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슈퍼스타 (4)
1회 말 2사.
대구 더히트 파크는 기묘한 침묵이 내려앉은 상태였다.
"....후-"
지지직- 노이즈 섞인 앰프를 타고 울리는 거친 숨소리.
그 외에 대구 더히트의 관중석에서 들려오는 소리라곤 매우 작은 웅성거림뿐.
"...역시 시작하는군."
"이런 순간에 그 장관이 빠질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폭풍 전의 고요.
모든 것이 멎어버린 듯한 경기장의 광경을 보며, 프레스룸의 기자들은 무언가 다가올 것을 알아차렸다.
한국 역사상 최고의 슈퍼스타 이신우.
그가 타석에 들어선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대구 더히트 팬들이 침묵을 유지하고 있을 이유는 단 하나.
"슈퍼스타 콜."
"그게 나올 거야."
기대감을 끌어올리고, 경기장의 분위기를 휘어잡는 그들만의 응원 방식.
"후웁..후웁."
"..어서. 어서 가자."
그를 위해, 더히트의 팬들은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약속의 때가 오기를 기다렸다.
소란스러움을 억누르고, 또 억누른다.
그 소름 끼치는 고요함이 경기장에 퍼져나갔다.
꿀꺽-
'온다.'
'미쳐버리겠네, 이거 정말 싫다고.'
'귀라도 막았으면 좋겠다...'
그 속에서 어마어마한 압박감을 느끼는 세오레즈 선수들. 그들 또한 무엇이 올지 직감했다.
그리고.
펄럭-
대구 더히트의 응원단석.
그 위에서 금술로 치장된 깃발이 조용히 한차례 펄럭였다.
동시에 이어지는.
쿵-!
스파이크를 타고, 경기장을 뒤흔드는 진동.
이전까지의 팽팽했던 분위기는 장난이었다는 듯, 순식간에 그 몸집을 부풀리고 팽창시키는 경기장의 분위기.
그 속에서 해준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드디어 온다.'
댐을 무너트리듯, 쏟아져 내릴 어마어마한 압력.
홍수처럼 경기장을 휩쓸어버릴 그것에 휘말리지 않도록, 해준은 스스로를 다잡았다.
"후우..."
폐간에 머물던 뜨거운 공기를 내뱉는다.
피이잉- 묘한 이명음과 함께 복잡해지는 머릿속이 맑아졌다.
곧 있을 폭발적인 움직임.
해준은 그를 위해 집중력을 끌어올렸다.
그사이, 드디어 활짝 펴지는 더히트 응원단장의 손.
쿵-!
다시 한번 경기장이 흔들렸다.
그리고.
-----워!
한껏 내려갔던 역치를 단숨에 폭등시켜버리는 함성.
텅 비어있던 경기장의 침묵 속.
더히트 팬들의 응원소리가 폭발적인 기세로 퍼져나가기 시작했다.
----우!
단 두 번의 함성.
그것만으로 선수들의 이성을 앗아가 버리는 압도적 위세.
그 속에서 해준은 여전히 흔들림 없는 모습을 유지했다.
오히려 자세를 낮추고, 스파이크로 잔디밭을 짓누른다.
그리고, 더히트 팬들이 원하는 그 상황이 오기를 기다렸다.
'..저 사람이라면 분명 쳐낼 테니까.'
한국 최고의 프렌차이즈 스타, 이신우.
그라면 이러한 팬들의 함성에 보답할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그 때..'
먹잇감을 향해 뛰쳐나가기 직전의 야수와 같은 극한의 집중력.
동공이 수축된 해준의 눈빛이 순간 번뜩였다.
'그 최고조에 다다른 기세를 꺾어버린다.'
공기에 섞여 전해지는 관중들의 흥분, 긴장, 환호.
한껏 예민해진 온몸의 감각세포가 그 모두를 받아들이고, 동화하며 집중력을 한계까지 몰아친다.
"후우.."
그 속에서, 완전히 개화한 야수와 같은 수비 감각.
주변 음성이 짓뭉개지고, 배경이 일그러지며, 어마어마한 이명음이 뇌리를 관통했다.
동시에 폭등하기 시작하는 뇌 속의 시간주파수.
지이잉- 플로우에 들어가며 시작된 세상으로부터의 고립.
감각 자체에 필터링이 걸리며 수비에 방해되는 모든 감각적 노이즈를 배제해버린다.
그리고, 그 각성에 가까운 감각이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무언가를 감지해냈다.
따아아아악-!
멀리서 울려 퍼지는 단 하나의 파열음.
"흐읍!"
그 순간 해준이 반응했다.
뒤이어 높게 솟아오르는 타구.
관중, 기자, 스카우트, 야구 관계자들 모두가 그 하얀 궤적이 시선을 뺏겼을 때쯤.
콰짓-!
해준의 스파이크는 잔디밭을 짓뭉개며 움직임에 들어간 상태였다.
[빅 플라이! 이신우 선수의 타구가 하늘 높이 솟구칩니다! 우측을 향해 날아가는 타구!]
다른 구장이라면 큰 플라이로 끝났을 타구.
하지만 이곳은 한국의 쿠어스필드라 불리는 대구 더히트파크였다. 평범한 플라이도 마수걸이 홈런으로 둔갑시키는 투수들의 무덤. 그렇기에 사람들은 홈런을 직감했다.
'아슬아슬하지만...'
'넘어간다!'
'이건 갔어!'
이신우의 최소경기 50홈런.
코앞까지 다가온 그 순간에 경기장의 긴장감이 최고조에 도달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준은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타구 끝이 죽을 거다!'
십수 년간 쌓아온 경험, 폭주할 듯이 넘실거리는 감각, 뇌 속에서 번뜩이는 수많은 시냅스가 정보 수집, 해체, 분석, 재조합하며 타구의 도착지를 산출해낸다.
그리고 그 결과는 홈런.
하지만.
'잡을 수 있는 거리로 떨어진다!'
물론 다른 사람들에게는 자살행위나 다름없어 보이는 플레이였다.
펜스를 향해 오히려 가속력을 더하며 외야를 질주하는 해준.
[강해준 선수! 강해준 선수! 달리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펜스는 바로 코앞! 이대로 간다면..]
그 광경에, 팀을 가리지 않고 많은 팬들이 비명성을 내질렀다.
"어..어!"
"위험해!"
"멈춰!"
하지만 그 순간.
"흐읍!"
쿵- 소리와 함께 해준의 왼발 스파이크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잔디밭을 짓눌러버렸다.
치이이익-! 어마어마한 마찰을 일으키며 제동이 걸리는 움직임.
으드득-
그 뒤, 이를 악문 해준이 발을 박차자, 전진력이 그대로 수직 방향으로 강제로 치환된다.
파앗-! 동시에 허공을 향해 솟구치는 몸.
어느새 왼손의 글러브는 백핸드 상태로 담장 너머를 향해 힘껏 뻗어졌고.
---쿠웅-!
그 광경을 바라보던 사람들의 숨이 멎었다.
그대로 펜스에 가슴이 충돌한 해준.
"......"
"괜찮은가...?"
"..아웃?"
"넘어간 거 아니야?"
그리고, 침묵이 내려앉은 경기장.
멀리서 보기엔 판별하기 힘든 상황이었다.
하지만 곧.
"아웃!"
해준이 멀쩡한 모습으로 글러브를 들어 보이자.
--------와아아아아아아!
세오레즈 팬들의 함성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
"...허."
"이건.."
2회 초.
더히트의 공격 이닝이 종료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충격의 잔향은 더히트 파크를 떠나지 않고 있었다.
어젯밤 입국했던 클리블랜드의 스카우트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괴물이군."
화이트 삭스의 스카우트 또한 마찬가지였다.
"20-80스케일? 제길, 여기에 120점을 적어서 제출해버리고 싶을 정도야."
그만큼 해준의 수비는 충격적이었다.
타구에 대한 반응속도, 목표지점까지 가로지르는 어마어마한 주루 속도, NFL에서도 충분히 최상위권을 마크할만한 점프력, 그리고, 가장 믿기지 않는 것은.
"그걸 보지도 않고 잡아?"
타구 궤적 파악 능력.
클리블랜드의 스카우트는 믿기지 않는다는 듯 중얼거렸다.
타구음을 듣고, 솟아오르는 궤적을 보자마자 몸을 돌리고 달렸다. 그 뒤로는 펜스를 향해 돌진.
점프를 하고, 펜스에 충돌하는 순간까지 해준은 타구를 확인하지 않았다.
단지, 확신에 가득 찬 모습으로 백핸드 상태로 글러브를 뻗었을 뿐. 그리고, 거짓말처럼 홈런 타구는 그 글러브에 걸려들었다.
그리고, 그 경악 어린 수비는 상대팀 팬들의 기대감을 그대로 박살 내버리고야 말았다.
"분위기가 그냥 전쟁에 패배한 패전국 같군."
"그럴 수밖에. 슈퍼스타 콜. 그에 응답하듯이 홈런성 타구를 만들어낸 슈퍼스타. 하지만 정작 진짜 주인공이 화려하게 등장해서 그 판을 엎어버렸으니까."
"그러게 말이야."
하지만 더히트 팬들의 악몽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이번 이닝에서도 강해준이 타석에 들어서겠군."
8번 타순부터 시작하는 세오레즈의 공격 이닝.
1번 타자인 해준은 100%의 확률로 다시 타석에 들어설 예정이었다.
대구 더히트에게 있어서는 최악의 상황.
해준은 이미 4연타석 홈런을 달성한 데 비해, 그 어떠한 기록도 달성하지 못한 이신우.
다시 한번 정면 승부를 해야 한다는 소리와 다를 바가 없었으니까.
"투수가 흔들릴 수도 있겠어."
"괴물을 상대로 다시 한번 승부를 들어가야 한다는 사실이 어머어마한 부담이겠지. 더군다가 기록까지 걸려있다면 말이야."
그리고, 사람들의 말처럼 그 사실은 더히트의 선발투수 정태준에 상상도 못할 압박감을 안겨주고 있었다.
대선배 이신우의 기록을 사수해야 한다는 책임감.
그것이 그의 제구를 다시 한번 뒤흔들기 시작했다.
퍼엉-
"스트라이크!"
홈플레이트 가운데로 몰리기 시작하는 투구.
스트라이크가 되긴 했지만, 포수의 리드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 향한 궤적. 초구라는 이유로 그냥 보내기는 했지만, 그런 공이 다시 들어온다면 타자가 놓칠리 없었다.
그리고 곧, 다시 한번 투구가 몰리자.
따아악-!
8번 타자 조진웅의 배트가 공을 때려냈다.
[쳤습니다! 하지만..]
퍼억-!
"아웃!"
2루수 송도환의 글러브로 그대로 빨려 들어간 타구.
황급히 고개를 돌렸던 정태준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작부터 주자를 출루시킨다면 더욱 힘들어졌을 것이다.
"단순히 운이 좋았을 뿐이야."
"다음 타석에서도 저런다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의 여전히 정태준을 위태로운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제구가 흔들린 피네스 피쳐.
당장은 행운이 따랐더라도, 그다음 타석에도 그러리란 법은 없었으니까.
그리고, 당연하게도 다음 타석까지 그 행운이 이어지진 않았다.
따아아악-!
[쳤습니다! 9번 타자 한민곤 선수의 날카로운 라이너성 타구! 세오레즈가 다시 한번 주자를 출루시키는군요!]
어제 타격전에서 유일하게 별다른 재미를 보지 못했던 한민곤. 그가 이를 악물고는 배트를 돌린 것.
우익수 방향으로 터져 나온 그 안타.
"이런 제기랄!"
"그냥 투수 바꿔라!"
"공이 너무 몰리잖아!"
그 모습에 참다못한 몇몇 성급한 팬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단순히 안타를 허용했기 때문이라기보단.
[강해준 선수! 강해준 선수가 다시 한번 타석에 들어섭니다!]
해준이 압도적인 위압감을 풍기며 타석에 들어서고 있었기 때문.
1회에만 공수 면에서 어마어마한 충격을 연이어 안겨주었던 세오레즈의 야수, 강해준.
정태준의 동공이 미친 듯이 떨리기 시작했다.
툭-툭-
반면, 평소와 같은 루틴으로 스파이크 끝을 배트로 치는 해준. 최근 들어 물이 오른 타격 감각이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페이스가 좋다.'
사소한 호흡 하나, 스탠스를 잡는 감각, 자세에 들어가면 찾아오는 묘한 안정감. 더군다나 전 타석에서의 홈런으로 이미 타구 속도까지 올라간 상태.
모든 것이 완벽했다.
"후우."
한 차례 호흡을 내뱉으며 자세를 잡은 해준. 차분한 시선이 투수를 훑었다.
'제구가 흔들리고 있다라..'
예리하게 곤두선 감각, 날카로운 시선이 말하고 있었다.
불규칙한 호흡, 들썩이는 어깨, 떨리는 눈동자.
누가 보아도 저 투수는 크게 동요했다고.
'그리고 저런 상태에서는..'
어깨에 잔뜩 힘이 들어가기 마련.
투수가 투구판에 발을 올리자, 해준 또한 그에 맞춰 편하게 흔들리 거리던 배트의 움직임을 멎었다.
투수와 타자 사이에 흐르는 기묘한 정적.
그리고 곧.
파앗-!
더는 참지 못하겠다는 듯, 압박감에 쫓긴 정태준이 급하게 마운드를 박찼다.
그와 동시에.
'...이건.'
해준은 다시 한번 기묘한 감각 속에 빠져들었다.
세포 하나하나가 곤두서며 모든 것이 명료해지는 영역, 플로우. 이제는 수비와 타격. 분야를 막론하고 폭주하듯 제멋대로 자신을 느린 시간의 영역으로 이끌어버린다.
"스읍.."
투수의 리듬에 맞춰 천천히 호흡을 들이쉰다.
평소에는 짧기 그지없던 그것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동시에.
수십 개의 프레임으로 분할돼버리는 투수의 투구 동작.
머릿속에 사진처럼 박혀버리는 그 광경에 해준의 무의식이 저도 모르게 그 모든 것을 순식간에 파헤쳤다.
투구판을 밀어내는 축발, 다리가 쭉 뻗어짐과 동시에 이루어지는 스트라이드, 테이크백에 들어간 투구동작.
동시에 브레이킹에 들어간 정태준의 오른팔이 릴리스 포인트로 빠르게 뿜어져 나오며 하얀 궤적을 뿌려낸다.
그리고.
'몰렸다!'
그 궤적의 출발점을 보는 순간 드는 확신.
"흡!"
동시에 호흡이 끊어지며 정적 상태에 머물던 해준의 몸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콰직- 소리와 함께 배터박스 흙을 짓이기는 해준의 왼발 스파이크.
끼이이익-!
동시에 축발이 몸을 밀어내면서도, 단단하게 고정된 왼발이 벽을 형성하며 있는 힘껏 압축된 스프링처럼 힘을 축적한다.
그리고 그 힘이 임계점이 도달했을 때.
어금니를 꽉 깨문 해준의 허리가 폭발적으로 돌아갔다.
홈플레이트 정중앙.
그곳을 빛살처럼 갈라버리는 스윙 궤적.
'이건...'
동시에 손끝에서 느껴지는 형용키 힘든 감각.
해준은 확신이 담긴 마무리로.
'갔다!'
배트를 있는 힘껏 끌어당겼다.
< 배드볼히터 (1) *유료연재 시작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