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수에서 타자까지-31화 (31/137)

31. 별이 빛나는 밤에 (4)

어느 집단에나 승부욕 넘치는 사람은 존재한다.

축구를 하든, 게임을 하든, 하다못해 간단한 내기를 하든 어떻게든 이겨야만 하는 그런 사람이.

대구 더히트의 1선발 우완투수 배성환.

그 또한 마찬가지였다.

'무조건 받아낸다. 미스터 올스타.'

선수들의 동기부여에 있어서 역대 최고라 불리는 올스타전.

그리고 그 백미 중의 백미인 미스터 올스타.

한국 최고의 우완투수는 자신이 그 레이스의 최선두에 서 있기를 바랐다. 그 누구에게도 저 영광과 보상을 내주고 싶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그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올스타전의 선발 투수.

듣기에는 좋아 보일지 몰라도 그래 봤자 3이닝 정도를 소화하면 내려가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풀타석을 소화하며 경기에 계속해서 관여하는 타자에 비하면 매우 불리한 조건.

'...음, 그렇다면.'

남은 길은 짧은 시간 안에 강한 임팩트를 남기는 것뿐.

그 사실을 잘 알고 있는 배성환은 그 격차를 극복해내기 위해 다소 무리수를 감수하기로 결정했다.

와아아아아아-!

2구째를 던지기 전, 글러브에서 공을 쥔 손을 빼내 그립을 들어 보인 것.

카메라 감독이 황급히 줌인시킨 그 광경이 전광판을 통해 그대로 송출됐다.

당연하게도 이어지는 반응은 경악, 환호.

"지금 포심만 던지겠다는 거야?"

"심지어 삼진 예고인 것 같은데?"

경기장의 분위기가 순식간에 들썩이기 시작하자, 배성환은 속으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바로 이거지.'

해설위원들의 반응이라고 다를 것은 없었다. 그만큼 보기 드문 장면이었으니까.

[배성환 선수. 포심 패스트볼 그립을 들어 보입니다!]

[정면 승부를 하겠다는 소리죠. 이미 강해준 선수의 패스트볼 대응 능력은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까? 그걸 정면에서 짓누르겠다는 이야기입니다! 배성환 선수, 각오를 단단히 하고 나왔네요.]

그리고 이런 장면이 등장한다면, 사람들은 하나 같이 공통된 기대감을 가지기 마련이다.

바로 저 자신감과 압도적 구위로 삼진을 잡아내는 것.

타석에서 그 모습을 바라본 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한테 포심 패스트볼로만 승부를 걸겠다고?'

바보가 아니라면 받아주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배성환이 자신의 포심 패스트볼 구위에 자신이 있듯이, 자신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오르고 있는 새로운 감각을 믿었으니까.

지금이라면 한국 최고의 우완투수 배성환의 공을 충분히 쳐 낼 수 있다.

'일단은 한 번 더 지켜볼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아니, 할 필요도 없었다. 구종은 포심 패스트볼. 해준은 망설임 없이 타격 자세를 잡았다.

'조금 전 끌어올린 링크 활성화율은 89%.'

153km/h가 넘는 구속을 마크하는 배성환이지만 자신은 이미 최고 구속에 완벽하게 대처할 수 있게 된 상태.

상대하는 데 있어 부족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순간, 배성환과 해준의 시선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승부욕으로 불타오르고 있는 저 눈빛. 상대를 짓눌러버리겠다는 투쟁심.

'배성환... 확실히 이런 자신감을 내보여도 될만한 투수이긴 하지.'

작년, FA시장을 뒤흔들며 역대 투수 FA 최고액인 5년 120억을 받아낸 선수가 바로 저 배성환이다.

그리고 FA 1년 차, 그 기대에 부응하기라도 하듯 그의 전반기는 화려 그 자체나 마찬가지였다.

18경기 등판 14승 3패 128이닝을 소화하며 2.05의 ERA와 155개의 삼진을 기록하며 그 명성을 입증한 것.

그 압도적 구위를 증명하듯 9이닝당 탈삼진은 10개를 훌쩍 넘겼으니 자신감을 보이는 것이 이상하진 않았다.

해설들의 생각 또한 다르지 않았다.

[무모해 보이긴 하지만, 충분히 자신감을 내보일 수 있는 선수입니다. 불펜 투수 중에는 간혹 나오잖습니까? 짧게는 1이닝, 길게는 3이닝 동안 내내 패스트볼만 던져도 제대로 건드리기가 쉽지 않은 그런 선수 말이죠.]

[네, 그렇습니다. 배성환 선수라고 그러지 못하리라는 법이 없어요. 게다가 올스타전이잖습니까? 3이닝 정도를 생각하고 전력투구한다면 솔직히 어떤 타자가 와도 쳐내기 힘들 겁니다.]

그렇기에 모두가 배성환의 승리를 예상했다.

최근 들어 몰아치고 있는 강해준이라지만 활약한 기간은 고작 6경기. 몇 년 동안이나 압도적인 구위로 KBO를 지배해온 배성한과 비교할 수는 없다고, 모두가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배성환의 2구.

퍼어어억-!

이번에는 홈플레이트 바깥쪽이 찰나에 꿰뚫렸다. 돌덩이라도 던진 듯, 포수미트를 찢겨버린 것처럼 울려 퍼지는 포구 소리.

심판의 우렁찬 콜과 함께, 전광판에 구속이 떠올랐다.

"스트라이크!"

[153.27km/h]

와아아아아아-!

어마어마한 구위 탓에 140 중반대의 공을 던져도 150처럼 보인다는 배성환.

그런 그가 150을 넘기는 구속으로 타자를 압박하고 있었다.

[아... 과연 자신감을 보일만 한 구위입니다. 그 강해준 선수가 꼼짝을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어요.]

[공 끝이 살아 들어가지 않습니까? 지금 배성환 선수의 컨디션은 아주 물이 올랐네요. 지금이라면 메이저리그에서도 충분히 통할 것 같습니다.]

그에 비해 차분히 바라보기만 할 뿐, 배트를 내지 않는 강해준.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는 포기라도 한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만큼 미트를 파고드는 배성환의 구위는 너무나 압도적으로 보였으니까.

카운트는 0-2.

투수가 타자를 압살하고 있는 것처럼 밖에 보이질 않았다.

'확실히 달라.'

반면, 해준은 몰려버린 카운트에 대한 위기감 같은 것은 전혀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오히려 홈플레이트를 꿰뚫고 지나간 궤적을 되새기고 있었을 뿐.

'머릿속에 그려지는 궤적이 더 선명해졌다.'

감각 세포 하나하나가 전해져오는 정보의 질이 예전과 다르다. 첫 링크 때 이후로 느껴보지 못한 더 패스트볼 긱 본연의 감각. 그것에 가까워질수록 패스트볼에 대한 대응 감각이 날카로워지고, 더욱 정밀해지고 있었다.

그 어떠한 패스트볼이 날아와도 언제든지 쳐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자신감. 그것이 강해준이 2구째를 쳐내지 않고 보낸 이유였다.

확실히 궤적을 파악하고 나서 치더라도, 늦지 않으니까.

남들에게는 손도 대기 힘든 구위의 포심 패스트볼일지 몰라도, 해준에게는 어떤 카운트에서도 쳐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

더군다나, 방금의 공으로 상대 포심패스트볼에 대한 파악마저 끝났다.

한없이 올드스쿨 스타일에 가까운 포심 패스트볼.

그것이 해준이 배성환에 대해 내린 결론이었다.

'이전에도 알고는 있었지만..'

새롭게 버려진 감각으로 바라보는 궤적은 또 다르다.

예전에는 압도적 구위에 대한 부담감뿐이었다면, 두려움이 사라진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냉철하게 상대 투수의 공을 파악하고 있었다.

해준은 타임을 부르고는 한 차례 타석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그 감각을 확실히 되새기기 위해 타석을 벗어나 배트를 휘둘러본다.

부우웅-

'역시.'

평소보다 살짝 어퍼스윙을 그리는 궤적.

더 패스트볼 긱의 천부적 감각은 무의식 속에 입력된 배성환의 패스트볼 궤적을 완벽하게 훑어가고 있었다.

배성환과 다른 투수들의 차이점.

그것은 회전축의 차이에서 오는 공 끝이 향하는 방향성.

'다른 투수들의 공은 끝이 살짝살짝 휘면서 스윗 스팟에서 벗어나도록 유도한다.'

현대 야구에 접어들며 타자들의 힘과 정확성은 끊임없이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지만, 투수들은 달랐다.

구속은 이미 한계에 도달했고, 구위를 더 높일 획기적 방법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현대 야구의 투수들은 곧게 뻗어 나가던 포심 패스트볼의 궤적을 포기했다.

힘 대 힘에서 밀린다면, 힘으로 승부 하지 않으면 그뿐이니까.

그 뒤 이어진 것은 오로지 배트의 중심에서 빗맞도록 유도하는 변종 패스트볼의 범람.

하지만 배성한은 달랐다.

다른 투수들의 공이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휘어져나가는 동안, 오히려 한 차례 더 폭발시키듯 치고 들어오는 포심 패스트볼.

덕분에 이미 변종 패스트볼의 그것에 익숙해져 있는 해준으로서는 눈으로 한 번 더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했을 뿐이었다.

해준은 다시 타석에 들어섰다.

'이제는 확실해.'

[자, 이제 3구째. 배성환 선수가 와인드업에 들어갑니다.]

자신이 이긴다.

그렇게 생각하며 타격 자세를 잡았다.

그 생각은 배성환 또한 마찬가지였는지.

[투구판을 박차는 배성환 선수!]

마운드를 박차는 배성환의 행동에도 망설임이 없어 보였다.

그 모습 하나하나가 해준의 망막 위를 스치며 지나갔다.

축발의 중심이동, 부드럽게 돌아가는 허리, 채찍처럼 휘둘러지는 팔스윙.

그리고 훅- 하고 폭발적으로 뻗어오는 하얀 궤적까지. 그것이 다시 한번 스트라이크존을 파고들었다.

'몸쪽!'

그 궤적을 단번에 파악한 해준.

끼이이익-!

더 이상의 일방통행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듯이, 그립을 쥐고 있던 손아귀에서 마찰음이 들려왔다.

"흡!"

숨을 들이키며, 중심이동을 만들어내는 하체.

반면 왼쪽 어깨는 끝까지 닫힌 채 파워를 억누르다, 순식간에 폭발시킨다.

따아아아아악-!

그리고 손끝에서 전해지는 감각은 그 어느 때보다 시원하게 가슴 속을 씻어내려 갔다.

[쳤습니다! 강해준 선수의 어마어마한 풀스윙! 그대로 잡아당긴 공은...]

----텅!

좌측 담장을 넘어, 홍보를 위한 차량 위로 떨어졌다.

+++

2026년 올스타전 1회 말.

소산팀의 선수들은 수비를 위해 그라운드로 나서고 있을 때, 전광판에는 1-0이라는 점수가 새겨져 있었다.

해준의 벼락같은 솔로홈런으로 선취점을 가져간 소산팀.

그 덕분인지 선수들의 얼굴에는 결연한 의지가 가득했다.

'괴물 같은 자식들. 벌써부터 치고 나가?'

'홈런에 3타자 연속 삼구삼진. 지들끼리 아주 북치고 장구치고... 더 그렇게 둘 순 없지.'

OG 팀의 선발 투수 배성환.

비록 강해준에게 홈런을 허용했지만, 뒤의 모습은 괴력 그 자체나 다름없었다.

2번 박웅, 3번 서상원, 4번 조병민으로 이어지는 까다로운 타자들을 모두 삼진 처리해버린 것.

당연하게도 미스터 올스타에 대한 경쟁은 1회부터 강해준과 배성환이 치고 나가는 구도를 이루고 있었고, 선두에서 멀어진 선수들은 호심탐탐 자신들 또한 치고 나갈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한편, 마운드에는 소산 팀의 선발이자 서울 레나프 1선발 용병 데빈 로버트가 올라섰다. 삼진보다는 맞춰 잡는 것에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는 투수인 그를 바라보는 내야수들의 눈빛이 반짝거렸다.

'일단 수비에서 주목을 끈다.'

'땅볼 유도 하나는 기가 막힌 놈이니까 나한테 공이 올 확률이 높아.'

'강해준이 외야로 빠져서 다행인가? 적어도 비교는 안 당하겠네.'

멋진 수비를 보여줘 관중들의 이목을 끌려는 내야수들. 하지만 데빈 로버트의 시작은 처음부터 좋지 못했다.

따아아악-!

경쾌하게 울리는 파열음.

'이런 제기랄!'

'처음부터?'

OG 팀의 1번 타자로 나선 한국프로야구의 전설 이신우. 그가 때려낸 공이 커다란 아치를 그리며 모두의 시선을 앗아갔다.

서서히, 조금씩 우측 담장을 향해 나아가는 하얀 궤적.

우익수로 나선 박웅은 능숙하게 궤적을 확인하고는 위치를 조정했지만.

'이거 넘어갔다.'

베테랑 외야수인 그는 공이 담장을 넘어갈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아, 이신우 선배까지 저렇게 쳐대는 판국이면 나도 하나 쳐야 하는데.'

그렇기에 그의 머릿속에는 저 공을 잡아낼 생각은 이미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 펜스를 타고 오른다해도 잡기 불가능한 타구니까.

오로지 다음 타석에서 어떻게든 자신도 홈런을 만들어야 내야 한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천천히 이동속도를 줄이는 박웅. 그때.

"어?"

그의 눈앞에 무언가 불쑥 나타났다.

[어어어어!]

중견수로 출전했던 해준이 어느새 우측 담장 앞까지 도달한 것.

'뭐야!'

어마어마한 커버 능력. 공이 허공을 유영한 시간이 다소 길긴 했어도 좌측으로 살짝 치우쳐져 있던 외야수가 도달할 수 있는 여유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해준은 그의 눈앞에 있었다.

턱-!

거기에 더해, 해준은 그 기세를 살려 펜스 타고 오르는가 싶더니.

'...이 미친 자식이 설마?'

그대로 담장 끝을 밟고 날아올랐다.

놀라운 운동신경, 그리고 어마어마한 근육의 탄력.

그 모습을 보던 박웅은 머릿속이 새하얘지는 착각 속에 빠져들었다. 단 한 번도 눈앞에서 보지 못했던, 강해준의 야수(野獸) 같은 수비 능력.

그것을 코앞에서 보는 것은 평생을 살며 야구를 해온 그로서도 처음 느껴보는 충격을 전해주었다.

퍼어억-!

그 사이, 있는 힘껏 손을 뻗은 해준의 글러브 끝에 공이 걸려들었다.

'넘어간다!'

하지만 이미 해준의 몸은 펜스를 넘긴 상황. 그때 놀라운 묘기가 펼쳐졌다.

"받아요!"

공중에서 떨어지면서도 놀라운 핸들링 속도로 공을 빼낸 해준. 그 공을 그대로 박웅에게로 던져 보인 것.

"어..어어어!"

박웅은 놀라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날아오는 공을 향해 글러브를 벌렸다.

...툭-!

그렇게, 공이 글러브 속으로 안착한 것을 보았을 때.

"....미친 새끼."

박웅은 직감했다.

'난리 나겠네.'

고막을 뒤흔드는 고함 소리들이 이 경기장을 지배할 것임을.

........

그리고.

-------------!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2026년 올스타전이 열리고 있는 올림픽돔.

그곳이 유례없을 정도로 거대한 관중들의 함성 소리로 뒤흔들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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