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돌주먹 로키스 (4) >
104. 돌주먹 로키스 (4)
"넌 타격이 뭐라 생각하냐?"
고등학교 2학년 시절.
난데없는 조대욱 감독의 물음에 해준은 툴툴거리며 대답했다.
"뭐긴요, 공을 죽어라 세게 후려갈기는 거지."
그 말에 조대욱 감독은 흘흘 웃음을 흘리며 해준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럼 볼넷으로 걸어 나가는 건 타격이 아니냐? 만루를 볼넷으로 밀어내도 엄연히 타점(打點)으로 기록된다 이눔아."
그 날은 해준이 상대의 기세에 눌려 3타수 3삼진을 기록한 날이었다. 1학년 시절부터 무서운 것 하나 없었던 해준이 처음 겪은 부진.
머리의 통증에 인상을 찌푸린 해준은 잠시 생각에 잠긴 뒤 대답했다.
"그럼... 투수를 이기기 위한 행위?"
그 말에 조대욱 감독은 반쯤 맞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결국 타격이란 행위는 투수를 이겨내고 출루를 하기 위해 존재하지. 그게 단타가 됐던, 볼넷이 됐던, 홈런이건 간에 말이야. 그런데 말이지. 오늘 네 놈의 스윙은 뭘 위함이었지? 그 스윙에 공을 때려내겠단 의지가 실려있었다고 생각하냐?"
"..크, 흐음, 그거 흥미로운 질문이네요."
"흥미롭긴 개뿔이. 네 놈이 엉덩이 쑥 빼고 휘두를 때부터 알아봤다. 공에 맞을까 봐 그저 쫄아서는.. 쯔쯔."
"아, 영감님이 그 타석에 안 서보셔서 그래요! 그 투수 영점이 영 아니더라니까요? 150km/h만 던질 줄 알면 뭐해요. 스트라이크 하나 제대로 못 던지는 놈이던데. 오늘 제 머리 주변으로만 3번이 날아왔어요, 3번이."
해준의 변명 아닌 변명에 조대욱 감독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러면 이번에는 그렇게 넘겼다 치자. 곧 네 녀석도 프로에 가야 할 텐데 거기선 어떡할래? 지금처럼 엉덩이 뒤로 빼놓고 저 제대로 쫄았으니까 이제 스트라이크 던지시면 됩니다. 광고라도 할래 이눔아? 메이저리그가 꿈이라며? 거기는 좀만 튀어도 머리로 대놓고 저격하는 곳인데 그때도 그럴래?"
"...."
조대욱 감독의 일침이 해준의 머릿속에 메아리쳤다.
하나 같이 맞는 말이다.
"심지어 거긴 150km/h가 아니라 160, 170km/h을 던지는 놈들이 널리고 깔렸지. 그런데 벌써부터 고작 영점 조절 좀 안되는 투수 만났다고 피해 가는 버릇을 들이려 해? 내가 널 그리 가리켰어?"
그제야 해준은 이 상황이 정말로 심각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이를 먹을수록 주변 투수들은 성장했고, 공 끝은 그에 비례해 살벌해져 가고 있었다.
지금부터 이렇다면 그 성장이 완성에 이르렀을 때는?
지금보다 더 빠르고 회전수가 높은 공이 명백한 의도를 담고 머리로 날아든다면..
자신은 과연 그 공포를 이겨낼 수 있을까?
사소한 멘탈리티의 차이가 1할과 3할의 차이를 만드는 분야가 바로 타격이란 놈이다.
벌써부터 이래서는 안 된다는 조대욱 감독의 충고가 가슴을 때려왔다.
"그러면 어떻게 하죠? 이 악물고 버티...는건 아닌 것 같은데. 그러다 진짜 맞으면 정말 골로 가는데."
고등학생인 해준이 나름 진지한 표정을 짓자 조대욱 감독은 그제야 표정을 풀며 말했다.
"뭘 물어? 당연히 초장부터 던지질 못하게 해야지."
"못 던지게요?"
"그래, 못 던지게."
"어떻게요?"
"간단하지. 사람이란 결국 제 손해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동물이거든."
"...그래서요?"
"떽! 여기까지 말해줘도 못 알아들어? 그 정도는 알아서 떠올려 이눔아! 언제까지 이 늙은이가 떠먹여 줘야 하냐?"
그렇게 한 달 뒤.
해준은 자신에게 3개의 삼진을 뺏어낸 투수와 다시 조우했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공은 머리 부근을 향해 날아왔다.
투수는 손을 흔들며 실투였음을 알려왔지만 해준은 그것이 거짓임을 깨달았다.
'이거구나.'
그 계기가 우연이든, 고의든.
승부의 세계에서는 한 번 약점을 드러내면 누구든지 약한 살가죽을 뚫고 살코기를 물어뜯으려 든다.
약점을 공략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으니까.
'그렇다면...'
그에 대한 해준의 대응은 간단했다.
헛스윙을 가장해 이를 악물고 배트를 마운드로 던져버리자, 공은 더 이상 머리 부근으로 날아오지 않았다.
상대 투수는 드래프트를 앞둔 3학년이었고, 조금의 부상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시기였으니까.
괜한 시비로 배트에 얻어맞고 싶지는 않아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조대욱 감독은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페어플레이? 좋지. 하지만 해준아. 사람이란 동물들은 교활하기 그지없어서 웃는 모습만 보여주면 만만하게 보고 잡아먹으려 든단 말이지. 한 번쯤은 욕먹을 각오를 하더라도 보여줘야 하는 거야. 네가 진짜로 눈이 돌아가면 어떻게 되는지. 뭐, 지금처럼 무식하게 배트를 집어 던지란 말은 아니었지만. 아무튼 효과는 좋네 허헛."
그리고, 그 가르침은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충실하게 이행되고 있었다.
퍼어어어어억-!
2027년 5월 20일.
헤드샷을 피해 던져버린 해준의 배트가 투수 릭 피어스를 강타했다.
[오우우우우! 이게 웬일입니까! 보복구임이 분명한 투구를 피해가며 배트를 던져버린 KANG! 릭 피어스 선수의... 그, 고간과 배트가 충돌했습니다! 마운드에 바로 엎어진 릭 피어스 선수!]
[아니, 던진 것이 맞습니까? 제가 보기엔 그저 보복구에 당황한 KANG이 손에서 놓친 것처럼 보이는데요!]
[지금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죠! 정말 중요한 건, 이 사건으로 인해 로키스가 주전 포수와 2루수에서 이어 선발 투수까지 잃을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쿠어스필드는 물론이고 당사자인 로키스 벤치는 단번에 혼란 속에 빠져들었다. 저 건방진 루키 자식의 머리를 박살 내버리라 오더했는데, 정작 엎어진 쪽은 자신들의 투수다.
하지만 그렇다고 곧바로 덤벼들기엔 이 상황이 너무나 교묘했다.
누가 보아도 헤드샷을 던진 쪽은 자신들이었고, 해준은 그 공을 억지로 쳐내려다 배트를 놓친 것처럼 보였으니까.
난생 처음 겪어보는 광경에 선수들 모두가 얼이 빠져있을 때.
가장 먼저 정신을 차린 것은 로키스의 클럽 리더 1루수 나단 브레이저였다.
그의 시야에 태연하게 배트가 미끄러졌다며 손을 흔들고 있는 해준의 모습이 들어왔다.
'저건...'
그리고 확신했다.
똑같은 데드볼에도 종류가 있고, 선수들은 그것이 고의인지 실수인지를 구별할 수 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
저건 명백한 고의다.
"FUCK! YOU FUCKING BASTARD! 죽여버리겠어!"
[나단 브레이저! 로키스의 리더가 다저스의 루키를 향해 돌진합니다!]
눈이 뒤집힌 그가 글러브를 내팽개치고 해준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퍼어어억-!
"이번에는 안 늦었다 이 빌어먹을 로키스 새끼들아!"
그는 난데없이 옆에서 전해지는 충격과 함께 그라운드를 위를 굴렀다. 이 사태를 기다리고 있던 드레이븐.
그가 재빨리 달려와 나단 브레이저에게 허리 태클을 걸어버린 것.
"나단! 거기서 비켜 이 새끼들아!"
"막아! 이 기회에 로키스 녀석들의 콧대를 부숴버리자고!"
"드레이븐! 뒤로 물러서!"
"제기랄! 로키스와 만나면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군!"
그것을 기점으로, 양 벤치에서 우르르 몰려나온 양 팀 선수들이 한 자리에서 얽히고 설키기 시작했다.
[벤치클리어링! 로키스와 다저스가 결국 충돌합니다!]
드레이븐이 1루 근처에서 나단 브레이저와 충돌을 일으킨 덕에 얼떨결에 멀어진 벤치클리어링의 중심지.
해준은 그 광경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제야 터졌군.'
로드리게스 사건으로 시작된 로키스와 다저스의 악연.
이 지독한 관계는 어느 한쪽이 완벽하게 다른 한쪽을 짓누르지 않은 이상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기세에서 밀리는 것이 곧 죽음과 같다고 생각하는 메이저리그의 선수들.
하지만 언제까지 이렇게 치고받을 순 없었다.
이런 관계는 팀을 잡아먹는 악성 종양과 같았으니까.
'이건 전력 낭비야.'
체력 관리가 중요한 장기전.
베테랑들이 많이 분포한 다저스인 만큼 이런 주먹다짐이 일어날 때마다 누적되는 체력적 손해는 막심했다.
해준이 선수들이 모여있는 곳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악성 종양은 초기에 대처해야지.'
초반부터 이어진 도발은 어느 정도는 다분히 의도적인 행동이었다. 이런 관계를 피곤하게 3차전까지 끌고 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으니까.
아무튼 생각대로 사태가 터졌으니 이제는 정리할 차례다.
[근력이 근 폭을 증가합니다!]
[......]
[근골이 철과 같이 단단해집니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그럴만한 힘이 있었다.
충돌의 중심지로 다가가자 여전히 조단 브레이저를 짓누르고 있는 드레이븐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번에야말로 본때를 보여주마, 이 빌어먹을 새끼!"
"Don't fuck with me! 이번엔 너희들이 먼저 시작했어 이 머저리 자식들아!"
서로의 멱살을 부여잡은 채 이미 몇 대는 주고받은 듯한 분위기.
"드레이븐, 나와봐요."
"으응?"
어느새 인파를 뚫고 들어온 해준이 억지로 드레이븐을 떼어냈다.
"you motherfuck... 커헉-!"
잔뜩 흥분한 나단 브레이저가 그대로 가만히 있을 리는 없는 노릇. 자유를 찾자마자 다시 일어나 덤벼들려 했지만, 해준의 믿기지 않은 악력이 먼저였다.
'뭐.. 뭔. 이 무슨 괴물 같은 자식이!'
단순히 멱살을 잡혔을 뿐인데 숨이 턱- 막혀온다.
해준은 그런 나단 브레이저를 높이 들어 올렸다.
말 그대로 머리 위로 들어 올렸다.
그리고는 외쳤다.
"STOP!"
우렁찬 고함, 그 소리에 고개를 돌린 로키스 선수들의 동작이 삽시간에 멈췄다.
그곳에는 믿을 수 없는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다들 동작 그만. 누구라도 주먹 한 대 더 날리면 당신네들 캡틴 던져버립니다?"
키 201cm, 몸무게 110kg의 거구 나단 브레이저.
그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한 채 다저스의 루키의 머리 위에 들려있었다.
그리고, 그라운드에 침묵이 찾아왔다.
+++
[LAD 7 : 0 COL]
승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패 – 콜로라도 로키스
승리 투수: 윌리엄 스미스(8이닝 무실점 2피안타 9탈삼진)
패배 투수: 지미 산티아고(1과 1/3이닝 4볼넷 3피안타 4실점)
[돌주먹 로키스, 박살 나다! 벤치클리어링에서 압도적 우위를 점한 다저스.]
[선발 투수, 주전 포수, 주전 2루수를 모두 잃어버린 로키스. 예견되었던 참패의 징조.]
[로키스 포수 샘 린. MRI 촬영 예정, 최소 두 달 이상의 요양이 필요할 것으로..]
[KANG, 3회 초 퇴장에도 불구 결승 득점, 결승 홈런의 주인공.]
[NFL 2라운더 출신 유망주? 샘 린을 박살 내버리는 KANG의 디펜스. 익명의 전문가 'KANG이 미국인이었다면 NFL 역대 최고 계약금액을 갱신했을 것. 그의 몸은 강철 그 자체로 보인다.']
[MLB 사무국 징계 검토 중. 9월에 있었던 다저스와 로키스에 내려졌던 징벌보다 더 큰 규모가 될 듯.]
[삼손 KANG? 거구 나단 브레이저를 들어 올리는 믿기지 않은 괴력! 쿠어스를 침묵과 경악 속에 몰아넣다.]
아수라장 같았던 다저스와 로키스의 1차전이 막을 내린 후.
이어진 사람들의 반응은 경악과 공포 그 자체였다.
시청률을 의식한 사무국의 방조, 그로 인해 근래 들어 크게 그 발생빈도가 증가했던 벤치클리어링.
그 최대 수혜자였던 돌주먹 로키스가 제대로 힘도 써보지 못한 채 말 그대로 박살 나버린 것.
모든 스포츠 채널들은 이 사실을 내보내느라 정신이 없는 상태였다.
지역 유명 프로그램인 The night, The baseball의 패널들은 열변을 토해냈다.
"투수에게 배트를 던지는 행위는 적절치 못했다는 소리가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투수들은 그 독점적인 권한을 마음껏 누려왔습니다. 흔히들 그런 말을 하죠. 정말 맞출 생각은 없었다. 그저 타자가 물러나길 바랐을 뿐이었다. 하지만 애초에 맞출 생각이 없다면 던지질 말아야 합니다! 총으로 상대방을 쏴놓고 맞출 생각은 없다고 말하는 것과 뭐가 다릅니까? 이제는 투수들도 알아야 할 겁니다! 그들이 총을 쏴댄다
면, 본인들도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걸 말입니다. KANG이 그 사실을 증명했죠!"
유명 케이블 방송 채널인 The baseball fox, 이들이라고 다르지는 않았다.
"언빌리버블! 지금 이 광경이 믿어지십니까? 그 악명 높은 로키스가 단 한 명의 루키에게 박살이 나버리다니요! 더군다나 올 시즌 최악의 벤치클리어링이 될 사고를 막은 것도 그입니다! 나단 브레이저를 머리 위로 들어 올렸어요! 그리고 로키스를 협박했죠! 멈추지 않는다면 던져버리겠다고! 하하하, 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난 겁니다!"
반응이 이러니 당사자인 로키스로서는 크게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주전 포수는 기약이 없는 이탈, 선발 릭 피어스는 고간에 방망이를 얻어맞고는 그대로 병원으로 직행했으며 그들의 리더인 나단 브레이저는 상대 루키에 의해 체면이 박살 나버렸다.
특히나 해준이 나단 브레이저를 장난감처럼 들어 올린 장면은 온갖 패러디로 재생산되며 인터넷에 뿌려진 상황.
"..지금 이게 현실이라고?"
로키스 선수단으로서는 멘탈이 제대로 박살 날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이들이 결국 2차전을 내주고 3차전에서마저 일방적으로 밀리기 시작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로키스의 2루수 콜튼 토르바손.
따아아아아악-!
그는 하늘로 솟구치는 타구를 바라보며 침음성을 내뱉었다.
"holy shit..."
힘에서도, 실력에서도 밀린 로키스.
이들은 더 이상 다저스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쭉쭉 뻗어갑니다-! KANG의 이번 시즌 23호 홈런! 다저스의 슈퍼 루키가 로키산맥을 기어코 정복하고 맙니다!]
그리고, 이번 이변의 핵심으로 로키스를 박살내버리는데 1등 공신으로 떠오른 해준.
해준은 홈런과 함께 홈플레이트를 밟자 눈앞에 떠오르는 홀로그램을 바라보았다.
[포심 패스트볼 성장률이 100%에 다다랐습니다.]
[성장 제한치에 다다랐습니다!]
[이 이상 성장을 위해서는 아웃라이어 시스템에 등록되지 않은 현역 아웃라이어들을 상대하세요.]
"...후우."
마일시티의 희박한 산소에 한차례 숨을 몰아쉰 해준.
그 두 눈동자에 이채가 떠올랐다.
'현역이라...'
때마침, 알맞은 상대가 있었다.
[로키스 3연전 싹슬이! LAD, PHI와의 3연전 눈앞.]
[괴물 애런 테린 VS 프릭필더 KANG, 그 승자는?]
[리그 2위 다저스의 아성을 위협하는 필리스의 그림자. 1선발 애런 테린 출격 예정!]
악마와 영혼을 뒤바꿨다는 패스트볼러 애런 테린.
그가 필라델피아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었으니까.
로키산맥의 야수들을 성공적으로 사냥한 해준이 필라델피아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 돌주먹 로키스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