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수에서 타자까지-115화 (115/137)

< 본연의 재능 (3) >

115. 본연의 재능 (3)

5월 말.

LA다저스가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3연전을 앞둔 날.

영향력 높은 언론 매체 ESPM에서 뽑은 2027 메이저리그 타자 파워 랭킹은 야구팬들 사이에서 큰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1. 이스마엘 콥(NYM)

2. 데블린 스티븐스(DET)

3. 해준 강(LAD)

4. 마이클 오웬(PIT)

5. 로니 그린(NYM)

6 .............

무결점의 상징 이스마엘 콥, 악마의 괴력 데블린 스티븐스에 이어 3위를 기록한 해준.

이번 랭킹이 논란이 된 이유는 간단했다.

성적만 본다면 해준은 이들보다도 더욱 압도적인 스탯을 기록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스마엘 콥』

0.393/0.527/0.723

『데블린 스티븐스』

0.343/0.498/0.899

『해준 강』

0.427/0.555/1.020

타율, 출루율, 장타율에서 모두 메이저리그 전체 리그 1위를 기록한 비교 불가의 괴력난신(怪力亂神).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준이 3위로 이름이 거론되자 뿔이 난 다저스 팬들과 이에 맞대응하기 위한 반대 측들이 몰려들며 해당 기사의 댓글 창에서는 치열한 갑론을박이 펼쳐지기 시작했다.

[TacoLover]

R u guys fucking kidding me? 이건 말도 안 돼. 어떻게 강이 3위로 거론될 수 있지? 어떤 스탯을 봐도 그는 저 두 선수보다 압도적이라고!

└당연한 결과지. 강에겐 그들만 한 경력과 포스가 없어 :(

└포스는 너희들 행성에 가서나 찾아봐 이 얼간이 자식.

└잠깐의 반짝임일 뿐이니 그렇지. 저 건방진 다저스 루키 자식의 추락은 이미 예정된 사실이라고. ESPM은 현명한 선구안을 가지고 있군.

[ShortLife]

이 기사를 낸 자식은 인종차별자라는데 내 손모가지를 건다. 강이 단지 동양인이란 이유로 3위에 오르다니. 내가 지금 2027년의 미국에 사는데 맞는 거야?

└이 빌어먹을 자식들은 뭐만 하면 인종차별이라고 하네. 실력 차이도 인종차별이라고 빽빽거리는 걸 언제까지 두고 봐야 하는 거야?

└누가 봐도 백인 프리미엄 붙은 건 확실한 것 같은데? 성적이 딸리는 콥이 1위잖아.

└누가 보면 스티븐스도 백인인줄 알겠네. 그는 흑인이야 fuxxxx stupid.

└그래서 강이 밀려난 거군. 그가 흑인이 아니라서 말이야!

└제기랄, 뭐만 하면 인종인종. 생각나는 게 피부색밖에 없는 얼간이들은 좀 닥쳐줄래? 이건 명백한 실력의 결과를 반영한 거야.

└네가 말하는 실력이라는 건 수치적으로 표현하기 힘든 건가 보지? 보이지 않는 무언가?

[james_dick]

위에 두 놈 너무 오버하는거 아니야? 이건 당연한 결과잖아. 콥과 스티븐스는 지난 몇 년간 확실히 메이저리그를 지배해온 타자들이었다고. 그런 위대한 선수들 위로 고작 데뷔한 지 3개월밖에 안 된 루키의 이름이 올라간다는 게 이상하지 않아?

└난 네가 더 이상한걸. 그렇게 따질 거라면 2027년 파워 랭킹이 아니라 2020년대 파워 랭킹이라고 했어야지.

사실 이런 일이 한두 해 반복되는 것도 아니었다.

평소에도 ESPM의 파워 랭킹은 눈대중이나 기존 명성에 의해 순위가 정해지기로 유명했으니까.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파워 랭킹을 산정했던 에디터 마키스 힐.

그가 직접 자신의 SNS에 반박 포스팅을 올리며 이 논란은 본격적으로 활활 타오르기 시작했다.

『마키스 힐』 @Ma_Hill1092

이번 선정 결과에 대해 말이 많다는 건 나도 알고 있어.

그러니 먼저 설명을 해보자고.

다저스의 KANG이 뛰어난 타자임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야.

그의 수비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압도적인 페이스로 WAR를 벌어들이고 있고, 타격에서 또한 안타와 홈런을 쏟아내고 있으니까.

그런 그의 가치가 콥과 스티븐스에 이어 3위에 그친 이유?

지금의 그의 페이스는 일종의 거품으로 부풀려진 상태이기 때문이지.

이 포스팅은 올라오자마자 실시간 핫 포스팅에 랭크됐다.

ESPM의 에디터가 한창 떠오르는 메이저리그의 슈퍼스타를 공식적으로 비판한 포스팅.

당연하게도 수많은 해준의 팬들이 온갖 욕설을 달아대기 시작했고, 이에 당황한 마키스 힐은 재빨리 DM을 차단한 뒤 재빨리 후속 포스팅을 업로드했다.

『마키스 힐』 @Ma_Hill1092

근거 없는 소리도 아니고, 인종차별주의자도 아니라는 것을 먼저 밝힐게. 이건 어디까지나 데이터에 근거한 선정이었어.

그와 함께 그는 황급히 여러 데이터가 담긴 링크와 근거들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SwSpot%. 배트 중심에 얼마나 많이 공을 맞췄냐를 나타내는 수치야. 강은 이 수치에서 압도적인 리그 1위를 마크하고 있지.

좋은 거 아니냐고? 물론 좋은 수치지.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자고.

스윗스팟 포인트로 공을 때려내지 못했을 때 강의 장타율은 얼마일까?

홈런을 많이 때려냈으니 이것도 리그 상위권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친구들도 있겠지.

하지만 데이터에 따르면 강의 순위는 리그 하위권에 속해.

그 포스팅은 팬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리그 홈런 1위에 랭크되어있는 해준이 파워 히터가 아니라는 소리였으니까.

당연하게도 많은 팬들이 마커스 힐이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며 몰아붙였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데이터가 모두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지며 마커스 힐의 주장에 힘이 실리기 시작했다.

『마키스 힐』 @Ma_Hill1092

한마디로 정리하자면 강은 배트 중심에 공을 맞혔을 때는 리그 최고의 타자, 그렇지 못했을 때는 하위권에 해당하는 타자라는 소리지.

이는 그의 로우 파워와 실질적인 게임 파워가 모두 좋지 못하다는 이야기야.

그런 그가 계속해서 지금의 안타, 홈런 페이스를 유지할 수 있을까?

나는 힘들 거라고 봐.

페이스가 조금이라도 흔들린다면 강의 타율과 장타율은 남들보다 배 이상으로 급감할 수밖에 없어.

그게 내가 강을 3위로 뽑은 이유야.

그의 논리적인 반박에 빠르게 급증하던 댓글들의 숫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었다.

대부분이 욕설이던 댓글들에서, 이제는 그의 회의적인 시선을 받아들인 팬들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woodi_myfriend]

하긴, 시즌 초반에만 잘 나가는 타자들이 많긴 했지.

[Xdlpww]

난 아직도 봄쿠도메를 잊지 못하겠어. 시즌 초반의 그는 마치 배리 본즈 같았지..

[odwods]

아시아 타자들은 체력이 너무 약해. 강에게도 긴 검증의 시간이 필요할 거야.

[instantman992]

확실히 강이 뛰어난 타자지만 지금의 장타력에는 거품이 꼈다는 걸 부정할 수 없겠는걸. 사실 10할이 넘어가는 장타율이라는 게 말이 안 되긴 했잖아?

[xjjsokdc]

생각해보면 미친 파워의 데블린조차도 장타율이 9할이 되지 않는다고. 강의 페이스, 특히 장타력에 거품이 꼈다는 사실은 확실한 것 같아.

온갖 레퍼런스와 측정 데이터가 팬들에게 공개되는 메이저리그.

그렇게 해준의 페이스에 대해 팬들 사이에서 회의적인 시선이 급격히 퍼져나가고 있을 때.

다저스의 경기 시간이 되자 팬들은 습관적으로 다저스 대 파드리스의 경기가 열리는 스트리밍에 접속하기 시작했다.

어느새 끝난 1회 초.

타석에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다저스의 리드오프로 출전한 해준이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hoohy]

그런데 강의 타격폼이 좀 바뀐 것 같지 않아?

[xManiw0!]

맙소사, 레그킥이잖아?

이미 결론을 내리고 자신을 바라보기 시작한 이들 앞에서, 해준은 또 다른 변화를 내보이고 있었다.

+++

퍼어어어어엉-!

"-볼!"

[스리볼! 샌디에이고의 선발 투수 피트 프랑코의 제구가 말을 듣지 않는군요. 원인은 역시 강이 보인 커다란 타격폼의 변화일까요?]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습니다. 본래 피트 프랑코 선수는 제구가 좋은 편은 아니었으니까요. 하지만 강의 레그킥에 당황한 것 하나는 확실하군요.]

[베이스 온 볼스! 피트 프랑코가 다저스의 강에게 스트레이트 볼넷을 허용하고 맙니다. 배트 한 번 휘두르지 않고 출루에 성공하는 강입니다!]

'레그킥이라니.'

1루로 걸어 나가는 해준을 바라본 샌디에이고의 선발 투수, 피트 프랑코의 눈썹 한쪽이 꿈틀거렸다.

'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건가?'

간혹 천재라는 놈들 중에는 저런 유형들이 있었다.

남들이 보기에는 과감하고, 미친 짓거리처럼 보이는 짓을 아무런 근거도 없이 벌여버리고는 하는 놈들.

'제길, 젊은 자식이 조금 잘 나간다고 상대에 대한 존중을 모르는군!'

인상을 찌푸린 피트 프랑코가 고개를 거칠게 흔들었다.

'쓸데없는 생각은 말자. 다음 타자에 집중해.'

트리플A에서 콜업 된 뒤 등판한 3번째 선발 경기.

아무리 로스터가 널널한 파드리스라지만, 만년 AAAA형 선수인 자신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소중한 기회였다.

고작 애송이의 장난질에 흥분해 이 기회를 망칠 수는 없었다.

하지만 해준의 레그킥은 단순히 한 타석에서 그치지 않았다.

따아아아악악-!

[총알 같은 홈런 타구! 하지만 파울입니다! 하지만 이건 정말 놀랍습니다! 강이 이번에도 레그킥을 들고 나왔습니다!]

[첫 타석까지만 해도 혹시나 했습니다만, 지금 와서는 단순한 장난으로 보이진 않습니다. 생각해보면 강이 그라운드에서 장난을 치는 타입의 선수도 아니죠.]

[황당한 표정으로 날아간 파울 타구를 바라본 피트 프랑코 선수! 이제는 강의 레그킥이 장난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있는 것 같습니다!]

3회 말.

2안타 2볼넷을 허용했지만, 무실점으로 경기를 잘 끌어나가던 피트 프랑코의 동공이 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뭐야, 진짜로 레그킥을 이용해 내 공을 쳐 낸다고?'

단순히 커트를 해낸 것이라면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타구 속도가 심상치 않다.

'정타가 아닌데도 미친 듯이 뻗어 나갔어. 제길,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거야?'

이 이변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낀 쪽은 피트 프랑코만이 아니었다.

다저 스타디움의 프레스 박스.

"..응? 뭐야 이거?"

LA 지역 일간지 소속의 기자 무키 노리스.

공식협력업체로부터 실시간으로 전해지는 게임 데이터를 확인하던 그는 눈을 좁히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잘못 뜬 건가?"

[105.2MPH]

최고 타구 속도가 106마일에 머물렀던 해준.

타석을 거듭할수록 타구 속도가 증가한다는 말도 안 되는 재능을 뽐내던 그가, 지금은 시작부터 그에 근접하는 수치를 기록하고 있었다.

+++

'느낌이 다르다.'

그 변화를 가장 크게 체감한 것은 당연하게도 당사자였다.

이번에도 크게 흔들리며 볼넷을 내준 피트 프랑코.

해준은 1루로 걸어가며 아직도 손바닥에 맴도는 새로운 감각에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전해지는 힘이 달라졌어.'

당연하다면 당연한 사실이긴 했다.

KBO 시절, 트라우마로 본래 재능을 강탈당했던 6년간의 세월.

지난 1년, 아웃라이어와의 링크로 어느정도 그 제한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결국 자신의 재능을 억누른다는 면에서는 같았던 타격폼.

하지만 이제는 자신을 짓누르던 것들에서 벗어난 본래의 타격폼이 신체의 힘을 손실 없이 그대로 끌어내고 있었다.

레그킥에서 만들어지는 폭발적인 힘의 생산 능력.

가슴 깊숙이서부터 솟아오르는 거대한 해방감이 아드레날린을 미친 듯이 분비시키기 시작했다.

'더, 한 번이라도 더 타석에 서고 싶다.'

그렇기에 해준은 타오를 듯한 갈증을 느끼며 강렬한 눈빛으로 타석을 바라보았다. 배트를 휘두른다면 당장이라도 저 담장을 넘겨버릴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참을 수가 없을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참자.'

지난 7년간의 세월은 해준에게 그 무엇과도 비견할 수 없는 인내심을 길러준 시간이었다.

'겨우 그걸 못 기다릴까.'

7년에 비한다면 찰나나 다름없는 기다림일 것이다.

그런 해준의 기다림을 알기라도 하듯, 파드리스와의 게임은 빠르게 진행되었다.

[Swing and a miss! 피트 프랑코가 포효합니다! 필 알론소로부터 삼진을 뺏어내는 피트 프랑코!]

[주전 마르쿠스 영과 노아 존슨, 드레이븐 래리가 휴식 차원에서 라인업에서 빠진 영향이 크군요! 다저스의 유망주들은 아직 그들의 존재감에 미치지 못합니다!]

[하지만 다저스의 투수 또한 만만치 않습니다! 케드릭 피나, 저스틴 아델로부터 루킹 삼진을 뺏어냅니다!]

서로를 셧다운 시켜버릴 듯한 기세로 던져대기 시작하는 양 팀의 투수들.

특히나 메이저리그에서 생존하기 위해 파드리스의 선발 투수 피트 프랑코가 보여주는 호투는 그야말로 놀라웠다.

[베이스 온 볼스- 3번째 볼넷을 얻어내며 출루하는 강입니다!]

[2회 들어 제 페이스를 되찾은 피트 프랑코. 하지만 강을 만나기만 하면 고양이 앞의 쥐 신세가 되는군요. 이유가 뭘까요?]

[글쎄요, 그저 상성이라고 밖에 말하지 못하겠네요. 아니면 개인적인 불안감이라도 느끼는 것일까요?]

[말씀드리는 순간 루이스 화이트가 초구 체인지업을 건드립니다. 2루 땅볼- 아웃! 피트 프랑코가 5회를 다시 한번 무실점으로 막아냅니다!]

해준을 걸러내다시피 출루시켰지만, 계속해서 아웃카운트를 끌어내며 무실점 페이스를 기록하는 피트 프랑코.

"좋았어-! 이 빌어먹을 새끼들, 내가 그냥 당할 줄 알았냐!"

인생 최고의 호투에 그는 더그아웃에 돌아가면서도 가슴을 크게 두드렸다. 하지만 그 행운은 그렇게 오래가지 못했다.

6회마저 삼자범퇴로 이닝을 넘기며 0-0의 팽팽한 접전을 이어가던 다저스와 파드리스.

이들의 줄다리기가 마침내 한 쪽을 향해 당겨지기 시작한 것.

따아악-!

[안타-! 안타입니다! 브랜드 워커의 선두 타자 안타!]

텅-!

[커트 로빈슨, 기습번트! 허가 찔린 파드리스의 내야진이 그대로 얼어버립니다! 1,2루 모두 생존!]

"볼, 베이스 온 볼스-!"

[타석에 들어선 다저스의 투수 케트릭 피나가 볼넷을 얻어냅니다! 피트 프랑코를 순식간에 몰아치는 다저스가 무사 만루의 기회를 만들어내는 데 성공하는군요!]

흥분한 나머지 페이스 조절에 실패한 피트 프랑코.

투구 수는 괜찮았지만 빠르게 떨어지기 시작한 그의 악력이 문제를 일으키고 있었다.

파드리스의 투수 코치가 마운드를 방문했다.

"이봐, 괜찮겠어?"

"제기랄, 문제없습니다! 나한테 맡겨주세요."

"...좋아, 하지만 마지막이야. 볼넷이나 안타가 나오면 바로 강판이니까."

"알고 있습니다."

투수 코치가 마운드를 내려가자, 피트 프랑코는 타석에 들어서는 타자를 바라보았다.

'..제길. 결국 상대하게 되는군.'

하루아침에 바뀐 타격폼이라기에는 너무나 큰 불길함이 느껴지던 타자.

다저스의 리드오프 해준이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다.

그리고.

'프랑코, 조금 오래 기다렸어.'

마침내 기회를 잡은 해준이 타격자세에 들어갔다.

< 본연의 재능 (3)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