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프닝데이 with 리뉴얼 시스템 (3) >
83. 오프닝데이 with 리뉴얼 시스템 (3)
'정규 타석은 처음이라 그런가? 오후 훈련 때와는 느낌이 조금 다른걸.'
1회 말, 해준은 메이저리그의 정규 시즌 첫 타석에 들어서며 펜스와의 거리를 쭉 훑었다.
좌우 펜스의 거리부터 시작해 중앙 펜스까지 느껴지는 광활함.
라이브 배팅 때와는 다른 공기가 주변을 휘감고 있는 탓일지도 모른다.
마운드에는 다저스 킬러로 유명한 애리조나의 1선발 디에고 에스트라다. 그가 침을 퉷- 한 번 뱉고는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을 환영해주듯.
"Hey, 루키. 네 별명이 미스터 포벅스라며?"
애리조나의 포수 시몬 탄카스의 비아냥 섞인 목소리가 이어졌다.
"소문은 들었어. 듣자 하니 소속 구단 엿 먹이는 게 취미인 것 같은데 어때. 내가 4달러 주면 실책 몇 개만 해줄 수 있어? 서로 윈윈 인 것 같은데. 너는 구단 엿 먹여서 좋고, 난 이겨서 좋고. 아, 그런데 알아들었나 몰라. 기초적인 회화 정도는 익히고 넘어왔지?"
숨 막힐 듯 광활한 경기장과 그곳을 가득 채운 5만 6000명의 관중들. 시선을 돌린 해준이 방망이 끝으로 바닥을 툭툭 치며 대답했다.
"그러는 당신은 미국 온 지 얼마 안 됐나 봐? 어투가 많이 어눌한걸? 발음 교정에 도움이 필요하면 얼마든지 연락하라고. 서로 미국에서 자리 잡은 지 얼마 안 됐는데 돕고 살아야지. 안 그래?"
그 말에 시몬의 표정 위로 어처구니없어하는 기색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것도 찰나.
애써 털털한 웃음을 터트린 시몬이 반박을 하기 위해 입을 열었지만.
"..hey. 무슨 말도 안.."
"개막전부터 시작이군. 시몬, 아무래도 자네가 한 방 먹은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도 이제부터는 실력으로 승부하라고. 트레쉬 토킹 말고. 게임이 길어지잖아."
대화가 길어질 기미에 눈썹을 찌푸린 구심이 그의 입을 막았다.
시몬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제길, 알겠수다."
해준은 그 광경에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자세를 잡았다. 그 웃음소리를 들은 시몬의 이마 위가 한차례 불룩거렸지만.
'뭐, 불만 있으면 구심 말대로 실력으로 승부하던가.'
해준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은 채 투수 에스트라다에게 신경을 집중했다.
그와 함께, 새로운 아웃라이어 시스템 홀로그램이 모습을 드러냈다.
[KBO 보상 체계가 삭제됩니다.]
[MLB 보상 체계가 적용되기 시작합니다.]
[포인트 획득이 사라지고, 상대 투수의 수준과 그에 따른 결과에 따라 기존 대응 구종 모듈이 성장합니다.]
리뉴얼 됐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메시지.
그 뒤로, 투수에 대한 정보가 주르륵 떠올랐다.
[투수 디에고 에스트라다]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1선발
*우투우타
[구종]
-싱킹 패스트볼, Plus급(65)
-드롭 커브, AA급(55)
-슬라이더, Plus급(60)
-써클 체인지업, Non-Grade(35)
[천적 관계 요소 발견]
*통산 다저스 상대 7경기 등판 ERA 0.87
*다저스 1번 상대 피OPS 0.491
*다저스 상대로 5경기 연속 무피홈런
[특정 구종을 공략하여 천적 관계를 무너트릴 시, 해당 모듈은 크게 성장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쳐낸 구종에 대해서만 성장한다 이거지?'
메시지들을 재빠르게 훑은 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다행히 수비에서 운이 따르며 에스트라다의 주무기인 싱킹 패스트볼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대응할 수 있게 된 상태.
상대의 싱킹 패스트볼은 P급이고, 자신의 대응 레벨은 AA급이라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상대는 아직 나에 대한 데이터가 부족하다.'
싱킹 패스트볼을 스트라이크존 바깥으로 끌어낸다면, 더 히팅 프릭 보로디미르의 괴물 같은 배드볼 히팅 감각으로 그 간격 차를 메꿀 수 있었다.
그 사이, 투구판을 밟은 채 와인드업에 들어간 투수 디에고 에스트라다.
끼익-
해준은 배트 그립을 쥐고 있는 손아귀에 잔뜩 힘을 주며 감각을 본격적으로 확장시켰다.
'나에 대해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때..'
그렇게 던져지는 초구.
'실컷 때린다!'
벼락처럼 휘둘러진 해준의 배트가.
따아악-!
홈플레이트 바깥 영역을 통째로 휩쓸어버렸다.
[DOUBLE!]
[타구 질 분류 Hard 판명]
[속도 159.58km/h]
[발사 각도 16.4˚]
[캐치 확률 12.9%]
[P급 싱킹 패스트볼을 공략하셨습니다.]
[AA급 싱커 패스트볼이 2% 성장합니다.]
+++
"으음.. 출발이 좀 안 좋은걸."
애리조나의 감독 제리미 미첼.
그는 안타를 치고 출루한 해준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1회 초, 자신들의 리드오프가 때려낸 안타성 타구가 호수비에 걸린 것에 비해 상대에게는 너무나 손쉽게 스코어링 포지션을 허용했기 때문.
그에 반해 투수 코치 호세 체스터는 여유가 깃든 어조로 대답했다.
"디에고도 저 코스에서 배트가 나왔을지는 몰랐을 겁니다. 상대도 일단 휘두르고 본건데 운이 따른 것 아니겠습니까? 우연이 겹친 결과죠. 비기너스 럭. 메이저리그 루키에게 따른 운이라고 봐도 될 겁니다."
그 말에 미첼 감독은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다 고개를 끄덕였다.
"으음, 그런가? 하긴. 디에고는 다저스에 강하니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
선두 타자를 출루시켰다 해도 아직은 1회 말.
선발 투수의 얼굴에서는 아직 자신감이 넘쳤고, 구위에서도 별다른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사실은 얼마 지나지 않아 증명됐다.
따아악-
[루이스 화이트의 타구가 3루 수비에 그대로 걸려듭니다!]
따아아악-!
[큽니다! 하지만 담장 앞에서 잡히는 타구! 제이크 포드 선수가 아쉬움에 혀를 찹니다!]
부우웅-!
[노아 존슨의 헛스윙 삼진. 아직 페이스가 덜 올라온 걸 까요? 노아 존슨 선수가 그 이름값에 어울리지 않은 허무한 스윙과 함께 물러나고 맙니다!]
천적 관계에서 오는 기세와 강력한 구위를 앞세워 다저스의 2,3,4번을 단숨에 정리해버린 디에고 에스트라다.
"Come- on!"
그는 보란듯이 마운드에서 한 차례 소리를 지른 뒤 더그아웃으로 향했다. 그러니 애리조나 선수들이 상황을 낙관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자신들의 에이스는 다저스에 천적이나 다름없지만, 자신들은 반대로 다저스의 에이스에게 천적이었으니까.
이토록이나 뚜렷한 상성 관계도 찾아보기는 힘들었다.
그렇기에 이들은 해준이 2루타를 치고 나갔을 때의 반응을 떠올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고자 2루타 하나 쳤다고 다들 일어나서 박수치던 거 기억해?"
"미스터 포벅스? 외야에서 관중들이 하는 말을 들었어야 했는데. 스타 탄생이라고? 하마터면 미스터 포벅스가 아니라 미스터 스타벅스인줄 알았어."
"미스터 스타벅스라... 그러고보니 스타벅스에서도 아메리카노는 4달러일 텐데?"
작년 시즌, 다저스를 상대로 시즌 내내 절대적인 우세를 점했던 애리조나. 게다가 다저스는 이제 갓 메이저리그에 데뷔한 해준을 제외하고는 작년과 조금도 다를바 없어보였다.
그들로서는 그 어디에서도 위기감을 느낄 수 없는 노릇.
"다음 타자 누구야! 어서 나가서 베이스 돌고 와야지!"
"재촉하지 말라고. 일단은 2루타 정도로 몸 좀 풀어야지. 처음부터 풀스윙 돌리면 허리 나가."
"풀스윙? 윌리엄을 상대로 홈런을 치는데 풀스윙이 필요하다니! 난 그게 더 놀라운걸."
하지만, 2회 초.
오우우우우우우-!
[unbelievable! 다시 한번 터져 나온 장타 코스! 하지만 외야 그라운드에는 말 그대로 한 마리의 야수가 보금자리를 틀었습니다! 다저스에 혜성같이 나타난 말 그대로 피놈(peonome: 경이적인 재능을 가진 천재)! 2사 1, 3루의 기회에서 애리조나가 다시 한번 무득점으로 물러나고 맙니다!]
이번에도 해준의 호수비에 득점이 가로막히자.
"..뭐야, 저거?"
"이번에도?"
애리조나의 몇몇 선수들이 자그마한 이상 전선을 감지하기 시작했다.
+++
해준의 호수비로 2회 초에 찾아온 고비를 넘긴 다저스.
하지만 문제는 살아나지 않는 타선의 기세였다.
빅뱃이라 불리는 드레이븐 래리.
그가 쳐낸 큼지막한 타구는 플라이 아웃.
명예의 전당에 한 자리를 예약했다는 마르쿠스 영 또한 마찬가지였다. 날카로운 타구를 쳐냈지만 재수없게도 3루 정면 타구에 그치고 만다.
이어 들어선 좌익수 브랜드 워커마저 삼진으로 물러나며 종료된 2회 말.
그에 반해 다저스의 선발 윌리엄 스미스는 3회 초에도 계속해서 불안한 장면을 연출하며 위태위태한 줄다리기를 이어갔다.
2개의 볼넷, 1개의 텍사스성 안타.
다행히 상대가 좋지 않은 볼을 건드리며 병살과 삼진으로 위기를 넘기기는 했지만, 누가 보아도 명백하게 밀리는 쪽은 다저스임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런 분위기 속에서조차.
'왔다!'
해준은 변함없이 폭발적인 활약을 이어갔다.
배트 그립을 통해 전해지는 시원스러운 느낌.
그와 함께 힘껏 잡아당긴 궤적이 호쾌한 팔로우스로우를 그려냈다.
퍼어억-!
3루 라인 선상을 타고 흘러나가는 타구.
그 결과는.
[DOUBLE!]
[타구 질 분류 Hard 판명]
[속도 159.58km/h]
[발사 각도 16.4˚]
[캐치 확률 12.9%]
인이었다.
[페어! 페어! 3루심의 손이 라인선상 안을 가리킵니다! 투수 디에고의 몸쪽 깊은 싱커를 잡아 당긴 Kang! 연타석 2루타를 뽑아내며 다저스의 빈약한 타선에 불을 붙여갑니다!]
빈타를 이어갔던 다저스의 타선.
하지만 그때마다 장타를 뽑아내는 해준의 활약에 관중석에서는 어마어마한 환호성들이 터져나왔다.
"Come oooon, Kang!"
"그 디에고를 상대로 연속 2루타라고! 다저스에도 드디어 애리조나를 사냥할 수 있는 사냥꾼이 나타났어!"
휘이이익-!
"제길, 좋았어! 우리는 오늘 경기 끝나는 대로 팀 스토어로 달려가서 Kang의 이름이 새겨진 저지를 산다! 알았나!"
"yes, sir!"
그 모습에 애리조나의 선발 디에고가 인상이 그 어느 때보다 와락 구겨졌다.
'뭐지? 스트라이크에는 반응을 안 하고 두 타석 모두 볼을 공략해서 장타를 뽑아냈어. 우연인가?'
구종을 노렸다고 하기엔 스트라이크 코스에서는 멀뚱히 바라보기만 한 해준. 디에고의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그 모습에 포수 시몬이 마운드를 방문해 말했다.
"디에고.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 없어. 저 빌어먹을 다저스 자식들은 네 공에 약하다고. 게다가 저 루키가 네 싱커볼을 공략했을 작정이었다면 방금 한복판으로 들어갔던 걸 멀뚱히 쳐다봤을 리가 없잖아? 이건 우연이 맞아 떨어진 결과라고."
루키나 다름없는 선수에게 두 번이나 장타를 허용한 디에고.
그 불길한 흐름을 끊기 위해 마운드를 방문한 시몬의 말에 디에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fuck! 그래, 네 말이 맞아. 그냥 우연이겠지."
욕설을 내뱉음과 동시에 뇌리를 지배했던 의문을 지워버린 디에고.
경기를 뒤흔드는 작은 이변.
야구를 하다 보면 수많은 변수와 우연이 부딪히며 예기치 못한결과가 탄생한다. 나름 베테랑 축에 속하는 디에고는 방금 타석에서의 결과를 털어내고 잠시 흔들렸던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그래, 내가 공략당할 요소는 어디에도 없어. 그러니..'
그리고, 그 집중력은 빛을 발했다.
[제이크 포드의 라인드라이브! 하지만 투수 정면! 디에고 선수가 다시 한번 스스로 불을 끄는 데 성공합니다!]
팽팽하게 전개되는 게임 전개.
하지만, 아직 흐름의 우세는 애리조나 측이 있었다.
그러던 4회 초.
'슬슬 이 분위기를 크게 흔들 수 있는 게 필요하다.'
글러브를 끼고 외야로 나선 해준이 주변을 둘러보았다.
3회를 넘게 소화하기 시작하자 이제는 명확하게 머릿속에서 이미지가 잡히는 듯한 LA다저스 스타디움.
초창기 느꼈던 이상할 정도의 광활함이 이제는 조금씩 친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면 잠실보다 작은데 말이야.'
"후우.."
그와 함께 폐 속에 머물던 마지막 긴장의 흔적조차 배출해버린 해준.
'그럼 분위기 좀 휘어잡아보자.'
그리고, 손을 들어 좌익수 브랜드 워커와 우익수 커트 로빈슨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 모습에 그들은 미간을 좁혔다.
'제길, 이건 말도 안 돼. 일개 선수한테 시프트 조정 권한을 맡긴다고?'
'하라니까 하지만... 결과라도 안 좋으면..하긴 다 제 놈 탓이지. 쳇.'
하지만 순순히 위치를 옮기기 시작하는 브랜드와 커트.
로드리게스가 어떤 식으로 밀려났는지 목격했던 그들로서는 해준이 자신들의 포지션을 노릴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상태였다.
더군다나 팀의 핵심 코어 제이크 포드가 외야수로 포지션 변경을 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파다한 상황.
설상가상으로 벤치와 프런트에서조차 해준의 시프트 변경 권한에 힘을 실어준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그런 모습을 발견한 캐스터는 의문 섞인 목소가 이어졌다.
[좌익수 브랜드 워커와 우익수 커트 로빈슨이 포지션을 조정합니다! 상황을 보아하니 벤치 사인이라기보다는.. Kang의 단독 사인인가요?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모르겠군요.]
일개 선수가 벤치를 통하지 않고 선수들에게 시프트를 명령하는 상황. 그 보기 드문 상황에 애리조나의 벤치조차 고개를 갸웃거릴 정도.
하지만, 곧 그들의 목적지를 확인한 이들의 눈이 튀어나올 만큼 부릅떠졌다.
[아아! 이게 뭡니까! 외야의 좌우 측이 텅 비었...아니, 빈 것은 아니죠! 중견수 Kang을 제외하고는 좌익수와 우익수 모두가 라인 선상에 붙어있습니다!]
그리고, 그 믿기지 않은 상황을 연출한 해준은 그들이 자리를 잡았음을 확인하고 자세를 낮췄다.
"후우.."
윌리엄을 상대로 장타를 펑펑 터트리는 애리조나 타선진.
하지만, 이 포메이션이라면 어느정도 좌우 측으로 터져나오는 장타를 억제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럼으로써 생기는 좌우중간의 공백은 내가 메운다.'
다저스 구장에 적응을 했다고 느껴지자마자 던진 해준의 승부수. 그 모습을 바라본 애리조나 타자들의 눈빛이 불타오르듯 타오르기 시작했다.
'저 자식이?'
'지금 저 말도 안 되는 공백을 본인이 다 메꾸겠다는 거야?'
KBO에서 수많은 선수들을 절망에 빠트렸던 해준만의 시그니처 포메이션.
그것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다.
< 오프닝데이 with 리뉴얼 시스템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