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프닝데이 with 리뉴얼 시스템 (4) >
84. 오프닝데이 with 리뉴얼 시스템 (4)
허전하게 텅 비어버린 외야의 좌우 중간.
수백, 수천 경기를 중계해오며 난생처음 목격하는 광경에 중계석 캐스터는 더듬거리며 말을 이었다.
[...엄, 그러니까.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죠 칼? 다저스가 외야를 말 그대로 소개시켜버렸습니다!]
경악에 빠진 다저스 스타디움.
그 의도를 알 수 없는 광경에 비명을 내지른 것은 중계석의 캐스터들뿐만이 아니었다.
관중들, 현장 관계자들, 취재 기자들까지.
구장에 퍼져나가는 술렁거림에 칼은 애써 침착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건 문제가 될 겁니다. 소개라는 건 어디까지나 적의 포격에서 피해를 줄이기 위해 대형을 넓히는 거니까요. 하지만 야구에서는 아닙니다. 야구에서 외야수가 할 일은 외야로 떨어지는 적의 폭격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위치에서 최대한의 효율로 막아내는 겁니다. 하지만 이건 정말로..]
선발 투수 윌리엄을 말 그대로 폭격해버리며 외야를 향해 장타를 쏟아내던 애리조나 타선진.
그에 반해 다저스 드넓은 외야에 덩그러니 홀로 서 있는 해준의 모습은 앞으로 애리조나가 쏟아낼 포화를 감당하기에는 너무나도 위태로워 보였다.
관중석의 반응 또한 마찬가지였다.
여기저기서 비명성과 비슷한 목소리들이 흘러나왔다.
"저게 뭐야?"
"좌익수랑 우익수가 라인 선상에 붙어있다시피 하잖아!"
"좌우 중간이 텅 비어버렸어! 어이, 정신 차려! 지금 뭣들 하는 거야!"
"이봐,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어! 어서 그 말도 안 되는 시프트는 때려치우라고!"
"제길, 애리조나 타자들이 윌리엄을 상대로 배리 본즈나 다름없다는 사실을 잊어먹는 건 아니겠지?"
"너희들도 로드리게스처럼 쫓겨나고 싶냐! 워커! 로빈슨! 이 빌어먹을 똥덩어리 같은 자식들!"
몇몇 성급한 관객들은 벌써부터 맥주잔을 외야로 던져버릴 듯 성난 기세로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수많은 기상천외한 작전들이 시도되는 메이저리그에서조차 반발을 일으키는 이번 시프트.
그 광경을 바라보던 애리조나의 벤치 또한 여기저기서 헛웃음이 터져 나오고 있었다.
"지금 저게 뭐 하는 거야?"
"좌익수와 우익수를 저렇게 극단적으로 밀어내다니. 결과적으로 중견수가 커버해야 할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져. 평범한 플라이 타구도 순식간에 장타로 둔갑해버릴 텐데?"
리그 최고의 중견수로 평가받는 양키스의 컬렌 체스터.
그를 데려오더라도 고개를 좌우로 저을 상식을 벗어난 시프트.
몇몇 애리조나 타자들은 그 황당무계한 모습에 열을 낼 정도였다.
"KBO에서나 먹혔을 작전을 메이저리그에 들고 오다니! 저런 어린아이 같은 장난질을 다저스 벤치는 보고만 있는 건가? 해도 적당히 해야지!"
"호수비 두어 번 했다고 벌써 기고만장해진 걸 수도 있지. 본래 KBO에서도 슈퍼스타 출신이라고 하잖아? 빌어먹을. 이래서 스타 출신들은 재수가 없다니까. 다저스도 그렇고."
"관중들의 반응을 보라고. 이래서야 제대로 된 게임도 하기 힘들겠어. 이런 식으로는 이겨도 김이 빠지잖아. 누군가 저 건방진 루키에게 상대에 대한 존중이 뭔지 알려줘야겠지."
해준, 그리고 다저스에 대해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적대감.
애리조나의 포수 파칸은 베테랑답게 그 분위기를 재빨리 감지하고는 이 열기를 더욱 끌어 올리기 위해 소리쳤다.
"차라리 잘 됐어! 이참에 분위기를 확 가져오자고. 그렇지않아도 결정적인 순간마다 타구가 잡혀서 답답했잖아? 다저스의 루키가 스스로 무덤을 파줬으니 우리가 친히 그 위를 덮어줘야 하지 않겠어?"
애리조나의 5번 타자 알제오 마튼은 그런 분위기를 등에 업고 타석에 들어섰다.
주제를 모르는 루키에게 메이저리그의 무서움을 알려줄 생각으로 진지함과 함께 자세를 잡은 그.
하지만 그런 그조차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리고야 말았다.
'뭐야, 투수까지 못 믿는 눈치잖아.'
이전 더욱 예민해 보이는 다저스의 선발 투수 윌리엄 스미스. 그는 불안한 눈빛으로 외야를 몇 차례나 훑은 뒤에야 투구판을 밟고 있었다.
알제오는 배트 그립을 부술 듯이 꾹- 쥐어 잡으며 확신했다.
'이번 게임. 우리가 이기겠군.'
투수마저 못 믿는 외야진.
그 불안감은 분명 투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관중, 기자, 관계자들.
중계를 통해 방송을 보고 있는 팬들과 상대인 애리조나의 선수들까지.
그렇게 그 모두가 이번 사태에 대해 해준이 일으킬 이변보다는 추락을 예측할 때.
알제오와 한참이나 떨어진 외야의 한복판.
"....후우."
뜨거운 숨결을 내뱉은 해준이 자세를 낮추며.
'시작한다.'
묘한 열기와 함께 집중력을 고조시키기 시작했다.
+++
숨을 천천히 들이쉬고, 내쉰다.
더욱더 많은 산소를 요구하는 심장이 둥둥- 세차게 온몸을 진동시키며 박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럴수록.
"흐읍.. 후우."
해준은 호흡이라는 고삐를 쥐고 흔들었다.
몸과 정신을 손아귀에 넣고, 감각을 자극해 그 영역을 한계까지 끌어올린다.
그와 함께, 깊게 가라앉은 눈동자 위로 한줄기의 결연함이 스쳐 지나갔다.
'본래 이 시프트는 자주 쓰지 않아.'
KBO 시절, 자신이 중견수로 출전할 때마다 상대 타자들에게 절망과 경악을 불러왔던 수비 시프트.
단 몇 경기의 모습만으로 몇 안 되는 자신만의 시그니처 시프트로 떠오를 정도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준은 이 시프트를 많이 꺼내 들지 않았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많은 사람들이 이미 지적했다시피 중견수가 커버하기에는 너무나도 광활한 수비 범위. 그 사실은 수비로는 그 누구와도 비견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른 자신이라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을 해내기 위해서는 상상 이상의 심력과 체력을 쏟아부어야 한다.
'내야와는 또 다르니까.'
투·포수, 그리고 타자 간의 흐름을 관찰하고 포인트를 캐치, 압도적인 정보량으로 어느정도 신체의 한계를 커버할 수 있는 내야.
하지만 외야는 달랐다.
오로지 순수한 주력, 극한으로 끌어올린 감각에 의지하는 면이 강하다. 그 결과 발생하는 체력 소모는 철인 모듈로도 완전히 커버가 되지 않을 정도니, 그 소모성은 상상 이상이라는 소리였다.
하지만 해준은 이 부담스러운 시프트를 택했다.
'그럼에도 해야 한다.'
이기기 위해서라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 해야 했으니까.
이 시프트의 장점이라면 좌익수와 우익수를 극단적으로 양쪽으로 치우침으로써 라인 선상을 타고 발생하는 장타를 억제할 수 있다는 것.
물론, 그로 인해 발생하는 좌우중간의 공백은 치명적이다.
하지만 자신이라는 이레귤러적 존재가 그 공간을 채워버린다면 외야는 순식간에 공략 불가능의 철옹성으로 변모한다.
애리조나와는 극악의 상성을 자랑하며 장타 세례를 허용하는 윌리엄.
그를 보조하기 위한 최적의 시프트.
해준의 눈빛에 충만한 의지가 가득 찼다.
'물론 이 시프트를 경기 내내 지속하지는 못해. 그러니..'
그 이전에.
'애리조나의 전의를 박살 내버리고 분위기를 가져온다.'
따악-!
그 사이, 다시 한번 경쾌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파울!"
투수와 타자의 신경전이 한창 이어지고 있는 내야.
어떻게든 타구를 외야로 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 윌리엄과 타구를 어떻게든 외야로 보내려 하는 알제오.
해준은 그 모습을 보며 쓴웃음을 베어 물었다.
'그렇게 말을 해뒀는데.. 뭐, 말로는 무리겠지.'
자신의 수비 실력을 알고 있더라도 이런 극단적인 시프트는 투수로서 신뢰하기 힘들다. 더욱이 그것이 예민한 성격의 윌리엄이라면 더더욱.
'그러니 일단은 결과로 보여줘야겠지.'
해준은 더욱더 자세를 낮추며 언제든지 치고 나갈 준비를 끝마쳤다.
뚝-
그 순간, 등골을 타고 오르는 뇌리를 일깨우는 감각과 함께.
좌우로 조금씩 흔들리던 어깨의 움직임이 한순간에 멎었다.
동시에.
"흡!"
폐가 급격히 공기를 빨아들이며 팽창한다.
그와 함께 가슴이 크게 부풀며, 무게중심이 급격히 한 방향으로 쏠리기 시작했다.
'온다!'
무언가 일어날 것이라는 듯 미친듯이 날뛰기 시작하는 오감.
그 혼란 속, 해준은 어느새 폭발적인 움직임과 함께 발을 박차고 있었다.
따아아아아악-!
그 뒤로 울려 퍼진 경쾌한 타구음.
"안타다!"
"다저스 멍청한 자식들! 단타 코스가 장타 코스로 둔갑하겠어!"
애리조나의 팬들은 그 광경을 보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텅 비어있는 외야 공간을 향해 빠르게 쭉쭉- 뻗어나가는 타구의 궤적.
누가 보아도 최소 2루타가 나올 코스였다.
하지만.
"어?"
그곳에는 이미 폭발적인 주력으로 그라운드를 주파한 한 외야수가 있었다.
"..자, 잠깐!"
"무슨 일이야!"
그리고 그 외야수가 허공을 날았을 때.
"...What the fu....!!"
다저스 스타디움이 어마어마한 환호성으로 뒤덮여갔다.
+++
"...oly jesus.."
"내가 뭘 보고 있는 거지?"
4회, 5회, 그리고 6회.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어느 순간부터 전의를 잃은 애리조나 타자들의 맥없는 스윙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에 반해, 기세가 잔뜩 살아난 다저스의 투수 윌리엄.
그는 역동적인 투구폼으로 애리조나 타선진을 박살 내가고 있었다.
경기 초반과는 180도 달라진 양상.
"Come--- on!!"
그 반전의 흐름에 다저스 스타디움이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완전히 살아난 윌리엄 스미스! 그가 애리조나 트라우마를 극복하며 포효합니다!]
경기가 진행될수록, 급격히 다저스를 향해 기울어지기 시작한 흐름. 윌리엄 스미스는 완전히 에이스로서의 위상을 되찾은 채 애리조나를 압박해갔다.
그리고 그 뒤에는, 해준의 믿기지 않은 활약이 있었다.
퍼어억-!
[What a catch! 이건 정말이지 말로 표현 할...]
4회 초, 알제오의 장타성 타구를 다이빙 캐치로 그대로 걷어내버린데 이어.
오우우우우우우!
[Oh my gosh! 칼, 지금 제가 보고 있는 게 게임이 아니라 현실이라고 말해주세요! 어서요 제발! holy shit! 이건 말 그대로 말이 안 됩니다!]
4회 2사, 다시 한번 터져 나온 펜스 앞 장타성 타구를 백핸드 캐칭으로 처리.
두 번이나 연이어 터져 나온 말도 안 되는 호수비에 애리조나의 타자는 극단적으로 타구를 끌어당겨 보지만.
"fuck!"
[워커!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은 채 타구를 잡아냅니다! 다저스의 시프트가 애리조나를 말 그대로 침몰시키고 있습니다!]
그곳에는 이미 다른 외야수가 대기 하는 상황.
그런 비슷한 상황은 5회에도 이어졌고, 외야로 가는 타구들이 족족 아웃이 된다는 것에 확신이 든 윌리엄은 평소와 같은 기세를 되찾으며 공격적인 투구로 삼진을 뽑아내기 시작한 것.
그렇게 끝난 6회.
이닝이 교대될 때마다 막간의 휴식 시간을 장식하는 화면은 당연하게도 해준의 말도 안되는 수비 리플레이 장면이었다.
[다시 보시죠! 개막전부터 다저스를 이끌기 시작한 슈퍼루키 Kang! 그가 메이저리그 역사의 한 장면을 장식할 괴물 같은 캐칭을 선보입니다!]
그렇게 이어지는 장면들.
그것들은 믿기지 않는 광경이었다.
예지라도 하는 듯, 타구가 터져나오기도 전에 그라운드를 박차고 나가는 판단 능력.
단거리 스프린터를 연상시키는 폭발적인 주력.
타구를 보지 않고도 그 궤적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파악해내는 괴물과 같은 공간지각능력까지.
그 능력들은 방송 화면에 덧씌워지는 스탯캐스트에서 가장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었다.
[First Step: -0.2sec]
[Route Efficiency: 100]
[Total Distance: 76.4ft]
타구를 판단하고 움직이기 시작한 것은 나타내는 First Step이 마이너스, 그것도 0.2초나 먼저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나타내고 있었다.
타구까지 도착한 경로의 효율성을 나타내는 Route Efficiency는 100.
주파 거리는 20미터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저건 괴물이야.."
"내가 지금 야구를 하고 있는 게 맞는 거야?"
전광판에 떠오른 장면들에 차갑게 식기 시작하는 애리조나의 벤치.
그렇게, 애리조나 선수들은 광야처럼 느껴지던 외야가 완전히 달라졌음을 깨달았다.
허우적거릴수록 더욱 깊게 빠져드는 죽음의 늪.
그들이 어떠한 타구를 보내더라도 외야는 블랙홀처럼 그 모든 장타성 타구를 빨아들이고 있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
자연스럽게 어느새 폭발적이던 기세가 죽어버린 애리조나의 공격 흐름.
'분위기가 넘어왔다.'
그리고, 해준은 기다리던 순간이 오자.
[아웃라이어 특성 성장 모듈(P급)]
*아웃라이어 특성을 성장시킵니다.
*비매품
연이은 호수비로 얻어낸 새로운 모듈을 꺼내 들었다.
'수비 자체로는 타격을 성장시키지 못하지만.. 수비에서 얻은 보상으로는 성장시킬 수가 있지.'
눈앞에 주르륵 떠오르는 기분 좋은 홀로그램들.
[아웃라이어 특성 성장 모듈(P급)을 사용합니다.]
[싱킹 패스트볼(AA급)이 급격히 성장합니다.]
[대응 구종 레벨]
*포심 패스트볼 70
*싱킹 패스트볼 55 -> 60
*서클 체인지업 45
*슬라이더 50
*스플리터 50
확실한 사냥의 마무리를 위해 마침내 새로운 무기를 꺼내든 해준.
'슬슬 끝내보자고.'
개막전 승리를 확신하던 애리조나.
그들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버릴 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 오프닝데이 with 리뉴얼 시스템 (4)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