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슈퍼 에이전트 (1)
[대전 팔콘즈 1 : 8 서울 세오레즈]
승: 임우주 (6승 5패 ERA 4.82)
패: 오스틴 토마스 (13승 6패 ERA 2.33)
[서울 세오레즈, 대전 팔콘즈 3연전 싹쓸이!]
[리그 ERA 2위 오스틴 토마스, 3과 1/3이닝 5실점으로 무너져.]
[야수Beast 강해준, 6타석 1타수 무안타 4볼넷 3득점 1 희생플라이.]
[강해준 상대 초구 스트라이크 비율 20.8%. 리그 평균 55.2%. KBO에 번지기 시작하는 강해준 공포증]
[투수들의 이구동성 '강해준? 정면승부는 멍청한 짓']
[24G 장타율 1.213. 유례없는 파괴력, 강해준 타격의 비결은?]
[야구 생태계를 파괴하는 2026 강해준, 비교 대상은 2004 배리 본즈뿐.]
[63승 51패 세오레즈, 패넌트레이스 3위 수성 성공!]
약물 사건 해프닝 이후.
세오레즈는 여전히 불타오르는 해준의 타격감을 앞세워 8승 2패를 기록한다.
이 시점에서 해준의 시즌 성적은 타율 0.163 출루율 0.292 장타율 0.329.
아직은 리그 최하위 수준이지만, 이를 얕보는 팀은 존재할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1군 복귀 후 24경기 성적은 타율 0.583 출루율 0.711 장타율 1.213.
OPS가 1.925 다다르는 괴물 같은 위압감을 뽐내고 있는 탓이었다.
문제라면 장타율이 10할을 넘어가는 덕에 정면승부를 택하는 투수를 보기 힘들어졌다는 것.
어설프게 스트라이크존을 공략하다 얻어맞는 것보다 볼넷으로 걸러버리는 게 이득이라는 소리였다. 그렇기에 최근 투수들은 볼을 던지는 것에 거리낌이 없었다.
"말도 안 돼요."
전력분석원 오광녹.
그가 분개한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그 옆에서 함께 데이터를 살피던 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말도 안 되긴 하지. 내가 배리 본즈라고?"
경기가 없는 날임에도 불구하고 구장 전력분석실로 출근 도장을 찍은 해준. 그는 실소를 지으며 기사를 읽고 있었다. 자신이 생각해도 믿기지 않은 한 달이었으니까.
「..2004년 4월, 샌프란시스코 소속 배리 본즈는 타율 0.472 출루율 0.696 장타율 1.132로 1.828의 OPS를 기록하기에 이른다. 이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물론 비교 대상은 아니었다.
자신은 어디까지나 KBO 소속. 그에 반해 배리 본즈는 세계 최고의 정점들이 뛴다는 메이저리그에서 기록한 성적이었으니까.
그렇다고 해도 현재 KBO 내에서 해준의 위상이 배리 본즈의 그것에 필적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아니요, 그거 말고요."
하지만 오광녹은 그 뜻이 아니라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그가 정작 화난 것은 따로 있었다.
"이준석 그 새끼 말이에요. 몇 번을 생각해도 빡치네? 어떻게 버젓이 고척돔에 얼굴을 들이밀어요? 와, 출입 금지도 안 됐을 줄은 상상도 못 했네. 프런트 이 새끼들 미친 거 아니에요?"
세이버 매트리션이자 야구 칼럼니스트 이준석.
그는 연이은 강해준 저격 기사로 세오레즈 팬들의 집중 공격 대상이 된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무슨 일인지 고척돔을 기웃거리고 있다 출근하던 오광녹과 마주친 것.
오광녹이 당장 그를 쫓아내려 했지만, 그에겐 그럴 권한이 없다는 된소리만 돌아왔을 뿐이다.
전력분석원일 뿐인 오광녹에게 그런 권한이 없다는 건 사실이긴 했다.
"...음, 뭐. 뻔뻔한 인간이긴 하지."
해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번의 분석 기사가 실패로 돌아가자, 재빨리 그 방향을 선회한 이준석.
이제는 최신 측정 장비로 측정한 데이터를 증거로 제시하며 자신의 스윙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고 있었다. 그 빠른 태세 전환에 피해 당사자였던 해준조차 감탄사를 터트릴 뻔했다.
"사막 한가운데 떨어트려 놔도 살아남을 사람이지. 그런 유형은."
"형은 화도 안나요?"
오광녹의 말에 해준이 피식 실소했다.
"0할 타자로 6년을 살아봐. 어지간한 일로는 멘탈에 흠집도 안가."
2할도, 1할도 아닌 0할.
한국프로야구가 출범한 지 40년이 넘도록 규정 타석을 꼬박꼬박 채운 0할 타자는 자신 한 명뿐이다.
그 말은 수비에서 어떤 모습을 보여주어도, 역적이 되기에 십상이라는 소리였다.
좋은 점은 어느 순간부터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나쁜 점은 매번 눈에 거슬리는 법이니까.
"....어, 그렇긴 하죠."
해준이 당한 일들을 떠올린 오광녹이 저도 모르게 수긍했다.
집 대문에 오물을 갈겨대거나, 술에 취한 사람들이 해준의 집앞에 곯아떨어져 있던 것은 애교였다.
화가 난다고 외야 수비를 보던 해준에게 소주팩을 던지거나(그 뒤로 출입금지 당하긴 했지만), 퇴근길에 치킨 상자를 던져대는 인간들도 있었으니까.
그에 비하면 이준석은 고작 데이터로 글자나 끄적였을 뿐이다.
해준이 주로 3년 차 이하 선수들이 들어가 생활하는 기숙사에서 머무는 것도 그러한 이유에서였다.
'결정타가 웬 미친 인간이 집 비밀번호 바꿔놓았을 때였지 아마?'
그건 어떻게 한 것인지 아직도 모른다. 관련 기술자가 안티팬이었구나 추측하는 것밖에. 경찰에 신고도 했지만 끝내 잡히진 않았다.
"그렇다고 저걸 그대로 둘 거에요? 아니죠?"
해준이 고개를 저었다.
"처리하긴 해야지. 계속 들러붙는 걸 가만히 둘 순 없으니까."
지금은 야구에만 집중하고 싶어서 신경 쓰지 않는 것뿐이었다.
오광녹이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이런 건 원래 구단에서 알아서 처리해야 되는데... 그럴 생각도 없어 보이고. 무슨 생각이죠? 아니, 생각이라는 건 하는 거겠죠?"
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 또한 에이전트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구하긴 해야 하는데..'
약물복용 해프닝이나 이준석 사건도 그렇다. 숙련된 에이전트가 있었다면 자신은 별다른 신경을 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게다가 신경 써야 할 일은 그것뿐만이 아니다.
'스폰서 문제도 그렇고, 소산 그룹 광고도 잡혀있는 데다... 세금 문제도 있고.'
미스터 올스타를 수상하며 졸지에 광고의 주연도 됐고, 스폰서 제의가 물밀듯 밀려 들어오고 있다.
게다가 가장 무서운 것은 세금.
광고 출연료까지 받고 나면 분명 수입이 폭등할 텐데, 도대체 얼마를 내야 하는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물론 세금을 제외한다면 앞서 생각한 문제들은 구단에서 처리해줄 법도 하다. 하지만 해준은 고개를 저었다.
'이젠 믿을 수가 없다.'
지금의 세오레즈는 자신이 처음 트레이드되어 왔을 때와 분위기가 달랐다.
겉으로는 드러나지 않았지만, 구단 관계자들 사이에서는 이운요 사장의 석연찮은 구단 운영에 대해 의문이 제기되고 있었다.
소문으로는 자금 문제가 복잡하게 얽혀있는 듯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구단이 선수를 보호하지 않는다.
해준은 이준석 사건에 대해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는 별개로, 구단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린 지 오래였다.
상대팀의 데이터가 떠올라있는 모니터를 바라보며 생각이 깊어질 때쯤.
"아씨.. 떡밥 뿌려놓는지가 언젠데 아직도 반응이 없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오광녹의 혼잣말에 해준이 고개를 돌렸다.
"응? 뭐라고?"
그 반응에 오광녹의 눈이 커지며 해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내저었다.
"...하하.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냥 썸 타던 여자애한테 신호를 줬는데 연락이 없어서요."
그 말에 해준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얘한테 썸녀가 있었다고?'
그건 말이 안 됐으니까. 현실 여자보다 게임 속 캐릭터를 더 좋아하는 오광녹에게 여자라니?
'...수상한데.'
해준은 눈을 좁히며 오광녹을 바라보았다. 무언가 숨기는 것이 있다면 지금 당장 내놓으라는 표정. 그 압박에 오광녹이 황급히 화제를 돌렸다.
"아무튼, 에이전트 구하실 거죠?"
그 물음에 해준은 찝찝했지만 일단 고개를 끄덕였다. 구하긴 해야 했다. 믿을만한 사람을 찾는 게 힘들어서 그렇지.
'에이전트한테 뒤통수 맞는 선수들이 한둘인가.'
답답하긴 해도, 이런 일은 타격폼을 건드리는 것만큼이나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한다. 오광녹은 그런 해준의 고민을 알고 있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럼 제가 한번 알아봐도 될까요?"
+++
해준은 최근 들어 간혹 이런 생각을 하곤 했다.
야구란 놈은 사실 성격 더러운 신이 지배하는 판이 아닐까 하는.
절대적 강자도, 절대적 약자도 없이 끊임없이 서로를 치고받게 만들어 결국은 진흙탕 속으로 처박고야 직성이 풀리는 그런 신이.
[3루 강습 타구! 3루수가 몸을 던져 막아냅니다! 그대로 2루, 1루! 5,4,3병살! 강해준 선수를 고의사구로 내보낸 코쿤스의 커티스 밀러! 1사 만루에서 병살을 끌어내며 스스로 위기를 극복합니다! 포효하고 있는 커티스 밀러!]
8월 10일 화요일.
육상부 코쿤스와 다시 마주친 세오레즈는 2선발 커티스 밀러에 꽁꽁 묶여있는 상태였다.
자신이 쳤다면 분명 주자를 불러들일 수 있었다. 하지만 코쿤스 측은 그 생각을 비웃기라도 하듯 해준을 고의사구로 내보냈고, 보란 듯이 병살을 잡아냈다.
-텅!
더그아웃으로 돌아온 해준은 답답한 마음에 헬맷을 거칠게 내려놓았다.
'이렇게 나올 줄은 알았지만..'
막상 당하니 상상외로 지독하다.
한동안 야구라는 생태계 속에서 절대적 강자나 다름없던 해준. 하지만 최근 들어 상대 팀들이 상대하는 전략을 바꾸기 시작하자 그 위치가 조금씩 흔들림을 느꼈다.
'제대로 된 스트라이크가 하나도 안 날아와.'
최근 자신을 상대하는 팀들의 전략은 간단했다.
바로 강해준이라는 타자를 철저하게 무시하는 것.
무사든, 1사든, 2사든. 카운트도 상관없다.
스트라이크존을 배제하고, 억지로 배트를 내면 범타가 나올 코스에만 공을 쑤셔 넣는다.
치면 범타고, 치지 않는다면 그냥 내보낸다.
공짜 출루이니 좋은 거 아니냐고?
'개소리.'
막상 당해보면 개소리도 그런 개소리가 없다.
장타율이 10할을 넘기는 페이스의 자신이다. 타수당 1루타 이상의 진루를 기대할 수 있다는 소리다.
그런 상황에서 볼넷으로만 출루한다는 것은 가진 실력보다 손해를 보고 있다는 소리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타격감도 문제였다.
'계속 이런 식으로 가다 보면 감이 죽어버리는 건 시간 문제야.'
타격감이란 놈은 예민하기 그지없어서, 조금만이라도 타격 싸이클이 내려가 버리면 온데간데없이 사라져버리기 일쑤다.
리그를 지배할 것 같이 쳐내던 타자들이 순식간에 추락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였다.
공을 '제대로' 쳐내야 타격감이 날카로워지고 유지되는데, 상대 투수들의 집중 견제로 볼볼볼- 이 이어지면 때려낸다는 감각 자체가 흐트러져버린다.
그렇다고 억지로 나쁜 공을 쳐 내면? 한두 타석이라면 모를까, 계속 그렇게 해버리면 기존의 타격폼이 무너지며 타격감 또한 곤두박질쳐버린다.
'공을 보기만 해도 문제, 억지로 쳐내도 문제...'
이대로라면 슬럼프에 빠질 것은 시간문제였다.
물론, 이 방법이 언제나 통하는 것은 아니다.
'후속 타자들이 살아나기만 한다면...'
자신을 무작정 거르는 것은 배의 데미지로 상대 팀에게 돌아간다.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9회 말, 3-4로 뒤지고 있는 세오레즈의 마지막 공격 기회.
해준은 어김없이 1루 베이스를 밟고 있는 상태였다.
"득근! 득근!"
"선배님 홈런 치면 저도 오늘부터 헬창합니다!"
"쇠질 함 가즈아!"
세오레즈의 헬창이자 머슬게이, 그리고 불도저.
여러가지 별명으로 불리는 1루수 김지훈.
후배들의 정성 어린 응원을 받은 그의 눈빛이 불타오르고 있었다. 반드시 쳐내겠다는 의지가 물씬 풍기는 비장한 스윙.
'오늘도 헬린이 3명을 이렇게 전도하겠습니다, 헬멘-'
마치 이렇게 말하는 듯한 분위기였다.
'책임 못 질 말은 하는 게 아닌데...'
그 광경을 보는 해준의 시선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저 사람한테 걸리면 어지간한 운동선수라도 반죽음이었으니까.
'뭐, 이길 수 있으면 상관없지.'
4위 코쿤스와는 겨우 2게임 차.
승차를 벌릴 수 있을 때 벌리는 것이 중요했다.
그리고 곧, 전도의 의지가 가득한 김지훈의 배트가 무지막지한 파열음을 일으켰다.
따아아아아아악-!
부서질 듯 때려낸 공.
미칠 듯이 쭉쭉 뻗어나간 그 궤적은 눈 깜짝할 사이에 담장을 넘어버렸다.
[이건 볼 것도 없습니다! 불도저 김지훈! 그가 이번 경기를 끝내버립니다!]
+++
경기가 끝난 뒤.
"내 이름이 뭐라고!"
"우! 우! 불도저 김지훈!"
"내일부터 뭐라고!"
"우..우.. 헬스...우.."
몇몇 선수들(주로 김지훈에게 잡힌 선수들)은 승리를 만끽하며 가벼운 회식 자리를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야, 해준아. 넌 안가냐?"
"오늘만 빠질게요. 전력분석실 가야 해서."
"그래? 하긴. 수고해라."
김지훈은 최근 해준의 고충을 알고 있기에 별다른 말을 꺼내지 않았다. 상대 투수들의 견제가 쏟아지는 것만큼 타자를 답답하게 만드는 것도 없었으니까.
'앞으로는 타격보다는 도루에 중점을 두고 분석해야겠어.'
해준은 곧장 전력분석실로 향했다.
내일부터는 경기 플랜을 크게 다르게 갈 생각이었다.
'역시 아직 다들 있네.'
다른 직장인들이라면 진작에 퇴근할 시간.
그에 반해 전력분석원들은 밤을 지새우는 일들일 빈번하다.
해준은 익숙하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응?'
하지만 오늘따라 유독 오광녹이 앉아있던 자리가 깨끗했다. 마치 퇴사라도 한 것처럼. 그의 책상에 가득했던 피규어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뒤였다.
"....얘, 어디 출장이라도 갔어요?"
해준이 다른 전력분석실 직원에게 물었지만, 전력분석실 직원은 오히려 몰랐냐는 듯이 대답했다.
"아.. 모르셨어요?"
"네?"
"오광녹 씨 오늘부로 그만두셨는데요."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