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패스트볼 경계령 (2)
"전략이 아닙니다."
서울 세오레즈가 이칼코메드와의 3차전 경기를 코앞에 둔 오전. 영향력 있는 포털사이트에 기고되는 칼럼 「더 베이스볼 프릭」으로 유명한 이준석은 고개를 저었다.
"전략이 아니라니?"
이칼코메드의 스카우트, 최준팔은 이준석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최근 갑작스럽게 떠오르고 있는 강해준에 대한 약점이 궁금해진 탓이다.
이준석은 미 유명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하나를 졸업하고 보스턴의 메이저리그 팀에서 세이버 매트리션으로 명성을 떨쳤던 남자. 그 권위가 남의 말이라곤 하나도 귀담아듣지 않는 최준팔의 귀를 팔랑거리게 했다.
"최근 강해준 경기를 보셨습니까?"
"응? 봤지. 보고말고. 그렇게 화제인데 안 볼 수야 있나. 개인적으로 궁금하기도 했고. 아마 국내 스카우트 중에서는 안 본 놈 하나 없을걸?"
모두가 성공을 자신했던 아마추어 시절의 강해준.
그런 그가 사구 이후 공도 제대로 보지 못하며 배트를 휘둘렀을 때, 관계자들은 입을 모아 말했다.
강해준의 야구 선수로서의 인생은 끝났다고.
최준팔 또한 그중 한 명이었고, 최근 강해준의 소식을 들었을 때는 대단하다는 감정보다는 의문이 먼저 들었다.
'어떻게 갑작스럽게 부활했을까?'
비록 괴물 같은 수비 실력으로 살아남긴 했지만, 타격은 모두의 예상대로 6년 동안 지하를 넘어 지구의 내핵으로 파고들어 간 수준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그걸 하루아침에 고쳐버렸다니. 누가 들어도 믿기 힘든 이야기임이 분명했다.
최준팔의 대답에 이준석이 물었다.
"어떠셨습니까?"
"어떻냐니. 그냥.. 갑자기 사람이 확 달라졌다? 타격 자세도 그렇고, 타격 어프로치도 그렇고. 무엇보다 손과 눈의 협응력이 몰라보게 달라졌어. 특히 포심에 한해서는 메이저 타자나 다름없던데. 그 배트 스피드... 확실히 국내 선수 중에서는 보기 드문 수준이야."
이준석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면 배트 스피드가 빠른 타자들의 특징이 뭐가 있을까요?"
너무나 뻔한 질문에 최준팔 스카우트는 싱겁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에이, 왜 계속 다 알면서 물어. 당연히 공을 보고 대처 할 수 있는 시간이 늘어나니 변화구에 대한 대처 능력이 강한 편이지."
"네, 바로 그겁니다."
""그거라니? 아, 답답하게 왜 그래. 속 시원하게 털어나 봐."
이준석은 살짝 미소를 띠며 책상 위에 올려져 있던 태블릿을 최준팔에게 건네줬다.
"이걸 보시죠. 지난 1군에서의 5경기. 강해준이 아웃당한 타석입니다."
『레나프 1차전
-투수 오우중
-7회 슬라이더 1루 땅볼.
레나프 2차전
-투수 김종영
-1회 스플리터 삼진.
-3회 커브 삼진.
.....
이칼코메드 1차전
투수....
...........』
화면에는 강해준이 아웃을 당한 구종과 카운트, 그 옆의 타격존에는 핫존과 콜드존이 떠올라있었다.
그것을 유심히 살피던 최준팔은 스카우트답게 곧바로 한 가지 사실을 알아차렸다.
"어마어마하게 쳤는데도 역시 아웃은 꽤 있네. 이게 야구의 재미있는 점이란 말이지.. 그나저나. 잠깐만, 이거 보게? 1개만 빼고는 전부 변화구에 당했네?"
원하는 대답이 나오자 이준석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죠. 정확히는 브레이킹 볼에 많이 당했습니다. 체인지업 같은 체인지 오브 페이스에는 의외로 잘 대처하더군요. 뭐, 아직 샘플이 적어서 명확히 이거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실제로 슬라이더를 쳐내 만들어낸 안타도 있고."
그 말에 최준팔 또한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자네 말대로 샘플이 너무 적어서 유의미하다고 보기는 힘들지 않을까?"
하지만 이준석은 대답 대신 태블릿을 살짝 끌어당겨 다른 데이터를 띄운 후에야 입을 열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죠. 이 데이터를 보기 전까지는요."
몇 번의 조작 후 다시 돌려놓은 태블릿 화면. 최준팔은 살짝 미간을 좁히며 고개를 숙였다.
"BatTRATracker...?"
"스포츠리니어 아시죠? 최근에 한국야구위원회에서 공식기록업체로 지정한 회사. 거기서 새로 도입한 장비 이름인데요, 중요한 건 이름이 아니라 그걸 이용해 뽑아낸 수치입니다. 그중에서 이 수치에 주목하시면 됩니다. 스윙 궤적 변화율."
최준팔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로서는 처음 들어보는 수치였던 탓이다. 이준석은 슬며시 웃으며 설명을 시작했다.
"타자들은 보통 타석에 들어서기 전 미리 배트를 낼 타이밍을 정해놓습니다. 맞죠?"
"그렇지. 상대 투수의 컨디션을 체크 하고 포심패스트볼에 핀트를 맞출지, 변화구에 맞출지 미리 정해놓지."
최준팔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준석이 다시 물었다.
"만약 포심패스트볼에 맞췄다고 칩시다. 그런데 변화구가 날아오면요?"
"보통은 파울을 만들어내면서 버티지?"
"파울 만들어내는 방법은요?"
"..보통 배트 컨트롤이지. 코어를 단단히 잡아놓고 템포를 늦춰서 타이밍을 맞출 수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괴물들이나 가능한 거니까."
그제야 이준석은 만족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보통은 그렇죠. 그런데.."
"..그런데?"
"강해준의 스윙 궤적에는 전혀 변화가 없습니다. 마치 포심 패스트볼에만 모든 핀트가 맞춰져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이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는 일일까요? 메이저리거급 변화구도 아니고, 처음부터 변화가 보이는 변화구에도 그렇게 휘두른다는 게요."
"..그렇네?"
"즉, 전략이 아니라 그렇게밖에 하질 못하는 겁니다."
그 말에 최준팔의 눈이 서서히 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곧 무언가를 깨달았다는 듯이 물었다.
"자네! 이거 설마 오늘 칼럼..."
그가 알기로, 이준석이란 남자는 자신이 아는 것을 어떻게든 뽐내고야 마는 성격이다. 이런 것을 알고도 가만히 있었을 리가 없었다. 그를 인정하기라도 하듯, 이준석의 입꼬리 한쪽은 여느 때보다도 크게 올라가 있었다.
"네, 이미 송고했습니다. 지금쯤은 사이트에도 업로드됐을 겁니다. 이칼코메드 측은 저한테 고마워해야겠죠. 그 기사를 보고도 강해준에게 당할 리는 없을 테니까요."
+++
부우우웅-!
고척돔 실내연습장.
다른 선수들이 그라운드에서 타격 연습을 하는 동안, 강해준은 실내에 틀어박혀 있었다.
"생각처럼 안 되는데요?"
변화구에 대한 약점을 하루라도 빨리 보완하기 위한 비밀 훈련. 혹여나 기자나 다른 관계자들의 눈에 띄어 그 사실이 알려질까 싶어, 해준은 실내에서 배트를 휘두르던 중이었다.
그 말에 공을 던져주던 최병현 코치는 자세를 풀고는 한숨을 푹- 쉬며 대답했다.
"...후. 해준아. 그게 그렇게 쉽게 되겠냐. 스윙 궤적 수정은 오프 시즌에 집중해서 파고들어도 해결하기 힘든 문제야."
그의 말대로였다.
프로 선수들은 웬만해서는 시즌 중에 스윙을 건드리지 않는다. 득보다 실이 커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고, 한 부분을 건드리면 다른 부분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그렇다고 해도 현재 강해준으로서는 어쩔 도리가 없었다.
스스로의 불완전함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앞으로도 아무 문제 없이 잘 칠 수 있을 리가 없어.'
변화구에 대한 치명적인 약점.
체인지업은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하다지만, 그것도 레벨이 높은 체인지업에는 여전히 속수무책이고 다른 변화구들에는 아예 젬병이다.
심지어, 오광녹이 건네준 데이터에는 그 약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나 있었다.
'BatTRATracker? 요즘에는 별 기술이 다 나왔네.'
타자의 배트 컨트롤.
그것이 상세한 데이터로 수치화 가능하다고는 생각도 하지 못했다. 다행히 도입된 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다른 전력분석실에서는 모를 것이라 하지만, 그것도 얼마 남지 않았음을 잘 알고 있었다.
현대 프로야구의 트렌드는 데이터 야구. 상대에 대해서는 사소한 버릇 하나하나까지도 끌어모아 공략 방법을 만들어낸다.
'하루빨리 대응 방법을 강구해야 해.'
그 트렌드에 적응하지 못하는 타자들은 아무리 강력한 장점이 있더라도, 약점을 쑤시고 들어오는 견제에 적응하지 못하고 낙오되는 것이 현실.
당연히 마음이 급해질 법하지만, 해준은 묵묵히 연습에 집중하며 자신의 약점에 대해 파고들었다.
'수정을 가하면 가할수록 오히려 포심 패스트볼에 대한 대응만 망가질 뿐이다.'
블랑코와 연결되며 만들어진 타격 자세, 포심 패스트볼에 대한 타이밍을 잡아채는 감각, 그리고 스윙 궤적.
이 3가지가 맞물리며 포심 패스트볼에 대한 악마 같은 포식 능력이 생겨났지만, 오로지 패스트볼만을 사냥하기 태어난 것만 같은 이 요소들이 변화구 대응에 대한 발목을 잡고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멈춰있을 수는 없는 노릇.
'어떻게 해야 할까.'
해준은 치열하게 고민을 이어가며 연습을 재개했다.
다시 자세를 잡자 최병현 코치가 오늘 상대 선발 투수, 루이스 파간의 구종을 그대로 던져준다.
슬라이더, 스플리터, 그리고 포심 패스트볼.
해준은 그에 맞춰 최대한 스윙 궤도를 수정해보았다.
[링크 활성화율이 감소합니다. 83% -> 81.8%]
[링크 활성화율이 감소합니다. 81.8% -> 58.2%]
[링크 활성화율이 증가합니다. 58.2% -> 84.1%]
[.................]
하지만 그때마다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에서는 링크 활성화율 수치가 파도처럼 요동친다.
'아, 그거 한번 더럽게 안 되네!'
한 번만이라도 감을 잡으면 될 것 같은데, 두껍고 거대한 벽에라도 막힌 듯 답답함만이 가중됐다.
심지어 변화구에 대해 대응하려고 하면, 오히려 포심 패스트볼에 대한 대응 능력만 쭉쭉 떨어지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었다.
최병현 코치가 던져주는 변화구들을 상대로 차례로 실험을 해본 결과는 이랬다.
포심 패스트볼 대응 능력을 100.
변화구 대응 능력을 20.
이렇게 가정한다면 타격 자세를 수정했을 때 포심 패스트볼 대응 능력이 50으로 깎여나가지만, 변화구 대응 능력은 21로 1밖에 오르지 않는다.
말 그대로 극한의 비효율성을 자랑하는 방식.
이대로는 답이 없다.
결국 묵묵히 변화구를 던져주던 최병현 코치도 답답했는지 공을 던져주는 것을 그만두고는 자세를 풀었다.
"야, 해준아. 무작정 휘두르지 말고 배트 궤적에 신경을 써봐."
남이 보기에는 강해준은 그저 무식하게 배트에 온 힘을 실어 휘두르고 있었다. 하지만 본인이라고 그것을 모를 리가 없다. 해준은 억울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게 안 된다니까요.."
"아니, 그게 왜 안돼. 예전에는 못 맞췄을 뿐이지 잘했잖아! 왜 한창 잘 치는 지금 그게 안 된다는.."
"아, 모르겠다. 그냥 한 번만 더 던져주세요."
"이건 그냥 연습한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라니까! 이러지 말고 우리 타격 코치 찾아가서..."
보는 사람이나, 직접 하는 당사자나 서로가 답답해하고 있을 무렵. 해준이 무작정 타격 자세를 취하려 할 때.
갑작스럽게 홀로그램에 변화가 생겼다.
[스윙 궤적 수정 훈련치가 급격하게 증가했습니다.]
[사이클링 히트 보상을 플레이어에 상황에 맞춰 지급합니다.]
뚝-
'어?'
덕분에 헛스윙했던 배트를 되돌리며 다시 타격 자세를 잡으려던 해준의 행동도 멈췄다.
쾅-!
연습장의 문이 거칠게 열리며, 전력분석실에 있어야 할 오광녹이 호들갑스럽게 뛰어 들어왔을 때도.
"형, 큰일 났어요! 이준석 이 개새끼가 상도덕도 없이 경기 전에 형 약점을 떠벌..."
오광녹의 말에 당황한 최병현 코치가 되물었을 때도.
"광녹아 뭐라고? 해준이 약점이 벌써 까발려졌다고?"
해준은 여전히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바라보았다.
해준의 이상한 반응을 알아챈 오광녹과 최병현.
"형...?"
"해준아. 충격을 많이 받은 것 같긴 하지만 그래도.."
하지만 여전히 대답이 없던 해준은 잠시 뒤에야 희열이 가득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내 약점이 뭐라고?"
배트를 몇백 번 휘둘러도 보이지 않던 답이, 눈앞에 나타났다.
[사이클링 히트 보상]
-게스히팅 보상권(1경기)
[게스히팅 보상권]
*구종 예측에 성공할 시, 스윙 궤적 제한이 일시적으로 해제됩니다.
*1경기에서 가장 높은 장타율을 기록한 구종의 모듈권이 보상으로 주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