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O in 스토브 (3) >
74. KBO in 스토브 (3)
11월 19일.
혹시나 하던 소문이 KBO 스토브리그를 강타했다.
[강해준, 결국 포스팅 신청?]
[기존 협상 기한 30일? FA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강해준의 경우 더 줄어들 수도. 오타니 케이스가 그 예.]
[자금 유동성 위기 앞, 구사일생 세오레즈! 최소 2억 달러로 예상되는 강해준의 이적료는 3,187.5만 달러]
[FA 강경 대응 예고 선수협, 강해준의 포스팅 신청에 묵묵부답.]
[강해준 일탈로 선수협 전력 약화 가속화? 배신이다 vs 아니다. 네티즌들 갑론을박]
[지지부진 계약 해지 승인 싸움, 예고됐던 강해준의 포스팅 신청.]
선수협이 내세울 수 있던 가장 큰 명분을 쥔 선수, 해준이 포스팅을 신청하며 사실상 이 구단과 선수들 간의 싸움에서 이탈해버린 것.
이는 크게 두 가지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FA가 아니라 포스팅?
-그럼 세오레즈에 이적료 줘야 하잖아?
-선수들이 힘 모아서 구단이랑 싸우고 있는데 오히려 돈을 얹어주겠다고? 이건 배신이다!
-와, 강해준 실망이네;; 의리 따윈 개나 줘버리고 혼자 MLB 가겠다 이거냐?
선수협 진영에서 일탈해 개인적 움직임을 보인 해준에게 비난을 쏟아붓는 부류.
-솔직히 예견된 일이었지. FA자격 얻으려면 올해는 훌쩍 넘겨야 할 것 같은데.
-ㅇㅇ 지금 구단들 단합해서 버티기 들어갔는데 이런 건 스토브리그 안에 절대 안 끝나지. 현명한 선택이라고 본다.
-개똥이 더러워서 피하지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운 건 피하는 게 낫다. 괜히 세오레즈 같은 곳이랑 드잡이질 하다가 허송세월 보낼 바엔 돈 좀 주더라도 메이저리그 가는게 이득이지.
-난 어디든 좋음. 일단 좀 메이저리그로 꺼져줬음 좋겠음.
-ㅇㅇ 빨리 좀 가라!
혹은 현실적인 선택이라며 응원하는 부류.
소식을 접한 세오레즈 사장, 이운요의 반응은 후자였다.
짝-!
세오레즈 사무실에 커다란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 뒤, 들뜬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게 맞지! 강해준이 이 친구. 머리 좀 돌아가는데? 괜히 우리랑 드잡이질해서 좋을 게 뭐가 있어. 안 그래?"
최근 들어 메인 스폰서들이 줄줄이 재계약 의사를 철회하던 힘겨운 시기. 이대로라면 내년부터 자금 유동성 위기에 몰릴 것이 분명했다.
그런 상황에서 최소 2억 달러 이상의 계약이 예상되는 해준의 합류? 이운요 사장으로서는 천군만마를 얻은 것과 같았다.
생각지도 못한 아군의 합류에 이운요 사장의 머릿속이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했다.
"잠깐, 2억 달러면... 우리가 받을 이적료가 얼마였더라?"
벌써부터 메이저리그 구단에서 지급할 이적료를 계산하는 이운요 사장. 그의 시선에 전력분석팀장 김재훈이 대답했다.
"연봉 총액이 5천만 달러 이상인 구간으로 적용되겠죠. 2,500만 달러에서 20%, 2,500만 달러에서 5,000만 달러 사이 구간에서 17.5%, 그 이상 초과 금액에 대해 15%. 다 합친다면... 최소 3200만 달러의 이적료? 이 정도는 되겠네요."
"3200만 달러!"
이운요 사장의 흥분 어린 목소리가 다시 한번 이어졌다.
그 돈이라면 초기 투자에 대한 조건으로 주식을 요구하던 투자자와도 합의를 할 수 있고, 구멍 난 몇몇 재정들도 충분히 메꿀 수 있는 거금이다.
최근 계속된 분쟁, 언론사들의 공격과 인터뷰 요청으로 미간에서 주름이 떠날 날이 없었던 이운요 사장. 그가 오랜만에 함박웃음을 지었다.
"좋아! 3200만이라 이거지. 최소? KBO에 말.. 아니, 내가 직접 해야겠지. 문서화는 해야 하니까 미리 협조 공문 보내놔. 나는 최대한 빨리 MLB 사무국에 포스팅 신청 의사를 전달해달라고 해야겠어."
김재훈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고, 이운요 사장은 여전히 기쁜 어조로 스마트폰을 들어 통화를 걸었다.
그리고 하루 뒤.
[강해준, 미국으로 출국!]
구단의 허락을 받은 해준이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
11월 24일.
MLB 사무국은 해준의 포스팅 신청이 받아들여 졌음을 알렸다.
뉴포트비치 근처 그린 코퍼레이션의 사무실.
'이제 진짜 시작이다.'
소식을 접한 해준의 눈동자가 깊게 가라앉았다.
구단으로부터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묵묵히 야구에만 집중하던 나날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받은 만큼 돌려줘야겠지.'
자리를 함께한 행크 그린 또한 기다리던 소식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칼자루는 우리에게 넘어왔소."
2018년 개정된 한미 선수계약협정.
당시 구단들은 챙길 수 있는 이적료의 비율을 높인 대신, 계약 결정 권한을 선수 측에 양도하는 것을 택했다.
게다가 단독 입찰을 통한 진행이 아닌, 30개 구단과 자유로이 소통할 수 있는 구조.
즉, 이제부터는 메이저리그 30개 구단과 어떠한 조건으로 계약을 진행하더라도 세오레즈 측은 간섭할 수 없다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행크 그린은 다시 한번 물었다.
"그리고 지금이 선택을 되돌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지."
자신은 미국에서 태어났고, 미국에서 자라 큰 성공을 일군 인물. 한국에서 어떤 일을 저질러도 문제는 없었지만, 해준은 달랐다.
한국에서 자랐고 한국에서 성공을 일군 후 미국에 자리를 잡을 예정이지만, 결국 언젠가는 한국으로 돌아갈 사람이었으니까.
행크 그린이 나지막이 말을 이었다.
"고향에 적을 두는 것만큼 꺼림칙한 것도 없네."
계획대로 움직인다면, 야구팬들은 몰라도 세오레즈의 관계자들과는 영영 척을 지게 되는 일.
유례없는 구단의 뒤통수 때리기에 많은 비난을 들을지도 몰랐다.
그것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 지속해서 세오레즈의 비리와 잘못된 관례들을 터트리며 상대의 이미지를 갉아먹어 왔지만, 그렇다고 아예 욕을 안 먹을 수는 없는 노릇.
하지만 해준은 고개를 저었다.
"지금 와서 그러기는 이미 늦었습니다."
자신을 눌러 앉히기 위해 실력과는 별개로 1군 등록을 말소함과 동시에 2군에 처박아버리는 방법까지 택했던 세오레즈.
프로야구선수에게 있어서 그것만큼 선을 벗어난 행위도 찾기 힘들었다.
'그걸 알아버린 이상 좋은 동행자가 되긴 힘들지.'
더군다나 자신이 여기서 정상적인 포스팅 계약을 체결한다면, 수백억의 자금이 구단 측에 흘러 들어간다.
그 말은, 그동안 수많은 잘못을 저질러온 이운요 사장 측이 그 자금을 바탕으로 선수협의 선수들을 회유하고, 법정 다툼에서도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다는 소리와 다를 바 없었다.
인제 와서 선택을 되돌린다는 것은 다른 선수들에 대한 배신이란 뜻이었다.
생각을 굳힌 해준이 말했다.
"게다가, 제가 선수 생활 동안 한국으로 돌아올 일은 없을 겁니다. 은퇴한다 해도 메이저리그에서 할 테니까요. 그때까지 한 20년쯤 걸리겠네요."
그 단단한 자신감에 행크 그린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렇지. 자네라면 그렇겠지. 다만, 에이전트로서 조금은 걱정이 들어서 해본 말이었소."
"그리고, 에이전트라면 클라이언트의 선택을 따라야죠."
"그 말도 맞지."
결정을 굳힌 행크 그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는 사무실을 한 차례 둘러보았다.
지이잉-! 지이잉-!
팩스가 뜨거운 열을 동반하며 어마어마한 종이 뭉치들을 쏟아내고 있었다.
그것을 분류하고 있는 그린 코퍼레이션의 스태프들. 저 모든 것들이 해준의 포스팅 소식을 접한 구단들이 보내는 제안서였다.
에이전트로 완전히 전향한 오광녹은 그 제안서들을 살피며 감탄사를 터트렸다.
"다저스, 양키스, 레드삭스, 컵스... 캬, 그냥 명문구단이란 곳들은 다 오퍼 넣었는데요? 파이어리츠? 여기는 돈이 좀 모자랄 텐데."
그 말에 해준 또한 고개를 돌려 오광녹을 바라보았다.
'다저스, 양키스.'
서부와 동부의 최고 명문구단. 그곳들이 자신을 차지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장면. 해준이 물었다.
"금액은?"
"다저스... 8년 2억 3000만 달러?!"
시작부터 놀라운 금액. 하지만 그 뒤로도 줄줄이 믿기지 않은 금액들이 이어지기 시작했다. 오광녹이 떨리는 목소리로 금액들을 읽어나갔다.
"맙소사. 뭐야 이거. 양키스 7년 2억 1300만, 레드삭스 6년 1억 9000만. 파이어리츠는 4년 하고 2년 옵션으로 1억 5800만. 파이어리츠치고는 세게 질렀는데요? 컵스... 6년 1억 8500만!"
하지만 행크 그린이 오히려 부족하다는 듯이 말했다.
"초기 제안이 그 정도라면 아직 끌어올릴 폭이 크군. 다들 알았나! 2억 달러 이하는 생각할 필요 없어!"
"네, 보스."
"당연한 소리 아닙니까?"
스태프들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제안서들을 분류해나갔다.
행크 그린은 그 모습을 보고는 이어 말했다.
"자, 그러면 늦게 합류한 사람을 위해서 다시 한번 설명하지. 우리들의 목표는 간단하다. 계약의 보장 금액을 최대한 끌어내려! 100달러? 50달러? 10달러도 괜찮다. 대신 옵션 폭을 미친듯이 끌어올려라! 구단 측에서는 리스크가 낮은 만큼 얼마를 질러도 상관없을 테니 2억 달러 이하를 부르는 놈들의 제안서는 쓰레기통에 박아버려!"
그 말에 뒤늦게 합류한 한 직원이 당황하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이미 다른 직원들은 이 사실을 숙지하고 있는 듯, 덤덤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그만큼은 그럴 수 없었다.
"이건 그냥 고개를 못 끄덕이겠는데요. 보스. 반대 아닙니까? 보장 금액을 올리고 옵션 금액을 줄이는 게 우리들의 기본 전략 아니었습니까?"
그 말에, 행크 그린의 입꼬리가 크게 올라갔다.
그의 별명과 같이 상어와 같은 미소.
"아니. 이번에는 반대다. 포스팅이니까."
"... 포스팅?"
직원이 어리둥절하며 되묻자, 행크 그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계약 성사 시, 선수 측이 기존 소속 구단 측에 지불하는 이적료는 어떻게 산정하지?"
"그야 보장 금액의 일정비율을.. 잠깐."
그리고, 행크 그린의 말에 반사적으로 대답을 내뱉던 직원.
그는 무언가를 알아차리고 눈이 찢어질 듯 휘둥그레졌다.
"설마?"
그 반응에 행크 그린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래, 그동안 우리 클라이언트에게 엿을 먹인 놈들에게 크게 한 번 크게 한 방 먹여주자고. 그 자식들이 가져갈 수 있을 돈이라곤 파이브가이즈에서 겨우 한 끼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일 거다. 어쩌면 모자랄지도 모르지! 최소 3200만 달러? 그 기대감을 박살 내줘야지!"
보장 금액 1억 달러 이상의 계약이 체결된다면 최소 900만 달러 이상을 소속 구단에 지급해야 했던 포스팅 제도.
하지만 이런 식으로 옵션 쪽에 금액을 몰아넣어 버린다면 이야기가 달랐다. 전체 금액이 1억이든, 2억이든, 그 이상이 되든 간에.
'소속 구단 측은 단 한 푼도 가져가지 못할 수도 있어.'
훗날, 한미는 물론이고 미일 간의 포스팅 제도마저 뒤흔들어버린 포스팅 전략.
그것이 세상에 등장했다.
+++
11월 26일.
해준의 포스팅 협상 기간이 시작된 지 3일째.
본래대로라면 넉넉하게 30일의 협상 기간을 가지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이번 협상이 오래가지 않으리라 예측했었다.
"12월 9일부터는 플로리다에서 윈터 미팅이 예정돼있지. 어느 구단이나 그 전에 끝내려 들 거야."
굵직한 FA나 트레이드들이 논의되는 스토브리그의 큰 행사. 페이롤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한 해준의 영입을 그 뒤로 미룬다는 것은 원터리그를 포기한다는 소리나 다름없었고, 어느 구단이든 그 전에 협상을 끝내려 들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관계자들 사이에서 한 가지 기묘한 소문이 돌며 그 바람의 방향이 뒤바뀌었다.
"전액 옵션으로?"
"말도 안 돼. 선수노조가 그걸 두고 볼 리가 없잖아?"
"없기는. 당장 2022년에 진출한 쿄스케만 해도 보장 금액은 1000만 달러뿐이었고 나머지 1억 달러는 옵션 금액이었지."
"그거랑 이거랑 같나? 이건 뭐, 보장 금액이 없다 한 수준이잖아."
바로 행크 그린이 보장 금액을 모두 떨궈버리고, 오로지 옵션 금액으로만 계약을 진행한다는 소문이었다.
그래도 아예 보장 금액이 없는 건 아니라던데? 개막전 출장 보장 옵션 넣어버리고 개막전에 출장했을 때 500만 달러 지급 같은 조항들도 있다는 것 보니.
"사실상 보장 금액이잖아? 뭐하러 일을 그렇게 처리하는 거야?"
"듣기로는 미스터 강이 구단과 마찰이 심하다더군."
"... 아, 그렇다면 이적료를 한 푼도 주지 않기 위해서? 허. 그거 독한걸."
"그런 이유라면 선수노조도 납득 할지도 모르겠는걸."
그렇다 해도 옵션을 통해 사실상 보장되는 금액은 연간 1,500만 달러 정도. 연간 최소 3,000만 달러로 추정되던 해준의 몸값의 절반이었다.
물론 옵션을 다 달성하면 3800만 달러 정도로 추산된다고 하긴 하는데.. 경쟁이 붙으면 더 높아지겠지만 말이야.
"구단 입장에서야 어떻든 이득이잖아? 부진하다 하더라도 최소 1500만 달러만 지급하면 되니. 요즘 부진한 FA 선수들을 보면 그 정도야 애교 수준이지."
게다가 정말 옵션에 해당하는 성적을 올려주면..
"유니폼 판매량도 급상승할 테고, 각종 굿즈에 판매에. 허. 동양인 마켓은 잡고 가는 것이나 다름없어. 특히 최근 중국에서 반응이 좋다며. 어쩌면 옵션을 충당하고도 훨씬 이익을 남길지도 모르지."
당연히 이해득실 파악에 귀신 같은 메이저리그 구단들이 뛰어들지 않으면 이상한 노릇.
'이건 지를수록 이득이야!'
'소문으로는 타율 4할 달성 같은 말도 안 되는 조항들도 있다던데.. 달성하면 하는 대로 이득이고, 못한다 하더라도 돈이 안 나가지.'
'윈터시즌? 다소 신경이 분산되더라도 뛰어들 가치가 있는 모험이다!'
지금 상황은 말 그대로 밑져야 본전. 당연히 상황을 주시만 하던 스몰마켓 구단들마저 망설임 없이 경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익명의 관계자,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미스터 강의 몸값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폭등 중.']
[최소 3억 달러? 계약에 본격적으로 나선 메이저리그 구단이 최소 25개로 추정 중.]
[MLB 사무국 관계자, '아직은 말할 수 없는 이유로 해당 선수의 계약 총액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상승 중. 우리도 주시 중이다.']
[크리스 배그웰의 자신감? 블러핑? '당신들이 얼마를 지르던, 우리는 그 상상 이상일 것.']
그렇게 12월 19일.
주어진 포스팅 협상 기간이 다가오기도 전에 협상이 끝이 났고.
[단독! 그린 코퍼레이션 측, 이미 포스팅 협상 종료? MLB 역사상 최대 금액 계약설 돌아.]
[치열했던 포스팅 협상, 그 승자는?]
[강해준, 메이저리그 보금자리 정했다. 곧 행선지 발표 예정!]
곧 밝혀진 금액과 그 뒤에 드러난 사실에 한국 야구의 관계자들은 경악에 빠져들었다.
< KBO in 스토브 (3)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