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프닝데이 with 리뉴얼 시스템 (1) >
81. 오프닝데이 with 리뉴얼 시스템 (1)
3월 29일, 다저스 스타디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개막 4연전이 열리는 이 날.
기대감을 한껏 품은 관중들이 열띤 목소리와 함께 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포드 그 자식의 호쾌한 스윙을 다시 볼 수 있는 날이 돌아왔어!"
"그런 스윙이라면 래리를 최고라고 볼 수 있지. 닉네임부터가 Big bat이잖아! 다른 놈들과는 수준이 다르다고."
"뭐야, 둘 다 노아 존슨에 비하면 어린아이 수준이잖아. 그의 스윙에는 힘과 더불어 관록까지 묻어난다고 친구들."
각자 자신이 응원하는 스타 플레이어들의 이름과 등번호가 새겨진 저지를 입고 입장한 관객들.
이들은 시작부터 논쟁에 들어간 상태였다. 근 3년 들어 매일 같이 이어지는 최고의 단골 주제. 어느 선수가 다저스 최고의 타자인가?
다만, 올해는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다.
휘익-!
"Kang, 당신을 보러 텍사스에서부터 날아왔다고요!"
"스프링캠프에서의 활약이 정말 인상적이었지! 근래 들어 최고의 유망주야!"
"유망주라니. 이미 한 나라의 리그를 정복하고 온 정복자라고! 그저 유망주라고 생각했다가는 큰코다칠걸?"
목청을 높이던 중년 남성들에 밀리지 않은 열기가 여기저기서 밀려오고 있던 것. 그들은 그 분위기에 깜짝 놀라며 뒤늦게 경기장 곳곳을 살펴보았다. 작년과는 다른 이름이 푸른 유니폼들 사이에서 그 모습을 드러낸 광경.
그리고, 그 이름은 분명 작년까지만 해도 찾아볼 수 없는 이름이었다.
한 남성이 멍한 표정으로 그 이름을 읊어보았다.
"Kang? 벌써부터 저지를 입은 사람들이 많잖아?"
"허, 그러게. 생각해보면 팀 스토어에서도 많았던 것 같기도 하고.."
그와 함께 이들은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렇게 대단한 선수인가?"
"우리만 빼고 다 아는 분위기인데?"
미국 최대 규모의 한인 타운이 존재하는 LA다저스.
오랜만에 탄생한 한국인 메이저리거인 만큼, 이미 한인 차원에서는 응원 공세에 들어간 지 한참이었다.
그렇다고 해준이 단지 한인들 사이에서만 화제인 것은 아니었다.
[Baseball is back! And Welcome to Dodgers Stadium! 전국의 열렬한 다저스 팬 여러분! 와우, 정말 오랜만입니다! 여러분들이 애타게 기다리던 오프닝데이가 시작됐습니다! 오, 칼! 얼마나 야구가 그리웠는지 심지어 당신까지 보고 싶을 정도였어요.]
다저스 스타디움의 중계석.
캐스터 작 토렌스의 쾌활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런 작의 넉살에 칼이 대답했다.
[인정하기 싫지만 저도 그렇다고 해야 할 것 같군요. 제가 작의 얼굴을 보고 싶었냐고요? 물론 아닙니다! 제가 보고 싶은 얼굴은 따로 있죠. 뜨거웠던 겨울을 장식했던 오프시즌의 주인공 Kang의 얼굴을 말이죠!]
3월 29일.
모든 다저스 팬들이 기다리던 한 선수가 드디어 모습을 드러내는 날. 중계석에서조차 해준은 오프시즌 다저스 최고의 화젯거리였다.
[혹시나 모르시는 분은 없으실 겁니다. 이번 오프시즌 다저스가 영입한 새로운 스타 말입니다! 8년 총액 4억 2000만 달러라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대 규모의 계약을 성사시키며 데려온 KBO의 전설! 제가 전해 들은 소문에 의하면 수비는 아지 스미스, 타격은 배리 본즈, 송구는 오웬 루이스와 같다고 합니다! 오우- 말하고 보니 말도 안 되긴 하죠.]
[그렇게 말도 안 되는 수준이니 다저스가 4억 달러를 넘게 배팅한 겁니다. 크리스 배그웰의 적극적인 추천이 뒤따른 것이 영입에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하죠. 다들 아실 겁니다. 크리스 배그웰, 3연속 신인왕을 배출시킨 스카우트계의 전설, 다저스의 보물!]
덕분에 온에어와 함께 한 선수에 대한 집중 조명에 들어간 다저스의 중계진. 게다가 이 선수는 여태껏 보아온 얌전하고 세심해 보이는 이미지가 강하던 다른 동양계 선수들과는 그 시작부터가 달랐다.
KBO를 박살 내버리고(어떤 의미에서든) 역대급 계약과 함께 넘어온 것까지는 같았지만, 스프링캠프에 들어 LA다저스 최악의 암덩어리 중 하나로 평가받던 로드리게스를 과감한 포지션 지명 경쟁과 함께 몰아내 버린 것.
더군다나 그 바탕은 몸값이나 정치 같은 것이 아닌 순수한 실력이었다.
당연하게도 그 활약은 애리조나에 다녀온 팬들의 입소문을 타고 퍼져나갔으며, MLB에서도 가장 핫한 화제 중 하나로 떠올랐다.
"애리조나에 다녀오길 잘했어. 내 생각에 Kang은 분명 위대한 선수가 될 거야. 내 눈은 틀림없지."
"잠시만. 자네, 로드리게스에게도 같은 말을 했지? 뭐, 리그 최고의 중견수? 작년 그 녀석의 the touch는 정말 충격적이었다고! 월드시리즈에서 플라이볼 타구를 홈런으로 둔갑시키는 놈이 있었을 줄이야! 이제 자네 안목이라면 안 믿어. Kang? 무슨 갱스터 같은 이름을 해놓고는."
"자네가 보질 못해서 그래. 그 선수는 그냥 느낌부터가 다르다니까?"
반면, 개막 전부터 떠들석한 그 관심에 아직 해준을 보지 못한 많은 팬로서는 의구심이 들 수밖에 없었다.
넘어오기 전부터 언론을 뒤흔들던 동양 선수들이 어디 한 둘이던가? 160km/h을 던지는 그렉 매덕스, 100년 만에 돌아온 베이비 루스, 뉴 윌리 메이스까지.
데뷔 전부터 전설들의 이름을 들먹이던 선수들이 차고 넘쳤고, 그중에서는 미스터 스프링이라 불릴 정도로 초반에 압도적인 활약을 이어간 선수도 있었다.
"하지만 결국 그 기대에 걸맞는 기록을 남긴 선수가 얼마나 있나? 잘하긴 했지만 그런 전설들에 비견 될 만큼은 절대 아니었지."
"하, 자네가 직접 봤어야 한다니까!"
그렇기에 이들이 갑론을박은 멈출지 몰랐다.
아직은 제대로 된 평가가 내려지기에 보여준 것이 너무 부족한 상황. 그 사이, 중계 화면에 오늘의 로스터가 반영됐다.
1 강해준 CF
2 루이스 화이트 2B
3 제이크 포드 SS
4 노아 존슨 3B
5 드레이븐 래리 1B
6 마르쿠스 영 C
7 브랜드 워커 LF
8 커트 로빈슨 RF
9 윌리엄 스미스 P
P 윌리엄 스미스
[로스터가 나오는군요. Kang, 릭 베이츠 감독이 예고했던 대로 리드오프에 중견수로 개막전에 나서게됩니다!]
스타군단으로 유명한 LA다저스 답게 로스터에 이름을 올린 수많은 스타플레이어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캐스터들의 관심은 여전히 해준에게 찰싹 달라붙어 있었다.
이쯤되면 한인들의 마켓팅을 의식하더라도 과도하다고 생각되는 관심.
그 이유는 매우 간단했다.
2020년 이후, 전 세계로 뻗어 나가는 계기가 됐던 메이저리그의 기조.
Baseball of the star, by the star, for the star! (스타의, 스타에 의한, 스타를 위한 야구.)
2000년대 초, 스테로이드 시대를 관통하며 날이 갈수록 인기가 급하락했던 메이저리그. 그 뒤로 스피드룰이나, 자동 고의 사구 등 여러가지 방안들이 수면 위로 부상했지만, 결국 결론은 하나였다.
-스타가 필요하다!
NBA가 그 예였다.
르브론 제임스, 스테판 커리, 러셀 웨스트브룩 등.
마이클 조던 이후로도 줄줄이 등장한 NBA의 스타들.
그들은 10대들의 우상으로 떠올랐고, NBA는 유례없는 대호황을 거둔다.
물론 그 사실을 깨달았다고 뾰족한 방법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스타란 만들어지는 것이 아닌 태어나는 것. 언론플레이로 만들어내는 스타에게는 명백한 한계가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신의 장난처럼 어마어마한 스타성으로 똘똘 뭉친 선수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무결점 타격 이스마엘, 폭발적인 패스트볼의 상징과 같은 테린, 악마와 거래한 괴력이라는 데블린까지.
이들을 소유한 구단들은 단숨에 어마어마한 입장권 수입과 함께 중계권 재계약을 끌어냈고, 그동안 진출 성과가 미미했던 유럽과 중국 시장에서마저도 예상치 못한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1등 공신이 된다.
그렇게 3년.
2020년부터 2023년 사이에 폭발적으로 터져나온 스타들의 탄생.
그것이 시들해지고 있을 때 등장한 뉴 페이스가 바로 해준이었다. 구단 측이나, MLB 사무국으로서는 집중 조명을 할 수밖에 없는 노릇.
"..흐음."
하지만 정작, 그 당사자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을 바라보고 있었다.
[연결된 아웃라이어(Linked Outlier)]
-토니 디에고 블랑코 (Double A) *포심 패스트볼
-브랜드 맥케이(Double A) *체인지업
-무라타 가즈히코(NPB) *스플리터
-??? *슬라이더
-구해형(KBO) *주루
-보로디미르 알비노 바르가스(MLB) *컨택
[특수모듈]
-더 레이저 맨The Laser Man *현재 스택 0
-스택형 타구속도Type-Stack Exit Speed *현재 스택 0
-철인The Iron Man
KBO에서 믿기지 않은 성적을 기록하도록 도와준 대응 구종 모듈들과 특수 모듈들. 해준은 9월 이후로 성장이 정체된 지금 상태에 머리를 굴리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고생 좀 할지도 모르겠어.'
스프링캠프에서의 놀라운 성적은 어디까지나 투수들이 페이스를 끌어올리는 과정이었기 때문.
그에 반해 자신은 어느 정도 몸만 만들어놓는다면 시스템 보정이 들어가기 때문에 최상의 컨디션을 발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부터는 아니지.'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이제부터는 리그의 수준이 특정한 임계점을 넘어섰다. 해준은 다른 홀로그램을 띄어보았다.
[대응 구종 레벨]
*포심 패스트볼 70
*서클 체인지업 45
*슬라이더 50
*스플리터 50
대응 가능한 한계 수준이 명시된 창.
여기서 문제점은 두 가지였다.
'패스트볼을 제외하고는 메이저리그의 수준급 변화구에 대응하기 힘들다.'
하나는 전체적인 수준.
'게다가 구종도 너무 적어.'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구종의 종류.
크게 본다면 싱커, 커터, 커브, 너클볼에서부터 자세하게 파고든다면 스파이크 커브, 스플릿 체인지업, 드롭 커브까지.
상대할 수 있는 레파토리 자체가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한국에서는 생각보다 문제가 없었지.'
물론 한국이라고 저 구종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한국과 메이저리그의 결정적인 차이라면.
'저 구종들을 결정적인 순간에 투수가 원하는 곳으로 꽃을 수 있느냐였지.'
한국에서는 한복판에 몰리거나, 터무니없이 벗어나는 볼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어설프게 스트라이크존을 벗어나는 공?
거미줄처럼 형성된 보로디미르의 배드볼 히팅 센스가 탐욕스럽게 잡아먹곤 했다.
하지만 스트라이크존을 노리고 들어오는 강력한 변화구에는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상황.
'그래서 당분간은 욕 좀 먹더라도 양민 학살 기계 컨셉으로 밀어붙여서 포인트라도 모으려고 했는데..'
여기도 생각지도 않았던 벽에 부딪혔다.
[아웃라이어 시스템이 리뉴얼되었습니다!]
*타격
-더 이상 포인트가 정산되지 않습니다.
-타격 결과로 기존 모듈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바뀌었습니다.
*수비
-수비 등급에 따라 일정 확률로 모듈이 등장합니다.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기 무섭게 자취를 감추더니, 오프시즌을 넘어 스프링캠프에서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아웃라이어 시스템.
그랬던 놈이 갑자기 리뉴얼과 함께 다시 모습을 드러낸 것.
더욱이 문제는.
이 부분이었다.
포인트 대신 모듈을 준다는 것은 괜찮다. 어차피 포인트는 모듈을 사려고 모으는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일정 확률이라는 것들이.
.........
[Remote급 Catching 보상]
-P급 모듈(확률 1%)
[Unlikely급 Cataching 보상]
-AA급 모듈(확률 4%)
.......
대부분 이런 수준이니 한숨이 나올 수밖에.
Remote급 수비는 수비 확률이 10% 이하인 타구를 잡아야지만 인정된다. 그런 타구들을 100번 잡아야 한 번 나올까 말까 한다고? 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애초에 Remote급 수비를 펼칠 타구 자체가 1년에 30번도 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넌 이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냐?'
해준의 기가 찬 반응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KBO 시절의 보상은 과도하다고 판단, 밸런스 조정이 가해진 상태입니다.]
해준은 그 말에 눈매를 좁혔다.
분명 텍스트 덩어리일 뿐인데, 은근히 즐기는 것 같은 감정이 전해져온 것 같은 이 느낌이 과연 착각일까?
'정말로?'
그렇기에 자신도 모르게 괜스레 한 번 더 물어봤지만.
[이 정도 보상이 적정 수준입니다.]
대답은 비슷했다.
'...음, 그래.'
해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내심 확신했다.
이 자식, 여태까지 꽁해있다가 비장의 수를 들고 나타난 거다.
'그동안 세상 물정 모르고 가게를 오픈한 사장님처럼 여러 어설픈 시도를 걸어왔었지'
그랬던 것을 자신이 세상 물정을 알려준다 치고 조금 냉정하게 이득을 취해온 적이 분명 있긴 있었다.
'니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그렇기에 해준은 수긍했다.
분명 시스템의 속 좁은 복수는 유효했다.
이대로 두면 문제긴 할테니까.
성장이 둔화할수록, 자신은 목표로 했던 성적에서 멀어질 가능성이 높았다.
하지만 그 순간.
'그런데...'
해준의 입꼬리가 씨익- 올라갔다.
'너는 시즌 막판에 니가 뭘 팔았는지 기억도 못 하지?'
[....?]
시즌 말미, 자신에게 남은 아웃라이어 포인트를 모두 소모시키기 위해 시스템은 정말 어마어마한 양의 모듈들을 쏟아냈다.
보유한 포인트량을 훌쩍 넘는 말도 안 되는 아웃라이어 링크 모듈부터, 쓰레기 같은 소모성 모듈까지.
그중 하나가 이것이었다.
[소모성 모듈 - 스타팅팩 행운 파트]
*신인 신분만 사용 가능합니다.
*초심자의 행운이 깃들어, 행운이 10배가 됩니다.
*단, 시스템 판정 시에만 효과가 유효합니다.
도매가: 1p
사실 처음 봤을 때 이걸 어디에 쓸까 싶었다.
플레이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도 못하면서, 시스템 판정 시에만 효력을 발휘하는 모듈. 오로지 플레이에 의한 판정으로 포인트를 가져가는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쓸모가 없어 보였으니까.
게다가 신인이라는 자격 제한.
시스템이 성의 없게 입력한 것 같은 1p라는 가격이 더욱 신빙성을 부여했다.
그럼에도 자신이 이 모듈을 산 이유는 간단했다.
'그래서 그냥 남은 자투리 포인트 소모용으로 사뒀던 건데..'
유일하게 남은 1포인트들마저 처리할 수 있는 모듈이었으니까. 그때 그것들이 이제 와서 이런 식으로 작용할 줄이야.
그 모습에 당황한 시스템이 황급히 메시지를 띄웠다.
[해당 모듈은 신인 신분만 사용 가능합니다.]
그 말에 해준은 피식- 웃음을 터트리며 무슨 소리냐는 듯이 반문했다.
'나 신인이야. 메이저리그 신인.'
그렇게 망설임 없이 모듈을 클릭하자.
[스타팅팩 모듈 행운 파트가 사용됩니다!]
[초심자의 행운이 깃듭니다!]
[당신의 행운은 10배가 됩니다!]
행운이 깃들었고.
동양에서 MLB를 정복하기 위해 넘어온 괴물은.
"플레이볼!"
일생에 다시 없을 행운을 지니고 경기에 임하기 시작했다.
< 오프닝데이 with 리뉴얼 시스템 (1)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