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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에서 타자까지-107화 (107/137)

< 벨기언스 미사일 (3) >

107. 벨기언스 미사일 (3)

시티즌스 뱅크 파크의 프레스 박스.

카메라를 들여다보며 이곳에 들어서던 제임스는 자신도 모르게 발걸음을 멈췄다.

그는 최근 신설된 지역 인터넷 미디어 필리스&필리건 출입 기자였는데, 적어도 그의 기억 속에서 이곳이 이렇게까지 득실거리는 일은 없었던 탓이었다.

"야! 자리 잘잡아! 구도가 좋은 곳으로 잡으란 말이야!"

"저리 좀 비킵시다. 혼자 쓰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

발 한치도 제대로 디디기 힘든 북적북적함.

'..뭐야, 사람이 왜 이렇게 많아?'

고개를 갸웃거린 제임스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난처한 표정과 함께 내부를 바라보던 한 기자를 발견했다.

"이봐요, 형씨. 오늘 무슨 날인지 알아요? 특별한 행사가 있다는 말은 못 들었는데."

설사 포스트시즌이라고 해도 이렇게까지 프레스 박스의 수용 공간이 모자라는 일은 없었다.

'물론 필라델피아가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기억은 까마득하지만...'

제임스의 물음에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스포츠 베어의 파견 기자, 허상필이 고개를 돌렸다.

"한국에서 온 기자들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필리스에서 그 모두에게 출입증을 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지만요."

허상필 기자가 어깨를 으쓱거렸고, 제임스는 이 사태를 이해했다는 듯이 혀를 찼다.

"쯔, 어쩐지."

그도 소문은 들어 알고 있었다.

최근 메이저리그를 뒤흔들며 신인왕과 MVP를 정조준하고 있는 다저스의 괴물 루키.

그를 취재하기 위해 몰려든 KBO의 기자들이 무리를 이뤄 몰려다닌다는 소식을.

'그렇다고 해도 이 정도일 줄이야.'

일본인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활약하면 펼쳐지는 풍경이 한국 선수에게도 적용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그러고보니 일본어도 상당히 많이 들려오는군. 이 두 나라는 이상하게 서로에게 관심이 많단 말이지.'

난처한 듯 손가락으로 목덜미를 긁은 제임스가 허상필 기자를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당신도 한국에서 온 것 아닙니까? 설마 북한은 아닐 테고."

영어에는 막힘이 없었지만, 나이가 들어서 배운 영어는 사소한 엑센트부터 티가 난다.

허상필 기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강해준을 보러 북한에서까지 왔다면 그거야말로 특종감이겠죠."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대한민국 사람이고, 지금 이 자리에서는 애런 테린과 해준의 승부만큼 커다란 특종감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 말에 제임스가 이내 눈빛을 반짝거리며 물었다.

"그렇다면 역시 다저스의 강을 취재하러 왔습니까?"

"당연히. 그쪽은 애런 테린?."

"필리스 하면 애런 테린, 애런 테린하면 필리스니까요."

제임스는 콧김을 내뿜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팬으로 살아온 지 31년.

애런 테린은 그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위대한 에이스, 그 자체였다.

"어때요. 이번 승부. 누가 이길 것 같아요?"

제임스의 물음에 허상필 기자가 오히려 되물었다.

"당신은?"

"에? 이런 건 보통 대답을 먼저 들려주고 물어야 하지 않습니까? 뭐, 좋아요. 먼 나라에 오셨으니 서비스 정도로 칩시다. 난 99.9% 애런 테린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상할 정도로 확신에 찬 말투.

잠시 어젯밤의 방송 내용을 떠올린 제임스는 곧바로 이어 말했다.

"그에게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지 않습니까?"

+++

시티즌스 뱅크 파크.

전날 밤, 이곳에서 열린 다저스와의 1차전은 11:1이라는 치욕적인 스코어와 함께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대패로 막을 내렸다.

그런 만큼 이번 2차전에서는 악명 높은 필리스 팬들의 온갖 욕설과 고함소리가 진작에 쏟아지고 있어야 옳았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다.

"이 멍청한 근육 돼지 자식아-! 오늘 우리 집에서 바베큐 파티를 할 예정인데 너를 그 게스트로 초대해주지! 영광스러워 하라고! 맛있게 요리해줄 테니!"

"늙은이 마르쿠스-! 언제까지 다저스에서 연금만 받아먹고 살 거야? 슬슬 은퇴하라고!"

"쥐새끼 루이스는 언제나 덕아웃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있지~!"

원정팀인 다저스에 쏟아지는 욕설은 여전했지만, 적 아군을 가리지 않고 욕을 퍼붓는다는 평상시 필리건들의 모습은 아니었다.

특히나 전날 밤 대패를 허용했다면 원정팀보다는 홈팀에게 쏟아붓는 야유가 더욱 대단한 필리스의 팬들이었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달랐고, 그 이유는 간단했다.

"제길, 어젯밤의 대패는 참을 수 없을 지경이지만.. 오늘은 애런 테린이 올라왔으니 일단은 지켜보자고."

"그가 다저스 놈들의 콧대를 납작하게 눌러주겠지."

"Go Philis-! Beat dodgers!"

필라델피아의 절대적인 에이스 애런 테린.

하얀 머리칼과 차분한 눈빛, 단단하게 단련된 체구의 소유자인 그가 마운드에 올라가 있었으니까.

'분위기는... 평상시와 별다르지 않군.'

숨 막힐듯한 기대감, 그라운드로 쏟아지는 열기. 그 속에서 구장을 한차례 훑어본 애런 테린은 타석에 들어선 타자를 바라보았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빅마켓 중 한 곳인 다저스.

그곳의 리드오프 자리를 단숨에 꿰찬 슈퍼 루키가 타석에 들어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디 한번 반응을 볼까.'

투구판을 밟은 애런의 눈동자가 차갑게 번뜩였다.

"플레이볼-!"

그렇게 주심의 플레이콜이 울림과 동시에.

'감독의 말대로인지 보자고!'

그가 투구판을 박찼다.

폭이 넓지만 여유로움이 묻어나는 스트라이드.

체간을 중심으로 팽팽하게 당겨진 상체 뒤에서 팔이 부드럽게 어깨를 넘어섰다.

한 치의 무리도, 빠름도 느껴지지 않는 자연스럽기 그지없는 투구폼.

하지만, 그 팔 스윙이 기준점을 넘어서는 순간.

퍼어어어어억-!

일전의 부드러움은 온 데 간 데도 없이, 흉악하고 포악한 직선의 궤적만이 포수의 미트에 틀어박힌 후였다.

'애런 자식. 오늘도 날 죽일 셈이군.'

필리스의 주전 포수 호세 파들로.

통증으로 얼얼한 손바닥에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그의 입가는 자신감을 베어 물은 미소가 떠올랐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패스트볼이 날뛰기 시작했으니까.

+++

벨기에산 미사일.

그 별명대로 그의 투구는 압도적인 폭력성, 그 자체였다.

카운트 0-2.

"흐읍-!"

시작부터 궁지에 몰린 해준의 가슴이 크게 한 차례 들썩이며 배트가 홈플레이트 위를 스쳐갔다.

따아아아악-!

"파울-!"

빗맞는 순간부터 저릿저릿 울려오는 손의 통증.

단순히 궤적을 바꾸는 것만 해도 마치 미사일과 충돌한 것만 같은 충격이 전해져온다.

-------와아아아아아아!

고막을 통째로 뒤흔들어버리는 필리스 팬들의 함성.

"...후욱, 후욱."

뜨거운 숨을 몰아쉰 해준이 손바닥의 통증에 눈살을 찌푸리며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103.3mph]

1회 초, 시작부터 166km/h를 넘겨버리는 괴물의 패스트볼.

해준의 두 눈동자가 번뜩이며 눈앞의 홀로그램을 바라보았다.

'역시나. 아웃라이어라 이거지.'

[아웃라이어(Outlier) '벨기에산 미사일Belgians Missile']

-애런 테린

[소속]

-필라델피아 필리스

[특이사항]

-우투우타

-32세

[아웃라이어 업적]

-통산 포심패스트볼 구사율 87.3%

-통산 포심패스트볼 피안타율 0.199

비정상적인 포심의 구사율과 피안타율.

그럼에도 불구하고 메이저리그 최고의 투수로 군림하고 있는 애런 테린.

그의 무자비한 패스트볼 폭격은 자신의 스윙 궤적을 모조리 압도적으로 밀어붙이고 있었다.

툭-

배트의 헤드가 스파이크 끝과 맞부딪혔다.

호흡을 가다듬은 해준은 다시 자세를 잡았다.

'게다가 스트라이크존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들어온다.'

자신의 포심 패스트볼 대응 한계 구속은 155.52km/h.

그럼에도 메이저리그의 강속구를 미친 듯이 때려낼 수 있었던 이유는 더 히팅 프릭, 보로디미르의 배드볼 히팅 감각에 의존한 면이 컸다.

155km/h를 넘기는 공이라도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는 순간.

자신은 그 정중앙을 정확하게 강타할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그것도 써먹기 글렀네.'

어젯밤 필라델피아 지역 방송국인 WNBC와 필라델피아 계정의 스트리밍 계정에서 방영된 자신의 집중 분석 방송 영상. 이 사실을 알아낸 필리스 측에서 이런 식으로 상대 타자의 약점을 방영했다는 사실은 시청률을 의식한 행동임이 분명했다.

'내가 제대로 박살 나는 장면을 보러와라.. 뭐, 이런 뜻인가?'

해준은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분명 보러올 사람은 많을 것이다.

자신이 박살 낸 팀이 수두룩하듯, 그 팀의 팬들은 자신이 박살나는 장면을 보고 싶어 할 테니까.

그렇게 결국 약점은 드러났고, 상대는 그 약점을 그 누구보다 확실하게 공략할 수 있는 메이저리그 최고의 패스트볼러.

그럼에도 해준은 오히려 집중력을 가다듬으며 자세를 잡았다.

'그렇다고 그대로 당해줄 순 없지.'

5구가 스트라이크존 상단을 파고들었다.

따아아아악-!

[파울-! 이번에는 하이패스트볼-! 애런 테린의 무자비한 폭격에 다저스의 KANG이 밀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이봐, 루키. 이제 힘에 부치는 것 같은데 그만 버티고 들어가는데 서로에게 좋지 않겠어?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을 바에 사람답게 죽자고."

필리스 팬들의 고함 소리를 뚫고 포수 호세 파들로의 비아냥거림이 들려왔다. 하지만 해준은 평소답지 않게 말을 맞받아치지 않고는 그대로 자세를 잡았다.

'...뭐야 이 자식. 트레쉬토킹 좀 한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호세 파들로는 그 찝찝한 반응에 눈썹 한쪽을 크게 꿈틀거렸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기계처럼 자세를 잡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런 호세 파들로의 느낌은 정확했다.

'그래, 생각대로 되게 두진 않아. 지금 이 느낌. 이 느낌의 정체만 알아낸다면... 저 괴물과 동등한 눈높이에서 바라볼 수 있다.'

지금의 해준은 손에 닿을 듯, 말듯 주위를 맴돌고 있는 미묘한 느낌에 온 신경을 쏟아붓고 있었다.

한계에 몰리자 느껴지고 있는 이질적인 감각.

'이게 뭘까.'

무언가 자신의 위에 덧칠해진 것 같은 불편함에 해준은 숨을 내쉬었다.

그동안은 전혀 느껴보지 못한 이 기묘한 감각은 계속해서 애런 테린과의 승부에 집중하지 못하도록 만들고 있었다.

[MIX UP 단계에 접어드셨습니다.]

어제 떠올랐던 이 메시지의 영향이 확실한 것 같은데, 아직도 그 정체가 추측되질 않는다.

"후우..."

해준은 오래간만에 느껴지는 답답함과 함께 생각에 잠겼다.

'이대로 계속해서 버텨보려 해도 곧 한계다. 적어도 2구. 그 안에 승부를 들어올 거야.'

자신을 관찰하듯, 80% 정도의 힘으로 스트라이크존에 공을 때려 박고 있는 애런 테린.

하지만 이것도 이제는 슬슬 막바지에 다다른 상황이었다.

'애런 테린은 마음만 먹는다면 106마일의 패스트볼을 뿌리는 선수. 그 공이 온다면 내 배트가 따라가기 힘들겠지.'

그 전에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해준은 애런 테린이 던진 투구들의 궤적과 그 미묘한 구속차를 하나씩 다시 떠올리며 복기에 들어갔다.

그리고 잠시 뒤.

'그러고 보니..'

해준의 눈동자 위로 자그마한 이채가 떠올랐다.

'이런 투수는 이정한 이후 처음이잖아.'

2군 첫 경기.

오로지 패스트볼로만 자신과 승부했던 이정한.

그 뒤로는 자신에게 패스트볼만 던져오는 선택지를 택하는 투수는 없었다.

체인지업, 슬라이더, 커브, 스플리터까지.

모두가 자신이 가진 변화구를 구사해 스윙을 끌어내려 들었고, 그것이 정상적인 패턴이었으니까.

'하지만 애런 테린은 다르다. 지금까지 중간 중간에 체인지업을 섞을 기회는 충분히 있었어. 그럼에도 패스트볼을 고집한다는 건..'

오로지 패스트볼로만 승부하겠다는 뜻.

메이저리그 최고의 패스트볼 킬러라는 명성이 애런 테린의 호승심을 자극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좋아, 그렇다면.'

그 순간부터 해준의 자세가 매우 미묘하게 달라졌다.

외부에서 바라본다면 전혀 눈치채지 못할, 어쩌면 본인조차 그 포인트를 집어내기 힘든 변화.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디테일한 자세의 변화보다도 타석에 임하는 전략이 달라진 것이었으니까.

'그때를 떠올리자.'

그리고, 해준의 심상은 저 깊이 과거의 기억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체인지업도, 슬라이더도. 스플리터도 치지 못하던 때로.'

무의식 중에 남아있던 변화구에 대한 의식을 버린 해준이 1년 전, 오로지 패스트볼 하나만을 바라보며 스윙을 휘둘렀던 시절을 떠올리기 시작했다.

그 사이.

타앗-!

마운드의 애런 테린이 다시 한번 투구판을 박찼다.

부드럽게 밀어내는 하체, 팽팽하게 활처럼 당겨지는 상체.

그와 함께 폭발적으로 휘둘러진 팔스윙.

그리고 찰나의 순간, 홈플레이트에 도달한 하얀 궤적이 솟구치는 착각과 함께.

"흐읍-!"

따악-!

배트가 공 끝을 살짝 스치고 지나갔다.

"스윙- 스트라잌- 아웃!"

판정은 파울팁 삼진.

적진의 한복판답게 구장은 순식간에 쏟아지는 필리스 팬들의 함성 소리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

[아웃라이어 체인지업 드릴러 브랜드 맥케이와의 링크가 일시적으로 비활성화됩니다.]

홀로그램이 떠오름과 동시에, 해준의 코어 근육 세포들은 미묘한 변화를 일으켰다. 그로 인해 체인지업의 타이밍을 잡아채기 위한 미묘한 브레이크의 제동이 사라진다.

'이거구나.'

그리고 해준은 자신을 괴롭히던 이질적인 감각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다른 아웃라이어들과의 링크.

각자가 강한 개성을 뽐내며 몸에 자리 잡았던 만큼, 이들이 그동안 패스트볼의 스윙 궤적을 잡아두고 있었던 것.

'그렇다면..'

그 사실을 깨달은 해준의 두 눈빛이 번뜩였다.

'해야 할 일은 하나.'

다른 링크들을 모조리 비활성화시키고, 본연의 순수한 스윙 궤적을 되찾는 것.

그렇게 4회 초 무사.

애런 테린의 퍼펙트 행진을 앞에 두고 들어선 두 번째 타석.

이때 또한 마찬가지였다.

부우우웅-!

[헛스윙-! 다저스의 리드오프가 마침내 자신의 천적을 만난 듯이 전혀 힘을 쓰지 못합니다!]

해준은 당장의 결과보다 몸을 웅크린 채 반격의 기회를 찾기 시작했다.

'어떻게든 패스트볼의 감각만을 남겨야 한다.'

물론 쉽지는 않았다.

1년 가까이 몸에 익은 무의식을 지워낸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니까.

'하지만.. 지금이라면 할 수 있다.'

[MIX UP 단계에 접어든 상태입니다.]

이제야 이해되기 시작한 눈앞의 메시지.

애런 테린이 폭발적인 패스트볼로 자신을 몰아붙이면 몰아붙일수록, 자신 또한 순수한 패스트볼의 스윙 궤적에 빠른 속도로 가까워지고 있었다.

[스윙 스트라이크 삼진 아웃-! 연타석 삼진을 허용하는 KANG! 전 날밤 필리스의 밤을 짓밟았던 다저스의 루키를 애런 테린이 역으로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렇게 8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또다시 삼진을 허용한 해준.

그 뒤, 필리스는 다저스의 선발 투수 윌리엄 스미스를 두들기며 마침내 3점을 뽑아내는 데 성공했다.

7회 초에 이르렀을 때의 스코어는 0-3.

필리스가 슬슬 승기를 잡아가고 있던 그 순간.

이제는 3번째 타석에 들어선 해준이 차분하게 가라앉은 시선으로 애런 테린을 바라보았다.

'분명 괴물 같은 투수다.'

이제껏 자신을 이토록이나 일방적으로 몰아붙인 투수는 없었다.

경이적일 정도의 재능.

'하지만 그것도 이제 마지막이야.'

해준은 자신이 목표로 하던 그 순간이 코앞에 다다랐음을 직감하기 시작했다.

빠르고, 크게 휘어나가는 변화구들에 대응 할 수 있도록 미묘하게 수정되었던 스윙 궤적.

그것이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오고 있었으니까.

해준이 자세를 잡자.

'와라.'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투구판을 박찬 애런 테린의 부드러운 투구폼이 이어졌다.

부드러움 끝에서 드러나는 흉악한 발톱.

그리고 그 순간.

"흐읍--!"

초구부터 해준의 두 손이 폭발적인 속도와 함께 몸통을 휘감는 궤적을 그리기 시작했다.

선명한 스파이크의 짓이김, 축발이 만들어내는 폭발적인 전진력.

그 찰나의 시간.

'지금이다!'

해준의 머릿속을 수많음 메시지들이 뒤흔들었다.

[아웃라이어 스플리터 쇼진, 무라타 가즈히코와의 링크가 일시적으로 비활성화됩니다.]

[아웃라이어 공공의 적, 에드워드 쿠팩스와의 링크가 일시적으로 비활성화됩니다.]

[아웃라이어 위대한 시즌, 길버트 밥과의 링크가 일시적으로 비활성화됩니다.]

생존을 위해 다양성을 꾀하며 미묘하게 어긋났던 몸과 감각의 기어.

그것들이 지금 이 순간 완벽하게 맞물리고 있었다.

그와 함께.

따아아아아악-!

그 어느 때보다 경쾌한 파열음이 시티즌스 뱅크 파크를 뒤흔들며.

[쳤습니다-! 울분을 터트리듯, 무섭게 휘둘러진 KANG의 배트가 이곳 필라델피아의 하늘을...!]

해준이 만들어낼 역전의 서막이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벨기언스 미사일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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