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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에서 타자까지-79화 (79/137)

< 미스터 포벅스 in 스프링 (4) >

79. 미스터 포벅스 in 스프링 (4)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 시범경기.

시범이라는 말이 붙었지만, 정규 시즌과 마찬가지로 MLB의 자체적인 네트워크 중계와 중계권을 획득한 방송사들을 통해 전 세계로 송출된다.

이는 한국이라고 해서 다를 것이 없었다.

MBW 방송국은 이미 오래전부터 LA다저스 시범경기를 매일 같이 내보내고 있었다.

문제라면 해준의 출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

당연하게도 야구팬들의 의문이 계속해서 제기됐다.

-오늘도 4달라 안 나옴?

-왜 감감무소식이야. 메이저리그 간 건 맞지?

-워낙 스타들이 많은 곳이라 자리 잡기가 힘든가?

-요새 멀티 유틸리티처럼 연습하고 있다는 소리가 있던데.. 백업으로 나오는 걸 수도..

-세오레즈가 뒤에서 다저스 압박해서 못 나오게 한다던데.

└뭔 ㅋㅋㅋㅋㅋㅋ 헛소리는 너희 집 화장실 변기에다 해라. 아마 변기도 안 받아주고 역류하겠지만.

덕분에 현지에서 로스터가 넘어올 시간이 되면 담당 PD는 불안한 눈빛으로 다리를 덜덜 떠는 것이 습관이 되어버렸다.

'오늘도 강해준이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지 않는다면 시청률은 보나 마나다.'

국저스라는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국내에 많은 팬들을 보유한 다저스. 하지만 한국 선수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상상 이상이었다.

'더군다나 그 선수가 강해준이라는 히트 상품여서야!'

담당 PD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여태껏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해외 야구 기사란은 온통 강해준에 관한 소식들뿐이었다.

오늘은 어느 포지션 훈련을 소화했는지, 누구와 대화했는지, 점심은 어떤 것을 먹었는지.

스프링캠프로 파견 나간 기자들이 쏟아내는 사소한 정보들마저 다른 기사들의 조회수를 압도적으로 눌러버리는 상황.

현재 한국 야구판에서 강해준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가졌는지 나타내는 현상들이었다.

'이게 다 국내 프로야구 파업 여파지.'

더욱이 이 현상에 기름까지 부어버린 선수협의 파업 선언.

난데없는 날벼락에 MBW 스포츠국은 강해준에게 올인하는 심정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기약 없는 기다림과 함께한 3월 10일.

"떴습니다!"

드디어 현지에서 보내온 로스터 명단에 해준의 이름이 올랐음이 확인됐다.

"좋았어! 당장 자막 올려! 내용은 강해준.. 출전 확정!"

애타게 기다리고 있었던만큼, 움직임도 빨랐다.

[MBW 지상파 단독 생중계, 강해준 출전 확정!]

-오, 드디어 ㅋㅋㅋ

-여태까지 뭐하다 이제 나오냐! 답답해 죽는 줄 알았네.

-그런데 중견수 출장이네? 강해준이야 어디서 뛰든 상관 없지만... 그럼 로드리게스가 밀려난 거?

-솔직히 내야가 빡세긴 하지. 포드에 존슨에 래리까지.. 2루수가 그나마 노려볼만하긴 하는데 거기도 올스타임 ㅋㅋㅋ

-ㅇㅋㅇㅋ 아무튼 출장했음 됐다 이제 잊고 즐기자 ㅋㅋ

그와 동시에 폭등하기 시작하는 시청률. 한참 새벽 시간임에도 시청률 수치는 멈출지 모르고 쭉쭉 치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역시!'

담당 PD는 그동안 막막했던 속이 뻥 뚫림을 느낌과 함께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동시에 그동안 무시해온 미약한 불안감이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강해준이 과연 먹힐까?'

한국에서 놀라운 성적을 냈다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상대는 메이저리거들였다. 한국에서 40-40를 기록하고 넘어간 타자조차 플래툰으로 활동하는 그 메이저리그의 선수들.

더군다나 그 뒤로 넘어간 KBO의 타자들이 족족 죽을 쓰고 리턴하는 것을 10년 넘게 보아왔다. 담당 PD로서는 당연히 걱정이 들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따아악-!

[이건 갔습니다! 초구부터 시원한 스윙으로 홈런을 뽑아내는 강해준 선수!]

따아아악-!

[강해준 선수! 두 번째 타석, 로키스의 선발 투수 잭슨 리터로부터 다시 한번 장타를 뽑아냅니다! 좌중간을 가르는 시원한 2루타!]

그것은 괜한 기우에 불과했다.

미국 시각 3월 10일 화요일 오후 1시 10분.

한국 시각으로 3월 11일 수요일 4시 10분.

KBO를 정복하고 넘어간 해준이 MLB에서 자신의 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시점이었다.

+++

시애틀 마리너스와의 경기가 잡힌 두 번째 경기.

휘이이익-!

"Attaboy! 어제 타석 정말 멋있었어!"

"다저스가 선수를 제대로 물어온 것 같지 않아? 믿기지가 않더군! 데뷔 첫 경기에서 모두 장타라니!"

"솔직히 다저스에서 뛰었던 초이보다 낫다는 생각도 들었지. Kang! 오늘도 시원하게 돌려보라고!"

해준이 오늘도 타석에 들어서자 캐멀백렌치 관중석에서는 호의적인 환호성을 쏟아졌다.

그저 주변에서 찾아온 동네 주민들이 아니었다.

애리조나에서 열리는 스프링캠프.

이곳에 관람하러 오는 사람들은 대다수가 현지인이 아니다.

가깝게는 샌프란시스코, LA에서부터 멀게는 휴스턴, 뉴욕까지.

선수들과 한결 더 가까운 환경에서 호흡을 같이하기 위해 찾아온 외지인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눈에 들었다는 것은, 해준이 미국 팬들 사이에서 이름을 알릴 기반을 쌓아가고 있다는 소리와 같았다.

'하지만 아직 멀었지.'

해준은 그 환호에 한 차례 손을 흔들어준 뒤 자세를 잡았다. 이제 고작 3타석. 자신의 모든 것을 보여주기에는 한참이나 부족했다.

'압살. 그 외에 다른 모습은 필요 없다. 스프링캠프라고 쉬엄쉬엄 갈 생각은 없어.'

기존의 로스터를 차지하고 있던 외야 3인방. 그중 올스타 출신 중견수 가브리엘 로드리게스.

해준은 그의 자리를 조그만 잡음도 없이 강탈해버릴 생각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서는 격이 다른 플레이들을 보여줘야 한다.

끼이익-

오프시즌 기간, 충실히 몸을 만들어낸 덕에 손아귀에서는 충만한 힘이 느껴졌다. 고무 그립이 조여지며 비명성을 내질러왔다.

'더군다나 저런 투수를 상대로 아웃을 당한다는 건 말도 안 되지.'

첫날, 2타수 2안타 1홈런을 기록하고 교체된 뒤.

해준은 한 가지 사실을 확신했다.

'아직 아무도 날 경계하지 않아.'

좁디좁아 서로의 얼굴을 모를 수 없는 KBO와는 달리, 이곳의 선수들은 서로를 모르고 승부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더군다나 지금은 스프링캠프.

이곳에서 한 번 만난 뒤 평생 다시 보기나 할지도 모르는 상대를 집요하게 연구하고 들어오는 투수 같은 것은 존재할 수가 없었다.

4억 달러의 사나이라고 해도 마찬가지.

투수들은 상대를 알기보다는, 자신 힘을 믿고 공을 던지는 것을 택해왔다.

그리고 그 선택지는 대부분 비슷했다.

"흐읍!"

아무런 경계도, 의도도 담기지 않은, 그저 스트라이크를 잡아먹으러 들어오는 단순한 패스트볼.

고향의 활기를 감지한 더 패스트볼 긱, 토니 디에고 블랑코의 감각이 평소보다 더욱 요동치며.

따아아아악-!

배트가 거칠게 공의 궤적을 잡아먹어 버렸다.

[oooohh! 이번에도 넘어갑니다! 자신의 메이저리그 3번째 타석에서 다시 한번 홈런을 뽑아내는 다저스의 Kang! 어마어마한 장타력을 뽐내는군요!]

그렇게 양치기가 자리를 비운 사이, 양 떼 사이에 풀려난 늑대처럼.

따아악-!

[triple! 과감한 플레이로 3루를 점령하는 Kang!]

해준의 배트가 미친 듯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

새롭게 떠오르는 라이징 스타의 등장.

다저스의 스프링캠프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었다.

[Booom! 마침내 드러난 4억 달러의 주인공. 스프링캠프에 나타난 코리안 비스트!]

[콜로라도 로키스의 유망주 잭슨 리터, 'Kang? 날카로운 칼이 공을 베어버릴 듯 휘둘러진 느낌이었다.']

[5경기 11타석 9타수 9안타 4홈런 2볼넷! 캑터스 리그에 나타난 고질라!]

고작 5경기.

한 경기 당 소화하는 타석은 2번 정도에 불과했지만, 해준은 이미 그것만으로 이곳 애리조나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한껏 뻗쳐가고 있었다.

'fuck! fuck! fuck! 어떻게든 무슨 방법을 생각해내야 해! 이대로는 내 자리가 위험하다.'

다저스의 주전 중견수 가브리엘 로드리게스.

덕분에 그는 근래 들어 드물던 위기감을 느꼈다.

팬들과 언론의 주목을 모두 끌어가버린 라이벌의 등장,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어진 잦아진 결장.

마치 마이너리거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은 불안감에 로드리게스는 벤치에 앉아 다리를 벌벌 떨며 중견수를 소화하고 있는 해준을 바라보았다.

'배트만 잘 돌리는 놈이라면 어떻게든 내가 자리를 유지할 수 있어.'

스프링캠프에서 불타는 타격감을 뽐내는 애송이들은 차고 넘친다. 스타 플레이어들은 천천히 페이스를 끌어올리지만, 그들은 이를 악물고 최고조까지 끌어올린 최상의 몸상태로 리그에 참가하니까.

그러니 고작 몇 경기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하더라도 결국은 기존의 메이저리거들에게 밀려 내려가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해준의 경우는 달랐다.

출장 보장 조항, 옵션이 대다수이긴 하지만 4억 달러라는 고액 연봉자, 한인들을 의식한 프런트의 지지.

그에 더해.

[Oooooohh! 맙소사. 로간, 방금까지 제가 뭐라고 했죠? 준수한 중견수? 제길, 제가 잠깐 실성했나 봅니다! 그래요, 인정할게요! 다저스의 kang! 정말 말도 안 되는 다이빙 캐치를 성공시켜버립니다! 이건 백 퍼센트 좌중간을 가르는 타구라고 생각한 건 저만이 아닐 겁니다! 이 선수는 리그 최상위 수준의 중견수 수비를 보유하고 있어요!]

자신이 전성기라 할지라도 해낼 수 있을까 싶은 미친 수준의 수비 실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퍼어엉-!

"..아웃!"

[런오버! 그리고... 걸렸습니다! 동양에서 온 이 선수의 시야에 사각이란 없습니다! 2루를 잠시 지나친 1루 주자를 놓치지 않고 정확한 송구로 잡아내는군요!]

게다가 찰나 방심조차 가차 없이 물어뜯어 버리는 송구까지.

'타구 판단 속도, 그를 따라 잡는 주력, 다이빙 타이밍까지. 모든 게 완벽하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로드리게스의 얼굴이 흉측하게 구겨졌다.

말 그대로 수준이 다른 그 플레이 모습.

당연하게도 관중석에서의 술렁거림 또한 멎을지 몰랐다.

"..이거, 기대는 했지만... 직접 보니까 장난 아니잖아?"

"타구 반응 속도 봤어? 로드리게스 자식보다 두 배는 빠른 것 같아!"

"방금은 분명 타구음이 들리기도 전에 뛴 것 같았어! 나만 본 거야?"

뛰어남을 넘어, 말 그대로 차원이 다른 경계에 머무르고 있는 해준의 수비. 아버지를 따라 야구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평생을 야구를 보아온 몇몇 관중들 또한 그 모습에 충격을 받을 정도였다.

"윌리의 캐칭을 기억하는 사람 있나? 그의 재림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군!"

"월드 시리즈 1차전이었지. 하지만, 지금은 상황도 그때의 치열함도 없어. 그럼에도 저 선수의 수비는 그 당시를 떠올리게 만드는군. 치열해. 그 누구보다 치열해.."

관중들이 이럴 정도인데, 다저스의 선수들이라고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반신반의하던 해준에 대한 내부 평가는 어느새 수직상승과 함께 폭등하며 선수들을 끌어모으고 있었다.

"준! 여기서 어떻게 해야 상대 주자의 움직임을 억제할 수 있을까? 너 내야 수비도 끝내주잖아!"

"방금 캐칭은 어떻게 한 거야! 타구 판단 속도가 믿기지 않을 정도잖아!"

"듣기로는 송구 속도가 급격히 늘었다며? 비결이라도 있어?"

"이봐 준. 네 타격 정확성이 미친 수준이라는 거 알아? 비결 좀 알려달라고."

그렇게 어느 순간부터 해준을 중심으로 다저스의 젊은 선수들.이들이 뭉치기 시작하며 새로운 세력 구도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제길.."

그 모습을 바라보던 로드리게스는 급격히 좁아지는 자신의 입지에 신음성을 흘렸다.

'어떻게든 무슨 수를 내야..'

저놈들이 뭉치는 것은 좋다. 어차피 태반이 시즌이 시작되면 마이너리그로 내려갈 놈들이었으니까. 하지만 캠프에서 돌기 시작하는 이 분위기가 문제였다.

고작 동양인 루키 한 명을 중심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이 빌어먹을 분위기.

이대로 가다가는 개막전 출장은커녕, 영원히 백업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그것은 메이저리그의 주전이라는 사실에 크나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그로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내가 어떻게 손에 넣은 자리인데!'

그런 그가 부글부글 끓는 속을 억누르며 훈련을 위해 이동하고 있을 때. 그 모습을 바라보던 한 기자가 조용히 다가와 인터뷰를 요청했다.

그리고 곧.

"don't bullshit me!"

화를 억누르고 있던 로드리게스가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 격앙된 어조의 목소리가 훈련장에 울려 퍼졌다.

"내가 그런 듣도보도 못한 리그에서 온 애송이한테 밀리고 있다고? 일본놈들이 미국 땅을 모조리 사버릴 거라고 떠들던 시절이 있었지. 지금은 어떤데? 결국 거품일 뿐이야. 옵션이란 편법으로 제 몸집을 잔뜩 불린 거품! 그런 것에 다들 현혹되서는··· 이건 정당한 대우가 아니라고. 난 올스타 출신 선수란 말이야! 언제부터 메이저리그가 돈만 보고 선수를 출전시키는 시대가 됐지?"

로드리게스의 폭발.

그것은 스타 플레이어로 가득하여 불변할 것 같았던 다저스의 로스터에 찾아올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이었다.

< 미스터 포벅스 in 스프링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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