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오비이락 (2)
[KBO 입장 발표, 소문의 금지약물 복용 선수 파악 중. 근거 없는 소문들에 대해서는 자제 부탁.]
[약물 파동에 흔들리는 상승세? 어두운 표정의 S구단 선수들]
[모 구단 관계자, 예전부터 그런 소문이 돌긴 돌아.]
[한국 야구의 전설 김동운 원로 위원, '우리 땐 일상, 다 선배들이 못나서 그런 것. 그 선수에게도 선처의 기회를 줘야..']
경기 시작 3시간 전.
사태는 점점 브레이크 없이 내달리는 형국 속에 빠져들고 있었다.
-약쟁이 강해준을 퇴출하라! 한국도핑방지위원회는 당장 전수 조사를 실시하라!
-왜 여태까지 도핑 검사 안했냐?
-지금 도핑검사관들 큰 국제 대회 있어서 다 그쪽으로 갔다는 소문이 있던데.
-애초에 있어도 별 소용 없었음. 도핑 검사 하루 전날에 표적 검사 대상 2군으로 내려보내는 게 하루 이틀이냐?
-ㅇㅇ 구단들은 검사관들 언제 나올지 이미 다 알고 있음. 아니라고? 야구 하루 이틀 보나 ㅋㅋㅋㅋ
-야, 그것보다 저 원로 위원은 누군데? 노망난 거 아니냐? 약물러한테 선처의 기회 ㅋㅋㅋㅋㅋㅋ 뭔 똥 같은 소리를 내뱉고 있어.
-병먹금이요. 저 원로 위원 기사 30년 전거임. 무슨 고대 유물을 꺼내왔냐. 레전더리 아이템인줄.
확장되고, 비틀려지며 화마처럼 기세를 더해가는 반응들.
약물복용에 대한 거센 반발은 거대한 화마처럼 기세를 더해갔다.
"혹시나 그럴 가능성은 없겠지?"
이운요 사장은 그 반응을 유심히 살폈다.
강해준이 약물 복용자라는 사실이 밝혀진다면 포스팅이고 뭐고 다 엎어지는 것이 기정사실이었으니까.
전력분석팀장 김재훈은 고개를 저었다.
"일전에 유장천 선수 사건도 있었잖아요. 그에 관해서는 교육도 철저했고 관리·감독도 허술하진 않았습니다."
이미 스타 플레이어 유장천의 약물복용 의혹으로 한차례 곤욕을 치른 전적이 있던 세오레즈. 얼마 지나지 않아 헛소문으로 밝혀지며 일단락되었지만, 그 시기 동안 팀 분위기는 바닥을 쳐댔다.
이운요 사장이 미간을 찌푸렸다.
"여태까지 도핑 검사를 받은 적도 없고? 그거라도 받았으면 바로 발표했으면 됐잖아."
"강해준 선수가 1군에서 활약한 지 갓 2주가 지났습니다. 표적 도핑 검사야 2주 전부터 미리 계획이 잡히니 시기상 맞지 않고... 불시 검사야... NPCWBC가 있어서 말이죠."
이운요 사장은 아차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급성장하고 있는 아시아 보디빌딩 시장을 공략하기 위해 한국에서는 처음 열린 국제적 규모의 보디빌딩대회인 NPCWBC(NPC WORLD Bodybuilding Championship: 세계보디빌딩챔피언쉽). 본래 중국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이 대회는 모종의 사정으로 한국에서 개최되었고, 도핑방지위원회의 검사관들은 대부분 그쪽으로 파견된 지 오래였다.
"그래도 아예 하지 않을 순 없으니 검사관 한 명이 구장별로 돌아다닌다는데. 이제야 우리 구장 차례거든요."
"...그래, 그건 좀 다행이네. 그래서 지금?"
김재훈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이미 도핑 검사용으로 사무실 하나 내준지 오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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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강해준의 약물 논란을 둘러싼 의혹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을 때.
사건의 의외의 곳에서 해결된다.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낸 후 원정 지정 숙소로 돌아온 4번 타자 이근석.
그는 경기장으로 출발하기 전에 숙소에서 있을 미팅에 참석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형, 허리는 괜찮아요?"
마침 미팅 장소로 이동하던 유격수 허찬이 그를 보고 말을 걸어왔다.
이근석은 허리를 매만지며 대답했다.
"살짝 찌뿌둥하긴 하지만... 경기는 뛸 수 있을 것 같은데?"
허찬은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진통제가 잘 듣긴 했네요."
4번 타자 치고는 장타율이 낮은 덕에 욕을 먹고 있지만, 이근석은 주자를 불러들일 수 있는 확실한 카드 중 한 명이었다. 그런 그가 통증으로 경기를 빠진다는 것은 전력 면에서 어마어마한 손실을 불러왔다. 그때, 문득 무언가 생각난 허찬이 물었다.
"어, 맞다. 그러고 보니까 형 어제 잃어버리신 거 저랑 같은 거 맞죠? 옥시코돈."
"그렇지. 그러니까 그냥 먹었지 달랐으면 미쳤다고 먹었겠냐. 도핑 걸리면 망하는데."
이근석의 대답에 허찬이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으로 기사를 검색하더니 화면을 들어 보였다.
"혹시 이거 아니에요? 기자가 쓰레기통에서 발견했다는데."
스마트폰 화면에는 강해준의 약물 의혹을 제기하는 기사의 증거 사진이 실려있었다.
어디선가 많이 본 그 생김새.
이근석이 눈을 좁히며 자세히 살펴보았다.
그리고는 깜짝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어! 이거 내건 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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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준 약물 논란은 해프닝? 코쿤스의 4번 타자 이근석 것으로 밝혀져.]
[이근석 '치료 목적으로 사전에 허가받은 약물. 야구계 선배로서 후배가 괜한 오해를 받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어 스스로 밝혔다.']
[2시간 만에 일단락된 약물 논란. 해당 기사를 작성한 기자는 연락 두절?]
사건은 이근석의 빠른 대응으로 막을 내렸고, 가지각색의 반응들이 이어졌다.
-와, 갓근석. 그대로 둬서 세오레즈 분위기 개판 만들 수 있었는데 그걸 말해버리네 ㄷㄷㄷ
-말 안 하면? 꿍쳐두고 있다가 나중에 밝혀지면 세오레즈 팬들한테 어떤 꼴을 당하려고 ㅋㅋㅋㅋㅋ
-그나저나 강해준 존나 억울하겠네. 정작 약쟁이는 코쿤스에 있었는데.
-윗댓 뭔 헛소리냐? 치료 목적용 약이라잖아. 이근석은 허락 맡고 먹은 거야 ㅡㅡ;
-허락 맡고 먹으면 약쟁이 아니냐?
-그럼 약쟁이냐? 수준 하고는;;
-약쟁이든 아니든 코쿤스 팬들한테 억울하게 욕먹은 건 사실 아님?
그 소식은 막 경기 준비를 끝마친 강해준에게도 전해졌다.
마침 강해준과 인터뷰를 위해 몰려든 기자 중 한 명이 물었다.
"이번 논란에 대해 심정 한 말씀 해주시죠."
"...뭐, 이해는 합니다. 제가 그동안 너무 잘 친 탓이죠."
논란의 중심에 섰던 선수라고는 믿기지 않은 너스레.
기자들 사이에서 슬쩍 웃음이 터졌다.
"방금 도핑테스트도 끝마치셨다고 들었습니다. 내일쯤이면 결과가 나올 텐데 그에 대해서는?"
"문제 될 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당한 강해준의 모습에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마지막 질문입니다. 지난 2시간 동안 코쿤스 팬들에게 있는 욕 없는 욕 다 들으셨는데, 그에 대해서는 하실 말씀 있으십니까?"
그 질문에 해준은 무언가를 고민하듯 잠시 침묵을 지켰다.
어떤 쌍욕을 먹었더라도 프로 선수가 팬들에게 그대로 되돌려줄 수는 없는 노릇.
생각을 정리한 해준이 입을 열었다.
"코쿤스 팬분들의 반응은 이해는 합니다. 저라도 화가 났을 겁니다. 그러니까..."
기자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해준이 장난스럽게 이어 말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오해받은 만큼만 휘두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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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준, 약물 논란 해프닝에 대한 소감 '오해받은 만큼 돌려주겠다.']
인터뷰 기사는 곧바로 포털 사이트에 올라갔다.
수많은 팬들이 눈이 빠져라 기다리던 후속기사.
당연하게도 우후죽숙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사실상 코쿤스 투수들 학살 선언 ㄷㄷㄷ
-이해는 해도 참을 수는 없다. 그대로 돌려주겠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를 욕하는 건 이해할 수 있다. 대신 욕한 만큼 처맞아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어디서 곡소리 나는 것 같은데?
-해준이 형 욕해서 미안 ㅠㅠ 살살하자...
-그러게 진작에 나처럼 중립기어 박았어야지. 코쿤스 오늘 멸망각 ㅇㅈ?
-그럼 강해준 약쟁이 아닌 거야?
-약물검사도 받았다는데. 보통 꿀리는 거 있으면 경기에서 빠지거나 함.
-ㄴㄴ 그런 거 가지고 모름. 얼마나 뻔뻔한 새끼들 많은데.
-아무튼 강해준은 아닌 듯.
-야, 근데 이거 인터뷰 원문하고 살짝 다르지 않냐?
-그러려니 해라. 하루 이틀이냐.
그렇게 시작된 경기.
------텅!
첫 타석에서 해준이 때려낸 타구가 전광판을 강타했다.
시즌 3번째 리드오프 홈런.
그 광경을 보는 세오레즈 팬들은 속이 후련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해응징포 ㅋㅋㅋㅋㅋㅋㅋㅋ
-오해받을수록 강해짐! 죽어도 강해짐! 계속 강해짐!
-풀스윙 봐라;; 겉으로 내색은 안 해도 꽤 많이 화났나 봄;;
-해준이 형님 의심해서 죄송합니다 ㅠㅠ 이걸로 화 풀어주세요. 코쿤스는 착합니다. 근석이 형이 자백도 했잖아요 ㅠㅠ
-코쿤스 멸망각 코쿤스 멸망각 코쿤스 멸망각 코쿤스 멸망각 코쿤스 멸망각 코쿤스 멸망각
-골수팬들이 게임을 망치는 전형적인 예.
-그러게 왜 가만히 있던 애한테 욕을 박아서 빡치게 만듬 ㅠㅠ
그리고 두 번째 타석.
따아아아악-!
[쭉쭉 넘어갑니다! 몸쪽 슬라이더를 걷어 올려 좌측 담장을 넘기는 강해준 선수의 시즌 10호 홈런! 분노한 야수에게 아홉수 같은 장애물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해준이 연타석 홈런을 폭발시키자 팬들의 반응은 한결 더 거세졌다.
-또 넘어간드아아아아
-오늘 날 잡았네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오해는 개뿔. 나 욕했으면 그냥 맞고 뒤져라포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니 미친. 저걸 걷어 올린다고?
-솔직히 코쿤스 선수들이 무슨 잘못이냐? 이게 다 다짜고짜 욕 박아버린 팬들 잘못이다.
-그것보다 코쿤스 애들 반응이 더 웃김. 이근석 클로즈업 해준다 ㅋㅋ
-이근석 표정 봐라 ㅋㅋㅋㅋㅋㅋ
-아, 말하지 말걸. 딱 이 표정 ㅋㅋㅋㅋㅋㅋㅋ
그 모습을 바라보던 허상필 기자는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었다.
'잠자는 사자의 코털을 건드린 꼴이군.'
마치 내 사전에 안타는 없다는 듯한 풀스윙.
강해준은 차분한 모습으로 베이스 위를 돌고 있었지만, 그 눈빛만큼은 불타오르고 있었다.
말은 하지 않아도 약물복용 소문에 단단히 화가 난 것이 분명했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운이 좋았어.'
느닷없는 약물 논란이 상대팀 선수의 자발적인 대처로 풀릴지 누가 알았겠는가?
자신이 무언가를 손 쓰기도 전에 일이 알아서 해결됐다.
스타 플레이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3가지.
실력, 스타성, 운.
실력과 스타성은 의심이 여지가 없는 강해준에게 운마저 따르고 있다는 증거였다.
'하지만 다음에도 이런 일이 없으리란 법은 없지.'
스타 플레이어들이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사건·사고에 얽히는 것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다.
그때마다 운이 좋기를 바란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었다.
허상필 기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나저나 강해준의 상승세 정도면 알아서 접촉해올 사람들이 있을 법한데?'
국내 에이전트 자격을 갖춘 전문인은 200명을 훌쩍 넘긴 상태. 누군가는 접촉해올 것이 분명했다.
'이미 했을지도 모르고.'
허상필 기자의 생각이 깊어지고 있을 때.
돌아온 5회 타석.
따아아아아악-!
해준의 타구가 경쾌한 파열음을 울리며 또다시 담장을 넘어가고 있었다.
"허헛."
와아아아아아아아-!
관중들을 열광시키는 3연타석 홈런포.
허상필 기자는 그 광경을 바라보면서 저도 모르게 웃음을 흘렸다.
'일단은 즐겨볼까.'
아무래도 단단히 날을 잡은 듯했다.
+++
그 시각, 미국 보스턴에 위치한 그린 코퍼레이션.
그곳에는 슈퍼 에이전트이자 상어Shark라는 별명으로 유명한 행크 그린이 있었다. 그는 아시아 지사에서 보내온 보고서를 살펴보았다.
"강...이라."
일본에서 어마어마한 유망주들이 쏟아져 내리고 있는 판국이다. 그곳을 케어 하는 것만으로도 아시아 지사는 가용 인력에 여유가 없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도 굳이 한국에서 보고서가 올라왔다는 건..'
그만큼이나 큰 건수라는 뜻.
최근 성적을 본다면 일시적인 플루크일 가능성도 없잖아 있지만, 일단 수비만큼은 확실해 보였다.
행크는 의자 손잡이를 툭툭 치며 생각에 빠졌다.
'애매하군.. 애매해.'
타격 페이스를 이대로 이어간다는 가정하에도 애매하다. 놀라운 성적이긴 하지만, 포스팅을 신청한다면 고작해야 반 시즌짜리 표본으로 세일즈해야 한다는 소리니까.
그때, 무엇인가 생각난 행크가 수화기 버튼을 눌렀다.
"쟈넷! 혹시 크리스 그 자식, 아직도 프랑스에서 있나?"
다저스의 국제 해적, 크리스 배그웰.
행크는 유독 그의 행보에 민감했다.
'대형 선수가 에이전트를 구하기도 전에 구워삶아서 데려가 버린단 말이지.'
"잠시만요."
수화기 너머에서 무언가 뒤적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 대답이 돌아왔다.
"South Korea. 한국에 있네요."
그 말에 행크 그린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God damn it!"
그 자식이 벌써 한국에 들어갔다면 일이 어떻게 돌아갈지 불분명해진다. 템퍼링? 그런 것들을 일일이 지키는 남자였다면 괜히 별명이 국제 해적이겠는가?
선수를 영입할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는 남자다.
'그 자식이 손을 뻗치기 전에 하루빨리 강이라는 선수와 에이전시 계약을 맺어야 하겠어.'
그렇지않아도 조급한 성격의 행크. 그의 마음이 급해졌다. 강해준이라는 선수에 대해서는 긴가민가했지만, 크리스 배그웰이 달라붙었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선수를 보는 눈 하나는 단연코 세계 최고였으니까.
"나도 한국으로 간다! 당장 준비해."
행크 그린.
메이저리그 구단들 사이에서는 상어라 불리는 언론플레이의 달인이자 협상의 귀재.
그가 한국으로 눈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