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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에서 타자까지-75화 (75/137)

< KBO in 스토브 (4) >

75. KBO in 스토브 (4)

미 유명 스포츠 포털 사이트의 칼럼니스트 루스 허먼.

시작은 그가 남긴 의미심장한 SNS상 단문이었다.

[Beach bum! 드디어 대형 사고 친 듯.]

Beach bum.

LA 서부 유명 해안 휴양 도시인 산타모니카 출신이자, 다저스의 국제 스카우트인 크리스 배그웰을 가리키는 별명.

-사고?

-무슨 일인데 그래?

-너만 알고 있을 거라면 차라리 처음부터 입을 다물라고 오만한 루스 허먼!

순식간에 많은 리트윗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루스 허먼은 다시 한번 트윗을 남긴 채 사라졌다.

[크로스 체크 중.]

그것을 신호탄으로, 다른 칼럼니스트들의 트윗이 줄줄이 이어졌다.

[컵스 부사장 에드 진, 협상에 실패했다 밝혀.]

[보스턴도 아니다? 양키스 또한 묵묵부답.]

[파이어리츠 아웃! '이건 미친 경쟁이다.']

[클리블랜드. '우리는 진작에 철수했다.']

누군가와의 협상에서 실패했다는 트윗들.

그제야 팬들은 이 트윗들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알아차렸다.

-크리스가 사고를 쳤고, 나머지 구단들은 아웃?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모두 달려들 정도의 영입 경쟁이면...

-한국의 Kang 밖에 없지 않아?

-그렇다는 말은 이번 포스팅의 승자가 정해졌다는 말이지!

바로, 올해 스토브리그의 최대어인 강해준 쟁탈전의 승자가 바로 LA다저스라는 것.

그리고, 어마어마한 규모의 계약이 이루어졌다는 것까지.

[치열했던 포스팅 경쟁, 그 승자는?]

[포스팅 역사를 넘어 MLB 역사상 최대 규모 계약!]

[익명의 관계자 '소문이 사실이라면 말도 안 되는 오버페이. 양*치 크리스 배그웰이 다저스의 모든 것을 망칠 것이다.']

[유명 칼럼리스트 에반, 한 가지 사실을 고려하더라도 이번 계약은 도를 넘었다.]

그 뒤로도 온갖 소스를 통해 루스 허먼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지며,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양계 선수들이 선호하는 1순위 구단인 LA다저스.

어느 정도 예상됐던 해준의 움직임은 납득할 만한 것이었다. 이제 남은 문제는 계약 규모가 얼마나 되느냐. 이것 뿐이었다.

"양키스, 컵스 등의 빅마켓들이 모두 덤벼들었을 정도니까 장난이 아니긴 할 거야. 그런데 대형 사고라니?"

"도대체 얼마를 질렀길래 그러는거야?"

"1억 달러도 공수표처럼 날리는 그 크리스 배그웰이라고. 물론 결과를 보면 항상 성공해서 모두의 입을 다물게 하긴 했지만. 이번 계약은 상상을 초월한 가본데?"

당연하게도 세오레즈 프런트는 축제 분위기에 빠져들었다.

MLB 역사상 최대로 예상되는 계약 규모.

그 수혜는 고스란히 자신들이 입을 것이 분명했으니까.

세오레즈의 구단주이자 사장인 이운요.

그는 자신이 지을 수 있는 가장 밝은 표정을 지으며 기세 당당하게 소리치고 있었다.

"아직 연락 없어? 빨리 독촉 좀 해봐!"

"강해준 선수 쪽은 연락을 받지 않습니다. MLB 사무국도 답신이 늦네요."

"관계자들 트위터 체크 중입니다. 그런데 이거 진짜 어마어마한가 본데요?"

"최소 얼마 정도?"

"대충 종합해보면... 3억 달러 중반 이상입니다."

아직은 공식적으로 무엇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

하지만 스태프들이 계속해서 긍정적인 소식들만을 물어오자, 이운요 사장의 입꼬리가 양쪽으로 찢어질 듯 휘말려 올라갔다.

"3억 달러 중반... 그럼 우리가 받을 돈이 얼마지?"

"그래도 5천만 달러는 되지 않을까요?"

"5천.... 만! 으.. 으하하하하!"

5,000만 달러(한화 600억 상당).

상상도 되지 않은 액수에 그는 팔을 아무렇게나 내저었다.

그 돈이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찌질하게 연봉 가지고 장난칠 필요도 없지. 회유할 선수들 회유하고... 투자자들의 마음도 돌리고. 내 경영권 문제도 해결할 수 있어!'

이운요 사장은 앞으로 펼쳐질 장미빛 미래 속에서 마음껏 허우적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LA다저스, 강해준과 8년 4억 1200만 달러 계약 성사!]

상상을 초월하는 액수가 세오레즈는 물론이고, 한국 야구계에 핵폭탄처럼 떨어져 내렸다.

+++

처음 금액이 발표된 순간.

잠시 정적을 이루던 SNS상 타임라인.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장마 시기의 계곡물이 불어나듯 넘쳐 흐르기 시작했다.

-오보 아니야?

-말도 안 돼. 무슨 4억 달러를 써?

-메이저리그 현역 중에 가장 큰 계약을 맺은 선수가 그 위대한 이스마엘의 10년 4억 달러라고. 그런데 고작 야구 변방국 출신 타자한테 8년 4억? 거짓말도 적당히 해야 믿어주지.

-이건 자기가 플레이하던 야구전략시뮬레이션 게임이 아니라고 누가 기자에게 전해줄 수 있어?

대부분의 반응들이 믿기지 않는다는 의견을 이루었다. 언론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기본 6년, 옵트아웃 2년? 아직은 베일에 휩싸인 계약 내용.]

[MLB 역사상 계약 규모 1위. 모두가 경악하다!]

[단순한 오버페이 그 이상. 전문가들, 다저스의 이번 계약은 재앙이 될 것이다라고 입을 모아.]

[폭주한 크리스 배그웰이 불러들인 끔찍한 사태. 다저스 팬들의 반응은?]

단순한 오버페이라고 하기에는 상상을 뛰어넘는 금액.

게다가 곧 이와 상반되는 기사들마저 줄지어 쏟아지기 시작하자, 시장은 혼란 속에 빠져들었다.

[익명의 관계자, 다저스 프런트의 지인으로부터 보장 금액은 1억 2000만 달러라 들었다고 밝혀.]

[4억 달러? 거대하게 몸집을 부풀린 비눗방울과 같은 것.]

[다저스는 영리했다? 사실상 리스크 제로 계약?]

[익명을 요구한 MLB 고위 관계자, 'MLB 역사상 최대의 계약? 명백한 비약이다.']

누군가는 4억 달러 이상이라 말했고, 다른 누군가는 1억 달러, 몇몇 소스는 그 이하라는 소식을 전해왔다.

당연히 네티즌들은 혼란에 빠졌고, 이운요 사장 또한 마찬가지였다. 4억 달러라는 수치를 듣고 나서 체면도 잃고 기쁨의 괴성을 질러대던 그였지만, 이번에는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심정에 발을 덜덜 떨기 시작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제대로 된 정보 없어? 1억이라니! 기존 예상치의 절반이잖아!"

"그게.. 강해준 선수 측이 여전히 연락이 안 됩니다."

"MLB 사무국도 답신이 없습니다. 직접 전화해볼까요?"

"당장 전화해! KBO는? KBO에선 연락 없어?"

"그쪽도 결과 발표를 기다리고 있답니다."

당연히 수천만 달러가 공중에 날아가게 생긴 세오레즈 프런트로서도 혼란의 도가니 속에 빠질 수밖에 없는 상황.

그때, 이운요 사장의 스마트폰이 부르르- 진동을 울렸다.

"사무총장?"

KBO의 사무총장으로부터 온 전화.

동시에 한 직원이 밝은 표정으로 외쳤다.

"KBO에서 메일이 왔습니다!"

"어서 열어봐!"

이운요 사장은 몇 차례 숨을 내쉬고는 거칠게 뛰는 호흡을 가라앉혔다. 그리고는, 한숨을 한 차례 내쉬고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 받았습니다. 서울 세오레즈 이운요 사장입니다."

수화기 너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 아, 예. 안녕하십니까. 정종철입니다.

"네네, 안녕하십니까 사무총장님."

결과가 나오면 누구보다 먼저 알려주기로 한 정종철.

호흡을 조절했음에도 불구하고, 두근두근- 커다랗게 뛰는 심장에 이운요 사장의 숨통이 조여져 왔다.

'... 왜 말이 없지?'

수화기 너머에서는 말이 이어지지 않고 있었다.

등골을 적시는 불길함에 이운요 사장은 메일을 열어본 직원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 설마 일이 잘못된 건 아니겠지?'

동시에 수화기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계약 결과가 메일로 갔을텐데.. 혹시 확인했습니까?

축하보다는, 조심스러움이 섞인 어조.

그 순간, 불길함이 현실이 되는 느낌에 이운요 사장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갔다. 그는 거칠게 휙휙- 손짓으로 모니터 앞의 직원을 옆으로 밀어냈다.

그리고.

"계약 보장 금액... 2...20달... 러? 그에 따라 발생한 이적료는 20% 수준인 4달...."

천천히 그 결과를 읽어가는 그의 눈앞에 믿기지 않은 소식이 펼쳐져 있었다.

"... 이, 이게.."

탁- 타닥-

손에 들려있던 스마트폰이 바닥 위로 떨어졌다.

-.. 어, 여보세요? 여보세요? 이운요 사장, 듣고 있습니까?

수화기 너머에서는 사무총장의 목소리가 이어졌지만, 이운요 사장은 새하얗게 물들어버린 사고에 아무런 행동도 이어나갈 수 없었다.

"..4..4달러? 말도 안 돼. 이게 어떻게 4달러야."

그렇게 한참을 믿기지 않은 사실에 중얼대는 이운요 사장.

그가 고개를 휙- 돌려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어느새 싸늘하게 가라앉아버린 사무실 분위기.

직원들은 조금씩 시선을 돌리며 그의 눈길을 피하기 바빴다.

그 모습을 보던 이운요 사장의 목대에 순간 핏줄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당장 그 강해준한테 연락해!!! 에이전트든, 뭐든. 관련 있는 놈들은 싸그리 다!"

하지만 그 뒤로도.

".. 저, 안받는데..."

쾅-!

"으아아아악! 강해준 이 개새끼가 뒷통수를 쳐!!!"

강해준과의 연락은 닿질 않았다.

+++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와 함께 몇몇 관계자들과 소스를 통해 해준의 계약 세부 내용이 속속 흘러나가기 시작했다.

[기간]

기본 6년, 옵트아웃 2년.

[보장 금액]

20달러

[이적료]

4달러

[옵션 금액]

4억 1천 999만 9980달러

[세부 사항]

-25인 로스터 진입 시 500만 달러 지급 *25인 로스터 등록 보장

-개막전 출장 시 500만 달러 지급 *개막전 출장 보장

-첫 10경기 출장 시 500만 달러 지급 *첫 10경기 출장 보장

-연간 최소 100경기 출장 보장

*첫 10경기 타율 3할 이상, 출루율 4할 이상, 장타율 5할 이상 달성 시 발동.

*그 뒤로 10경기마다 특정 조건 만족해야 발동.

*100경기 출장 시 490만 달러 지급

-마이너리그 거부권

-10개 구단 지명 트레이드 거부권(시즌 시작 전 지명)

-신인왕 수상 시 300만 달러 지급

-MVP 수상 시 500만 달러 지급

-타격왕 수상 시 180만 달러 지급

-홈런왕 수상 시 ...............

사실상 보장되는 금액은 연간 1,500만 달러.

그 외에는 일방적으로 구단 측에 유리한 조건들뿐.

계약 총액만 높았지, 조건들이 속속 밝혀질수록 언론에서는 허우대만 보기 좋은 계약이라는 평가가 자자했다.

해준의 포스팅 소식에 귀를 쫑긋 세우던 세오레즈의 2군 감독이자 해준의 은사인 조대욱 감독.

-문디 자슥, 지랄도 참 크게 했다.

돈에는 나름 초연한 그조차도 어처구니없는 심정을 입 밖으로 툭-하고 내뱉을 정도였다.

-한국에서는 구단 이겨 먹으려고 하면 안 된다고. 내 몇 번이나 그랬냐? 뒤통수 한 번 치려고 돈 지랄 한번 크게 떠는 거 보고 내가 경악을 했다.

최소 2억, 최대 3억까지 가능했던 보장 금액이 사실상 1억 수준까지 줄어버렸으니. 당연히 누가 보아도 미친놈 소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소속 구단에게 돈을 주기 싫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2,000억 이상의 돈을 도박에 걸어버렸으니까.

-다른 놈들이라면 무슨 일을 당해도 조용히 고개 숙이고, 이적료까지 바치고 메이저리그 갔겠지. 그래도 1,000억 이상은 이득이니.

그렇기에 그 어마어마한 금액 앞에서 조대욱 감독은 일반론을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 사람들은 이렇게 한다고.

그 말에 해준이 되물었다.

"그래서 제가 그러길 원하셨어요?"

하지만 조대욱 감독은 곧바로 부정했다.

-물론 내가 널 그렇게 가르치진 않았지. 게다가 넌 태생부터 그런 놈들과는 달랐으니까.

상대가 어떤 놈일지라도, 해준은 그 특유의 투쟁심을 잃지 않았다. 6년 동안 싸워온 트라우마가 그랬고, 그동안 쏟아졌던 팬들의 비난과 조롱이 그랬으며,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느껴지는 현장 관계자들의 의심 섞인 시선이 그랬다.

-다른 놈들에게서 기대할 수 없는 모습이었지. 조금만 비난받아도 위축되고, 타석에 들어서길 무서워하는 놈들과는 달랐어.

조대욱 감독은 과거를 회상하며 이제는 지금의 위치와는 조금도 매치가 되지 않은 해준의 과거 모습을 떠올렸다.

무려 6년.

그 세월 동안 해준은 공도 제대로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수천 번을 타석에 들어섰고, 그 과정에서 조금의 두려움도 내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그 장벽이 높아질수록 부숴버리지 못해 안달 나듯 배트를 휘두를 시간을 늘렸을 뿐.

그런 것을 보자면 애초에 고작 구단에게서 돌아올 보복이 두려워 그대로 짓눌려있을 놈은 아니었다.

악바리를 넘어선, 눌리면 눌릴수록 크게 반발하는 천성.

".. 그래, 그렇다면 다음 상대는 정해져 있겠구나."

그것을 너무나 잘 아는 조대욱 감독이 물었다.

정신을 죄어오던 트라우마, 프로 선수에게는 무소불위의 권력자나 다름없었던 프로야구구단.

해준은 그 까마득하기만 한 벽을 두 번이나 보란 듯이 부숴버렸다.

하지만, 세상이란 놈은 그리 만만하지 않아서 벽을 부숴나갈수록 더욱 큰 장애물을 그 앞에 던져준다.

조대욱 감독의 말에 해준이 테이블 위에 올려진 수많은 기사들을 훑었다.

[희대의 옵션 범벅 계약서, 자신감의 표출? 제2의 쿄스케나 되지 않으면 다행]

[연간 1,500만 달러조차 오버페이. 대만의 4할 타자가 메이저리그에서는 1할 타자. KBO 출신이라고 다를 이유는 없다.]

[MVP? 신인왕? 메이저리그 팬들의 비웃음을 산 계약 조항들]

[극도의 타고투저 KBO산 타자. 타격 성적은 신뢰할 수 없어.. 볼만한 것이라곤 수비 실력뿐.]

[Kang? Gang에게 뜯긴 것이나 다름없는 계약이 될 것. 1,500만 달러부터가 과도했다.]

[역사로 살펴보는 동양계 야수들의 한계. Kang 또한 이를 벗어나지 못할 것]

뉴욕 다음가는 대도시, 헐리우드가 있는 장소인 만큼 벌써부터 쏟아져내리는 자극적인 제목의 기사들.

보통이라면 이렇지 않았겠지만, 옵션으로 총액을 과도하게 부풀린 탓에 미국 내 많은 이들이 자신에게 의문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들을 모두 훑어본 해준이 뒤늦게 입을 열었다.

"차근차근히 해나갈 생각입니다."

-그건 어디서부터를 말하는 거냐?

조대욱 감독의 말에 해준이 스케줄러를 살폈다.

[2월 19일, 캐멀백렌치, 글렌데일, 애리조나. 야수조 집합.]

"스프링캠프죠."

세간의 주목을 받는 대형 루키인만큼, 스프링캠프에 들어서자마자 수많은 관심이 모여들 것이 분명했고.

당연하게도 해준은.

"시작부터 보여줘야 앞으로가 편하지 않겠어요?"

모두의 편견을 박살 낼 준비를 끝마친 상태였다.

< KBO in 스토브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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