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본연의 재능 (4) >
116. 본연의 재능 (4)
7회 말 무사.
[SAD 0 : 0 LAD]
타이트한 투수전을 증명하듯, 스코어판의 점수는 7회에 이른 지금까지 조금의 변동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의 눈에 비친 파드리스와 다저스의 실력 차이는 너무나 명백했다.
여러 차례의 득점권 찬스를 날려버린 파드리스.
그에 비해 피트 프랑코의 체력이 떨어질 기미가 보이자마자 곧바로 기회를 살려 나가는 다저스.
그리고, 이 줄다리기에 마침표를 찍을 타자가 타석에 들어서자.
[리드오프 강이 이번 경기 4번째 타석에 들어섭니다!]
휘파람과 박수 소리가 점점 빈도를 더해가며 다저 스타디움의 분위기를 뜨겁게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흐읍-!"
따아아아악-!
그 속에서 해준의 방망이가 날카롭게 돌아갔다.
망설임 없이 공략한 피트 프랑코의 초구.
총알 같이 날아간 타구가 폴대와 멀지 않은 1루 방향 외야에 떨어지자, 심판의 우렁찬 콜이 울려퍼졌다.
"파울-!"
---오우우우우-!
자연스레 다저스 팬들 사이에서 터져나오는 탄식.
"제길, 한 끗 차이였는데!"
"조금만 더 걸렸으면 홈런 타구였던 게 확실해!"
"휘이익-! KANG, 빨리 투수를 박살 내버려!"
이미 승리가 반쯤은 확정된듯, 현장의 분위기가 들끓어 오르기 시작했다. 그만큼 해준에 대한 다저스 팬들의 기대치는 더 오를 곳 없는 천장에 다달아있었다.
하지만, 그런 해준의 타격폼을 자세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중계석에서의 반응은 오히려 색달랐다.
환호보다는 침묵, 흥분보다는 경악.
MLB 자체 네트워크를 통해 중계되는 다저스와 파드리스의 방송. 특별 게스트로 출연한 파드리스의 전설 브라이언 코넬은 눈매를 좁히고는 해준의 타석에 온 신경을 기울였다.
따아아악-!
-파울-!
연속해서 터져 나오는 파울.
하지만 이번에는 3루 라인 선상을 아슬아슬하게 비껴가는 타구에 다시 한번 관중들의 탄식이 이어지고 있었다.
'이전 타석들에서 보여주던 타구질을 보고 혹시나 했는데..'
그 광경을 바라보던 브라이언 코넬.
그가 마침내 침음성과 함께 입을 열었다.
[...조금 빨랐을 뿐 제대로 당겨 쳤군요. 저건... 믿을 수가 없을 지경이에요.]
[어째서 그렇죠, 브라이언?]
캐스터의 질문에 브라이언 코넬은 한 차례 한숨을 내쉰 뒤 말을 이었다.
[강이 레그킥을 들고 나왔을 때까지만 해도 솔직히 회의적이었습니다. 단순히 다리 하나를 들고 말고의 차이가 아니었으니까요. 스탠스의 각도, 스트라이드의 넓이, 테이크백의 동작, 무게중심이동의 방법까지. 완전히 다른 타자라 봐도 될 수준의 타격폼을 하루아침에 들고나오지 않았습니까? 처음에는 질 나쁜 장난인가 싶었죠.]
하지만 현재 해준을 바라보는 브라이언 코넬의 동공은 희미한 경악이 깃든 채로 잘게 떨리고 있었다.
그런 그의 기색을 눈치챈 캐스터가 그를 바라보자, 브라이언 코넬은 세수하듯 한차례 얼굴을 쓸어내리고는 말을 이었다.
[...후우. 알다시피 타격폼이라는 것은 게임 속에서 스킬을 바꾸듯 바꿀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조금 과장되게 말하자면 일종의 빅데이터 집합체라 말할 수 있죠.]
그것은 일종의 본능과 경험의 집합체였다.
어떤 스탠스가 자신에게 어울리는지, 다리를 얼마나 넓게 벌려야 힘을 제대로 쓸 수 있는지, 어떻게 해야 배트가 빠르게 돌아 나오는지까지.
메이저리그의 선수들은 그 과정을 어린 시절부터 반복하며 무엇이 자신에게 어울리고 아닌지를 판별하고, 선택한다.
[상대 투수의 구종, 구질, 구속, 코스 등. 선수들은 수천수만의 타석을 소화해가며 자신만의 데이터베이스에 경험을 쌓아가고, 그에 대응하기 위해 자신의 본능과 신체의 움직임을 최적화시킵니다. 그게 메이저리거급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타격폼이죠.]
그런 브라이언 코넬의 설명에 캐스터가 진중한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런 과정이 거치지 않은 타격폼을 가지고 나오면 어떻게 되죠?]
그 물음에 브라이언 코넬이 작은 흥분이 뒤섞인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의 시선에는 해준의 타구 속도에 당황한 피트 프랑코가 연이어 3개의 볼을 내주는 모습이 들어왔다.
[아무것도 아니게 됩니다, 말 그대로 아무것도요. 타이밍을 잡지 못하게 되고, 밸런스는 흐트러져있을 겁니다. 설사 천부적인 운동신경으로 그것을 극복한다 해도 마찬가지예요. 그 타격폼에서는 타이밍과 밸런스를 어떻게 활용해야 하는지 경험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에서 타자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하지만 해준은 달랐다.
하루아침에 바꿔 들고 온 레그킥.
그럼에도 불구하고.
따아아아악-!
"파울-!"
마치 처음부터 그런 타격폼이었다는 듯, 해준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평소처럼 투수를 압도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메이저리그 선수 출신으로서 그것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인지를 아는 브라이언 코넬은 부릎 떠진 눈으로 해준의 타격폼을 다시 한번 살폈다.
'밸런스가 완벽하다. 무게중심이동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어.'
저것만 해도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지경인데, 더욱 놀라운 점은.
따아아아악-!
"파울!"
'이거다!'
이해 불가능한 타이밍의 포착.
브라이언 코넬의 미간이 모아졌다.
'방금도 분명 빨랐어. 오늘 피트 프랑코의 체인지업 브레이킹은 분명 1선발급 수준이니까 충분히 타이밍을 뺏길 만하지. 하지만...'
그런 순간마다 마치 해준의 타석만 시간이 늘어진 듯, 마법처럼 어긋난 타이밍이 재조립되버린다.
'무슨 말도 안 되는 재능이...'
브라이언 코넬이 괴물을 바라보듯 타석에 서 있는 해준을 바라보았다.
한편, 그런 시선을 알 리 없는 해준은 파울을 쳐낸 뒤 뜨겁게 달궈진 숨을 몰아쉬었다.
"..후우."
카운트는 3-2.
현재 피트 프랑코의 투구는 스트라이크존 바깥에서 놀고 있었지만, 해준은 조금도 스윙을 멈출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슬슬 한계가 어딘지 감이 잡힌다.'
휘두르면 휘두를수록 끝을 모르고 확장해나가는 재능의 범위. 그렇기에 해준은 스윙을 멈출 수가 없었다.
'어긋난 타이밍을 메꾼다 해도 그 격차에는 한계가 있어.'
오랫동안 억눌려있던 본연의 재능이 제 모습을 찾아 나가는 환희. 그것만큼 헤어나오기 힘든 것도 없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슬슬 그 한계 지점에 다다르고 있음이 느껴졌다.
'공 3개까지는 중심에 맞춰버릴 수 있겠어.'
더 히팅 프릭 보로디미르의 감각이 평면을 넘나든다면, 자신의 재능은 그 평면을 입체적으로 확장 시킨다.
'슬슬 끝을 내볼까.'
그리고 자신의 한계 지점을 어느정도 확인한 해준의 눈동자가 심상치 않은 빛을 띠기 시작했다.
타이밍의 어긋남, 그에 더해 그 격차를 이용해 힘을 증폭시켜버리는 카운터.
그 격차는 크면 클수록 힘이 더더욱 증폭된다.
끼이익-!
악력이 쥐어짜듯 그립을 잡고, 왼손 끝이 노브와 착 달라붙었다.
'이번에도 체인지업이겠지.'
무사만루에서 여러 번의 대형 파울 타구를 허용했던 피트 프랑코. 그는 이미 반쯤은 본능에 의지한 채 공을 던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공은 십중팔구 가장 잘 긁히는 변화구인 써클 체인지업.
그 피트 프랑코가 투구판을 박차고 공을 던지자.
"흐읍-!"
해준은 의도적으로 타격의 시동을 반 박자 빠르게 걸어버렸다.
바닥을 뚫어버릴 듯 어마어마한 힘으로 찍어버리는 왼발의 스파이크.
본래라면 이 타이밍에서 배트가 휘둘러져야 하지만.
까드득-!
이를 악다문 입술 사이로 마찰음이 흘러나오며, 강제로 힘의 분출이 억눌린 체간이 어마어마한 압력과 함께 더더욱 타격폼의 운동 에너지를 억눌렀다.
그리고, 그 찰나의 격차가.
피이잉-!
브레이킹이 걸리며 뒤늦게 떨어지기 시작하는 체인지업과의 격차를 단숨에 0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리고, 그 순간을 노려 휘둘러진 해준의 배트가.
'지금-!'
마침내 홈플레이트 위를 휩쓸어버렸다.
따아아아아아아악-!
다저 스타디움을 쪼개버릴 것만 같은 압도적인 타구음.
그것이 터져나오자 캐스터의 목울대에 힘줄이 돋아났다.
[What a blast! 이건 큽니다! 어마어마한 속도로 다저 스타디움의 하늘을 갈라버리는 강의 대형 타구! 쭉쭉 뻗어 나갑니다!]
그 타구를 바라보는 다저스 주자들의 두 손이 번쩍 위로 올려졌다. 누가 보아도 담장을 훌쩍 넘기는 대형 타구였으니까.
하지만 타구의 목적지는.
[..어, 어! 잠시만요, 타구 끝이 죽질 않습니다! 계속해서 뻗어나갑니다! 탑덱! 탑덱마저 넘겨버리는 괴력적인 타구!]
모두의 예상을 훌쩍 뛰어넘어버렸다.
[Holy shit! 탑덱마저 넘겨버립니다! IT'S OUTSIDE PARK HOMRUN! 장외 홈런입니다! 2020년 리모델링 이후, 다저 스타디움에서 처음으로 장외 홈런이 터져나옵니다!]
그렇게.
-------우와아아아아아아아!
다저 스타디움이 뒤흔들렸다.
+++
[SAD 2 : 10 LAD]
승 – 로스앤젤로스 다저스
패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승리 투수 - 케드릭 피나(7이닝 6피안타 2볼넷 5탈삼진 무실점)
패전 투수 - 피트 프랑코(6이닝 4피안타 6볼넷 7탈삼진 4실점)
[뉴 다저 스타디움 최초 장외 홈런 폭발! 그 주인공은 LA다저스의 프릭필더 해준 강]
[He always made it! 폭발적 그랜드슬램, 다저 스타디움 주차장 강타!]
[1안타 3볼넷 기록한 강, 다저 스타디움 역대 최장거리 홈런 기록? 520피트(158미터) 기록으로 공식 인정될 듯]
[단숨에 불식시켜버린 파워 히터 논란. 520피트 짜리 홈런을 때려내는 컨택형 히터? ESPM, 비웃음거리로 전락하다.]
샌디에이고와의 1차전 경기를 막을 내린 후.
7회에 터져나온 해준의 장외 홈런은 어마어마한 화제거리로 떠올랐다.
해가 질 무렵, 야간에는 하강기류가 형성되며 타구가 좀처럼 뻗어나가지 않는 다저 스타디움.
낮 경기 였을 경우 520피트보다 더 뻗어나갈 수 있었다는 소리가 되니 이는 메이저리그의 파워 히터들에게 열광하는 많은 팬들의 가슴 속에 불이 지피기 충분한 것이었다.
더군다나 올 시즌 최장거리 홈런이 메이저리그 최고의 괴력을 지닌 남자 데블린 스티븐스의 517피트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잠시 논란이 되었던 해준의 파워 논란은 여름 아스팔트 위의 눈처럼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어버렸다.
더욱이 여러 야구 팬들과 전문가들이 경악한 점은 따로 있었다.
[하루 아침에 달라진 타격폼? 레그킥으로 파워를 증대시킨 강의 비현실적 학습 능력]
[모든 것이 달라졌다. 아니, 진화했다. 다저스의 괴물, 강의 발전 속도 전격 분석]
[파드리스 감독 샘 하워드 '레그킥에 대한 심정? 글쎄, 다음에는 강이 좌타석에 서더라도 놀라지 않을 것.']
[발전한 파워, 놀라운 선구안. 그리고 타이밍. 무엇이 다저스의 강을 진화 시켰는가.]
이틀 간의 휴식일.
그 사이에 완전히 달라진 타격폼을 들고온 해준. 그것만 해도 경악스러운데, 오히려 발전된 모습을 보여줬다는 것은 많은 이들 사이에서 논란을 일으키기 충분했다.
-내 생각에 강은 미래에서 온 fucking baseball machine이 분명해. 조금씩 약점이 들통난다 싶을 때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 하는거지!
-내 친구가 한국인인데, 강은 KBO시절부터 그랬다더군. 언론에서 약점을 공개하면 곧바로 그걸 보완해서 나왔데. 위에 댓글이 신빙성이 있는걸?
-조용히 있을 때는 약점이 그대로였다가 언론이나 인터넷에 공개되면 보완된다고? 아마 미래와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 언론 혹은 인터넷 뿐이라는 소리가 되는거네!
일반인, 아니 전문가의 상식으로 생각해본다면 더더욱 믿겨지지 않은 해준의 발전 속도.
평소에도 심심치 않게 언급되던 것이 이번 레그킥을 통해 불이 붙으며 많은 팬들이 해준이 같은 인간이 맞는 것인가 의심할 정도였다.
그리고 이는 한국에서 또한 마찬가지였다.
평소에도 해준의 활약상 하나하나에 울고 웃으며, 아니 웃기만 하며 메이저리그를 시청하던 국내 야구팬들.
하지만 이들조차 해준이 보여준 이번 모습에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니, 해준이 형! 외계인인거 들켰어?
-저 형 저러는게 하루이틀임? 괜히 갓해준이 아니다. 난 놀라지도 않았음(지림).
-ㅋㅋㅋㅋㅋㅋㅋ 레그킥 개오지네. 스윙 속도 봄? 그냥 뭐가 번쩍 하더니 공이 휙 사라졌어 ㅋㅋㅋㅋㅋ
-4할 타율에 5할 출루율에 10할 장타율이었는데 이제 뭘 더 하려고 레그킥까지 해?
-메이저리그 그냥 개박살내버릴려고 하나봄. 와, KBO에 남아있었으면 어쩔 뻔했냐.
-어쩔 뻔하긴. 시즌 400볼넷 봤을 듯.
-100 홈런 추가.
-출루율 10할 봤을 듯. ㅇㄱㄹㅇ ㅂㅂㅂㄱ
-160미터;; 심지어 저거 타이밍 놓쳐서 움찔 하고 친거임.
당연하게도 이로 인해 가장 분주해진 곳은 중계권을 획득한 MBW를 제외한 타사 방송국의 스포츠국들이었다.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지 고작 2개월.
국내 야구 리그마저 파업으로 중단된 상황에서 해준이 상상 이상의 기세로 날아오르기 시작하자, 중계권을 확보하지 못한 방송국의 스포츠 국장들의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 시작한 것.
"야! 강해준 메이저리그 가서 떡발릴거니까 중계권 필요없다고 한 새끼 누구야! 뭐? KBO 출신은 안돼? 이런 사대주의자 같은 새끼들 같으니라고! 그래서 지금 강해준이 메이저리그에서 저렇게 잘나가냐?"
그 중에서도 SBW 스포츠국의 국장 방룡필의 조급함은 극에 달한 상태였다.
본래 메이저리그 중계권 경쟁에 뛰어들려던 걸 막아섰던 것이 자신이었으니까.
사장에게 어마어마한 쿠사리를 먹고온 탓에 그는 잔뜩 화가 돋궈진 상태였다.
'지가 술 처먹고 말했던 걸 왜 다 우리가 했데..'
'얼씨구. 그래도 기억은 하나보네. 그런데 너무 뻔뻔한거 아닌가?'
그런 그의 괜한 화풀이에 휘하 직원들은 똥 씹은 표정이 되어 슬슬 그를 피해다니기 바빴다.
그런 직원들은 보자니 더더욱 울분이 터지는 방룡필.
그런 그의 시선에 슬그머니 사무실을 벗어나려던 한 남자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야, 장 피디!"
"네? 네."
"말 안해도 알지? 미국 좀 가자."
국내 프로야구의 파업에 메이저리그 중계권까지 잃으며 땜빵 방송을 돌리기 바빴던 SBW 스포츠국.
이들이 본격적인 명예 회복에 나서고 있었다.
< 본연의 재능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