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론플레이? (3) >
119. 언론플레이? (3)
SBW 스포츠국 제1 회의실.
"...쯔쯔, 개판이군, 개판이야."
정기 회의에 참석한 방룡필 국장이 혀를 차자 좌중의 분위기가 일순간에 얼어붙었다.
5월 스포츠국 실적 테이블.
이를 살피던 방룡필 국장의 표정이 심상치 않은 기색을 띠고 있었다.
"EPL 쪽 읊어봐."
"저, 국장님도 아시다시피 우리 한국 선수들이 전부 부상으로 시즌 아웃 되는 바람에.. 게다가 이제부터 프리 시즌이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중계권 가격도 올라서 1차 중계권을 가지고 있는 스포츠 다이렉트에서는 작년과 같은 액수를 원하는 것 같습니다."
"이런 개새...아오. 야, 니가 생각해봐. 한국 선수들이 27-28 개막전에 한 명이라도 나올 수 있을 것 같냐? 그런데 가격은 똑같이 받겠다?"
"..저, 아무래도 그렇긴 하죠."
사실 EPL 중계는 방룡필 국장이 야심 차게 밀어붙였던 사안 중 하나였다.
현 메이저리거 한 명 없던 메이저리그보다는 한국 선수가 3명이나 있는 EPL이 훨씬 나았을 것으로 판단했었으니까.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강해준이라는 이레귤러가 갑작스레 등장하며 승승장구하는 메이저리그에 비해, EPL 중계는 말 그대로 말아먹은 상황.
방룡필 국장의 표정이 험악하게 굳어가자 회의에 참석한 PD들은 자연스레 그의 눈치를 보며 목을 움츠리기 시작했다.
"..하, 그래. 그건 그렇다 치고. 국내 야구는?"
"선수협이랑 구단 협상이 막바집니다. 단축 시즌이긴 하지만 시즌이 시작되긴 할 것 같습니다."
"무슨 협상이 그리 오래가?"
"프로야구 역사에서 첫 있던 파업이지 않았습니까? 협상에서도 조율해야 하는 부분이 많은 거겠죠."
"제기랄, 도대체 제대로 돌아가는 곳이 한 곳도 없어."
방룡필 국장은 피가 말리는 느낌에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SBW 스포츠국이 생겨난 이래, 아니 자신이 국장으로 취임한 이래 최대의 위기.
매 순간 부사장이 자신을 바라보는 눈길이 심상치 않았다.
'빌어먹을.. 어떻게든 지금 순간을 넘겨야 하는데..'
메이저리그 중계권을 획득, 국내 야구 파업까지 겹치며 승승장구하고 있는 MBW 플러스.
전통적으로 국내 배구, 농구 등에 치중하며 낮지만, 안정적인 시청률을 뽑아내는 KBM 스포츠.
그에 비교해 SBW 스포츠는 내세울 것 하나 없는 상태였다.
'이 위기를 잠시나마 넘기려면 강해준의 다큐멘터리뿐이다. 그 뒤에는 국내 야구도 돌아올 테니 숨통 좀 트이겠지.'
마음이 급해진 방룡필 국장이 황급히 물었다.
"장 피디, 그 자식은 왜 연락이 없어?"
"곧 올 겁니다."
"내가 알려준 대로, 그대로 하고 있는 거 맞겠지?"
"그럼요. 국장님 말씀 그대로 전해뒀습니다. 장 피디 그 녀석이 일 처리 하나는 꼭 부러지지 않습니까? 다소 거친 방법이긴 해도 덕분에 저희 쪽 제안을 다시 생각해볼 겁니다."
고개를 끄덕인 방룡필 국장.
그의 서슬 퍼런 눈길이 넘어가자 제작부장 최승철은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이 무슨 쌍팔년도도 아니고 뭐 하자는 건지 모르겠네. 뭐, 까라면 까야지 월급쟁이가 별수 있나 싶지만.'
심지어 강해준은 메이저리그에서도 떠오르는 스포츠 스타다.
그런 선수가 다큐멘터리 촬영에 협조하지 않았다 해서 반협박에 가까운 태도라니.
최승철 부장은 자신들이 상대가 단순 한국인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너무 만만하게 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그 정도까지 했으면 제안을 받아들이겠지. 괜히 껄끄러워지기 싫으면 말이야.'
그때였다.
"어.. 국장님?"
"뭐야, 지금 회의 중인 거 안 보여!"
신경이 날카로운 방룡필 국장의 고함이 회의실에 울려 퍼졌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온 직원은 한 차례 움찔했지만, 그는 이내 MLB 스트리밍 중계가 틀어져 있는 스마트폰 화면을 들어 보였다.
"이거 좀 보셔야 할 것 같은데요.."
"도대체 뭔데 그래?"
"강해준 선수가 인터뷰 중인데.. 그 내용이 좀.."
"뭐야?"
그 말을 듣는 순간 방룡필 국장은 왠지 모를 오한을 느꼈다.
회의 도중 말단 직원이 겁도 없이 자신을 찾아왔을 사안.
무언가 일이 벌어졌음이 분명했다.
'심상치 않다.'
자리에서 황급히 일어난 방룡필 국장은 직원의 스마트폰을 가로챘다.
그곳에서는 한 백인 여성이 절제됐지만, 화가 났음이 느껴지는 어조로 인터뷰를 진행하고 있었다.
-잠깐만요. 제가 정리해보자면, 결국 한국의 미디어사에서 준을 상대로 협박을 한 것 아닌가요? 본인들의 프로그램에 출연하지 않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제 판단을 말씀드리지는 않겠습니다. 그저 시청자분들이 판단해주시면 됩니다. 다만, 어린아이도 눈치챌만한 선후 관계이긴 하죠.
그곳에서는 SBW에는 핵폭탄이나 다름없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자..잠깐."
그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던 방룡필 국장의 얼굴이 샛노래졌다.
'방송국을 상대로 정면으로 들이박아? 이 자식 제정신이야?'
정황상 방송사 이름은 나온 것 같지 않지만, 소문이 퍼지는 것은 금방이다.
그때 최승필 부장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방 국장님?"
"..왜?"
"장 피디인데.. 아까부터 구장에서 출입을 막고 있답니다."
"뭐?"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
-용기 있는 결단이었네. 나도 많은 한국인 메이저리거들을 맡아봤기에 이번 자네의 행동이 얼마나 많은 용기가 있어야 하는지 알고 있지.
인터뷰를 확인한 행크 그린.
그는 해준과의 통화에서 이번 결정을 적극 지지하며 혹시나 생길 문제에 대비하여 총력을 기울이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그나저나 한국에서는 한 명의 기자도 무시하기 어려울 텐데 말이지. 자네는 상대가 언론사 그 자체라니. 자네는 언제나 날 놀래킨단 말이야. 아무튼 나머지는 우리 쪽에서 처리할 테니 준 자네는 경기에 집중하면 될걸세.
통화가 끝난 후, 스마트폰으로 SNS 반응을 체크하던 오광녹 또한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현재 반응은 좋아요. 마르쿠스, 노아, 제이크.. 다저스 선수들도 모두 이번 사실을 지지한다고 각자의 SNS 계정에 포스팅하고 있으니까요."
이번 사건은 클럽하우스 내부에서 일어난 만큼, 많은 선수들이 그 광경을 목격했고 분개했다.
스포츠 선수가 공인이라는 성격을 띠고 있긴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인터뷰에 응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심지어 그 인터뷰가 반협박성 멘트를 띄고 있다면 그건 그 자체만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영원히 퇴출감이다.
이 사건을 접한 다저스 선수들은 곧바로 포스팅을 쏟아냈고, 이를 리트윗하거나 하트를 누르는 속도는 심상치 않은 기세를 띠고 있었다.
-빌어먹을 미디어 자식들이 다 그렇지. 지들이 권력자라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고 다닌다니까?
-실제로 한국에서 기자란 직함은 권력이나 마찬가지야. 그들은 자신의 돈 한 푼 쓰지 않고 어딜 가든 대접받길 원하거든.
-모든 기자들이 그러는 건 아니야. 하지만 적어도 강을 협박한 기자는 빌어먹을 asshole이 확실해.
-그 방송국이 어딘지 아는 사람 있어? 리트윗해줘!
-한국의 유력 방송사라면 KBM, SBW, MBW 중 한 곳일 가능성이 커. 곧 자신들은 아니라는 해명 보도가 나올 테니 어느 곳인지 알 수 있을 거야.
특히나 한인들이 많이 거주하는 LA에서의 반응이 거셌다.
140년 역사 메이저리그의 모든 타격, 수비 기록을 경신해버리는 한국인 출신의 메이저리거.
그런 그에게 한 언론사에서 수준 낮은 협박을 일삼았다는 사실은 이들을 분노케 하기 충분했다.
그 반응들을 살피던 해준이 생각에 잠기자, 오광녹이 물었다.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세요?"
"아니. 그냥 신기해서 말이야."
"뭐가요?"
"내가 여전히 한국에서 뛰었다면 이런 대응을 할 수 있었을까 하는 그런 생각."
한국은 여전히 보수적인 나라다.
누가 먼저 잘못했던, 공론화시키는 놈이 가장 먼저 욕을 얻어먹는다. 설사 네티즌들에게서 공감을 이끌어내고 응원을 받는다 할지라도 마찬가지였다.
'인터넷과 현실은 다르니까.'
결국 언론을 만드는 쪽은 현실 속의 사람들이었다.
그것도 야구계에 종사하며 평생을 바쳐온 사람들.
그런 그들에게 암묵적인 룰을 벗어나 행동한 자신은 눈엣가시일 게 뻔했고, 그들이 자신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은 한없이 낮았다.
'그러니 한국에서는 내가 욕 좀 먹을지도 모르지.'
반면 이곳은 달랐다.
한국처럼 한 다리 건너면 아는 사이로 연결되는 곳이 아닌 만큼, 제 식구 챙기기 면모가 매우 약한 것이 이들의 특징.
아니, 오히려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자극적인 제목에 MSG를 가득 치며 하이에나처럼 물어뜯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더군다나 미국도 아닌 한국의 언론사다.
이들이 공격하기를 주저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었다.
'더욱이 홈그라운드에서는 개새끼도 반쯤 먹고 들어가는 법이니까.'
다저스 소속인 자신의 홈은 당연하게도 이곳 로스앤젤레스.
문화, 미디어, 스포츠, 엔터테인먼트 등 모든 분야를 망라하여 트렌드를 선도하는 도시 중 한 곳이었다.
이곳의 지원을 등에 업은 해준의 눈동자가 반짝거리기 시작했다.
'이번 기회에 알려주는 것도 좋겠지.'
자신은 더 이상 돌을 던지면 죽는 우물 안의 개구리가 아니었다.
앞으로 자신을 건드리겠다면, 이제부터는 그에 어울리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아, 도착했네요."
그때 스마트폰 메시지를 확인한 오광녹이 씨익 웃어 보였다.
그 모습에 해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가자."
곧 일어날 일 또한 그중 일부에 불과했다.
+++
다저 스타디움 입구.
"아, 오해가 있었던 거라니까. 유 갓 미스언더스탠딩, 오케이?"
마르쿠스가 부른 가드들의 험악한 기세에 황급히 클럽하우스를 벗어났던 장인철 피디.
하지만 가드들이 단순히 클럽하우스를 벗어나는 것이 아닌, 구장 밖으로 내쫓아버리자 장인철 피디는 구장에 다시 들어가기 위해 한창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장인철 피디의 일을 도와주기 위해 합류했던 SBW LA 파견 기자 김상형은 고개를 저었다.
"후우.. 안돼요. 얘들 칼이라니까요. 그러게 왜 말도 안 되는 질문을 던지라고 해서.."
"야 인마. 나라고 하고 싶어서 했겠냐? 위에서 시켰으니까 했지. 아 진짜. 예전 선수들한테는 잘 먹혔다고 했는데 정작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끼한테 안 먹히네."
장인철 피디는 한숨을 푹 쉬며 잠시 뒤로 물러났다.
지이잉- 지이잉-
구장에서 쫓겨났다는 보고 이후 계속해서 울리는 스마트폰의 진동. 화면 위에는 방룡필 국장의 이름이 버젓이 떠올라 있었다. 하지만 장인철 피디는 전화를 애써 무시했다.
'받아봤자 일 똑바로 하라고 욕이나 해대겠지. 하루이틀 당하나? 아오, 국장만 아니었어도.'
일 도중에도 사람을 재촉하는 그의 성질머리는 당하는 사람을 미치도록 만드는 무언가가 있었다.
'적어도 다큐멘터리 촬영 협조는 받아내고 보고 해야 안 털리지. 그나저나 오늘은 좀 힘들려나?'
장인철 피디는 빈틈을 찾는 눈길로 구장 여기저기를 훑었지만, 가드들의 눈을 피해 구장에 들어갈 길 같은 것은 보이지 않았다.
'뭐 여기서 죽치고 있으면 강해준이도 나오겠지.'
이미 경기는 끝난 상황. 이미 몇몇 다저스 선수들이 주차장으로 향하던 것을 확인한 장인철 피디는 해준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기로 마음먹었다.
그때 가드들 너머 입구에서 익숙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어? 오광녹! 오광녹이 맞지!"
"안녕하세요, 장 피디님."
그제야 장인철 피디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하긴, 지들이 별수 있겠어? 생각 좀 정리하고 나오느라 늦었나 본데 대답은 정해져 있지. 그나저나 저 자식도 건방지네. 일개 전력분석원이었던 놈이 친분으로 에이전트 좀 됐다고 목에 힘이나 주고.. 뭐, 일이 잘 풀린 것 같으니 봐준다마는.'
그는 속으로 음흉한 웃음을 흘리며 오광녹에게 다가갔다.
"유, 비 케어풀! 아임 피디 후 헤스 베리 스트롱 인플루언스 인 코리아. 오케이?"
그리고는 어설픈 영어로 가드들에게 괜히 핀잔을 준 뒤 오광녹과 마주 섰다.
예상대로 오광녹의 입에서는 그가 바라던 말이 흘러나왔다.
"다큐멘터리 촬영 협조하려고 하는데요."
장인철 피디는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지 알아. 역시 우리랑 일하는 게 좋지? 어차피 다큐멘터리 찍을 예정이었다며. KBM? MBW? 그 자식들 다 허당이야. 잘 생각했어 우리 오 에이전트."
그 말에 오광녹이 피식 웃음을 흘리며 되물었다.
"그럼 동의하신 겁니다? 계약서는요? 조건 조율해야죠."
방송국에서 요청하고, 메이저리그에서도 떠오르는 슈퍼스타인 해준을 영상에 담는 프로그램인 만큼 그 계약 금액은 상당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장인철 피디는 고개를 휘휘 저었다.
"우리 사이에 계약서는 무슨. 일단 일부터 진행하자고. 국장님이 조금 급하셔서 말이야. 계약서는 차근차근 쓰고. 우리가 설마 페이 떼먹겠어? 강해준 선수도 유명한 사람인데 우리가 그럴 수야 없지. 예산도 넉넉하니까 걱정하지 말고."
본래대로라면 여기서 에이전트인 오광녹이 거절을 했어야했다.
하지만 무슨 생각인지 오광녹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럼 촬영 협조 동의하신 겁니다?"
그제야 장인철 피디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음? 뭐 동의야 하지만. 말이 이상하지 않아? 우리가 협조하는게 아니라 그쪽이 협조를..."
하지만 오광녹은 장인철 피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고개를 뒤로 돌리며 영어로 외쳤다.
"촬영 협조하신답니다! 촬영 시작하죠!"
그때야 장인철 피디는 무언가 이상함을 느꼈다.
입구 너머에서 족히 20명은 돼 보이는 스태프들이 우르르 장비를 들고 그들 주위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뭐, 뭐야 이거? 오광녹, 이거 뭐야!"
당황한 장인철 피디가 황급하게 외쳐봤지만, 검은 옷으로 맞춰 입은 스태프들은 빠르게 촬영에 필요한 장비들과 함께 자리를 잡고는 촬영을 시작했다.
어벙한 표정을 짓던 장인철 피디는 뒤늦게 장비들과 의류 위에 적혀있는 글자를 알아보았다.
"언더..에라?"
그 말에 오광녹이 고개를 끄덕였다.
"언더에라 다큐멘터리 촬영팀입니다. 강해준 선수의 다큐멘터리 촬영을 위해 합류해주셨죠."
"잠깐, 언더에라 소속 촬영팀?"
그 말에 장인철 피디가 놀라 외쳤다.
타 의류 브랜드들과 차원이 다른 스폰서 케어력을 보이는 언더에라.
이들의 차별화 된 장점 중 하나가 바로 스타들의 이미지를 기가 막히게 케어한다는 점이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다큐멘터리 제작이었다.
마약, 폭행, 전과 등으로 점철된 스포츠 스타의 안티팬들마저도 극성팬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언더에라 다큐멘터리 제작팀.
그들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었다.
장인철 피디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자, 오광녹이 비웃음을 흘리며 대답했다.
"말했잖아요? 다큐멘터리 촬영 협조 요청이라고."
그제야 장인철 피디는 사태를 이해하고는 목울대를 크게 한 차례 울렁였다.
'뭐야, 우리를 촬영하겠다고?'
이미 카메라에 들어온 이상 벗어날 길은 없다.
장인철 피디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다짜고짜 들이밀어진 카메라가 이토록이나 큰 긴장감을 줄 수 있는지 처음 깨달았다.
그때, 그들 사이로 천천히 걸어 나온 해준의 모습이 장인철 피디의 얼어버린 시선에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장 피디님. 우리 구면이죠?"
"강해준 선수.. 이거 지금.."
장인철 피디는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도저히 말이 이어지지 않았다. 자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조리 카메라에 담기는 상황.
'제기랄, 힘으로 뺏을 수도 없고..'
상대는 굴지의 대기업 언더에라의 촬영팀. 그런 곳과 척을 졌다가는 무슨 보복이 돌아올지 모르는 노릇이었다.
촬영거부?
그 거부를 하는 모습조차 담기는 판에 나중에 어떤 식으로 왜곡돼 나갈지 모른다.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피해갈 수 없는 상황.
장인철 피디의 머릿속이 엉킨 실타래처럼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런 장인철 피디의 말을 기다리던 해준이 말했다.
"촬영 협조에 동의하셨다니까 어서 끝내죠. 질문 해주시면 됩니다."
"뭐.. 뭘?"
"오전에 하시던 거 있잖아요? 이기적이라느니, 애국심이 없다느니.. 매국노라고도 했던가?"
"그런 소리는 안 했어!"
"아무튼 그 인터뷰 이어 가주시면 됩니다. "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수십 명의 시선이 장 피디에게 꽂혀 들었다.
그의 눈빛 위로 절망이 떠 올랐다.
'조.. 좆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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