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수에서 타자까지-69화 (69/137)

< 한국시리즈 (2) >

69. 한국시리즈 (2)

서울 세오레즈와 대구 더히트 첫 번째 격돌.

그 치열한 싸움이 이루어질 고척돔.

MBW 방송국의 조용수 PD는 다리를 덜덜 떨며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10.10%.. 10.14%.'

조금씩 오르고 있는 시청률.

아직 방송이 시작하고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벌써부터 시청률 그래프는 역대 한국시리즈 1차전 시청률을 역전한지 오래였다.

2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노리는 대구 더히트.

압도적인 타선과 수비력으로 수준이 다른 경기력을 자랑하는 서울 세오레즈.

사실 이것만 보자면 다른 년도와 비교해 별다른 흥행요소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강해준이 있지.'

2026년 후반기부터 그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한 강해준으로 인해 이야기가 달라졌다.

후반기의 임팩트 하나만으로 KBO 역사상 전무후무한 전설이 돼버린 강해준.

그리고 그런 선수가 마지막으로 출전할 KBO 한국시리즈. MBW 스포츠국은 이번 방송에 상당한 신경을 쏟아붓고 있는 상태였다.

'이번엔 정말 제대로 간다.'

단, 그것은 타 방송사들 또한 마찬가지.

한국시리즈만큼이나 치열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조용수 PD는 비장의 수를 꺼내 들었다.

바로 메이저리그 경기에서만 볼 수 있었던 최신 추적 시스템, 일명 스탯캐스트.

'타구의 질, 송구 속도, 주루 속도까지 모두 추적해 구체적인 수치로 띄워준다. 메이저리그처럼 우리 방송국도 실시간으로 그걸 내보낼 수 있게 됐어.'

타석, 그리고 이닝을 거듭할수록 타구 속도와 송구 속도에서 차원이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강해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시청자들은 그 사실을 방송이 끝난 뒤 기사로밖에 접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지.'

급하게 제휴하느라 오버 된 제작비가 좀 걸리긴 했지만, 국장에게도 승인이 떨어졌으니 별다른 문제가 될 것은 없었다.

특별 해설위원을 초청하는데 그친 타 방송국에 비하면 앞서갈 수밖에 없는 상황.

'이번 시청률 1위는 우리다!'

꿀걱-

침을 한차례 삼킨 조용수 PD가 손을 들었다.

-스탠바이...

정적에 휘감긴 스튜디오.

-큐!

오랜 기다림 끝에, 사인이 떨어졌다.

+++

플레이볼!

관중들의 웅성거림을 뚫고, 구심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후우.."

마운드를 밟고 있는 세오레즈의 선발투수는 맥스 프라이드.

올 시즌 33경기 18승 11패 193이닝 201K, 그리고 3.12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한 명실상부한 세오레즈의 에이스.

그가 타석에 들어선 타자를 노려보았다.

대구 더히트의 리드오프 나선 타자는 올시즌 0.336의 타율을 기록한 우투우타 이태곤.

그는 긴장한 듯 숨을 몇 차례나 내뱉고 나서야 타석에 들어선 상태였다. 라인업을 살펴보던 전직 메이저리거이자 해설위원인 이도훈이 그 모습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더히트가 1차전부터 승부수를 걸었다.'

좌타자로 도배된 라인업을 고집하던 평소와 달리, 오늘 더히트의 상위타선은 모두 우타자. 부동의 3번 타자인 이신우를 제외하고는 중심타선과 하위타선도 모두 좌우가 섞여 변동이 이루어진 상태였다.

'이 변화는..'

이도훈의 시선이 외야, 우익수 글러브를 끼고 있는 해준에게로 향했다.

'강해준의 수비와 어깨를 피하기 위해서로군.'

더히트의 좌타자들을 저격해 2루수, 혹은 우익수로 출전을 하던 해준. 올해 따라 유독 임팩트 있는 장면들을 많이 만들어냈던 만큼 더히트 측에서도 과감한 라인업 수정을 감행한 것이 확실했다.

'조용수 PD의 노림수에 살짝 차질이 생겼겠는걸.'

다만, 문제라면 세오레즈를 의식해 바꾼 라인업이 얼떨결에 방송국의 PD까지 저격해버렸다는 것.

조용수 PD로부터 방송 중에 새로 도입된 스탯캐스트에 대해 언급을 자주 해달라 부탁받았던 이도훈 해설위원으로서는 속으로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어시스트를 기록할수록 빨라지는 불가사의한 해준의 송구.

당연하게도 좌타자들의 당겨치는 타구가 해준에게 많이 향할수록 어시스트의 기회는 늘어난다.

하지만 오늘은 우타자와 좌타자들의 배치가 적절히 섞인 상황.

'한두 번은 나올지 몰라도..'

조용수 PD가 노린 것처럼 드라마틱한 송구 속도의 증가를 방송 화면에서 보여주기는 힘들어 보였다.

'그렇다면 기대할만한 장면은 타석뿐인가.'

이도훈 해설위원은 해준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긴장이 심한 듯, 숨을 몰아쉬며 세오레즈의 투수 맥스 프라이드를 노려보고 있는 1번 타자 이태곤.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던 이도훈 해설위원이 입을 열었다.

[이태곤 선수. 긴장이 심해 보입니다. 저런 경우에는 있는 힘껏 풀스윙을 해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긴장도 어느 정도 풀리고, 투수가 무심코 집어넣은 초구에 방망이가 맞는 경우도 종종 있거든요.]

한국시리즈의 단골손님인 대구 더히트였지만, 오늘 상대는 역대 최강 타선이라 불리는 서울 세오레즈. 9월에 들어서는 단 한 번도 꺾지 못했던 상대였으니 이태곤이 긴장을 하는 것도 이상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도 저렇게 티가 날 정도로 긴장을 하다니. 의외로군.'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시리즈 진출만 5번을 경험한 이태곤. 그가 저렇게까지 긴장감을 내보이는 경우는 드물었다.

맥스 프라이드도 그 사실을 눈치챈 듯, 자신감 넘치는 모습으로 스트라이크존을 향해 초구를 던졌다.

그 순간.

'응?'

따아아악-!

경쾌한 타구음이 울려 퍼졌다.

경기장 내 모두의 시선을 강탈하는 이태곤의 타구. 이도훈 해설위원 옆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던 캐스터 한재오 또한 특유의 하이 텐션 고음을 빠르게 터트렸다.

[초구! 쳤습니다! 있는 힘껏 당겨친 타구! 맥스 프라이드가 황급히 고개를 돌립니다! 쭉쭉 뻗어 나가는 타구!]

'노렸구나!'

조금 전까지와는 180도 다른, 확신에 찬 스윙.

이도훈 해설위원은 그것이 이태곤의 노림수임을 알아차렸다.

상대의 방심을 유도해서 공을 끌어들이고, 그대로 휘두른다.

'평소 더히트와는 완전히 다른 야구다.'

제왕답게 항상 크고 굵직한 모습을 보여주던 더히트의 평소 모습과는 너무나 다른 출발. 그런 이들이 이런 자잘한 속임수까지 쓰며 타격에 임했다.

이도훈 해설위원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렇게까지 한다는 건..'

텅-!

초장부터 어떻게든 몰아쳐 기세를 가져오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

그 사이, 빨랫줄처럼 뻗어가던 타구가 담장에 부딪혔다.

와아아아아아-!

시작부터 기세를 제압하는 타구에 대구 더히트 원정석에서 함성이 터져나왔다.

[담장! 손바닥 한 뼘 차이로 담장을 넘지 못하는 이태곤 선수의 타구!]

하지만, 달리는 내내 타구의 궤적을 쫓던 이태곤으로서는 아쉬움이 섞인 탄식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제기랄! 조금만 더 높았다면..'

정말 아슬아슬한 차이로 넘어가지 않은 타구.

하지만 이미 타석에서의 시간은 지나가 버렸다. 빠르게 미련을 버린 이태곤이 벤치를 바라봤다. 출루한 이상, 이제부터 주자로서 약속된 작전을 수행해야 하니까.

'아무튼 출루엔 성공했다. 그렇다면 다음은..'

확인을 바라듯 3루 코치를 바라본 이태곤. 벤치로부터 전달된 사인이 곧바로 이어졌고, 이태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뒤.

딱-!

[번트! 번트입니다! 대구 더히트! 장타를 버리고 보내기번트 작전을 택하는 대구 더히트입니다! 1점이라도 먼저 가져가겠다는 의지가 확고한 KBO의 제왕! 그만큼이나 이번 세오레즈가 강력한 상대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 같습니다!]

기다렸다는 듯이 번트를 대는 2번 타자 이윤성.

'이런 제기랄!'

포수 조진웅이 경악성를 터트리며, 재빨리 타구를 잡아 3루를 돌아봤지만 이미 상황은 한 발짝 늦은 상태였다.

'눈치챘어야 했는데!'

조진웅으로서는 대구 더히트가 번트를 시도할 정도로 심적으로 몰려있었는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 하지만, 당혹스러운 심정에도 불구하고 빠르게 1루로 송구를 한 조진웅.

-아웃!

이를 악물고 달려가던 이윤성이 아웃됐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선 타자는.

[이신우! 이신우 선수가 1회부터 득점권 찬스를 맞이하며 타석에 들어섭니다!]

더히트의 영원한 3번 타자, 이신우였다.

+++

1회 초 1사, 주자 3루.

원하던 상황이 찾아오고 이신우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 대구 더히트 코치진들의 주먹이 불끈 쥐어졌다.

'됐다!'

'여기서 공을 외야로만 띄워주면!'

'단숨에 1점을 가져온다.'

시작부터 맞이한 결정적 찬스.

더히트는 보내기 번트에 이은 희생 플라이라는 그들답지 않은 득점 루트를 선택했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류한열 감독. 그는 계산대로 돌아가기 시작하는 상황에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한국시리즈 1차전. 아무리 나름 타격 감각을 조율했다 하지만 세오레즈로서는 실전 감각이 떨어진 상태일 거다.'

5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팀의 책임자로서, 류한열 감독은 세오레즈의 상태를 어느 정도 꿰뚫어 본 상태.

'성환이의 컨디션이 바짝 올라온 것까지 고려하면 오늘 경기는 타격전보다는 투수전 양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반면, 플레인즈와의 1차전에서 완봉승을 기록하며 절정의 모습을 보인 더히트의 선발투수 배성환. 류한열 감독은 그를 보며 이번 경기의 테마를 결정했다.

'1점. 무조건 1점부터 뽑는다.'

그리고 그것을 지켜낸다.

류한열 감독은 외야를 힐끗 바라보았다.

그들에게는 재앙이나 다름없는 괴물, 세오레즈의 야수 강해준.

'전성기의 이신우라면 몰라도, 지금의 이신우는 극단적인 풀히터. 공을 띄운다 해도 강해준이 외야에 서 있는 이상 안타 확률은 극적으로 내려가겠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류한열 감독은 자신만만한 상태였다.

그에 대한 대비도 이미 계산에 들어간 상황이었으니까.

'저 괴물의 이번 시즌 최고 송구 속도는 163.3km/h'

강해준의 송구는 어시스트를 거듭할수록 빨라지고, 그 결과로 가장 빨랐던 송구 속도는 올시즌 KBO의 최고 송구 속도보다 8km/h나 빨랐다.

하지만.

'던질수록 빨라진다는 말은..'

류한열 감독은 확신했다.

'처음 공을 던졌을 때 가장 느리다는 말.'

아직은 1회.

이때만큼은, 아무리 강해준이라도 사람들의 기억 속에 새겨진 임팩트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을.

그렇다면 답은 정해져 있었다.

'이신우가 큰 플라이를 만들어내고, 이태곤이 뛴다. 이태곤의 주루 속도라면 무조건 득점이야.'

류한열 감독은 확신이 서린 눈길로 타석의 이신우를 바라보았다.

'홈런이 나오면 좋겠지만, 큰 플라이 하나만 쳐라. 그렇다면 득점이다.'

시작부터 날카로운 송곳니를 드러내는 대구 더히트.

예상치 못한 일격을 맞게 될 위기에 처한 세오레즈.

고척돔의 분위기가 팽팽하게 당겨지기 시작했다.

+++

'.. 그런 거로군.'

그 모습을 중계석에서 바라보던 이도훈 해설위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새 카운트는 3-2.

타석의 이신우는 어떻게든 타구를 멀리 띄워 보내버리겠다는 듯, 정확한 컨택에 집중하고 있었다.

따아악-!

"... 파울!"

이쯤 되면 무엇을 노리는지는 명확하다.

'모두가 강해준의 송구를 두려워하고 있을 때. 대구 더히트는 오히려 역으로 파고든 거야.'

모두의 예상을 보란 듯이 뒤엎어버리고, 해준의 견제에도 공격을 성공시켜 기세를 가져오겠다는 과감한 작전.

[.... 를 아슬아슬하게 벗어나는 파울! 이신우 선수가 아쉬워하는군요. 벌써 3번째 파울입니다. 타격하는 모습을 보자면.. 어떻게든 희생 플라이를 만들려는 의지가 강해 보이는데요. 이도훈 해설위원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재오 캐스터의 물음에 생각을 끝낸 이도훈 해설위원이 대답했다.

[안타, 홈런이라면 가장 좋겠지만. 일단 맞추는데 집중하는 걸 보니 희생 플라이를 치려는 의도가 명확합니다.]

그 말에 한재오 캐스터가 되물었다.

[하지만 올 시즌 강해준 선수의 어깨는 메이저리그에서도 상위권에 속하는 수준이라 정평 나 있습니다. 그 견제를 뚫고 희생플라이가 가능할까요?]

163km/h에 이르는 무시무시한 속도. 주자가 누구라도 뛰기를 꺼릴 것이 분명한 수치였다.

하지만 이어진 이도훈 해설위원의 말에, 방송을 듣던 모두는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강해준 선수의 송구 속도는 갈수록 빨라집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보죠. 갈수록 빨라진다는 소리는, 처음이 제일 느리다는 소리겠죠?]

[.. 아! 그렇다면.]

[네, 더히트는 강해준 선수의 송구가 가장 느린 타이밍을 노려 뛰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겁니다. 보내기 번트도 이미 그를 계산하고 이루어진 작전이겠죠.]

현장에서 야구를 보며, 스마트폰을 통해 중계를 듣고 있던 야구팬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그렇네. 1회의 강해준은 그나마 인간 같다는거지.

-대구 더히트 머리 잘 굴렸는걸?

-선취득점으로 기세를 가져오는 건 크니까. 히야, 갈수록 빨라진다는 거에 다른 구단들은 쫄아서 뛸 엄두도 못 냈는데. 대구 더히트가 그 빈틈을 제대로 찌르네. 그것 한국시리즈에서.

그리고, 그 사실이 퍼져나가며.

-좋아, 달려보자!

-강해준이라고 별거냐! 지금은 그냥 평범한 외야수 어깨지!

-신우야, 한 방 날려버려라!

희생 플라이가 나와도 뛰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며 조금은 기가 죽어있던 대구 더히트의 원정응원석 여기저기서 응원소리가 이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그 믿음에 보답하듯.

따아아악-!

[아아! 이번에도 큽니다! 하늘로 솟구치는 이신우 선수의 빅 플라이!]

이신우가 드디어 모두의 시선을 빼앗는 대형 아치를 그려내는 데 성공한다. 언뜻 본다면 희생 플라이를 넘어, 담장 너머로 넘어갈 듯한 기세.

하지만 아직은 1회 초.

한 달을 쉬며 체력을 끌어올린 맥스 프라이드의 구위를 완전히 억누르지는 못했는지, 타구가 갑작스럽게 죽으며 서서히 떨어졌다.

그리고는.

턱-

담장 앞에 자리를 잡은 해준에게 공이 잡혔다.

'.. 나도 늙었나.'

그 모습에 허탈한 웃음을 지은 이신우. 하지만 이미 그의 임무는 완수한 뒤였다.

"태곤아!"

그 사이, 이미 말하지 않아도 태그업에 들어간 이태곤. 그는 이신우의 타구가 담장 앞에서 잡히는 순간 이미 몸을 박찬 상태였다.

[이태곤 선수! 뛰었습니다!]

대구 더히트 팬들은 그 장면을 보는 순간, 잠시나마 드는 작은 승리감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았어!'

'이제 뛰기만 하면 선취득점이다!'

'그 괴물 같은 자식도 1회에는 이렇게 인간적이구나!'

그렇기에.

파아앗-!

타구를 잡아챈 후, 있는 힘껏 도움닫기를 하는 해준의 모습을 본 사람의 모습을 얼마 있지 않았다.

다만, 외야에서 해준에게만 시선을 집중하던 한 어린팬이 그 모습을 보고는 의아한 소리를 냈을 뿐이었다.

".. 어?"

으드득-

이미 도움닫기를 끝내고는, 있는 힘껏 어금니를 깨물며 오른발로 몸을 밀어내는 해준.

하체와 상체가 있는 반대 방향으로 꼬이기시작하며 탄성을 만들어내나 싶더니.

핑-!

폭발적으로 돌아가며 미친듯한 회전력과 함께 힘이 증폭됐다. 그와 함께 채찍처럼 휘둘러지는 팔스윙.

[이미 스택 출력이 한계에 도달한 상태입니다!]

[현재 레이저 출력 스택: 5]

경기 시작 전부터 이미 신체의 한계에 도달한 어깨가 오버플로우라도 터질 듯 어마어마한 기세로 회전하며 믿기지 않은 폭발력을 만들어냈다.

동시에 해준의 손끝에서 떠나는 공.

-어어어----!

-뭐야 저거!

그와 동시에, 뒤늦게나마 그 장면을 목격한 외야의 관중들에게서 경악 어린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외야에서 홈플레이트 사이 공간을 압축하듯 괴물과 같은 속도로 좁혀나가는 궤적.

공에 걸린 어마어마한 스핀량이 공이 가라앉기는커녕, 오히려 떠오르는듯한 착각마저 일으켰다.

'좋았.... 응?'

한편, 이미 뛰는 순간 득점을 확신했던 이태곤.

그는 눈앞에 자리 잡은 포수 조진웅을 보곤 인상을 구겼다.

'페이크라도 하려고?'

공이 도착하려면 아직 여유가 남은 상황.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진웅은 금방이라도 공을 잡아 자신을 태그하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쓸데없는 짓을..'

강해준의 송구는 분명 뛰어났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아니었다.

'.. 어?'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순간.

오싹- 하며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것 마냥.

슈우우우욱-!

그의 청각에 잡혀서는 안 될 소리가 잡히기 시작했다.

'이거 설마..'

누가 들어도 맹렬하게 회전하며 공기와 마찰을 일으키는 공의 소리. 동시에 그의 시야 밖에서 무엇인가 어마어마한 기세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

'잠깐..!'

경악성과 함께 자신도 모르게 몸을 날린 이태곤.

퍼어어어엉-!

동시에 들려서는 안 됐을 대포알 같은 포구음이 울려 퍼지고.

촤아아앗-!

슬라이딩으로 흙바닥을 스치며 이태곤은 눈을 질끈 감았다.

홈플레이트에 손이 닿기 직전, 팔뚝을 스치는 글러브의 느낌.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지만 이건.

"..... 아웃!"

아웃이었으니까.

----------!

경기장이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

MBW 방송국의 스튜디오.

꿀걱-

심판의 콜을 기다리던 조병수 PD.

"... 웃!"

그가 콜을 확인하고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좋았어, 어시스트 성공!'

주자를 잡아내는 홈 보살.

그렇다는 말은, 이제 다음에 있을 해준의 송구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할 것이라는 소리였다. 공의 위치와 속도, 스핀량을 추적하는 스탯캐스트가 활약할 시간이 다가온다는 뜻.

'.. 그런데..'

하지만, 결과를 확인하고 주먹을 편 조병수 PD는 아직도 등골에 남아있는 소름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해준에게서 쏘아지던 말도 안 되는 궤적.

도저히 160km/h 이하의 송구에서 나올 궤적이 아니었으니까.

'.. 이번엔 좀 많이.. 아니 미친듯이 빨랐던 것 같은데?'

그렇게 느낀 것은 자신만이 아닌지, 스포츠통계업체로부터 실시간 추적 결과를 넘겨받은 직원 또한 어벙한 표정으로 모니터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에 다급함을 느낀 조병수 PD가 외쳤다.

"뭐 하고 있는 거야! 어서 화면에 띄우지 않고!"

하지만, 직원은 무언가 잘못됐다는 표정으로 조병수 PD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 그게."

"그게?"

"아무래도 수치가 잘못 넘어온 것 같은데요."

그 말에 조병수 PD가 눈살을 찌푸렸다. 벌써부터 리플레이가 나가고 있는 상황. 이때 띄우지 않으면 자료가 나갈 타이밍은 놓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곧.

"... 뭐야, 이게?"

조병수 PD의 눈 또한 경악으로 물들기 시작했고.

".... 이거 오류 아냐?"

그런 반응은 현장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머리를 부여잡은 채 믿을 수 없어 하는 대구 더히트 벤치. 아직도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파악하지 못한 주자.

괴물 같은 송구를 목격하고 어마어마한 함성을 터트리는 관중들까지.

천천히 그 모습들을 담아내던 방송 카메라가 마지막으로 외야에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강해준을 천천히 클로즈업하기 시작했다.

[첫 번째 보살을 기록하였습니다.]

[이미 스택 출력이 한계에 도달한 상태입니다!]

[스택 출력이 더 이상 증가하지 않습니다!]

[현재 레이저 출력 스택: 5]

".. 후우."

그 열광과 열기가 쏟아지는 그라운드 위.

'이제부터 시작이다.'

그곳에 서 있던 야수는, 깊게 내려앉은 눈동자를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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