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의 적Public Enemy No.1 (1) >
97. 공공의 적Public Enemy No.1 (1)
애리조나 디백스와의 3연전.
그 뒤 이어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3연전까지.
같은 지구팀들과의 6연전을 끝내고 신시내티 레즈와의 3연전을 위해 그레이트 볼 파크 인근 원정 호텔로 이동한 다저스 선수단.
서부에서 중부까지의 긴 거리를 이동한 날인 만큼, 일찌감치 짐을 풀고 휴식에 들어간 이들의 하루는 고요하면서도 평범했다.
"이봐, 드레이븐. 리프팅 트레이닝 하러 가지 않을래??"
간단한 조식을 챙겨 먹은 뒤 점심시간까지 호텔을 활보하는 노아 존슨.
"됐어. 아, 루키 녀석이 왜 이런 시프트를 제안할까 그때마다 고민했더니 머리가 다 아프네. 그냥 쉬어야지. ...제기랄. 여기 와이파이 비번 또 바뀐거야?""
찌뿌둥한 표정으로 호텔 로비에 앉아 아이패드로 웹서핑을 하는 드레이븐 래리.
"...곳 음식이 확실히 괜찮긴 하지. 하지만 거긴 너무 불친절해."
"그건 루이스 네가 팁을 짜게 줘서 그런거야. 얼굴이 알려진 메이저리거가 주는 팁이 딸랑 15%라니? 조금 더 인심을 써보라고 이 친구야."
외부 식당에서 점심을 해결했는지 막 호텔 로비에 들어서는 루이스 화이트와 마르쿠스 영.
"응? hey, 준! 짐에 다녀온 건가? 역시 우리 팀에서는 준이 가장 부지런하군."
"가볍게 근육만 풀었어요. 써준다는 느낌을 주지 않으면 영 불안해서."
"이곳 시설이 괜찮긴 하지. 나도 한번 가볼까?"
해준 또한 호텔에 딸린 짐에서 운동을 마치고 방으로 가던 도중 마주친 마르쿠스와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 차분하기 그지없는 분위기에 3루 코치 호프먼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모두 스타플레이어들이라 그런가? 자신들이 특별한 일을 해냈다는 모습이 조금도 드러나지 않는군요. 루키들이었다면 어깨부터 힘이 들어갔을 텐데."
릭 베이츠 감독 또한 그 말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드레이븐과 노아. 루이스와 마르쿠스까지. 올스타에 단골로 뽑히는 친구들이니까. 젊은 준조차 KBO에서 전설적인 기록을 세우고 넘어온 친구지. 그렇다치더라도... 외부의 반응을 궁금해하는 친구가 조금도 없는 것 같긴 하군."
"다른 선수들이었다면 분명 태블릿이나 잡고 하루종일 기사 반응을 살폈겠죠. 당연히 제대로 휴식을 취하지도 못했을 테고요."
그들의 말대로 현재 바깥 언론의 분위기는 말 그대로 열광의 도가니, 그 자체였다.
애리조나와의 1차전을 시작으로 메이저리그 전체를 뒤흔들어버린 다저스의 내야 수비.
그것은 100년을 훌쩍 뛰어넘는 역사를 가진 메이저리그의 관계자들에게도 신선함보다는 차라리 충격에 가까운 심정을 안겨준 대사건이었다.
[괴물 야수The Freak Fielder, 메이저리그를 집어삼키다!]
[다저스의 압도적인 마운드, 6경기 0실점! 그 비결은 신 들린 다저스의 내야 수비 시프트?]
[다저스의 내야 혁명, 그 중심에는 그가 있다.]
[타자들을 잡아먹어 버리는 내야의 블랙홀. 그 집중 분석!]
[애리조나 리드오프 파블로, 다저스전 심정 SNS에 밝혀. '그것은 차라리 예지에 가까웠다. 다저스의 시프트가 변화할 때마다 우리는 절망에 가까운 심정을 느껴버렸고, 그 순간 게임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본래 시프트란 타자의 타구 데이터를 고려해 타구가 편향되는 구간에 집중적으로 야수들을 배치하는 것.
하지만 데이터의 활용이 발달한 메이저리그에서조차 그 실효성에 대해서는 간간이 의문점이 제기될 정도로 반발을 불러오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야구란 수많은 변수와 돌발 상황, 우연적인 요소들로 이루어진 덩어리였고 시프트로는 그 모든 것에 대처할 수 없었기 때문.
하지만, 모두의 의심을 등에 업은 채 그라운드에 들어선 해준은 그 모든 편견들을 단숨에 깨부수어버렸다.
"타자의 스윙 궤적, 스탠스. 투수의 컨디션과 구질 상태, 거기다 포수의 리드까지 고려한 시프트라..."
릭 베이츠 감독은 해준에게서 들은 설명을 중얼거렸다.
3루 코치 호프먼은 그 말을 듣고는 몸을 한차례 가볍게 떨었다. 애리조나전에서 등골을 타고 내렸던 그 깊은 소름을 다시 한번 떠오른 탓이었다.
"다시 들어도 믿기지 않습니다. 준의 수비가 메이저리그에서조차 보기 드문 수준이라는 것은 알았지만... 지금의 모습은 솔직히 그것조차 뛰어넘는다는 생각이 들 정도예요. 메이저리그 역사를 뒤져봐도 이런 일은 전무할겁니다."
호프먼 3루 코치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라운드 내에서 발생하는 실시간적 요소를 모두 고려해 선수 스스로가 시프트를 조절했던 해준.
그리고, 그 무모해 보이기만 하던 시도가 지난 6일간 단 한 번의 실패도 없이 압도적인 내야 수비를 구축해버린 것까지.
이는 메이저리그 역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전대미문의 사건에 가까웠다.
그동안 수많은 전설들과 플레이를 보아온 메이저리그의 팬들 또한 다른 심정은 아니었다.
-4억 달러? Jesus! 다저스는 고작 4억 달러로 저런 선수를 채갔단 말이야?
└우리 팀의 병신 같은 단장은 고작 2억 달러를 오퍼 했었다지? 애초에 기대는 안했었지만 haha
└우리 팀은 입찰도 안했어 :-(
└그런 병신들 덕분에 다저스가 고작 4억 달러에 수비의 신을 영입할 수 있던 거지. 고마워, Mr.Stupid들!
-Kang의 수비는 그 빌어먹을 세이버스탯이나 WAR 같은 것으로 설명될 수준을 아득히 넘어섰어. 지금쯤 세이버쟁이들의 asshole에는 불이 제대로 붙었겠군. 저걸 어떻게 수치화 시킬 건데? Kang의 손짓 하나당 0.1WAR라도 부여할 건가?
-개막전의 중견수 수비 또한 충격적이긴 마찬가지였지만 이건 말 그대로 예상을 훌쩍 뛰어넘은 퍼포먼스야! 이 멍청한 다저스 자식들. 이런 유격수를 그동안 꽁꽁 숨겨두기만 했단 말이지?
-그동안 다저스의 단장이 머리에 총 맞은 선택을 했다던 자식들은 다 어디로 숨었냐? 이거 무척이나 통쾌한걸 LOL
-저런 선수가 KBO에서 6년 동안이나 뛰었다지. 2군에 내려간 적도 있다고 하던데. 혹시 KBO는 신들의 리그인 건가?
압도를 넘어, 경기 전체를 지배해버리는 괴력적인 수비력.
실상은 하이라이트로 돌아다니는 애리조나와의 1차전에서 발생한 타구 편향 현상으로 그 효과가 극대화됐을 뿐이었고, 그 뒤의 경기들은 그 수준에 미치지는 못했다는 것이지만 그런 사실들은 이미 중요하지 않았다.
이들이 포커스를 맞춘 쪽은 해준이 이미 한번 전설을 만들어냈고, 앞으로도 만들어낼 날이 수없이 많이 남아있는 선수라는 것뿐이었으니까.
5월 16일의 경기 또한 마찬가지였다.
[LAD 4 : 0 CIN]
LA 다저스 대 신시내티 레즈의 3차전이 열리는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 파크. 그라운드 위의 베이스는 3곳에 모두 주자가 들어찬 상태였다. 신시내티로서는 4점 차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맞이한 천금 같은 만루 기회.
하지만 카메라에 비치는 신시내티 측 선수들의 표정은 마치 먹구름이 낀 것마냥 어두웠다.
'이건 너무하잖아! 이럴 땐 도대체 뭘 해야 하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이해가 가질 않는 수준이야. 어떻게 저럴 수가 있지? 저게 인간이란 말이야?'
'제길, 내 차례는 오지 말아라. 제발 오지마. 타격감만 흐트러진다.'
8회 말, 다저스의 불펜 루크 브리튼의 갑작스러운 제구 난조로 무사 만루의 기회를 잡았던 신시내티.
그럼에도 이들은 이미 타격에 대한 의욕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애리조나 전에서부터 믿기지 않는 흐름을 타기 시작했다는 다저스 내야 수비.
솔직히 시작 전까지는 크게 신경을 기울이진 않았었다.
상대의 수비까지 신경 쓰기에는 쏟아져내리는 투수들의 데이터를 머릿속에 쑤셔 넣는 것만으로도 골이 아플 지경이었으니까.
하지만 막상 경기가 시작되자.
퍼어억-!
"...뭐야?"
"저걸 잡는다고?"
그들은 거대한 푸른 빛의 철벽이 내야를 둘러쌓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1차전, 그리고 2차전.
타석이 쌓이기 시작하면 절망감과 함께 흐트러지기 시작하는 스윙 궤적들.
8회라고 크게 다를 것은 없었다.
따아아악-!
[쳤습니다! 하지만 너무 높게 띄웠군요! 신시내티 타자 제임스의 타구가 담장 앞에서 잡히며 8회가 마무리됩니다! 무사만루 위기를 탈출하는 다저스!]
이미 내야에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로 당한 타자 제임스가 무리하게 커브를 올려치며 만들어낸 커다란 타구.
이제는 완전히 능숙해진 모습으로 담장 앞에서 타구를 처리한 제이크 포드가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9회 초.
8번 커트 로빈슨과 9번 케빈 스티븐이 차례대로 2루 땅볼과 삼진으로 물러난 뒤에.
[다저스의 슈퍼 리드오프! Kang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해준이 5번째 타석에 들어섰다.
오늘의 기록은 4타석 4타수 2안타 1득점.
시즌 성적 타율 0.395 출루율 0.530 장타율 0.837로 13할에 달하는 OPS를 자랑하고 있는 리그 탑티어의 리드오프.
그런 해준을 상대로.
신시내티의 불펜 조 홀더는 무지막지한 12-6커브를 스트라이크존에 쑤셔 넣었다.
부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그리고, 예상외로 해준의 배트는 핀트가 어긋나기라도 한 것마냥 공과 현격한 격차를 벌리며 휘둘러졌다.
수비에서의 인간미 없는 모습과는 다르게 최근 커브에 약점이 노출되며 아웃당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해준.
해준은 한 손으로 흐트러진 헬멧을 슬쩍 들어 올리며 다시 자세를 잡았다.
'그 양반의 커브가 계속 머릿속에 떠오르니까 집중하기가 힘들잖아.'
차라리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면 모를까, 이미 3일째 반복되고 있는 사투.
그곳에 온 신경을 집중한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지금의 커브를 치기 위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랬다가는 간신히 바짝 올려놓은 감각이 흐트러트려 질지도 모르니까.
그렇게 결국.
부우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Fall off the table! 멋지게 떨어지는 커브에 Kang의 방망이가 헛돌아갑니다! 수비에서는 빈틈이 없는 모습을 보이는 Kang이지만 공격에서는 다른 것 같습니다. 투수 조 홀더가 뽑아낸 삼진으로 9회 공격이 마무리되는 LA다저스. 9회 말, 신시내티의 공격으로 넘어갑니다.]
자신의 뇌리 속에 새겨진 커브의 길을 따라가느라 삼진을 허용한 해준.
그 순간, 눈앞에 이제는 익숙한 메시지가 떠올랐다.
[커브 트리거 감지.]
[아웃라이어 '공공의 적Public Enemy NO.1', 에드워드 쿠팩스와 연결됩니다!]
"후우."
해준은 그것을 바라보며 숨을 몰아쉬었다.
눈동자 속에서 투쟁심 섞인 진지함이 드러났다.
14일, 신시내티 레즈와의 1차전에서부터 시작된 아웃라이어 에드워드 쿠팩스와의 대결.
그것이 3일째 이어지고 있는 지금.
눈앞이 잠시 까마득해지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1964 다저스 스타디움]
옛날의 향취를 물씬 풍기는 푸른 다저스 스타디움으로 돌아와있었다.
맨손에 맞닿은 나무 배트 손잡이 감촉.
해준은 그것을 느끼며 배트 그립을 있는 힘껏 잡아 쥐었다.
'이제는 끝내야 한다.'
벌써 3일 동안 이어진 5번의 도전.
하지만 슬슬 한계가 다가오고 있음을 느끼고 있었다.
[다저스 투수진의 커브 구종 가치가 유의미하게 상승한 상태입니다!]
[지금의 상승 수치가 유지되는 동안 링크 재활성화 조건이 간략화됩니다.]
[퀘스트 링크 재활성화 조건 – 타석에서 커브와 관련된 트리거 감지]
첫 퀘스트 링크 활성화까지 걸린 시간은 일주일.
그렇게 마주친 아웃라이어 에드워크 쿠팩스와의 첫 대결의 결과는 삼진.
하지만 다행히도 그 뒤의 만남에는 다시 한번 일주일의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첫 번째 링크 활성화 조건을 유지하고 있는 동안은 커브와 관련된 트리거만 발생한다면 계속해서 링크가 재활성화되기 때문.
'그렇다 하더라도 다저스 투수진의 커브 구종 가치가 조금이라도 내려가는 순간, 링크 활성화 자격을 잃을 것이 분명하지.'
해준은 숨을 골랐다.
그렇기에 평소보다 몇 배의 집중을 쏟아내며 지금의 수비 퍼포먼스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언제까지 지금의 수비 페이스를 유지할 순 없어.'
특수모듈 철인이 받쳐주더라도 한계까지 끌어올린 퍼포먼스는 필연적으로 체력의 고갈을 부른다.
우승까지 바라보는 시점에서 시즌 페이스를 고려하지 않고 체력을 남발할 수는 없는 노릇.
'그러니 이번 기회에 끝내버린다.'
물론 5번의 실패가 말하는 것처럼 이번 도전만큼은 정말 만만치가 않았다.
장타 억제에 특화된 커브.
그 커브를 극한으로 구사하면 1200구가 넘도록 단 하나의 홈런도 허용하지 않았던 아웃라이어 에드워드 쿠팩스.
[목표 – 아웃라이어 '공공의 적Public Enemy NO.1' 에드워드 쿠팩스를 상대로 홈런을 기록하기]
[보상 – 에드워드 쿠팩스의 커브 대응 감각]
반면, 자신의 모든 능력을 십분 활용하더라도 퀘스트 목표대로 그를 상대로 홈런을 쳐내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도 이제 마지막이다.'
마운드를 바라보자, 그곳에는 큰 체격의 왼손 투수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다저스의 전설이자 영구결번, 에드워드 쿠팩스.
이제는 슬슬 어떻게 자신의 능력들을 활용해야 저 괴물을 사냥할 수 있는지 알아차린 상태.
스윽-
크게 오른발을 박차며 들어 올리는 에드워드 쿠팩스.
"후우."
해준 또한 그에 대응하기 위해 타격 자세에 들어가며 스파이크로 흙바닥을 짓이겼다.
아웃라이어와의 대결, 그 6번째.
그 승부가 이제는 종막을 향해 치닫기 시작했다.
< 공공의 적Public Enemy No.1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