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슈퍼스타 (3)
빼애앰-! 빼애애앰-!
8월 말.
아직은 매미가 있는 힘껏 목청을 울리는 대구 더히트 파크. 그곳에서 열린 더히트와 세오레즈의 3차전.
"외야수라."
파이어리츠의 스카우트 존 배쉬.
뜨거운 햇볕 탓에 눈을 가늘게 뜬 그가 해준을 바라보았다.
"역시 보통 선수와는 다르군."
베테랑 스카우트인 존 배쉬. 그는 해준이 우익수로 나선 이유를 단숨에 꿰뚫어 보았다.
"다른 선수였다면 알아도 하지 못했을 선택이죠. 포지션 이동이라니. 그것도 내야수에서 외야수로 말이죠. 하지만 저 선수는 특별하지 않습니까?"
다저스의 국제 해적이라 불리는 크리스 배그웰.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모두의 예상을 깨고 우익수 글러브를 낀 채 그라운드로 나선 해준.
그들이 보기에 그 이유는 너무 간단했다.
"가장 많은 수비 기회가 올 것으로 생각한 거겠지."
어젯밤 경기 7회 이후.
더히트 측이 허용한 9개의 아웃 카운트 중 8개는 플라이 아웃.
그중 6개는 우익수 방향으로 향한 타구였다.
문제라면 그사이 11개의 타구가 우익수 방향으로 터져 나온 안타가 되었다는 것.
당겨치기를 극단적으로 고집하는 더히트 공격의 진수가 드러난 경기였다.
그리고, 오늘.
해준은 우익수 글러브를 낀 채 그라운드에 나섰다.
"탄력을 받은 더히트의 타선을 정면으로 막아보겠다...라. 다른 놈들이라면 미친 소리 하지 말고 본래 포지션으로 돌아가라고 소리치겠지만.."
"미스터 강은 본래 이런 식으로 운용해야 가장 가치가 빛나는 선수죠."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타구가 가장 많이 향하는 곳에 가장 뛰어난 야수를 두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까.
하지만 한 가지 의문점이 남았다.
"어제 경기야 가운데로 몰리는 실투가 쏟아진 경기였지. 당겨치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어. 하지만 오늘 세오레즈의 선발은 맥스 프라이드란 말이야. 제구력이 나쁜 친구는 아닐텐데..."
"확실히 바깥쪽을 공략한다면 우익수 쪽으로 타구가 향할 일은 그리 많지 않겠죠."
제구력이 따라주는 투수라면 상대 타선의 입맛에 맞는 공을 줄 리가 없다는 것. 그 소리는 우익수 방향으로 향하는 타구의 빈도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곧 드러난 세오레즈의 작전은.
"....잠깐. 이거 설마?
"이건..."
그들을 경악하게 만들기 충분한 것이었다.
+++
1회 말.
"..후우."
타석에 들어선 더히트의 리드오프 구재철, 그가 뜨거운 숨을 내뱉었다.
올 시즌 타율 0.372 출루율 0.411 장타율 0.641. 34개의 홈런을 기록하고 있는 강타자.
끼이익-
그런 그가 배트 그립을 부술 듯이 쥐어 잡고 있었다.
'우익수?'
더히트의 타자라면 눈치챌 수밖에 없는, 명백한 의도. 구재철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평소 자신들을 상대로 2루수로 나서는 해준이 우익수를 본다는 소리는.
'외야로 향하는 타구들을 잡아내겠단 소리겠지.'
우익수 방향으로 터져 나오는 더히트의 장타, 그것를 억제하겠다 선언한 것이나 다름없었으니까.
구재철이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렇다면 그걸 의식한 내가 여기서 밀어치기라도 바라는 건가?'
간혹 그런 타자들이 있다.
시프트에 따라, 수비수에 따라 다소 수비가 약한 지역으로 공을 보내겠다 하는 타자들이. 하지만 구재철이 생각하기엔 그것만큼 미련한 짓도 없었다.
'타격은 오로지 정확하고, 강하게 때려내면 되는 거야. 그러기 위해선 당겨치기가 제일 자연스러운 스윙이다.'
잡힐 수 있다고? 메이저리그의 위대한 전설, 테드 월리엄스의 말처럼 그렇다면 담장마저 넘겨버리면 그만이다.
그렇게만 된다면 해준이 우익수에 있든 말든, 그것은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
'애초에 난 모든 타석에서 홈런을 노린다.'
활활 타오르는 눈빛으로 타격 자세에 들어간 구재철.
그런 그의 심정을 읽기라도 한 듯.
퍼어어엉-!
"스트라이크!"
세오레즈의 1선발 맥스 프라이드.
그가 몸쪽 공을 쑤셔 넣기 시작했다. 어디 당겨칠 테면 당겨 쳐보라는 듯, 도발적인 코스.
'이 자식들이...!'
그 도발에 넘어간 구재철이 이를 악물었다.
'그래. 그대로 당겨쳐주마. 그냥 담장 끝까지 넘겨버려주마.'
그리고 곧.
"흐읍!"
그의 배트가 있는 힘껏 당겨지기 시작했다.
+++
한편, 기자들이 몰려있는 프레스룸.
"...어?"
"설마?"
"허. 저런 식으로 나올 줄이야."
벽 한 편에 걸린 대형 TV, 그곳에서 맥스 프라이드 투구 코스를 확인한 기자들이 탄성을 흘렸다.
초구 때까지만 해도 그러려니 했지만, 그 뒤에 이어진 볼들은 전부 몸쪽을 노리고 있었다.
"당겨치기에 혈안이 돼 있는 더히트 타자들을 상대로 몸쪽 승부?"
"그냥 혈안이 돼 있는 게 아니지. 어제 봤잖아? 우익수 지역을말 그대로 그냥 폭탄이라도 퍼부어버린 것처럼 초토화시켜버렸으니까."
"그럼에도 굳이 몸쪽 코스를 고집한다는 건..."
누가 보아도 이상한 선택이었다.
그렇기에 기자들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혹시 구재철한테만 몸쪽 승부를 들어가는 건가?"
"굳이? 구재철이 몸쪽에 약한 것도 아니고, 오히려 미친놈 수준으로 강한 타자인데 말이야."
"그것보다는 오늘 세오레즈의 배터리가 몸쪽 공략을 투구 테마로 들고 나왔다는 것이 타당하지."
"하지만 저런 식으로 몸쪽에 꽂아 넣으면..."
"불꽃 튀는 타격전이 될 가능성이 높겠지."
"그렇다면 이신우의 타점 신기록 달성 가능성이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질 테고. 어쩌면 홈런 기록도."
언뜻 생각한다면, 이해가 되지 않은 선택이었다.
이번 경기의 포인트는 간단했다.
누가 먼저 대기록을 달성하느냐.
하지만 저런 행동은 상대의 기록 달성을 수월하게 만들어줄 뿐이었다.
"솔직히 이신우가 먼저 대기록을 달성해버리면... 더히트는 다음 타석부터 강해준을 상대해줄 이유가 없잖아?"
"이미 본인들 것을 챙겼는데 뭐하러 그러겠어? 대기록의 희생양이 되고 싶어하는 선수들은 없잖아. 더군다나 기존 대기록의 주인은 본인들 팀 소속의 최고 프렌차이즈 스타이자 전설인 이신우. 더더욱 상대해줄 이유가 없지."
"대놓고는 아니어도 교묘하게 거르려 들겠지. 안 봐도 뻔해."
당연하게도 기자들의 의문이 깊어졌다.
잃을 것은 많은 반면, 얻을 것은 별로 없어 보이는 몸쪽 공략.
퍼어엉-!
"볼-"
대화가 이루어지는 와중에도, 맥스 프라이드의 투구는 집요하게 몸쪽을 파고들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던 한 기자가 입을 열었다.
"잠깐. 그런데 공이 묘하게 높지 않아?"
"...그러네?"
"아직 경기 초반이잖아. 제구가 덜 잡힌 거겠지."
피칭존에 나타난 맥스 프라이드의 투구 로케이션.
한눈에 보아도 좌타자의 몸쪽 높은 곳에 집중적으로 몰린 상태였다. 한 기자가 말도 안 된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저게 제구가 안 되는 로케이션일리가?"
누가 보아도 의도가 섞인 코스.
잠시 침묵이 흘렀고, 구재철의 타격 데이터를 살피던 한 기자가 중얼거렸다.
"...이상하다."
그 중얼거림에 옆의 동료 기자가 대답했다.
"이상하긴 하지."
하지만 데이터를 살피던 기자는 고개를 저었다. 진짜로 이상했으니까.
"저 코스에서 구재철의 장타율이 얼만지 알아?"
"...글쎄. 시즌 장타율이 6할 4푼쯤이니까 조금 더 높게 잡아서 6할 9푼?"
돌아온 대답은 더욱 놀라웠다.
"7할."
"...그거 진짜 미친 수준인데?"
구재철의 몸쪽 코스 장타율에 놀라는 동료 기자. 옆에서 대화를 듣던 다른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면 더히트 타자들이 다 그렇지."
"타격 코치가 테드 윌리엄스를 신봉하다시피 하니까. 당겨치기만이 진정한 4할 타자의 길이다. 뭐 그렇다나."
"솔직히 강타자가 몸쪽만 죽어라 당겨치는데 그렇게 안나오는게 이상하기도 하고."
그렇기에 더욱 의문이 깊어졌다.
"세오레즈라고 그걸 모를 리가 없을 텐데 왜 몸쪽을?"
그럴수록 더더욱 몸쪽을 향해 던질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것만 본다면 그렇겠지.'
스포츠 베어의 허상필 기자,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몸쪽 승부를 고집하는 세오레즈 배터리. 누가 보아도 스스로의 목을 죄는 것이나 다름없는 행동이었으니까.
하지만, 뒤늦게 구재철의 타격 성향을 떠올린 허상필 기자는 그 이유를 알아차린 상태였다.
"스윙 궤적이 달라지니까."
그리고, 허상필 기자의 말에 기자들의 시선이 모여들었다.
"스윙 궤적?"
"그러고 보니 살짝 그런 것 같기도 하고.."
평소 어퍼스윙으로 유명한 구재철.
하지만 하이패스트볼마저 퍼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렇기에 구재철은 평소 높은 코스의 공, 특히나 몸쪽 코스에 공에 대해서는 다른 스윙을 가져가곤 했다.
"스윙 각도를 좁히고, 레벨 스윙으로 공을 때려내는데 집중하는 거지. 어차피 당겨치기니까 힘은 자연스럽게 실릴 테고."
이어진 말에 기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쓸데없는 힘을 빼고 정확성에 중점을 둔 레벨 스윙. 그게 오히려 장타율을 높아준거구만."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아있었다.
"그런데 그게 왜 몸쪽 코스에 던지는 이유가 되는 건데?"
장타율이 높아진다면 피해야 할 코스에 공을 던지는 맥스 프라이드. 허상필 기자는 그런 장면을 묘한 눈빛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구재철이 올 시즌에서 유일하게 홈런을 쳐내지 못한 코스니까."
"..홈런을?"
의외의 대답이 기자들이 놀란 기색을 보였다.
미친듯한 장타율. 하지만 오히려 홈런이 없다니?
"저쪽 코스는 샘플이 적어서 장타율이 높아 보이긴 하지. 고작해야 10타수 안팎이니까. 하지만 여러 데이터를 살펴보면 이야기가 좀 달라져."
"달라진다는 건.."
"구재철이 저쪽 코스에서 홈런을 뽑아내지 못한 건 샘플이 적어서 나오지 않는 게 아니라, 나오지 않을 수밖에 없는 타구 각도로 때려내서야. 그 결과가 장타는 나오지만, 홈런은 나오지 못하는 코스로 이어지고."
"그런 코스가 있나?"
한 기자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허상필 기자가 웃으며 대답했다.
"한 곳 있지 않나?"
따아아아악-!
그때, 구재철의 방망이가 경쾌한 파열음을 만들어냈다. 집요한 몸쪽 공략을 드디어 깨트려버린 것.
와아아아아아아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는 더히트의 팬들.
날카로운 타격음과 함께 타구가 순식간에 내야를 벗어났다.
파울 라인을 아슬아슬하게 타고 나가는 타구.
1루심의 손이 라인선상 안쪽을 가리켰다.
"페어!"
"아, 저곳이 있었지."
"확실히 타구질에 비해 장타가 나오기 쉬운 코스지."
그제야 기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우익 선상을 타고 빠져나가는 빠른 타구는 확실히 장타는 되어도 홈런이 나오기 불가능한 곳이었으니까.
하지만 아직 의문은 해결되지 않은 상태였다.
"그런데 저게 도대체 왜 몸쪽에 던질 이유가 되는..."
장타 코스를 허용하면서까지, 몸쪽 공을 고집하는 이유.
그 마땅한 이유가 없었다.
하지만.
'..잠깐.'
그 순간 무언가를 떠올린 프레스룸 내부의 몇몇 기자들.
'우익선상?'
그것을 떠올린 순간, 그들은 등골을 타고 퍼져나가는 소름에 온몸이 굳어버리고 말았다.
우익선상.
그곳에는..
[강해준 선수! 강해준 선수가 왜 저기서 나타나는 겁니까!]
세오레즈의 야수.
강해준이 있었으니까.
퍼어억-!
글러브 속으로 힘있게 빨려 들어가는 타구.
"흐읍!"
해준이 빠르게 글러브에서 공을 꺼냈다. 그와 동시에 이루어진 빨랫줄 같은 송구.
그리고.
퍼어엉-!
1루수 조병민의 글러브로 송구가 빨려 들어갔다. 우렁차게 울려 퍼지는 1루심의 콜.
"...아웃!"
간발의 차로 베이스를 지나친 구재철.
그가 어처구니없다는 눈빛으로 헛웃음을 터트렸다.
'도대체 왜 저기 있는 거야..?'
[강타자로 발마저 빠른 구재철 선수! 하지만 이어진 강해준 선수의 믿기지 않은 반응 속도! 우익수 앞 땅볼이 만들어집니다!]
귀신에라도 홀린 것 같았다.
몸쪽을 던지며 당겨치기를 유도한 적 배터리.
그것을 그대로 당겨친 자신.
그리고, 미리 대비라도 한듯이 나타난 해준.
모든 것이 누군가 짜놓은 계획처럼 흘러간 기분.
'...운이 좋질 않았어.'
그렇기에 구재철은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해준이 이 모든 것을 계획했다는 것은 믿기 힘들었으니까.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오늘은 2번 타자로 나선 후안 피네다.
그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도, 세오레즈 배터리의 선택은 마찬가지였다.
'또 몸쪽?'
'다만 구재철 같이 극단적인 케이스는 아니다.'
'높낮이를 조절해서 꽂는군.'
누가 보아도 당겨치기를 유도하는 세오레즈 배터리.
평소 성급하기로 유명한 후안 피네다가 그것을 가만히 지켜볼리 없었다. 오히려 있는 힘껏 허리를 돌리며 공을 때려버리는 후안 피네다.
따아아악-!
다시 한번 경쾌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이번에는 누가 보아도 안타 코스가 분명한 궤적.
우중간을 가르는 그 코스에 한재오 캐스터가 소리쳤다.
[쭉쭉 뻗어갑니다! 조금은 가운데로 몰린 공을 놓치지 않고 타격한 후안 피네다! 이 공은...!]
다시 한번 훅- 끌어올려진 경기장의 분위기.
더히트 팬들이 환호성을 준비하는 순간이었다.
'이번에야말로..!'
'출루다!'
1500타점까지 단 2점을 남겨둔 이신우. 후안 피네다를 홈런으로 불러들인다면 최소 경기 50홈런과 1500타점을 단숨에 경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콰짓-!
스파이크로 잔디를 짓이기며 몸을 날리는 야수가 있었다.
어느새 타구 근처에서 모습을 드러낸 해준.
[설마....!]
팔이 쭉 뻗어지며 글러브가 그 궤적을 가로막기 시작했다.
그리고.
퍼어어억-!
그 끝에 걸려들고야 만 타구.
[캐치! 캐치입니다! 후안 피네다 선수의 타구가 강해준 선수의 글러브 끝에 걸려들고야 맙니다!]
관중석에서는 비명에 가까운 탄식이 쏟아져 나왔다.
"말도 안 돼!"
"어떻게 저기 있는건데!"
안타성 타구를 두 번이나 도둑맞아버리자, 더히트 팬들의 웅성거림이 침묵 속으로 빠져들었다.
기자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프레스룸 안에 내려앉은 미묘한 침묵.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가능성이 다시 고개를 치켜든 탓이다.
'잠깐, 이거 설마..'
'구재철뿐만 아니라, 후안 피네다까지. 당겨치기에 능숙한 타자들에게 일부러 몸쪽을 계속?'
당겨치기를 선호하는 타자들에게 몸쪽 공을 던져주고, 대신 타구의 코스를 제한한다. 보통이라면 장타들이 터져 나와야 정상인 선택.
하지만.
'..그곳엔 강해준이 있지.'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강의 탑티어 야수. 강해준..'
쭈뼛-
외야에서는 다시 한번 괴물 같은 호수비로 안타를 뺏어낸 해준이 유니폼을 털며 일어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바라본 기자들은 머리카락 끝이 쭈뼛 서는 전율 속에 빠져들었다.
평소 해준의 압도적인 내야 커버력을 이용한 더히트 전용 시프트로 재미를 봤던 세오레즈.
그 외야 버전이 모습을 드러낸 순간이었으니까.
"말도 안 돼..."
"왜 평상시엔 몰랐지?"
"그야 강해준이 우익수로 출장하면 다른 팀들은 그 쪽으로 타구를 안 보내려 발악을 하니까."
말로 형용키 힘든 분위기가 경기장에 퍼져나갔다.
압도적 당겨치기 스킬로 폭발적인 타격을 보여주는 대구 더히트. 그들의 앞길에 어두운 무언가가 아른거렸다.
한편.
"드디어 이신우다."
"이신우의 차례다.."
모두의 기대를 모으고 있는 더히트의 넘버 9, 이신우.
드디어 그가 타석에 들어섰다.
그 순간, 착- 가라앉았던 경기장 내 더히트 팬들의 열기가 급격히 끓어오르기 시작했다.
웅성거림이 모여들고, 응원 소리가 높아지며, 응원단장 목소리가 타고 울리는 앰프 소리가 최대치에 올라간다.
그 일방적인 분위기 속에서, 스파이크 끝으로 잔디밭을 꾹꾹 눌러보던 해준은 고개를 들었다.
'왔다.'
다시 한번 그라운드로 몰아치는 열기.
그 와중에도 흔들림 없는 해준의 집중력은 조금의 빈틈도 허용하지 않았다.
압박감이 쏟아져내리는 외부로 흩어지기보다, 내부로 쏠리며 묘한 정명 상태의 정신을 유지하는 해준.
두 번의 연이은 호수비로 달궈진 몸.
폐간에는 뜨거운 공기가 들락날락하며 호흡이 거칠어진 상태였다.
"후우..."
해준은 호흡을 천천히 조절하며 감각을 조절했다.
'어디 한 번..'
그리고, 자세를 낮춘 채 고조시키는 집중력.
'다시 가볼까.'
몰아치는 열기 속.
해준의 눈빛이 번뜩였다.
'초장부터 선봉을 꺾어버린다.'
그에 반응하듯, 미친 듯이 날뛰기 시작하는 조짐을 보이는 감각.
그라운드 위 야수(野獸).
해준의 진면모가 다시 한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