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견제가 매우 극심했다.
볼넷을 내주는 한이 있더라도 장타를 허용하지 않겠다는 기색이 야구를 잘 알지못하는 관중들조차 눈치챘을 정도였으니, 본인이 느끼는 압박감은 상상 이상.
타격 기회가 급격하게 줄어들며 해준의 타율은 추락을 거듭했고, 언론은 이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었다.
밀워키 브루워스와의 2차전을 앞두고 있는 다저스의 클럽하우스.
해준은 아이패드로 그 기사들을 훑어보고 있었다.
"음, 슬럼프라."
이런 기사들이 나오는 것도 이상하진 않았다.
시즌 들어 단 한 번도 4할 밑으로 떨어지지 않았던 타율이 어제 경기에서 처음으로 0.396을 마크했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셔널리그 타율 2위와는 압도적인 격차가 있었지만, 언론은 그런 것을 신경쓰지 않았다.
최고점을 유지하지 못하는 순간부터 많은 이들은 이미 자신의 야구 인생이 끝나기라도 한 것처럼 호들갑을 떨기 시작한다.
반면, 옆에서 화면을 들여다본 드레이븐은 정말 웃긴 것을 본듯마냥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푸핫-! 이거 뭐야? 심각한 표정으로 읽고 있길래 무슨 대형 사고라도 난 줄 알았는데 슬럼프? 이거 아무래도 내가 모르는 사이에 야구 평가 방식이 바뀐 모양인데. 어때 준. 슬럼프가 온 것 같아?"
"..글쎄요. 요즘 워낙 견제가 심해서 답답하긴 하죠."
그 말을 듣고있던 노아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언론들은 유독 유난스럽지. 준의 최근 성적이 슬럼프라니. 이 소식을 애덤 던이 듣는다면 통탄하겠군."
애덤 던은 신시내티 레즈의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선수로 통산 462홈런을 기록한 강타자였다. 통산 성적은 타율 0.237, 출루율 0.364, 장타율 0.490.
낮은 타율에 비해 준수한 출루율, 뛰어난 장타율로 40홈런 시즌을 6번이나 만들어냈는데, 전성기 시절에도 9할을 넘기는 OPS에 비해 무척이나 괴랄한 타격 스타일로 많은 팬들의 의문과 환호성을 동시에 끌어낸 타자였다.
노아가 이 타자를 언급한 이유는 간단했다.
해준의 최근 7경기 성적이 애덤 던의 상위호환에 해당했기 때문이었다.
최근 7경기 타율 0.184 출루율 0.579 장타율 0.895.
타율은 낮지만 OPS는 1.474로 이 기간에도 메이저리그 1위를 해당했다.
시즌 OPS가 15할 부근임을 감안한다면 슬럼프라 부르기 어려울 정도의 성적.
때마침 다가온 마르쿠스가 작게 웃음을 지었다.
"그만큼 준을 바라보는 기대치가 높아졌다는 소리겠지. 2000년대 초반 배리 본즈를 연상시키는 타자는 정말 오랜만에 나타난거니까."
실제로 현재 해준이 직면한 리그 차원에서의 견제는 2004년 배리 본즈에 버금가고 있었다.
7경기동안 얻어낸 볼넷만 15개.
걸렸다하면 장타를 때려내는 모습조차 비슷했다.
"그래도 타격 기회가 줄어든다는 건 조금 그렇지 않아요? 이대로 가다간 타격 감각도 흔들릴 가능성이 큰데."
하지만 그런 해준의 고민에도 마르쿠스는 여유 있는 웃음을 지어보이며 물었다.
"이봐, 준. 너는 왜 2004년의 배리 본즈가 200개 넘는 볼넷을 얻어냈는지 알아?"
"제가 너무 어릴 때라.. 본 기억은 없어요. 배리 본즈란 이름도 고등학교 때 처음 들어봤으니까요."
사실 자세히 아는 편이 더 이상했다.
2002년 생인 해준은 배리본즈가 전성기를 구가하던 당시에 겨우 3살이었으니까. 마르쿠스는 그런 해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39세의 고령 타자를 중심타선에 배치하기는 조금 그랬는지, 당시 배리 본즈는 6번 타자였거든. 당시 5번 타자는 에드가도 알포소, 7번 타자는 마키스 그리솜이었는데 둘 모두 OPS가 7할 중반에 불과했지. 그러니 투수들이 어떻게 생각했겠어?"
"..그냥 거르자?"
"그렇지. OPS가 14할인 타자를 상대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그냥 내보내고 7할 타자를 상대하는 편이 훨씬 나았으니까."
해준은 마르쿠스가 하는 말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우리 팀은 다르다 이거죠?"
"그렇지. 네 뒤에 루이스와 드레이븐은 OPS가 9할에 육박하고, 제이크와 노아는 10할을 넘기고 있지. 이 상황에서 언제까지 상대팀이 널 거를 수 있겠어? 차분히 인내하고 버텨내봐. 시간이 지나면 다시 승부를 걸어올테니까."
실제로도 마르쿠스의 말이 옳았다.
시애틀과 휴스턴, 세인트루이스는 모두 해준을 출루시키고 그 뒤의 타자들에게 적시타를 허용해야했다.
그렇게 조언을 건넨 마르쿠스가 드레이븐과 함께 트레이닝룸으로 사라진 뒤.
'이 말이 맞긴 하지.'
해준은 여전히 클럽 하우스에 남아 고민에 잠겼다.
'분명 시간이 지난다면 해결될 문제이긴 해.'
현재 다저스의 타자진은 1927년 양키스의 살인 타선에 버금갈 정도로 압도적인 타격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언제까지 자신을 무한정 걸러버릴 수는 없는 노릇.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준은 그 선택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기다리라고?'
기다린다는 것은 결국 상대 투수들의 행동에 자신의 미래를 맡겨야한다는 것과 다를 것이 없었다. 이대로 계속 거르려 한다면 얌전히 걸어나가고, 아니라면 그때서야 쳐낼 수 있다는 소리.
'...그건 아니지.'
만약 자신의 팀이 다저스가 아니었다면?
뒤에 장타력을 갖춘 타자들이 즐비하지 않은 상황이었다면?
자신은 하염없이 공이 몰리기만을 기다리며, 답답함 속에서 걸어나가기를 반복해야할 것이다.
2004년의 배리 본즈가 그랬듯이.
그 결과는 분명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로 꼽히는 몬스터시즌이었지만, 해준은 그 정도로 만족할 수 없었다.
'무서우면 피하면 그 뿐이라..'
그런 존재가 되고싶지는 않았다.
자신은 계속해서 타석에 서고, 타격의 손맛을 느끼고 싶었다.
투수가 던진 공이 날아와 배트의 정중앙에 부딪히는 그 순간.
주변은 더할 나위 없이 고요해지고, 아드레날린과 엔돌핀이 치솟아오르며 더할나위 없는 짜릿함을 선사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섭다고해서 피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서는 안된다.
'타석에서 무섭다고 루상으로 내쫓으면 안된다는 것을 알려줘야지.'
그리고 그 방법은 간단했다.
타석에서 섣불리 자신을 내쫓는다면, 루상에서는 더더욱 끔찍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음을 알려주는 것.
"...슬슬 때가 되기도 했고."
해준은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새로운 타격폼으로 피로도 증가 속도가 급감했습니다.]
[현재 종합 피로도는 31.9%입니다.]
[타격 사이클이 정상궤도입니다.]
[더 이상 도루로 인한 피로도가 급증하지 않습니다.]
앞으로 자신이 갈 길이 있었다.
< Welcome to Major League, Mr. Halley (2)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