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수에서 타자까지-57화 (57/137)

57. FA로이드 (1)

[서울 세오레즈 1 : 2 대구 더히트]

고요해진 대구 더히트 파크.

뚝뚝-

더히트의 팬인 한 남자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 사이 손에 들린 패트병에서 떨어져내리는 물방울. 하지만 그는 자신의 신발이 조금씩 젖어가는 것을 눈치채지 못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움직이지 않는 부채, 칭얼거리던 아이들의 시선이 돌아갔고, 바락바락 고함을 지르던 중년 남성의 목울대가 움직이지 않았다.

꿀걱-

아니, 이 순간 한차례 울렁였다.

정지 버튼이라도 눌린 듯, 온갖 소음이 자취를 감춘 채 모든 움직임이 사진처럼 고정된 경기장.

찰칵- 찰칵-

사진기자석의 몇몇 기자들만이 그 광경을 그대로 담아내고 있었다.

좌석을 가득 채운 팬들의 시선이 단 한곳에 쏠려있는 진귀한 광경. 팬들만이 아니었다.

더그아웃의 선수들, 불펜에서 몸을 풀던 투수, 프레스룸의 기자들, 중계석의 해설위원들까지.

경기장에 울려 퍼진 광포한 타격음이 신호라도 되는 양.

시간이 정지해버린 경기장.

그리고 그 안의 모든 시선은 경기장의 하늘, 그 중간을 가로지르는 하얀 궤적에 이끌리듯 따라 천천히,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텅!

모두가 그 마법 같은 순간에서 풀려났다.

전광판에 부딪히며 외야로 떨어져내리는 타구.

외야수가 그 타구를 힘없이 낚아챘다.

".......하!"

"후!"

그와 동시에 참았던 숨을 내뱉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한 번에 터져나왔다. 순식간에 경기장을 침묵 속을 빠져들게 만든 남자, 해준이 막 1루 베이스를 지나치고 있었다.

"넘어갔어."

"이건... 보자마자 알 수밖에 없잖아."

"제길, 태율이 완투승 날아가겠네."

"저건 타자가 너무 잘쳤어. 뭐라 할 말이 없을 정도라 투수한테 욕도 못하겠다."

승리를 코앞에 두고 날려버린 그 홈런에 화가 날 법도 하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 완벽했던 홈런.

대구 더히트 팬들은 조용히 투덜거리만 할 뿐이었다.

그 사이 1루 주자로 출루해있던 장건우가 홈플레이트를 밟았다.

[서울 세오레즈 2 : 2 대구 더히트]

동시에 올라가는 점수.

그리고.

짝-!

해준이 들어오길 기다리던 장건우가 홈플레이트를 밟는 해준과 손바닥을 맞부딪히자.

[서울 세오레즈 3 : 2 대구 더히트]

전광판의 점수가 다시 한번 움직였다.

---우와아아아아아아-!

3루 원정석의 세오레즈 팬들은 이미 눈이 뒤집힌 상황.

9회 초 1사.

패배를 눈앞에 둔 순간 터져 나온 해준의 홈런. 세오레즈 팬들은 바락바락 악에 받치듯,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다.

"미쳤다아아---! 해준이 형, 사랑해요!"

"해준아, 내가 이거 보려고 서울에서 대구까지 내려왔다!"

"나도 일요일에 등산가자는 부장 생까고 야구 보러 왔다! 고맙다 해준아. 이 형은 내일 부장한테 털려도 여한이 없다!"

그 모습에 홈런을 허용한 안태율 또한 입술을 잘근 깨물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다...!'

완벽한 로케이션, 완벽한 낙폭, 완벽한 구속.

자신이 던질 수 있는 최고의 공.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준의 배트가 휘둘러지는 순간.

야수의 포악함마저 느껴지는 그 스윙에 안태율은 등골이 오한에 적셔지는 착각 속에 빠져들었다.

'물론 4번을 상대해서 홈런 한 방을 내줬을 뿐이야..'

야구를 하다 보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생애 첫 완투승을 목전에 두고 있던 안태율에게는 그 사실이 너무나 뼈아팠다.

'3번을 잘 막고 마지막 한 번을 막지 못해서...'

이번 경기 스포트라이트의 주인이 뒤바뀌어버렸다.

한편, 해준이 거대한 타구를 만들어낸 순간 벤치에서 벌떡 났던 대구 더히트의 감독 류한열.

그 또한 경기 종료까지 2아웃을 남기고 터져나온 홈런에 경악하기는 마찬가지였다.

'하필이면 승리를 목전에 앞두고...!'

팽팽하게 당겨지긴 했어도, 자신들 쪽으로 기울어져 있던 승기. 그것이 경기 종료를 얼마 남기지 않고 세오레즈 쪽으로 넘어가 버렸다.

아직 공격 기회가 한 번 더 남아있긴 했지만.

'...힘들겠지.'

류한열 감독은 다시 한번 게임을 뒤집기는 힘들다고 생각했다.

단순한 홈런이 아니었으니까.

경기장 내의 모두를 마법처럼 사로잡았던, 상대로 하여금 힘이 쭉 빠지게 만들어버리는 거대한 무언가.

강해준이라는 선수가 지닌 아우라가 9회에 들어서 경기장 내에 슬금슬금 퍼지고 있었다.

'..하지만 경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그렇기에 그는 더욱 흔들리지 않은 모습을 가장했다.

자신들은 대구 더히트.

패넌트레이스 1위를 압도적인 위치에서 수성하고 있는 강자들이었으니까.

아직 희망은 있었다.

'불펜은 내지 않는다.'

"스윙- 스트라이크 아웃!"

홈런은 허용했어도 여전히 구위가 살아있는 안태율. 그가 류한열 감독의 예측대로 세오레즈의 남은 공격 기회를 그대로 박살 내버렸다.

하지만.

따아아악-!

'...그래도 어쩐지 이럴 것 같더라니.'

9회 말, 대구 더히트의 마지막 공격 기회.

9번 타자 송도환이 날카로운 타구음을 만들어냈음에도 불구하고, 류한열 감독은 두 눈을 꼭 감아버렸다.

승리의 여신이 이번 경기 승자의 손을 들어주고 있었고, 그것은 자신들이 아니었으니까.

퍼어어억-!

총알처럼 빠져나가는 듯 싶었지만.

[4-6-3 병살!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강해준 선수의 미친 호수비가 또 한 번 터져 나오며 경기를...]

어디선가 튀어나온 해준의 글러브에 걸리는 타구.

이번 경기의 승리자가 결정됐다.

+++

[서울 세오레즈 3 : 2 대구 더히트]

승: 박철하 (1이닝 1피안타 무실점)

세이브: 우가람 (1이닝 1K 1볼넷 무실점)

패: 안태율 (9이닝 11K 1볼넷 4피안타 2피홈런 3실점)

[충격의 역전 투런포! 안태율 완투패]

[2경기 연속 홈런포 강해준. 다시 폭주하기 시작하는 장타 본능!]

[시즌 최고 구위, 그러나 뼈 아픈 한 방. 대구 더히트 1차전 패]

[대구 더히트 격파! 4연승 세오레즈, 2위 인천 플레인즈와는 3경기 차. 흔들리는 2강 체재.]

[세오레즈 마무리 우가람 1이닝 1K 1볼넷 세이브. 시즌 30세이브 달성.]

[안태율 '말도 나오지 않는다. 그 공은 내가 이번 경기에서 던진 최고의 커브였다.']

[홈경기 무적 행진 대구 더히트. 8회 이후 리드시 89연승 깨져.]

모두가 역대급 타격전이 될 것이라 입을 모았던 서울 세오레즈와 대구 더히트의 1차전. 하지만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듯, 이번 경기에서 두각을 드러낸 타자는 단 3명뿐이었다.

4타수 3안타, 그리고 리드오프 홈런을 기록한 세오레즈의 미친개 이완석.

연타석 홈런포를 가동하며 이름값을 증명한 더히트의 넘버9 이신우.

그리고, 역전 투런포를 만들어낸 야수 강해준.

그렇다고 해도 네티즌들의 반응은 대단했다.

그 전부터 끊임없이 언급되던 주제.

강해준과 이신우, 이 둘 중 누가 더 나은 타자인가.

그것이 증명되기에 아주 좋은 판이 차려졌기 때문이다.

-강해준 마지막 스윙 봤음? 그냥 공을 쪼개버리던데 ㄷㄷㄷ

-안태율 커브 오졌는데 그대로 받쳐놓고 날려버리더라. 비거리 150m쯤은 나왔을 듯.

-150은 에바고;; 아무튼 오지긴 했다. 화장실 가려고 했는데 그거 보고 갈 필요 없어졌음.

-이신우도 쩔지 않았음? 나이 마흔에 연타석 홈런포 실화냐.

-연타석이 별로 놀랍진 않은데. 원래 몰아치기에 능한 타자라. 올 시즌만 5번째 연타석임. 그중 하나가 5연타석 홈런포 ㅋㅋㅋㅋㅋㅋ

대형 홈런포를 때려내며 세오레즈에게 승리를 안겨다 준 강해준.

연타석 홈런포를 만들어내며 스스로의 건재함을 알린 이신우.

최고를 가리는 것이 목적인 스포츠에서, 둘 중 누가 나은가를 가리려는 흐름이 등장하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

-솔직히 이신우는 은퇴하기 전에 잠깐 반짝이는 회광반조지. 이제는 갓해준의 시대다.

-뭔 개소리냐;; 지금 하는 것만 보면 5년은 더 하겠구만.

-5년? 니가 마흔 되봐라 5년이 뭐냐. 당장 내년도 모르는구만.

-그에 반해 강해준은 이제 25살임. 이제는 강해준의 시대라 봐도 무방하지.

-그거밖에 안 됨? 무지 오래전부터 본 것 같은데.

-강해준 루키 시즌부터 거의 주전 취급이었음 ㅋㅋㅋ 수비가 미쳤잖아. 경기 출장은 못 해도 1군 로스터에는 항상 붙어있었다.

-아무튼 이신우도 나이가 있고, 강해준도 올해 끝나면 메이저리그 가는 게 기정사실이니 올 시즌이 마지막이겠네.

-ㅇㅇ 누가 KBO 최고 타자인가. 그걸 가리려면 올해가 마지막이지. 솔직히 앞으로 20년은 이런 타자들 못 나온다고 본다. 니들은 운 존나 좋은거야;; 이런 타자들이 한 시즌에서 뛰는 걸 볼 수 있는 거니까.

그리고, 그런 네티즌들의 반응을 캐치한 공중파 야구 프로그램의 김재준 PD는 해설위원들에게 이 주제를 언급해줄 것을 요구했다.

'이 주제는 아무리 말아먹어도 평타는 친다.'

이미 다른 야구 프로그램에서는 출연자들이 열심히 이신우와 강해준의 스윙을 침을 튀겨가면서까지 비교하고 있었다.

전직 메이저리거이자 이번 프로그램의 해설위원으로 출연한 이도훈. 사실 그도 김재준 PD의 요구가 아니더라도 다른 이야기를 할 생각이 없었다.

'강해준과 이신우에 대해서 말을 안 하면 할 이야기 있나?'

인터넷의 모든 야구 커뮤니티도 이미 이 주제로 불타오른 지 오래였다.

유례없는 역대급 페이스를 만들어내고 있는 강해준.

야구 인생의 황혼기에 스스로를 불태우다시피 화려하게 빛나고 있는 이신우.

야구팬이라면 이 둘 중 누가 최고인가에 궁금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했다.

이도훈이 입을 열었다.

"사실 수비면에서는 비교할 이유가 없습니다. 누가 보아도 강해준 선수의 압승이죠. 굳이 이신우 선수뿐만 아니라 KBO 역사를 뒤져봐도 비교할 선수가 없습니다."

그 말에 유예인 아나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방송국 입사 1년 만에 야구팬들의 시선을 끄는 안정적인 진행능력과 매력적인 외모로 이번 프로그램의 진행을 꿰찬 재원답게 팬들이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녀가 물었다.

"그렇다면 MLB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이도훈 해설위원께서도 MLB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보내셨는데, 많은 팬분들이 강해준 선수의 수비가 MLB에서는 어떤 평가를 받을지 궁금해하거든요."

그 말에 이도훈이 고민의 여지가 없다는 듯이 단호히 대답했다.

"비교 대상이 없습니다."

"그 말씀은...?"

"제가 야수 출신은 아니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확실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야수로서 강해준 선수는 그냥 어나더 레벨이에요. 천상계? 그런 말로도 설명이 힘듭니다."

자신이 원하는 대답을 끌어낸 유예인 아나운서가 속으로 살짝 미소를 지었다.

'여기서 조금 부정적인 여론을 물어보면..'

살짝 친 소금은 수박을 더욱 달게 만드는 법.

그녀가 말했다.

"하지만 몇몇 팬들은 MLB는 타구의 질과 타자들의 주력이 KBO와는 비교가 할 수 없을 만큼 레벨이 높다는 점을 들어 강해준 선수의 수비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뛰어난 선수는 될 수 있어도 원탑은 힘들다. 이런 의견이죠. 이에 대해서는.."

그리고,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도훈 해설위원이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타구질이요? 제가 거듭 말씀드려서 과장한다고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강해준 선수는 그냥 아예 다른 레벨이에요. 다른 KBO 선수들이 유인원, 그러니까 새끼 원숭이 정도라면 강해준 선수는 다 큰 성인 남성 수준의 격차가...아, 죄송합니다."

하지만 너무 흥분한 나머지 이상한 비유가 튀어나오고야 말았다. 이도훈 해설위원이 황급히 사과했지만, 채팅창은 이미 웃음으로 도배된 지 오래였다.

-노빠꾸 이도훈 선생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도훈: KBO 선수들은 원숭이 수준.

-존나 웃기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생방송에서 뭐라는거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MLB 출신이라 KBO가 우습게 보이는 듯.

-마이너리그도 애기들 리그라고 하시는 분인데 KBO도 비슷하게 보이겠지. 그런데 새끼 원숭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가끔 이 새끼들 뇌가 달려있나 이런 생각이 드는 플레이가 나오긴 하지. ㅇㅈ

-원숭이한테 글러브 끼워주면 야성이 살아있어서 타구에 더 잘 반응하지 않을까?

-원숭이가 야구가 뭔지는 알겠냐. 그래도 새끼 원숭이라니 너무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솔직히 강해준 수비 보면 비교가 안 되는 건 사실이긴 하지.

난리가 난 채팅창. 어서 화제를 전환하라는 김재준 PD의 손짓에 유예인 아나운서 말을 돌렸다.

"네, 강해준 선수의 수비가 뛰어나다는 말씀이셨습니다. 그렇다면 타격 면에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언급됐다.

사실 그 누구도 강해준과 이신우를 야수로서 비교한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이신우가 뛰어난 1루,3루 수비를 보여주긴 해도 상대는 그 야수 강해준이니까.

하지만 타격이라면 이야기가 달랐다.

모든 누적 타격 지표에서 1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이신우. 아무리 괴물 같은 페이스를 자랑하는 해준이라지만 그 세월의 간격을 뛰어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헛기침을 한 이도훈 해설위원이 말했다.

"타격의 비교라면... 솔직히 의미가 없다고 봅니다."

예상외의 대답.

그 말에 유예인 아나운서가 살짝 미간을 좁혔다. 두리뭉실한 대답이었으니까.

그녀가 차분한 목소리로 물었다.

"의미가 없다는 말씀은?"

"이미 두 타자 모두 타격에서는 완벽의 경지에 올라있다고 봐도 되니까요. 다만 스타일이 다를 뿐, 각자의 영역에서 독보적인 경지를 구축한 선수들입니다. A와 B. 둘 중 어느 알파벳이 더 낫냐고 말하는 것과 비슷한 거죠."

준수한 정확성과 버드나무 같은 부드러운 타격폼에서 뿜어져 나오는 압도적인 장타력의 이신우.

극한까지 끌어올린 정확성으로 장타율마저 끌어올린 이레귤러 강해준.

이도훈 해설위원이 보기에는 둘의 비교는 의미가 없어보였다.

하지만, 둘 중 누가 더 나은 선수인가.

그것만은 알 수 있었다.

"더 나은 타자가 아니라. 더 나은 선수. 그게 누가 될지는 확실합니다."

유예인 아나운서가 물었다.

"누가 된다고 생각하시죠?"

선출답게, 이도훈 해설위원의 정답은 간단했다.

"팀을 이끌고, 결국에는 우승시키는 선수입니다."

야구선수들이 이를 악물고 뛰는 이유는 상대를 짓누르고 우승을 하기 위해서다. 그렇기에 더 좋은 선수는 우승하는 선수다.

그 말에 유예인 아나운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씀은.."

"네, 그렇습니다. 특히나 1위 대구 더히트와 3위 서울 세오레즈라면 더욱 그렇죠. 높은 확률로 포스트시즌에서 맞붙을 두 팀. 그렇다면 지금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이번 시리즈에서의 누가 상대를 이겨내고, 기선을 제압하냐. 이것이겠군요."

"그렇습니다."

그 말에 많은 네티즌들도 동의했다.

제아무리 시즌 성적이 좋아도, 결국 가을에 웃는 자가 진정한 승자인 법이니까.

-도훈이 형님 말은 무조건 맞다.

-타자로서는 결국 비슷하고, 선수로 보면 우승이 장땡이란 소리구만.

-비슷하긴 개뿔;; 후반기 성적만 보면 강해준이 압도적인데;;

-왜 후반기만 보냐? 이왕 보는 김에 6년 다 보지 그러냐? 아, 그러면 안 되지? 강해준 타율 1할대니까 ㅋㅋㅋㅋ

-그새 0할대를 1할대로 만들었다는 게 더 놀랍다;;

-그만들 싸워. 메이저리거가 타격으론 비교 의미 없다는데 뭘;;

-ㅇㅇ 결국 까봐야 안다는 소리임.

-애초에 시즌도 안 끝났는데 왈가왈부하는 게 웃긴 거지.

-그렇다고 해도 난 강해준이다.

-난 이신우.

-아니, 시즌 끝나려면 아직 한 달이나 남았는데 언제 기다려. 그냥 지금 정하자. 난 강해준.

-성격 급하긴;; 그리고 도훈이 형이 말했잖아.

-뭘?

-이번 시리즈 이기는 놈이 기선제압 하는 거나 다름없다고. ㅇㅋ?

-..아. ㅇㅋ.

세오레즈와 더히트의 2차전.

강해준과 이신우.

이 중 누가 팀을 승리로, 그리고 우승으로 이끄는 선수인가.

팬들의 시선이 다시 한번 대구의 더히트 파크로 쏠리기 시작했다.

한편, 범모동에 위치한 세오레즈의 원정 숙소.

해준은 스피커폰으로 슈퍼 에이전트 행크 그린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스카우트들이 많이 늘었더군요."

해준의 말에 스피커폰에서 행크 그린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런 소문이 터졌는데 몰려들지 않으면 더 이상하겠지. 일본이 베이스볼 골드러쉬라면 한국은 황금이 넘쳐난다는 엘도라도쯤 될까?

코쿤스 전보다 더욱 늘어난 스카우트의 숫자.

모든 것은 행크 그린이 미국에서 몰래 흘린 루머 덕분이었다. 세오레즈의 계약 불이행 사태와, 그로 인해 FA로 풀려나올 선수들.

상대적으로 일본에 비해 몸값이 싼 한국의 좋은 장타자들이 무더기로 시장에 나올 수 있다는 소식에 스카우트들이 몰린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행크 그린이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슬슬 한국에서도 기사들이 터져 나가기 시작할 거요. 준비를 단단히 하는 게 좋다고 생각되는군. 지금 잘나가고 있는 팀 분위기가 이런 스캔들에 박살나는 건 하루 이틀이 아니니 말이오.

문제라면 그로 인해 흔들릴 팀의 분위기.

한창 상위권 순위 싸움에 한창인 세오레즈로서는 이런 스캔들에 크게 흔들릴 위험이 있었다.

하지만 해준은 전혀 걱정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팀에 신경을 쓰지 않아서라기보단, 오히려 반대였다. 해준은 세오레즈의 선수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기에 해준은 자신 있게 말했다.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흔히들 팀의 결집력, 응집력을 우승의 원동력으로 들곤 한다. 팀배팅을 해야 승리를 거둘 확률이 높아진다고.

그리고, 이런 식으로 터져 나오는 스캔들은 팀의 분위기를 흔들고 팀의 결집력을 해치고는 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선례가 없어서 그렇지. 이건 분명 팀에 이득이다.'

FA.

그저 그랬던 선수가 단숨에 에이스로 탈바꿈하고, 2할대를 치던 공갈포가 345 슬래시 라인을 기록하는 무결점의 타자가 되도록 만드는 마법과 같은 단어.

"FA로이드라고 들어보셨습니까?"

해준은 개인이 아닌, 팀 그 자체에 FA로이드를 꽂아버릴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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