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수에서 타자까지-24화 (24/137)

24. 패스트볼 경계령 (1)

[충격적 복귀, 마침내 드러난 야수의 송곳니!]

[5타수 4안타 3타점 1득점 강해준, 역대 KBO 39번째 사이클링 히트 달성 (3보)]

[트라우마 극복? 믿을 수 없는 강해준의 반전 스토리]

[6년 차 강해준, 커리어 첫 끝내기!]

[오정태 감독 '이빨 빠진 호랑이 발언? 내 말실수다. 강해준이 있는 이상 다른 이야기']

모든 스포츠 리그는 언제나 화젯거리를 찾아 헤맨다.

언더독의 반란, 압도적 전력 차로 리그를 지배하는 공공의 적, 괴물들의 활약, MVP 경쟁 등.

하지만 그중 단연코 최고의 이슈를 뽑으라면 새로운 스타의 등장이다.

한국프로야구라고 예외가 될 순 없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강해준의 활약에 모든 언론과 팬들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서울 세오레즈의 사장실.

이운요 사장은 아침 커피를 내리며 책상 위에 올라가 있는 조간신문들을 차분히 훑어보았다.

'...믿기질 않는군.'

강해준, 그 강해준이었다.

아무 코치나 타석에 들여보내도 그보다는 잘 친다는 소리의 주인공인 그 백한타.

그리고 오로지 수비 하나로만 이렇게까지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한 한국프로야구 탑티어의 야수.

'2군에서 맹타를 휘둘렀다고 해도 솔직히 기대는 안 했어.'

2군에서 3할을 기록하는 타자가 몇 명이던가. 3할 5푼 타자도 쉽게 찾아볼 수 있고 심지어 4할 타자도 있다. 정작 1군에 올려놓으면 부진에 부진을 거듭하다 다시 내려가기가 일수지만.

그렇기에 2군에서의, 그것도 몇 경기 되지 않은 샘플은 통계를 신봉하는 이운요 사장에게는 신뢰할 수 없는 데이터였다.

'아무튼 더 잡아놓기는 글렀나.'

쯔- 소리와 함께 혀를 찬 이운요 사장이 커피잔을 들어 입으로 가져갔다.

"오늘은 디백스 쪽 스카우트가 들어왔다죠?"

그때 들려온 목소리. 이운요 사장은 화들짝 놀라며 커피잔을 입가에서 급히 떼어냈다.

"...헛, 어 뜨뜨뜨! 뜨거... 이런 시부우우랄, 누구야!"

고개를 돌리자 소파에는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전력분석실 팀장, 김재훈. 그는 어이없어하는 표정으로 이운요 사장을 바라보았다.

"놀라시긴... 아까 사무실 들어왔을 때 인사했잖아요."

"..어, 큼! 크흠. 잠깐 까먹었어."

"거 벌써부터 치매에요? 치매는 불치병이라던데.. 사장 자리 저한테 넘기시고 요양이나 하러 가시죠."

"이 자식이 삼촌한테 못하는 소리가 없네."

"직장에서는 사장님이라 부르라면서요? 그리고 삼촌이니까 이 정도지 진짜 연고도 없는 사장이 치매면 벌써 치고 들어갔습니다. 구단주 귀에 바람 좀 넣으러 갔겠죠."

이운요 사장은 표정을 구겼다. 누님이 조카를 너무 버릇없이 키웠다고 생각하며.

"아무튼 이걸로 3명째입니다. 이거 어떻게 할 거예요?"

김재훈 팀장이 곧바로 본론을 꺼냈다. 그 말에 이운요 사장은 침음성을 흘리며 고민했다.

파이어리츠와 다저스만 해도 부담스러운데 거기에 디백스까지 냄새를 맡고 오다니.

이게 참 문제다.

대책 없는 것 같은 반응에 김재훈 팀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입을 열었다.

"강해준은 애초에 지금의 팀을 설계했을 때부터 핵심축이 됐던 선수예요. 팀 승리의 모멘텀이나 다름없죠. 보셨죠? 1군에서 빼버리니까 어떻게 되는지."

이운요 사장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6년 전, 김재훈이 처음 강해준을 데려오자고 했을 때까지만 해도 얼마나 황당했던가. 더군다나 타자로서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퍼지고 있었을 당시다. 그런 선수를 주전 선수 3명을 내어주면서까지 데려오자고 했을 때는 솔직히 조카가 미쳤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결과는 확실했다.'

수비진을 탄탄히 잡아주는 강해준의 영향력은 여러 수비 수치에서도 드러날 정도. 그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는 극명하다.

"올해가 끝나면 조병민은 FA, 유장천은 포스팅을 신청할 테고... 주전 외야수도 2명이 FA 예정이죠. 이 상황에서 강해준까지 메이저로 가버리면 우리 팀은 그냥 나가리에요 나가리."

"그래서 뭐 어떻게 하자고?"

이운요 사장은 인상을 구기며 물었다. 이게 다 그 글 탓이다. 누군가 미 유명 세이버 사이트에 올린 강해준에 대한 프라이빗 리포트. 덕분에 냄새를 맡은 파이어리츠에서 스카우트를 보내고, CBA 개정 이후 압도적인 자금력으로 유망주를 쓸어 담으며 국제 해적이라는 악명까지 떨치는 다저스까지 들어왔다. 디백스? 다저스가 들어온 이상 몸값을 높이는 들러리 역할이나 할 것이 뻔하다.

하지만 김재훈 팀장의 대답은 전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어차피 강해준이 가는 걸 못 막으면... 보내줘야죠."

"뭐? 그러면.."

이운요 사장의 부정적 반응에 김재훈 팀장이 말을 끊고 들어왔다.

"그럼 또 2군 보낼 거에요? 우리는 이기자고 이 짓거리 하는 거지 팀 말아먹자고 하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도 저번에는 타자들이 뻥뻥 터지니까 그걸 믿고 내려보낸 거지 지금은 그것도 아니죠. 게다가 부작용도 너무 컸고."

"그건!.. 그렇지. 그래, 네 말이 맞다."

이운요 사장은 할 말이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의 반응에 김재훈 팀장은 새로운 계획을 꺼내 들었다.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애초에 유장천에게는 포스팅을 허용해주고 강해준은 해주지 않으려고 했던 이유가 뭐예요? 유장천은 비싸게 받을 수 있었고, 강해준은 받을 수 있는 돈에 비교해 팀전력의 손해가 컸기 때문이죠. 하지만 이제 강해준도 공격력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것 같으니 그냥.."

이운요 사장은 고개를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

"그냥?"

그리고 김재훈 팀장은 씨익- 웃으며 대답했다.

"뻥튀기시켜서 보내버립시다."

"그 말은?"

"언론에 펌핑질 좀 하자고요. 그동안이랑은 반대로. 이왕 팔 거, 비싸게. 콧대 높은 미국놈들이 아아아주 미쳐버릴 정도로 비싸게 팝시다. 그래야 내년에 생길 구멍이라도 메꾸죠."

+++

2026년 첫 기록이자, 역대 39호 사이클링 히트.

하지만 강해준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말하듯, 지난 6년간의 울분을 폭발시키고 있었다.

[갑니다, 또 갑니다! 강해준, 다시 한번 경기를 끝내는 투런포!]

레나프와의 2차전을 또다시 스스로 끝내버리며 시동을 거는가 싶더니.

[2루타! 이번 시리즈, 강해준의 폭주를 막을 투수는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3차전에서도 5타석 3타수 3안타(2루타 3개) 1볼넷 1사구를 기록하며 시리즈 MVP로 선정된다.

[도저히 막을 수 없는 폭주! 강해준 변화의 비밀은?]

[6연승 레나프 충격의 3연패, 6위로 추락.]

[강해준을 앞서 세운 세오레즈, 5위 탈환에 성공!]

[수비가 살아나자 공격이 살아났다. 세오레즈의 반전 3연승]

온갖 스포츠 관련 신문과 사이트에서는 모든 메인 화면이 강해준의 활약상으로 도배하다시피 한 상황.

덕분에 각종 야구 팬커뮤니티는 당연히 난리가 난 상태였다.

-내가 보고 있는 게 과연 현실일까? 사실은 매드 사이언티스트의 실험실 통속에 뇌만 축출돼 갇힌 상태로 말도 안 되는 환상을 보고 있는데 아닐까?

-유장천 급 공격력 + 괴물 같은 수비 실력 = 메이저리그 MVP

-윗 댓 에바임 ㅋㅋㅋ 유장천이 메이저 간다고 한국에서처럼 칠 것 같음? 15홈런이나 치면 대성공이지.

-강해준 수비는?

-..그건 모르겠다. 타구질도 넘사벽일텐데 한국에서처럼 막을 수 있으려나.

-얘들아 이제 3경기다. 신나는 건 이해하겠는데 시즌 좀 길게 보자.

-응, 아니야. 지금만 볼 거야.

-지금 홈 6연전 중이라 고척빨 받는 거다. 부산 내려오면 귀신같이 내려갈 듯 ㅎㅎ

-네? 뭐라고요? 9위 하는 찐따라 안들리는데요?

그리고 당연하게도, 해준의 활약은 같은 선수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화제였다.

"이야, 괴물이 다 돼서 왔네. 괴물이 다 돼서 왔어."

"저도 세오레즈 2군 한번 다녀와 볼까요? 어떻게 저렇게 변하지?"

"미친놈일세. 트레이드라도 해달라고 하게? 게다가 거기 조 감독님 지옥 훈련으로 악명이 장난 아니던데? 지금 날씨에 트레이드 돼서 세오레즈 2군 내려가면 그냥 자살하는 게 편할거다 아마."

"애초에 쟤는 한번 가면 못 올라와 새꺄. 지금도 운 좋아서 올라온 거 겨우겨우 버티고 있는건데."

"야, 근데 이거 설마 해서 말하는건데.. 혹시 강해준이 걔도 유장천 그 녀석처럼 약..."

"야야, 쉿! 개소리하지 말고. 저기 강해준 온다."

과연 강해준의 갑작스러운 변화의 비밀은 무엇인가. 팀워크를 생각하는 팀원들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지만, 상대팀은 다르다.

온갖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슬슬 떠돌기 시작하고 있었다.

전력분석실로 향하던 도중 그 소리를 들은 해준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약을?'

3년 전, 세오레즈의 몇몇 선수들이 약을 한다는 소문은 유격수인 유장천으로부터 시작됐다. 스프링캠프에서는 작년과는 몰라볼 정도로 근육이 붙어 나타난 것. 당연히 그 비법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고, 그 뒤로도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유장천에게 약을 공급하는 디자이너가 타구단의 핵심 타자에게도 접근을 시도하다 경찰의 레이더망에 걸려 도주했다는 소문이.

해준은 복도를 걸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지만 인제 와서 내가 장천이를 욕하기에는...'

유장천이 올라오며 2군으로 밀려났던 해준. 그때는 솔직히 잔뜩 욕했지만 인제 와서 차분히 생각해보면 유장천이 약을 했다는 증거는 하나도 없었다.

'밝혀진 건 없지.'

그저 질투심이었을지도 모른다.

유장천은 본래부터 뛰어난 타자였고, 어렸을 적부터 꾸준히 리프팅 트레이닝을 해온 선수였으니 운동 방법을 바꿨다거나, 식단을 바꿈으로써 발전의 계기를 마련했을지도 모르는 노릇.

'그래, 그래. 내가 추했다. 지금 뒷말이나 하는 저 선수들하고 다를 게 없었지.'

게다가 다른 선수가 본다면 약쟁이 선수와 시스템을 이용하는 해준에게서 차이점을 느끼지 않을지도 몰랐다.

다른 점이라면 대부분의 약쟁이는 스스로 선택해서 하는 것이고 아웃라이어 시스템은 스스로 찾아왔다는 점?

이에 대해 해준은 생각보다 빠르게 결론을 내렸다.

'둘 다 치트키이긴 하지. 그렇다고 안 쓸 수는 없잖아?'

100명의 선수에게 약을 권하면 그중 많은 선수는 거부할 것이다.

하지만 약 대신 이 시스템이 불쑥 나타난다면? 그중 시스템을 쓰지 않을 선수가 과연 있을까?

선수들의 승부에 대한 갈망, 최고가 되고 싶다는 깊은 욕망을 알고 있는 해준은 그 대답을 알고 있었다.

'아무도 없지.'

그리고 쓰기로 한 이상, 최고가 되어야 한다.

[사이클링 히트 보상을 추산 중입니다..]

'그러니까 주려면 빨리 줄 것이지.'

하지만 그 베이스가 되어야 할 이 시스템 놈팽이가 일하지 않고 있었다. 해준은 한숨을 푹- 쉬었다.

'최대한 패스트볼만 골라 치는 패턴도 슬슬 후달리는 것 같기도 하고...'

지금 당장 성적은 믿을 수 없을 정도지만, 샘플이 쌓이자 상대팀들도 확실히 눈치를 챘다. 고공 행진을 기록하고 있는 성적이 언제 추락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

그 사이 해준은 전력분석실에 들어섰다.

"아, 형 왔어요."

"그래 오셨다."

전력분석원 오광녹이 먼저 인사를 건네왔다.

다소 통통한 체격에 해리포터가 떠오르는 안경을 쓰고 있는 오광녹은 평소 전력분석실에서 해준과 붙어 다니다시피 하며 일을 하는 전력분석팀 소속 직원이었다.

덕분에 그 별명은 강해준의 헤르미온느.

해준은 오광녹의 별명을 떠올리자 피식 웃으며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

"오늘은?"

여전히 고척돔에서 펼쳐지는 이칼코메드와의 3차전.

해준은 1, 2차전에서도 9타석 7타수 4안타 2볼넷을 기록하며 활약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한 가지 불안한 요소를 안고 있었다.

'슬슬 눈치챈 게 분명해.'

마지막 2타석에서 얻어낸 2개의 볼넷.

상대 팀은 빠른 볼을 일절 배제한 채 변화구로 슬슬 유인하는 방식을 택했다. 마치 무언가를 확인하기라도 하려는 기색.

그리고, 그 사실을 알기라도 하듯.

"오늘은 상대 투수도 투수고 볼 배합도 볼 배합인데.."

오광녹 또한 조심스러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이거 먼저 말할게요. 형, 혹시 포심 패스트볼만 골라 치는 건 전략이에요,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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