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수에서 타자까지-105화 (105/137)

< 벨기언스 미사일 (1) >

105. 벨기언스 미사일 (1)

한국 시각으로 5월 22일.

10개 구단과 선수협의 갈등 속에서 신음하던 한국프로야구는 마침내 그 길고 어두웠던 터널을 벗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검찰, 세오레즈 이운요 사장 구속 방침 확정!]

[이운요 사장, 횡령 및 사기 등 9개 혐의로 입건 예정]

[KBO, 세오레즈 인수 기업 물색 중? 상벌위원회 열어 이운요 사장 영구제명 의논 중.]

KBO 역사상 첫 리그 파업 사태를 불러온 장본인인 이운요 사장. 그의 여러 치부가 속속 밝혀지며 검찰에서 구속을 결정한 것.

그를 기점으로 언제까지고 똘똘 뭉칠 것만 같았던 10개 구단은 우르르 와해되기 시작했다.

[대구 더히트, 사장 전격 교체!]

[시갈스, 팔콘즈, 코쿤스까지. 프런트 물갈이에 들어간 모기업들.]

[줄줄이 교체되는 사장진. 이제는 현장 출신들로 채워진다? KBO에 부는 새로운 바람!]

처음 폭로가 터져 나올 때까지만 해도 그저 수수방관하던 모기업들. 하지만 혹시나 하던 파업이 실제로 이루어지고 사태가 장기화에 빠지자 이들은 결국 수습에 나서기 시작했다.

한편, 이번 사건이 수습되기만을 노심초사 기다리던 KBO.

이들 또한 재빠르게 교통 정리에 나서며 리그 파업 사태는 그 끝을 향해 다가가고 있었다.

[KBO, 선수협과 의견이 조율되는 대로 개막 예정!]

[선수협 이완석 협회장, 10개 구단과 긍정적인 의견 교류.]

[72경기 체제? 속속 논의되기 시작하는 2027년 한국프로야구 운영 방침!]

하지만, 그 소식을 접하는 팬들의 반응은 냉담했다.

"야, 야구 개막한다는데?"

"응, 노관심. 개막해도 안가."

"우리나라에 아직까지 프로야구리그 남아있었다고? 그냥 해체하라고 해. 괜히 또 중계한다고 전파 낭비하지 말고."

"난 메이저리그 보고 나니까 한국 야구는 이제 못 보겠더라."

"솔직히 인정. 와, 내가 그동안 한국 야구를 어떻게 봤나 싶더라니까? 무슨 파워의 한국, 기술의 일본? 이 지랄 같은 말부터 안 믿었어야 했는데. 메이저리거들은 그런 것들은 기본으로 깔고 들어가더라."

3개월 이상 이어진 대규모 파업 사태.

후에 가서는 10 구단과 선수협 간의 폭로전까지 이어지며 벌어진 진흙탕 싸움에 이미 많은 팬들은 등을 돌린 뒤였다.

더욱이, 메이저리그로 떠난 해준이 보여주는 괴력적인 활약은 그런 팬들의 눈길을 앗아오기 충분했다.

"음? 김 대리. 또 밤샜어?"

"...과장님도요? 다크서클이 코 밑까지 내려오신 것 같은데."

"큼! 나야 나이를 먹어서 그런거고. ...그런데 어제 야구 봤어?"

어느 순간부터 많은 직장인들이 다크서클이 내려앉은 눈으로 회사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장필준. 장필준? 안 나왔나? 오늘 발표 아닌가?"

"야구 보느라 못 나온 것 같은데요."

"또? 이걸로 3명째네.. 허."

해준의 경기를 시청하느라 잠든 학생들은 학교를 빼먹기 일쑤였다.

선발투수도 아닌, 에브리데이 플레이어인 해준이다.

그런 그가 하루가 멀다고 하이라이트 장면들을 쏟아내 버리기 시작하자, 많은 야구 팬들은 그를 시청하기 위해 기꺼이 새벽을 지새우는 것을 택하고 있었다.

팬들의 반응에 민감한 스포츠 언론사들이 그 사실을 놓칠 리 없었다.

"경기 결과는 많으니까 더 흥미로운 내용을 가져와야지! 뭐, 자료 부족? 당장 LA로 가! 아니, 지금은 덴버인가?"

"어떻게든 강해준 관련 소스를 뽑아와! 알려진 거 말고. 그런 거 있잖아? 강해준이 도와준 덕분에 징크스를 극복했다. 이런 미담 말이야. 알았지?"

그렇지 않아도 파업으로 손이 놀고 있던 기자들.

언론사들은 망설이지 않고 미국으로 기자들을 파견했고, 덕분에 족히 60, 70명은 되는 한국인 취재진이 해준 경기를 졸졸 따라다니는 풍경이 연출되고 있었다.

그리고, 치열한 취재 경쟁을 피해 미리 필라델피아의 시티즌스 뱅크 파크에 자리를 잡은 스포츠 베어의 허상필 기자.

퍼어어어엉-!

불펜을 쩌렁쩌렁 울리는 무지막지한 구위에 그는 감탄사를 터트렸다.

"..허, 저 선수가 그 투수인가."

선발 등판을 이틀 앞두고 불펜 피칭 세션에 들어간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1선발 애런 테린.

분명 70% 정도의 힘으로 공을 뿌리고 있음에도, 구속은 가볍게 95마일을 상회하고 있었다.

보기 드문 흰 머리칼에 시원시원하면서도 탄탄하게 다져진 체격. 메이저리그에서도 독보적인 인기를 끌고있는 슈퍼 스타 애런 테린의 살인적인 불펜 피칭.

감탄사를 내뱉는 몇몇 기자들과 함께 그 모습을 계속해서 관찰한 허상필 기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흥미로운 대결이 되겠어.'

메이저리그에서도 패스트볼 킬러로 명성을 높이고 있는 해준.

하지만 상대는 7번의 사이영상을 수상한 그 로저 클레멘스보다 위대한 패스트볼을 뿌린다고 평가받는, 그것도 20-80 스케일에서 포심 패스트볼이 Non-grade를 받은 선수였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재능들을 평가하는 80점으로도 표현할 수 없다는 재능의 소유자.

보통의 경우라면 이번만큼은 어렵다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상대.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상필 기자는 자신의 가슴이 두근거리는 이유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강해준, 이번에는 어떻게 이겨낼거지?'

넘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벽들을 수 차례나 넘어온 해준.

그리고 그런 그가 저 괴물을 뛰어넘는 순간 보여줄 그 폭발적인 성장의 모습.

그를 떠올린 허상필 기자의 두 눈빛이 깊어졌다.

+++

140년 역사의 메이저리그.

이 긴 세월동안 세계 최고의 자원들을 빨아들인 이곳은 수많은 괴물들을 배출해냈고, 사람들의 기억 속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스타들을 탄생시켰다.

그리고, 그런 그들은 누군가의 우상이 되었다.

야구를 막 시작한 소년들이라면 더더욱 그 영향에서 벗어나기 힘들었다.

파워풀한 스윙, 100마일을 넘나드는 광속구, 상대 선수를 농락하는 마구까지.

소년들의 빈틈 없는 시선은 자신의 우상을 찾아냈고, 그를 닮아가기 위해 애를 쓰고는 했다.

필라델피아로 향하는 비행기 안.

해준은 자신에게 무뚝뚝하게 공을 내미는 루이스를 바라보았다.

"...네?"

"사인 좀 해주겠어? 조카 녀석이 부탁해서 말이야. 네 녀석이 자기의 우상이라나 뭐라나.."

"아, 네. 뭐 그러죠. 어려울 것 있나요."

고개를 끄덕인 해준은 공을 건네받아 사인을 적어내려갔다.

한편, 밤하늘을 가르는 소리를 백색소음 삼아 조용히 포커를 즐기던 다저스 선수들.

그들은 그 광경을 신기하다는 듯이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루이스에게 가족이 있었단 말이야?"

"하도 아웃사이더 같은 녀석이라 친구도, 가족도 없을 거라고 생각한 우리가 잘못인가?"

"내 생각엔 저 볼을 옥션에 올려 팔아먹으려는 수작이야. 준은 데뷔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슈퍼스타라 사인볼은 비싸거든."

"어라? 내것보다?"

"드레이븐, 네 사인볼 하도 흔해서 리틀리그에서 배팅볼로 굴러다닐껄? 아, 이거 칭찬이야."

장난기 어린 다저스 선수들의 대화에 공을 돌려받은 루이스는 흥- 하며 코웃음을 치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 광경을 재밌어 하는 표정을 바라보던 마르쿠스 영. 이제는 다른 소년들의 우상이 된 그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우상이라.. 좋을 때로군. 그러고보니 내 어린 시절 우상은 켄 그리피 주니어였지. 부드러우면서도 아름다운 스윙 궤적. 타자가 닿을 수 있는 이상향이니까."

확실히 그는 켄 그리피 주니어와 닮으면서도 다른 자신만의 색을 가진 위대한 타자였다. 그의 말에 슬쩍 바닥에 깔린 패를 들춰보던 드레이븐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래? 나는... 딱히 떠오르는 선수는 없는데? 그냥 그때그때 달라서."

한때의 우상이라면 모를까.

즉흥적인 면모가 강한 어린 시절의 드레이븐은 자신이 우상이라 생각하는 타자가 있다면 죽어라 그 스윙을 따라했다 말했다.

그러다 그 장점을 터득했다 생각하면 어느새 본래 자신의 스윙으로 돌아왔다는 것까지.

그리고, 그 선수는 더이상 드레이븐의 우상이 아니었다.

그런 탓인지 그의 스윙은 많은 선수들을 떠올리게 만들면서도 그 누구와도 닮지 않았다.

그 말들을 듣던 노아 존슨은 고개를 끄덕였다.

"흠, 확실히 어린 시절의 기억은 많은 영향을 끼치지. 나 같은 경우도 특정 선수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니까 말이야. 겉으로 보기엔 전혀 다를지 몰라도."

물론 어린 시절의 행동일뿐, 선수들은 나이를 먹어가며 각자 자신의 신체 조건에 적합한 타격 자세와 스윙 궤적을 찾아가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시절의 기억이 그들에게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했다고는 말하기 힘들었다.

누구나 자신의 우상을 닮고싶어하는 법이고, 마르쿠스처럼 자신의 우상과 비슷한 스윙 궤적을 가지는데 성공한 선수들도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마르쿠스가 물었다.

"그러고보니 준, 네 타격 폼은 어떻게 정립 됐지? 누군가의 영향을 받은건가? 사실 그런 타격폼은 찾아보기 쉽지 않으니까 말이야. 하퍼를 닮았다고 생각하기도 했는데 지금 보면 또 다른 것 같기도 하고. 특히 아시아에서는 자네와 같은 타격폼을 가지기가 환경적으로 힘들다고 들었거든."

불필요한 동작이라곤 조금도 찾아볼 수 없는, 절제된 것 같으면서도 편하게 서있는 것 같은 타격폼.

하지만 그 타격 자세에서 뿜어져나오는 정확성과 파워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

그런 해준의 타격폼이 가지는 유니크함은 개성을 중시하는 메이저리그에서도 보기 힘든 종류의 것이었다.

하지만 해준이 대답을 하기도 전에, 다저스의 선수들의 사이에서 여러 가지 추측이 쏟아져 내렸다.

"그러고 보니 준은 테이크백 동작이 거의 없다시피 하지? 그런 이론을 전파하는 코치가 LA 인근에 산다고 들었던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엔 하퍼라니까. 그냥 공을 부숴버릴 듯이 때려버리잖아."

"글쎄, 강력한 레벨 스윙을 구사한다는 점에선 완전 배리 본즈인데? 성적도 판박이잖아. 지금 OPS가 15할이던가? 휘익- 푸른 피가 흐르는 배리 본즈라니. 이거 괜찮은데?"

"무슨 소리야? 드레이븐 너는 타격폼을 보는 눈이 너무 부족해. 본즈는 강력한 중심축으로 회전 운동을 극대화한 타입이었다고. 반면 준은 전진력을 대퇴근과 허리근에서 증폭해버리지. 그러니 공을 몸에 붙여 치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히팅 포인트가 극단적으로 앞에서 형성되잖아."

전 세계의 인재들이 모이는 메이저리그.

그곳에서도 최고 수준에 다다른 선수들이다.

이들이 가볍게 시작한 주제는 어느새 각자가 생각하는 타격에 대한 의견을 나누는 자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코스에 따라 스윙을 세분화하라니? 그건 마르쿠스 같은 괴물들이나 할 수 있는 거지. 준을 보라고. 어느 코스든 풀스윙이잖아. 나도 그렇고. 타자는 기본적으로 모든 공을 박살 내버리겠다는 생각을 가져야 하지, 암 그렇고 말고."

"이봐, 드레이븐. 너나 준이 그런 타격 스탠스를 가져갈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강력한 손목 힘이 바탕이 되기 때문이라고. 다른 선수들은 보통 그렇게 못하거든. 그러니 사전 확보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코스와 구질의 궤적에 따라 스윙을 조절하는 게 효율적이야."

평소에 양보하는 성향이 강한 노아 존슨조차 타격에 대한 지론이 언급되자 드레이븐의 말에 강하게 반박했다.

그러던 도중, 사인볼을 사진으로 찍어 어디론가 전송한 루이스가 툭- 한 마디를 내던졌다.

"그래서 준이 모티브 삼은 타자가 도대체 누군데?"

그 말에 모두의 시선이 해준에게 모여들었다.

노아와 드레이븐이 포커 게임에 소홀한 틈을 타 야금야금 이득을 취하던 해준은 그 물음에 고개를 들었다.

"모티브? 음, 그것보다는 목표라고 하는게 좋겠네요. 제 스윙 궤적은 아직 완성형이 아니거든요."

그 말에 드레이븐이 말도 안된다는 듯이 말했다.

"네 스윙이 완성형이 아니라고? 이봐, 루키. 너 지금 타율이 4할을 넘기는 건 알지? 혹시 그 모티브라는게 테드 윌리엄스 수준의 타자라면 말이 되겠지만 말이야. 도대체 누군데 그래?"

해준은 그 말에 그저 한차례 어깨를 으쓱거렸다.

더 패스트볼 긱, 토니 디에고 블랑코.

자신과 가장 먼저 연결된 링커이자 포심 패스트볼 타격에 특화된 아웃라이어.

다른 선수들이라면 몰라도, 시스템의 도움을 받고 있는 자신은 잘 알고있었다.

[현재 링크 활성화율은 90%입니다.]

자신은 아직 토니 디에고 블랑코이 가진 잠재력을 100% 끌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저 감각만을 수용하는 다른 아웃라이어들과 달리, 자신의 타격 근간을 이루고 있는 토니 디에고 블랑코의 링크.

이 수치는 KBO 말미에 90%에 도달한 뒤로 성장이 정체된 상태였다.

'그러니 이것을 끌어올린다면..'

자신은 더더욱 성장할 수 있다.

그리고 그를 위해서는.

[한계치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현역 아웃라이어와 승부하세요.]

이제까지와는 다른 아웃라이어를 상대해야한다.

'현역 아웃라이어라...'

해준의 두 눈빛이 깊어졌다.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1선발, 벨기에산 미사일이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애런 테린.

통산 포심 패스트볼 구사율 87.3%.

변화구 구사가 거의 없음에도 불구하고 통산 방어율 2.84을 기록한 괴물.

그 남자가 진짜로 아웃라이어라면, 그동안 경험했던 아웃라이어들과의 승부와는 매우 다를 것이 분명했다.

고정된 환경, 고정된 시간 속.

절대적으로 자신이 유리한 환경에서 반복 진행됐던 승부들.

그에 반해 이 남자는 앞으로 같은 시간대에 수십 번의 승부를 나눌 상대였으니까.

해준은 이번 승부가 앞으로의 미래에 큰 파란을 불러일으킬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기 시작했다.

< 벨기언스 미사일 (1)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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