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수에서 타자까지-29화 (29/137)

29. 별이 빛나는 밤에 (2)

강해준의 끝내기를 앞세워 이칼코메드와의 3연전을 스윕한 그 날. 슬슬 자정을 넘기는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서울 세오레즈 사장실의 불은 꺼지지 않고 있었다.

[갈 길 바쁜 이칼코메드, 수렁의 3연패]

[강해준의 약점 공략은 유효했나? 채중팔의 되감기 리뷰]

[끝내기, 끝내기, 또 끝내기. 6연승 중 3번을 끝내버린 강해준의 압도적 클러치 능력.]

[진화하는 야수, 비상하는 세오레즈. 파죽지세의 6연승!]

[오로지 조회수? 도 넘은 칼럼니스트 논란. 경기 전 약점 폭로는 과연 정당한...]

"흐흐흐..."

그곳에서 이운요 사장은 만족스러운 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맞은편 소파에 앉아있던 전력분석실 팀장 김재훈은 콧등의 안경을 끌어 올리며 말했다.

"시작이 좋네요. 역경을 이겨내고 팀을 승리로 이끄는 이미지. 이것도 괜찮습니다."

"기자들한테 연락 싹 돌렸지?"

"굳이 펌프질 안 해도 알아서 쓰더라고요. 강해준 이름 석 자면 웬만한 스타플레이어 뺨칠 만큼 조회수 보장입니다."

"그 정도야?"

"이거 보시죠."

김재훈은 자신의 스마트폰 화면을 이운요 사장을 향해 돌렸다.

[1. 강해준]

[2. 강해준 끝내기]

[3. 세오레즈 6연승]

[4. 세오레즈 강해준]

[5. .....]

경기가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주요 포털사이트들의 검색어 순위는 모조리 강해준으로 도배되다시피하고 있었다.

"애초에 강해준에 대한 팬심 아래에는 단단한 코어 층이 존재했으니까요. 그것 때문에 2군 내리실 때 욕 뒤지게 얻어먹으셨잖아요. 덕분에 장수하실 것 같기도 하고.."

이운요 사장은 좋지 않은 기억을 떠올리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렇지. 야구에 목숨 건 인간들은 이상할 정도로 강해준을 좋아한단 말이야."

"아무도 알아보지 못한 원석을 자기들끼리 공유한다는 느낌이니까요. 매니악하지만 그만큼 콘크리트죠. 아무튼 안 그래도 지지 기반이 탄탄했는데 타격까지 터지면서 확장세가 급격하게 불어났어요. 저희로서는 좋은 현상이죠. 언론 플레이하기 좋잖아요?"

이운요 사장은 그 말에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흠, 좋아. 다 좋아."

그렇지않아도 다가올 FA 선수들의 전력유출을 대비하자면 돈이 필요한 상황이다. 이왕 팔기로 할 거, 강해준의 가치는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좋았다.

세계를 향해 성공적으로 확장한 NBA처럼, MLB 또한 야구의 세계화에 신경 쓰고 있는 상황. 덕분에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MLB의 상품을 소비하고, 구독권을 구매하여 경기를 시청하는 국내팬들의 수가 늘어난 추세였다.

아무래도 팬들의 지지가 늘어난 만큼, 실력 외적으로 강해준의 몸값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나저나 이 인간은 어떻게 할까요."

"응? 누구."

"이준석 말이에요."

김재훈은 강해준의 활약으로 잠시 관심 밖으로 밀려난 이준석에 대한 주제를 다시 끌어올렸다.

이유를 모른다면 모를까, 그는 이준석이 왜 이런 행동을 했는지 알고 있었으니까.

"....아무래도 그거 같지?"

이운요 사장 또한 위치가 있고 듣는 귀가 있으니 어느 정도 그 전모를 파악하고 있었다.

김재훈 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BatTRATracker. 그걸 홍보하려고 한 거겠죠. 한창 떠오르는 타자의 뒷덜미를 손쉽게 잡아내는 분석 장비! 얼마나 매력적이에요?"

스포츠 리니어에서 손수 개발한 타자 분석 장비 BatTRATracker. 아무도 존재를 모르던 이 장비는 최근 주가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던 강해준에 대한 공략 데이터를 제시하며 이름이 알려졌다.

이운요 사장에게서 까드득- 이를 가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무리 그래도 정도가 있지. 그거 우리랑 계약하고 설치한 장비 아니지?"

아이러니하게도 강해준의 약점을 파헤친 BatTRATracker는 고척돔에만 국내 최초로 시범 설치된 장비였다.

본래 분석 솔루션 계약을 체결한 세오레즈, 운영권을 가지고 있는 시와 합의 하에 스포츠 리니어는 자신들의 분석 장비를 구장에 설치할 권리를 보유한 상태였는데, 이번에 추가로 BatTRATracker를 설치한 것.

"계약서는 검토했는데 문제의 소지가 될 만한 건 없어요. 분석 장비를 설치할 권리를 보유하고 있는 거지, 어떤 분석 장비인지는 명시가 안 돼 있거든요. 그래도 서로 사전에 이야기는 돼 있었죠. 데이터는 우리 구단에만 제공하기로요."

"이 빌어먹을 새끼!"

쾅-!

하지만 책상을 주먹으로 내리치며 분개하는 이운요 사장과는 달리, 김재훈 팀장은 덤덤한 목소리로 반응했다.

"아무래도 급했겠죠."

"응? 뭐 더 알고 있는 거라도 있냐?"

김재훈이 대답했다.

"트랙가이즈 아시죠?"

"알지. 스포츠 리니어 전에 공식기록지정업체였잖아. 무리한 사업 확장으로 자본잠식 상태라고 했었지?"

김재훈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도 들어보셨을걸요. 그거 인수한 곳이 스포츠 리니어잖아요. 거기 2대 주주가 이준석인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아무튼 인수까지는 좋았는데... 무리한 결정이었는지 빚에 허덕인다고 하더라고요."

"2대 주주인 것까지는 나도 들어봤다만, 그 뒤 사정은 잘몰랐는데.. 이거 설마?"

"메이저리그 구장들에 설치된 대부분의 분석 장비가 전부 트랙가이즈.. 그러니까 이제는 스포츠 리니어 소유인 것도 아시죠? 뭐, 세계로 뻗어 나가는 국내 강소업체? 거기에 선정된 적도 있었으니... 아무튼 이준석은 거기에 더해 BatTRATracker를 도입해서 이번 자금 유동성 위기를 해결할 돌파구로 생각하고 있는 거예요. 30개 구단, 방송사, 기타 관계자들까지. 팔 수 있는 데이터가 늘어날 때마다 이익이 급증하니까요. 다만 그를 위해서는 확실한 사례가 필요했을 거고요. 아마 판매망도 이미 확보해놓았을걸요? 거기에 어필할 수 있는 자료가 필요했던 거죠. 하루라도 빨리 말이죠."

그런 면에서 본다면 떠오르는 스타 강해준은 최적의 먹잇감이었을 것이다. 비록 역으로 당하긴 했지만.

이요운 사장은 황당해하면서도 약간 핀트가 벗어난 평소 의문점을 되물었다.

"그나저나 돈을 어디서 나서 2대 주주나 됐을까...? 아무리 자본잠식이었다지만 상당히 비쌌을 텐데."

"이준석 그놈 집안 자체가 부자예요. 아버지가 세계경제은행 부총재 출신에 어머니는 리먼 출신의 성공한 애널리스트. 본인도 아이비리그 출신이니 인맥이든 어디든 어떻게든 끌어다 썼겠죠."

그 말에 이운요 사장은 고민에 들어갔다.

'그렇다면 이걸 제지해야 하는 게 맞는 건데..'

이상하게 그의 가슴 한구석에서 비즈니스맨과 갬블러로서의 본능이 절묘하게 혼합되어 꿈틀댄다. 그렇기에 이운요 사장은 평소처럼 화끈하게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이것은 기회다. 이런 생각이 계속해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으니까.

"아무튼 강해준이 스스로 극복해냈기에 망정이지 이거 잘못했으면 다 망해버릴 뻔..."

그때, 김재훈 팀장의 말에 이운요 사장의 머릿속에서 무언가 번개처럼 번뜩였다.

"잠깐."

"...네?"

"강해준... 그 포텐셜이 어디까질까?"

이운요 사장은 최근 보름간 강해준의 활약상보다, 그의 발전 속도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패스트볼.. 다음은 체인지업. 이번에는 슬라이더였어. 그렇다면 다음은?"

그 말의 의중을 깨달은 김재훈 팀장의 입이 조금씩 벌어졌다.

"설마?"

이운요 사장은 결정했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준석. 이놈 이용하자. BatTRATracker? 분석하려면 얼마든지 하라고 해. 이 자식 이 장비를 메이저리그에 홍보 때리려고 한 거지?"

"..그렇죠."

"그렇다면 우리가 역이용하자고. 이걸로 강해준을 역홍보하는 거야. 이준석 그놈이 메이저리그에 큰소리쳐놨을 거 아니야. 준비는 다 해놓고 움직이는 놈이니까. 미국 쪽 관계자들도 상당히 주목하고 있겠지. 그때마다 강해준이 오히려 그것을 극복한다면?"

"하지만 강해준이 무너져 내리면 모두 끝장입니다."

"그러면 뭐, 어떻게 막을 건데? 어차피 한번 알려진 이상 다른 구장들에도 속속 설치될 거야. 그 빌어먹을 장비 치워버리고 고척돔에서만 뛰게 할 건 아니잖아?"

"...그건 그렇죠."

"MLB에 강해준을 마켓팅할 절호의 기회야. 약점? 보이는 족족 극복해내는 완전무결의 타자! 몸값? 국내 언론플레이보다 열 배, 백배는 효과적일 거다."

이운요 사장는 스스로도 이런 위험한 결정을 내리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청년 시절, 라스베이거스를 떠돌며 살았던 겜블러로서의 본능이 알 수 없는 확신을 주고 있었다.

'이거 된다. 아주 큰 게임이 될 거야.'

그렇게 주사위가 던져졌다.

힘차게 고개를 끄덕인 이운요 사장. 그리고 그는 한 가지 의문을 떠올렸다.

"...그러고보니 우리가 무슨 이야기 하려고 했지?"

그 말에 김재훈 팀장도 아차-하며 본래의 안건을 꺼내 들었다.

"본래 올스타 출전 예정이었던 한민곤의 부상이 생각보다 길어져서요. 서재필 선수야 본래 큰 부상이라 대체 선수를 진작에 구했는데... 웨스턴 측.. 그러니까 이번 네이밍 기업이 소산 그룹이죠? 소산 팀 오정태 감독이 대체 선수를 추천해달라고 연락이 왔습니다."

2026 프로야구 올스타전은 KBO총재 서용재가 내세운 캐치프레이즈, Baseball Business 아래 본래 이스턴과 웨스턴으로 나누던 팀의 네이밍 명명권을 기업에 판매한 첫 사례가 되었다.

그 낙찰자는 바로 국내 굴지의 대기업 소산 그룹과 OG그룹.

이운요 사장은 어색해 보이는 표정으로 웨스턴 팀의 이름을 반복해 입안에서 굴려보더니 곧바로 결정을 내렸다.

"팀 소산.. 소산 팀.. 아무리 말해도 적응이 안 되네. 아무튼 고민할게 뭐 있어?"

"역시?"

"강해준으로 가야지."

+++

성남에 위치한 세오레즈 2군 감독 조대욱 감독의 저택.

오랜만에 휴식을 맞이한 조대욱의 얼굴은 웬일인지 편치 않아 보였다.

TV를 보고있던 그는 옆에 눕다시피 소파에 파묻혀있던 남자를 바라보고는 버럭 고함을 내질렀다.

"...못참겠다. 이 문디 자슥! 어서 안 나가!"

"...아, 왜요."

덕분에 에어컨 바람을 맞으며 조금씩 잠들던 강해준이 꿈틀대며 몸을 뒤척였다.

"황금 같은 휴식 기간에 나도 좀 쉬자. 안 그러냐?"

허탈한 듯이 중얼거리는 조대욱 감독. 하지만 강해준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어떻게든 빌붙겠다는 의지가 매우 단단한 상태였다.

"아, 그러니까요. 우리 같은 야구 선수들한테 추석이 있어요, 설날이 있어요? 올스타전이라도 쉬니까 부모님 같은 감독님 찾아서 온 어린 양에게 너무 야박하신 거 아니에요?"

"어린 양은 개뿔이..."

조대욱 감독의 반응에 강해준이 대답했다.

"애초에 우리 사모님 보러 온 거라니까요. 영감님 말고. 그런데 해외여행을 보내셨네?"

"그럼 자식 놈이 부르는데 안갈까. 덕분에 나도 좀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보나 했더니만.."

잠시 침묵이 이어졌다.

그리고 묵묵히 TV를 보던 조대욱 감독은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밥이나 먹자."

"밥이요?"

그 말에 강해준의 눈빛이 번뜩였다. 애초에 이걸 기대하고 온 것이었으니까.

"안사람이 너 온다고 이것저것 많이 해놨어. 얼른 처먹고 꺼져라 제발."

"일단 먹고 생각할게요."

싱글벙글 웃으며 말하기도 전에 냉장고로 달려가는 강해준. 조대욱 감독은 그 어린아이 같은 모습에 한숨을 푹 쉬고는 부엌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그때,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스마트폰이 부르르- 진동했다.

'이운요 사장?'

화면 위에 떠 올라있는 이름은 세오레즈의 이운요 사장이었다.

조대욱 감독은 전화를 받았다.

"조대욱입니다."

-아, 감독님. 잘 쉬고 계시죠? 다름이 아니라 강해준 선수 건으로 전화 드렸습니다.

"..해준이요?"

-강해준 선수 핸드폰은 꺼져있어서요. 그래도 쉬는 날이면 종종 감독님 집 찾아간다는 소리가 있어서요.

조대욱 감독의 얼굴에 의문이 떠올랐다. 지금의 성적이라면 강해준이 2군으로 내려올 가능성은 하나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곧, 그 내용을 들은 그의 얼굴에 득의양양한 표정이 떠올랐다.

"네, 알겠습니다. 당장 엉덩이를 차내서라도 내쫓아야죠. 네네. 네. 알겠습니다."

그리고는 스마트폰을 내려놓고는 강해준을 바라보았다.

"누구에요?"

제대로 꺼내놓지도 않고 손으로 계란말이를 집어 먹던 강해준. 그에게 조대욱 감독이 속이 후련하다는 듯한 어조로 말했다.

"올스타전 출전이다, 문디 자슥."

조대욱 감독의 표정을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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