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수에서 타자까지-51화 (51/137)

51. Who is Kang? (4)

2026년의 메이저리그.

수많은 동양인들이 그곳에 진출하고 많은 업적을 남겼지만, 여전히 난공불락처럼 여겨지던 포지션이 있었다.

바로 내야수(Infielder).

-동양인 내야수? 유니콘 같은 존재지.

메이저리그 관계자의 말처럼, 메이저리그에서 동양인 내야수를 목격하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아시아의 거포라 불리는 내야수들이 연이어 진출하는 시기가 존재하긴 했다. 하지만 결과는 연이은 실패. 그리고 실망뿐.

단기적으로 성적을 낸 몇몇 케이스는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롱런과는 거리가 먼 모습들이었다.

자기 관리 실패로 몇 년을 한 경기도 나서지 못한다거나, 질이 다른 타구 속도에 대한 적응 능력, 송구의 정확성, 스피드, 그 모든 면에서 부족함을 드러내며 포지션을 전향했을 뿐.

그와 같은 케이스가 몇 번이고 반복되자, 메이저리그 관계자들은 동양인 내야수라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어깨가 약해서 힘들어."

"송구의 정확도만 쓸만해. 그 과정까지 다다르는 속도가 너무 느리군. 핸들링도 투박하고."

"피지컬은 좋은데 몸에 익은 수비 습관이 메이저리그와는 맞지 않아."

그리고 그런 시선은 지금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세오레즈와 코쿤스의 3차전.

메이저리그의 스카우트들을 단단한 편견으로 중무장한 채 그라운드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코쿤스 내야수들의 수비 모습에 혹평을 거듭하는 스카우트들.

하지만, 그런 그들조차 서울 세오레즈의 내야 수비를 보고는 감탄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기계가 돌아가듯 완벽해! 톱니바퀴 하나하나가 아름다울 정도야."

"수비 템포가 리그 수준을 벗어나 있군! 메이저리그 팀이라고 해도 믿기지 않을 정도인데?"

"사고 유연성이 대단해. 저기 저런 움직임을? 모두가 능동적인 움직임으로 서로를 커버하다니.. 저기 수비코치 이름 아는 사람 있나?"

주축인 강해준이 빠졌음에도 여전히 수준 높은 내야 수비를 자랑하는 세오레즈 선수들.

문제라면 정작 본인들은 지금의 모습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

'여기서는 이렇게 움직이라고 했지.'

'아, 조금 늦었다. 해준이 형 있었으면 커버됐는데. 제길, 조금 더 빨리 움직여야겠어.'

'평소보다 템포가 굼뜬데. 역시 해준이가 없어서 그런가?'

지난 6년간, 세오레즈 내야 모멘텀 그 자체였던 강해준.

그런 그의 움직임과 호흡에 익숙해져 있던 세오레즈의 내야수들이 타 팀과는 차원이 다른 수비를 자랑하는 것은 그다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일본의 수비수들과는 수비 스타일 자체가 달라."

"거침없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가는 걸 겁내지 않아. 다들 적극적으로 수비하는군."

하지만 본인들의 만족도와 그것을 지켜보는 사람의 평가는 다를 수밖에 없는 노릇.

한국 리그보다 수준이 높은 일본 리그에서 막 넘어온 스카우트들조차 세오레즈의 수비에 감탄을 내뱉을 뿐이었다.

그 광경에 이미 지난 몇 년간 한국을 들락날락하며 이 사실을 알고있던 몇몇 스카우트들은 아쉬운 표정을 지었다.

"일본에서는 이런 수비를 못 보겠지. 한국에서도 세오레즈 경기에서만 볼 수 있는 장면이라고."

"존재 자체만으로 팀의 수비 능력을 이렇게까지 끌어올리는 선수는 미스터 강뿐이겠지."

"오늘은 지명타자 출장인가? 아쉽군. 강만 있었다면 여기서 한템포 더 끌어올릴 수 있을 텐데."

그러한 그들의 반응에 일본에서 주로 활동하던 스카우트들은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오히려 헛소리를 한다는 듯 반응했다.

그들이 보기에는 이조차도 믿기지 않은 모습이었으니까.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고? bull shit. 말도 안 되는 소릴."

"물론 전체적인 피지컬을 떨어지지만, 수비 짜임새만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충분히 중위권 수준이야. 여기서 더 올라간다면 그건 KBO가 아니라 MLB 그 자체라고."

"우리가 일본에서만 활동하다 넘어왔다고 놀리는 거라면 그 정도만 하게. 그런 수비를 가지고 있다면 난 미스터 강이 0할 타자라 해도 강력하게 영입 의사를 타진해볼걸세."

그런 그들의 갑론을박을 보고 있던 파이어리츠의 존 배쉬.

스카우트들 사이에서도 안목이 높고 신랄하기로 유명한 베테랑인 그가 코웃음을 치며 쐐기를 박았다.

"MLB 그 자체? 웃기는 소리들 하고 있군. 강해준이 나선다면 그 순간 세오레즈의 내야진은 MLB에서도 보지 못할 영역으로 접어든다고. 그는 어느 포지션에 들어가도 그림을 완성시키는 마스터피스나 마찬가지야."

그 소리에 다른 스카우트들의 표정이 심각하게 굳기 시작했다.

'그 정도라고?'

'영상을 보면 그런 말이 나오기는 하지. 하지만 하이라이트 영상만 이어붙인 게 아니었나?'

'존 배쉬가 헛소리를 할 인물은 아니지. 광대처럼 떠벌릴 인물은 더더욱 아니고. 그렇다면 진짜라는 말인데...'

'저렇게까지 말한다면 아무리 못쳐줘도 메이저리그에서도 상위권의 수비 실력을 갖추고 있다는 소리겠지.'

'그렇다면 남은 건..'

타격뿐.

그들의 눈빛이 탐욕스럽게 번뜩이기 시작했다.

+++

'강해준은 이제 완벽의 경지에 다다른 타자다.'

스포츠 베어의 허상필 기자.

그가 기사 말미에 적은 말처럼, 해준은 KBO 내에서 적수가 없어 보이는 타자였다.

'기껏해야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한 이신우 정도?'

물론 시즌 성적은 아직 처참하다.

사자왕으로 불리는 이신우까지는 아니어도, 당장 같은 팀 타자인 유장천, 조병민 등이 더욱 화려한 성적을 자랑하니까.

하지만 해준의 진가는 시즌 성적으로는 결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제대로 평가받기에는 잠재력이 폭발한 뒤 반 시즌도 되지 않았다.'

전반기의 강해준이 그저 수비의 신이라면.

지금의 강해준의 야구의 신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었다.

게임 속에서 튀어나온 것 같은 발전 능력, 남들보다 두 배는 면적이 넓은 배트를 쓰는 것 같은 타율, 집중 견제에도 무너지지 않은 선구안, 몰아쳤다 하면 쓰나미 같은 기세로 몰아붙이는 장타율까지.

"단 한 가지 부족한 점이라면.."

성적으로 보이는 장타율에 비해, 실제 게임 파워가 부족하다는 것뿐이었다.

"프로 데뷔 이래로 제대로 된 타격을 해본 적이 없었으니 당연하다면 당연하겠지만..."

아마추어 시절까지만 해도 당장 30홈런은 가능하다는 평가를 들은 강해준이다. 그런 그가 타고난 힘을 뜻하는 로파워(raw power)가 부족할 리는 없었다. 문제는 타고난 힘을 게임에서 발휘하는 능력.

강해준에게는 지난 6년간, 그것을 갈고 닦을 기회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맞추느라 급급해서 있는 파워조차 억누르는 게 몸에 배어버렸겠지."

그리고, 대게의 경우 프로에서 그렇게 나쁜 버릇이 들어버리면 평생을 가도 고치지 못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강해준의 케이스는 완전히 달랐다.

"포텐셜이 어떤 방식으로 발전하면 저렇게 변하는지는 몰라도.."

파워를 억누르는 대신, 그 방향성이 컨택을 향해 극한으로 치달아버렸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 극과 극은 통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는 해준. 그는 오로지 컨택 하나만으로 장타율까지 높여버리는 이해 불가의 존재였다.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강타자, A로드의 말처럼 해준은 컨택이 왕이다(Contact is king)라는 것을 그대로 실현하고 있는 듯 보였다.

'정작 그 당사자는 맞추기만 하면 멀리 보내버릴 수 있도록 약물이나 빨았지만..'

해준은 그런 것도 아니다.

약물 해프닝 사건 이후로도 빈번하게 이루어진 전수조사와 표적 조사에서 아무런 반응도 검출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것도 이제 옛말인가.'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

허상필 기자는 대학의 한 구절을 떠올렸다.

매일매일, 하루가 멀다 하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유례없는 괴물 강해준.

따아아아아악-!

[강해준 선수! 한태웅 선수의 무실점을 깨트리는 2루타를 쳐내는 데 성공합니다!]

3회 초, 1사 1루에서 들어선 두 번째 타석.

한태웅의 슬라이더를 맞받아쳐 2루타를 뽑아낸 해준이 포효하고 있었다.

허상필 기자는 그런 그를 보며 태블릿에 실행된 어플리케이션을 바라보았다.

실시간으로 게임의 모든 측정 가능 수치들을 제공하는 스포츠 리니어의 어플리케이션.

그곳에는 해준의 타구 속도가 떠올라 있었다.

[168.38km/h]

"타구 속도가 또 올랐어."

해준의 올 시즌 최대 타구 속도는 166km/h.

지금의 화면에 떠오른 데이터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가 또 한 번 발전하고 있다고.

+++

[DOUBLE!]

[타구질 분류 HARD 판명]

[속도 168.38km/h]

[발사각도 14.7˚]

[캐치 확률 7.3%]

[특수모듈 - '스택형 타구 속도'가 발동합니다.]

[최대 타구 속도가 2% 증가합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

-해준! 강해준! 강해준!

해준의 이름을 연호하는 세오레즈의 팬들.

해준은 그 속에서 거칠어진 호흡을 가다듬으며 홀로그램을 확인했다.

"허억.. 허억."

[현재 누적된 스택]

*첫 번째 타석: 1%

*두 번째 타석: 2%

'좋아. 여기까지는 순조롭다.'

손끝에는 아직도 타석에서의 쳐낸 공의 감각이 흩어지지 않은 채 남아있었다.

그 어느 때보다 빠른 속도로 쏘아 보낸 궤적.

발사각도만 높았어도 홈런이 될 수 있는 타구였다.

"후웁.. 후웁."

그때의 감각을 머릿속에 최대한 박아두려는 해준.

해준은 그런 자신에게서, 서서히 무언가 올라오려는 감각에 사로잡혔다.

'좋아.. 이대로. 계속 가자.'

바닥을 치고 있던 타격 감각이 이제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다시 치고 올라올 기미를 보인다.

강제로 올라온 타구 속도가 그 계기가 된 듯 보였다.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닐지 몰라도, 프로 선수들은 그런 식으로 슬럼프에서 벗어나곤 한다.

운으로밖에 설명할 수 없는 텍사스성 안타, 내야수의 실책으로 인한 출루, 하다못해 낫아웃 출루까지.

여러 가지 이유로 막혀있던 물꼬가 사소한 계기를 시작으로 미친 듯이 터져 나오기 시작하는 것.

해준의 경우에는 타구 속도의 증가였다.

체력의 저하와 장타에 대한 부담감으로 미세하게 흐트러져 있던 타격 자세가 타구 속도가 증가하며 자연스럽게 되돌아오기 시작했다.

'다음 타석에서는 쳐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렇기에 해준은 확신했다.

이번에야말로 18경기 동안 이어져 온 무홈런 기록을 깨트릴 수 있다고.

'상대 투수가 일방적으로 피하지만 않는다면 그럴 수 있겠지.'

어느새 호흡이 돌아온 해준이 마운드를 바라보았다.

코쿤스의 선발 투수 한태웅.

온 힘을 다해 던진 슬라이더가 동점 적시타로 이어지자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그는 한결 난폭해진 시선으로 2루의 해준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 그래야지.'

그런 한태웅을 보며 해준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정면승부.

저 자존심이 강한 에이스는 자신을 피할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볼, 베이스 온 볼스!"

그 뒤 조병민에게 볼넷을 허용하긴 했지만, 5번 타자 김지훈에게서 병살을 끌어내는 데 성공한 한태웅.

"좋았어! 가자!"

그가 코쿤스의 분위기를 다시 한번 끌어올리며 더그아웃으로 걸어 들어갔다.

결국 이번에는 홈플레이트를 밟지 못한 해준 또한 아쉬움을 다시며 더그아웃으로 돌아갔다.

게임 스코어는 1-1.

코쿤스에게 1점을 내주자마자 따라잡는 데 성공한 세오레즈.

더그아웃 분위기가 조금씩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좋았어, 이대로 가자!"

"형, 타구질 좋던데요?"

"계속 잘 부탁합니다. 저도 출루하면 좀 불러 들여주세요."

하이파이브를 하며 수비에 나설 준비를 하는 선수들.

해준은 그들과 손바닥을 마주치며 홀로 벤치에 자리를 잡았다.

그동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어색함.

'수비를 안나간다니..'

해준과 함께 수비를 나가려던 장건우 또한 순간 움찔했다.

수비 이닝에 벤치에 앉아있는 해준의 모습이란 어색하기 그지없었으니까.

어느새 벤치에 앉아 수건으로 머리를 덮은 해준.

수비 이닝동안 끌어올린 집중력이 끊기지 않도록 홀로 무언가를 중얼거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평소보다 분위기가 더..'

그런 해준의 모습에 장건우는 목울대를 꿀걱- 한차례 움직였다. 수비로 경기의 템포를 만들어가던 해준.

그가 온전히 타격에 집중한 첫 경기.

'뭔가 터져 나올 것 같은 기분이야.'

보는 사람 또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오늘의 해준은 분위기가 살짝 달랐다.

장건우는 그라운드에 나서 자리를 잡고 나서야 그 분위기의 정체를 깨달았다.

'이신우?'

한국 역사상 최고의 강타자라 불리는 사자왕, 대구 더히트의 넘버9 이신우.

타석을 거듭할 때마다, 해준에게서 느껴지는 위압감이 그와 같아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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