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수에서 타자까지-70화 (70/137)

< 한국시리즈 (3) >

70. 한국시리즈 (3)

MBW의 중계박스와 스튜디오.

이 두 곳은 정적이 내려앉은 상태였다.

가장 먼저 자료를 건네받은 한재오 캐스터와 이도훈 해설위원.

이들은 뚫어질듯한 시선으로 리플레이 장면을 바라보았다.

기존의 리플레이 장면 위에 나타나기 시작한 스탯캐스트 폼. 한재오 캐스터가 먼저 더듬더듬 입을 열었다.

[... 네, 지금 시청자 여러분들도 보고 계시다시피, 이번 한국시리즈에서는 메이저리그와 같은 최신 추적 시스템이 적용됩니다. 타구,송구,주루. 수치상으로 치환할 수 있는 모든 플레이들이 구체적인 숫자가 되어 표시될텐데요.. 허, 이것 참. 이걸 뭐라해야할지.]

아직 화면상에 표시되지 않은, 미리 받아본 수치는 다시 보아도 믿기지 않았다. 메이저리그를 매일 같이 시청하는 그조차 이런 수치는 단 한 번밖에 보지 못했을 정도.

'그 오웬에 비견되는 속도라고?'

국내 팬들 사이에서는 짐승 어깨로 유명한 파이어리츠의 중견수 오웬 루이스. 방금 전 있었던 해준의 송구는 그와 비견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임팩트를 만들어내며 사람들의 의식을 강타했다.

리플레이 장면이 해준이 공을 잡는 순간에 고정됐다.

한재오 캐스터가 말을 이었다.

[네, 이 장면을 보시면 거의 담장 앞에서 잡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타구입니다. 3루 주자였던 이태곤 선수 또한 그 모습을 보고 태그업에 들어갔죠.]

그 뒤 다시 돌아가는 화면. 해준이 간결한 도움닫기를 거치고는, 그대로 공을 때려내자, 비어있던 스탯캐스트 화면에 수치가 떠올랐다.

[송구 속도: 172.3km/h]

동시에, 그를 주목하고 있던 시청자들의 채팅창에서 폭발적인 반응들이 이어졌다.

-?????

-172???

-잘못 나온거 아님?

-뭐야 이거 무서워;;

-미친 뭐임 이거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방송국에서 늦게 띄운 이유가 있었네 이거 믿을 사람 있음? ㅋㅋㅋㅋㅋ

메이저리그 공식 최고 송구 속도인 173.2km/h에 비견되는 기록. 당연하게도 믿지 못하겠다는 반응들도 있었다.

하지만.

[네, 지금 통계업체로부터 연락이 들어왔습니다. 프레임상으로 분석해도 이와 비슷한 수치가 나온다 하는군요. 수치는.. 오류가 아닙니다. 강해준 선수. 172.3km/h로 기존의 본인 최고 기록인 164.8km/h를 월등히 높은 상태로 경신해버립니다!]

한재오 캐스터가 더블 체크를 거쳤다는 사실을 말해주자, 야구팬들은 경악에 빠졌다.

-한국 선수가 172 ㅋㅋㅋㅋㅋㅋㅋㅋ

-진짜 할 말이 없네 레알 괴물인가?

-이건 약 빤다고 되는 것도 아님 ㅋㅋㅋㅋㅋㅋ 걍 레벨이 다르잖아.

-ㅋㅋㅋㅋㅋㅋㅋㅋ 메이저리그에서도 딱 한 번 나온 속도임 저게. 근데 그게 KBO에서 나오네?

-와, 진짜 현장에서 본 사람들 눈호강 제대로 했겠네 ㄷㄷㄷ

└ 현직 고척돔입니다. 치킨 다리 뜯느라 놓쳤습니다 ㅠㅠㅠ

빠른 송구도 150km/h대 중반에 머무르는 한국 야구에서 나온 170km/h대의 송구. 당연하게도, 경기장 내 야구 관계자들마저 입을 떡 벌린 채 고개를 젓고 있었다.

-그럼 여태껏 속도가 천천히 올랐던 건 우연이었던 건가?

-그럴 수도 있겠지. 사실 이 인식이 박히기 시작한 것도 코쿤스 전에서 나온 3어시스트 경기 이후였지. 그 뒤로는 제대로 뛰는 시도를 한 팀도 없었고.

-더히트는 뒷통수를 제대로 맞은 꼴이 됐어.

-그것 뿐인가? 1점이라도 뽑겠다고 죽자고 달려들었는데 어린아이 장난처럼 막아버렸으니 이젠 뛸 엄두도 못내겠지.

-172km/h... 괴물은 괴물이야. 마음먹고 던지면 이 정도는 된다고 무력시위를 한 거나 다름 없잖아.

그리고, 그 광경을 보며 충격에 빠진 또 한 명의 사람.

시카고 컵스의 부사장 겸 단장인 에디 진.

한국말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방송에 떠오른 수치만은 볼 수 있었던 그의 손이 잘게 떨리고 있었다.

'완.... 벽하다.'

모두가 해준의 송구 속도에 시선을 빼앗겼지만, 에디 진은 그보다 더욱 디테일한 것을 들여다 봤고 그만큼 흥분감에 휩싸인 상태였다.

'도움닫기, 글러브에서 공을 빼는 동작.. 공을 포구한 뒤부터 스로잉이 이루어지기까지 시간이 경악할 정도로 짧아. 그러면서도 속도는 그 오웬 루이스와 비견될 정도.'

정석 같으면서도 규격을 벗어난 송구.

외야에 저런 괴물이 자리를 잡고 있다면 희생플라이는 앞으로도 삭제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같은 지구인 파이어리츠의 중견수 오웬 루이스를 항상 탐내오던 에디 진으로서는 더더욱 해준에게 몰입할 수 밖에 없었다.

'아니, 어디 오웬 루이스뿐인가?'

배드볼히팅 기질은 게레로처럼 보이면서도, 타격 레벨 자체는 무결점으로 유명한 이스마엘과 비교된다. 수비? 비교할 수 있는 선수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고, 주루조차 센스가 넘쳐난다.

그야말로 퍼펙트 플레이어의 화신과 같은 모습.

꾸욱-

펜을 쥐고 있던 에디 진의 손아귀에 힘이 잔뜩 쥐어지며, 땀방울이 펜대를 타고 떨어졌다.

'반드시. 반드시 영입해야 한다.'

탐나는 선수는 스캐빈져와 같이 물어뜯어서라도 데려온다는 컵스의 에디 진. 그의 눈빛에 탐욕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

1회 초.

해준의 홈 어시스트로 이닝이 종료되자.

"come on--!"

맥스 프라이드는 그대로 주먹을 불끈 쥐며 기합을 내질렀다.

그리고는 이닝을 교체를 위해 마운드를 내려가며, 더그아웃으로 향하는 해준에게로 향했다.

"Hey, man! 도대체 방금 송구가 몇 마일이나 나왔던 거야? 이 괴물 자식! 지금이라도 투수에 도전해볼 볼 생각 없어?"

경기 도중이라 속도를 확인하지는 못했지만, 100마일을 훌쩍 넘겼다 해도 믿을만한 궤적.

하지만 해준이 고개를 저었다.

"매번 이렇게 못 던져. 정말 이 악물고 던진 거라서."

시즌 중에도 특수모듈 '더 레이저 맨'의 스택이 한계 출력까지 도달한 적은 없었다. 고작해야 3이 고작. 그만큼 어시스트를 기록할만한 상황이란 잘 찾아오지 않는다.

지금이야 스팀팩 효과로 한계 출력인 5에 도달한 상태였지만, 해준 이것마저도 오래 매번 써먹기는 불가능한 수준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어깨에 걸리는 과부하가 어마어마하거든.'

엔진이 오버플로우라도 되듯, 터지기 직전까지 몰아붙인 감각이 아직도 선명하게 뇌리에 새겨져있었다.

마치 여기까지가 한계라는 듯, 선이 그어진 느낌.

'괜히 한계 출력 스택이라는 단어가 쓰인 게 아니었어.'

시스템의 한계가 아닌, 자신의 한계라는 소리였다. 하긴, 조금만 생각해봐도 마법처럼 감각과 능력을 주무르는 시스템에게 한계가 있다는 것이 이상하긴 했지만.

'그 말은 언젠가 신체의 한계도 끌어올릴 기회가 찾아올 수도 있다는 소리지.'

해준은 의미심장한 생각을 떠올리며 전광판을 바라보았다.

[대구 더히트 0 : 0 서울 세오레즈]

'그나저나..'

둘째가라면 서러운 타선의 힘을 자랑하는 대구 더히트. 그들이 고작 1점을 짜내기 위해 이렇게까지 나왔다면, 이번 게임에서 점수를 내기란 상당히 힘들 것 같았다.

'저 0이라는 숫자가 상당히 오래갈 수도 있겠어.'

그리고, 그 생각은 맞아떨어졌다.

+++

"베이스 온 볼스-!"

1회 말.

마운드에 올라온 대구 더히트의 1선발.

배성환이 고의사구에 가까운 볼넷으로 자신을 내보내자, 해준은 자신의 추측이 맞아떨어질 것을 확신했다.

'역시.'

이번 시즌 35경기 등판 21승 8패 ERA 2.89 229이닝 255탈삼진 71볼넷을 기록하며 FA 1년 차에 본인의 최고 시즌을 기록한 배성환.

게다가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까지 완봉승을 기록한, 프라이드 강한 그가 자신을 거른다는 뜻은 명확했다.

'혹시라도 터져 나올 홈런을 어떻게든 피해가겠다는 소리겠지.'

물론, 그 뒤에 이어지는 타자들은 하나 같이 만만치 않은 이름값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부웅-!

"스트라이크 아웃-!"

따악-!

"아웃!"

퍼어엉-!

"스트라이크- 아웃!"

아직은 한 달간 이어진 공백 기간으로 실전 감각이 올라오지 않은 상태. 반면, 몸 상태가 최고조에 도달한 배성환의 구위에 세오레즈의 2,3,4번이 맥을 못 추며 물러났다.

그렇게 투수전으로 접어든 경기 양상.

이닝이 빠르게 사라지기 시작했다.

부우웅-!

[삼진, 또 삼진입니다! 오늘 최고의 구위를 뽐내는 대구 더히트의 배성환 선수! 에이스란 이런 것이다. 그걸 가장 중요한 한국시리즈 1차전에서 증명하는군요!]

한국 최고의 우완 선발 투수라는 것을 증명하듯, 압도적 구위로 세오레즈 타자들을 짓누르는 배성환.

따아악-!

[좌익수 플라이! 주자는 1,2루! 더히트가 아쉽게 이닝을 마감합니다.]

잦은 출루를 허용하긴 했어도, 그때마다 병살이 터져 나오며 위기를 넘기는 맥스 프라이드.

어떻게든 서로에게서 1점을 강탈하고, 지켜내기 위한 긴장감이 팽팽하게 당겨진 경기장의 분위기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1점. 1점만 내면 된다!'

'오늘 성환이 컨디션은 최고야. 완봉승도 무리는 아니다.'

물론 양측의 분위기가 완전히 같지는 않았다.

인생 최고의 호투 중 하나로 기록될 경기를 만들어나가고 있는 배성환. 그에 반해 맥스 프라이드는 뛰어난 구위에 비해 몰린 투구를 자주 만들어내며 종종 위기에 몰리고는 했으니까.

원사이드로 진행될 것이라던 세간의 예상을 깨고 경기를 주도해나가는 대구 더히트. 그들은 그 상황에서 어떻게든 1점을 가져오기 위해 호심탐탐 기회를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그동안에도.

"볼, 베이스 온 볼스!"

우우우우우우우-!

배성환은 경기가 중반을 넘어선 이 순간에도 해준을 볼넷으로 거르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쏟아지는 관객석의 야유에도 불구하고 무표정을 유지한 채 다음 타자를 맞이할 준비를 하는 배성환.

하지만 마냥 야유를 쏟아붓기에는.

KKK

그 뒤의 모습은 너무나 압도적이었다.

해준에게 도루를 내주고, 후속타자 장건우에게 안타를 허용하며 무사 1,3루에 몰렸어도, 배성환은 이어진 중심타선을 모두 삼진으로 처리하며 포효했다.

"좋았어!!"

그 모습에 해설마저 감탄을 터트릴 정도였다.

[어마어마한 투수전입니다! 그 어느 팀도 한 발자국도 물러서지 않군요! 한국시리즈라는 이름에 걸맞는 경기!]

[더히트가 철저하게 강해준이란 선수를 게임에서 배제하고 있네요. 무사 상황에서도 고의사구에 가까운 걸러내기. 그동안 강해준 선수가 더히트를 얼마나 괴롭혀왔는지에 대한 방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작전은 아직까지는 유효한 듯 보입니다! 강해준 선수에게 출루를 허용하고, 도루를 내주어도 끝내 점수는 내주지 않는 대구 더히트!]

이대로 가다가는 영원히 이어질 것만 같은 0의 행진.

"... 후우."

하지만 3루를 소득 없이 벗어난 해준의 표정은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다.

'곧 기회가 온다.'

머지않아 이 양상이 한계를 드러낼 것을 알고 있었으니까. 해준의 시선에 마운드를 내려가는 배성환이 담겼다.

흔들림 하나 없어 보이는 모습.

반면, 그 눈동자 속에서는 금방이라도 폭발해버릴 듯 활화산과 같은 감정들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그러니 분명 정면 승부를 해온다.'

자존심을 억누르고 3번이나 승부를 피한 에이스.

기세를 보니 4번이나 그럴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전까지는 점수를 지키는데 집중해야겠지.'

해준은 이닝 교대를 위해 우익수 글러브를 끼고 다시 그라운드로 나섰다. 이제 정규이닝 종료까지는 고작 3이닝.

배성환은 마운드를 내려가기 전, 반드시 한 번은 승부를 걸어올테니까.

그렇게.

퍼어억-!

[캐치! 강해준 선수가 외야를 가를듯했던 타구를 여유롭게 처리합니다! 하지만 더히트의 주자는 3루! 태그업을 하고...]

해준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충실하며 때를 기다렸다.

[... 뛰지 않는군요?]

---아아아아!

7회 초, 더히트 측의 관중석에서 다시 한번 터져 나오는 탄식.

이번 경기 들어 3번째, 3루 주자가 해준의 어깨에 막혀 득점을 기록하지 못하자 더히트의 팬들이 원성을 터트렸다.

-왜 3루에 주자가 있을 때마다 나오는 게 우익수 플라이뿐이냐!

-차라리 번트를 대라 새끼들아! 어쭙잖은 컨택 좀 그만하고!

이도훈 해설위원은 그 모습을 보며 대구 더히트의 이번 경기 컨셉이 스스로의 가능성을 잡아먹고 있음을 깨달았다.

'차라리 장타를 노리고 휘둘렀다면 점수가 났을지도 모른다.'

구위가 살아있긴 해도 몰린 투구가 유독 많은 세오레즈의 선발 맥스 프라이드. 평소의 더히트였다면 특유의 장타력으로 분명 몰아붙일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평소답지 않게 방망이를 짧게 잡고 컨택에 집중한 나머지 어중간한 공격이 이어진 오늘 경기.

거기에 더해 득점기회마다 터져 나오는 타구가 모두 우익수에게 향하는 불운까지.

'그리고 이런 경기는 보통..'

상대에게 그 흐름이 한순간에 넘어가기 마련이다.

그렇게, 잠시 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으랴아아앗!"

7회마저 삼진으로 마무리하며 7이닝 6피안타 1볼넷 4K 무실점으로 선발 역할을 톡톡히 해낸 맥스 프라이드.

당연하게도 8회 초, 세오레즈의 공격 이닝이 돌아왔고.

"스트라이크- 아웃!"

9번 타자를 삼진 처리한 배성환이 타석에 들어서는 해준을 노려보았다. 이제는 경기 후반. 이번에 승부하지 않으면, 이제껏 억눌러왔던 자존심을 회복할 기회가 없는 상황이었으니까.

씨익-

그리고, 그 순간.

'이제야 승부 할 마음이 생긴 건가.'

배성환의 시선을 맞받아친 해준.

드디어 자신이 기다리던 때가 왔음을 깨달았다.

< 한국시리즈 (3)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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