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고척의 밤하늘 (2)
주전 외야수 2명이 부상으로 이탈하며 분위기가 어수선해진 서울 세오레즈.
지난 3연전에서 서울 레나프는 그 틈을 틈타 시리즈를 싹쓸이하는 데 성공했다.
그 뒤로도 3연승을 추가, 4위까지 올라서며 서서히 고착화 될 것 같던 순위싸움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었다.
[4위 레나프, 파죽지세의 6연승!]
[세오레즈전 완봉승 신정율 출격 대기!]
[신정율 '컨디션이 아주 좋다. 저번 경기의 기세를 이어갈 것.']
[레나프 오정태 감독 '세오레즈? 이빨 빠진 호랑이에 불과']
그에 반대 극명하게 대비되는 행보를 보이는 서울 세오레즈. 어두운 전망이 예상되는 기사들이 우후죽순 쏟아지는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6위 추락, 서울 세오레즈의 구원투수를 찾아라!]
[차갑게 식어버린 타선. 최근 5경기 타율 0.197 3득점.]
[6연패, 서울 세오레즈. 더 이상의 패배는 용납되지 않는다.]
[강해준이 빠진 수비진, 최근 5경기 기준 압도적 차로 리그 최다 실책 기록]
그에 더해 경기 시작 2시간 전, 라인업이 발표됐었을 때. 구장에 출입했던 기자들은 그를 확인하고는 탄식을 쏟아냈다.
7월 12일
서울 세오레즈 라인업
1 강해준 3B
2 장건우 2B
3 유장천 SS
4 김지훈 1B
5 이완석 DH
6 정이수 LF
7 문찬용 CF
8 조진웅 C
9 채태욱 RF
"허, 강해준이 1번?"
"2군에서 조금 몰아쳤다고 곧바로 1번이라니.. 6년 동안 그렇게 당하고도 또 믿네 또 믿어. 2군에서 4할 기록하는 타자들도 1군 올라오면 1할 타자 되는 거 순간인데."
"강해준을 믿기는 개뿔이.. 내가 봤을 땐 일종의 충격 요법이야. 붙박이 1번 타자였던 장건우가 밀려났잖아. 최근 4경기 연속 무안타지? 자존심 챙기고 싶으면 성적 내라 이거지. 봐라, 강해준한테도 밀려났다. 화나지 않냐? 이러면서 말이야."
기자들이 수군거리며 강해준의 1번 타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스포츠 베어의 허상필 기자는 말을 아끼며 그라운드를 바라보았다.
3루 내야수로 선발 출장한 강해준.
그 모습을 바라보던 허상필 기자는 며칠 전 2군 경기장에서 우연히 마주친 파이어리츠의 스카우트 존 배쉬를 떠올렸다.
'그 녀석을 거기서 보게 될 줄이야...'
처음 그를 봤을 때까지만 해도 설마 했다. 18년 전, 일본 연수 시절의 룸메이트를, 그것도 한국의 2군 구장에서 만나게 될 줄이야. 반갑게 이야기를 나누던 허상필 기자는 존 배쉬가 보러온 선수의 이름을 알고는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강해준? 메이저에서 한국의 2군 선수를?'
자신의 부정적인 반응에 존 배쉬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정말 실력때문에 저 미스터 강이 2군으로 떨어졌다고 생각하나? 내가 한국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세오레즈의 사장이 멍청하지 않다는 사실 정도는 아네.'
'...무슨 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는데.'
'한국에서 가장 뛰어난 세이버 매트리션들로 팀을 꾸린 서울 세오레즈라지. 그런 곳이 강해준의 가치를 알아보지 못했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지금 세오레즈의 이운요 사장이... 실력이 아닌 다른 이유로 강해준을 내렸다. 이 소리인가? 무엇 때문에?'
'메이저에서도 종종 일어나는 일이지. 메이저리그에 올려도 될 실력을 갖춘 루키들을 마이너리그에 처박아둔 이유가 뭐겠나?'
'...서비스 타임?'
그 뒤로 허상필은 1군 취재를 내팽개치다시피 하며 강해준을 취재하기 시작했다.
'...그렇군. 그래. 모두가 동기인 유장천에게 시선이 쏠려있어서 눈치채지 못했어. 강해준도 프로 6년 차... 올해만 1군에 잘 붙어있기만 해도 포스팅 신청이 가능하다. 제기랄, 이 사실을 왜 진작 알지 못했지?'
돌이켜보면 이상한 점은 아니었다. 40홈런을 때려내는 유격수라면 몰라도 아무도 0할대 타자가 메이저 진출을 꿈꾸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으니까. 심지어 본인조차 그런 생각을 드러낸 적이 없었다.
'1군 경기수를 조절해 포스팅 신청 자격을 얻는 것을 막는다..하지만 그 시점에서 강해준에게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선수 본인조차 생각이 없던 포스팅을? 허상필 기자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물론 강해준이 2군을 초토화하고 세오레즈 1군이 박살 나버리면서 급하게 다시 불러들이는 수밖에 없었지. 그러니 이운요 사장의 행동은 의미가 없게 됐다. 10일 정도의 공백은 포스팅 신청 자격을 얻는데 걸림돌이 되지 못해.'
그때 한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리고 강해준이 2군의 활약을 1군에서도 이어간다면?'
어떻게든 강해준을 붙잡아두려던 이운요 사장은 난감해질 것이 분명했다.
+++
[지금부터 업데이트된 보상 체계가 적용됩니다.]
"...후우."
해준은 눈앞의 떠오른 홀로그램을 바라보며 집중력을 가다듬었다.
'어떻게 바뀌었든 내가 잘하면 그만이다.'
잔디밭을 밟고 있는 스파이크를 밀어보았다. 확실히 허술했던 2군에 비해 접지력이 좋아 수비 반응에 좋은 환경.
"플레이볼!"
[서울 세오레즈의 3선발, 임우주 투수의 투구로 게임이 시작되겠습니다. 타석에는 레나프의 영원한 1번 타자 박웅.]
시작은 가벼웠다.
'1번 타자 박웅. 초구 공략을 즐기고... 최근 당겨친 타구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다. 타구질은 그만큼 좋아졌지만 그만큼 코스가 뻔하고..'
슬쩍 수비 위치를 조정한다. 그리고 박웅의 스윙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초구 몸쪽! 때립니다!]
'온다!'
따아아아악-!
타자의 발, 몸통, 그에 이어 어깨가 일찍 열리는 것을 본 순간 해준은 이미 몸을 날린 후였다.
퍼어억-!
그리고 글러브에 묵직한 느낌이 전해져온다.
이 느낌이다. 몸을 날리고, 글러브 속으로 공이 박력 있게 빨려 들어오는 순간의 감각.
[3루! 하지만 타격과 동시에 날아오르는 강해준! 타구가 글러브에 빨려 들어갑니다! 세오레즈 팬들이 바라던 그 모습이 돌아왔습니다! 하하하, 1루에서는 벌써 난리가 났네요.]
그리고 터지는 환호성.
해준은 비로소 자신이 그라운드에 돌아왔음을 실감했다.
[UNLIKELY LEVEL CATCHING!]
[타구질 분류 Hard 판명]
[속도 151.2km/h]
[발사각도 8.9˚, 라인드라이브 판명]
[캐치 확률 31%]
[Fielding Matrics 수치가 보상 판정에 관여합니다.]
[First Step –0.2초]
[기존 보상 4포인트 -> 조정 보상 16포인트]
[현재 보유 포인트는 143P입니다.]
투수의 볼이 타자의 배트와 충돌했을 때부터 야수가 공이 날아가는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할 때까지의 시간을 뜻하는 First Step.
신기에 도달한 예측력으로 움직이는 해준의 수비는 이미 기존의 반응 속도를 뛰어넘고 있었다.
[2번 타자 문은기 선수. 5구째를 때려 우익수 앞 안타로 출루합니다. 아래로 떨어지는 싱커를 잘 걷어 올렸죠? 1사 1루로 공격 찬스를 만들어나가는 레나프 타선.]
'1사 1루. 3번 타자 박상재. 무겁고 거포다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지만 의외로 약삭빠르단 말이야. 저번 경기, 같은 상황에서 번트로 재미를 봤지?'
이번에는 앞으로 뛰쳐나갈 준비를 한다. 설사 강습타구가 날아오더라도 해준은 처리할 자신이 있었다.
[3번 타자 박상재 선수. 거포답게 임우주 선수가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는... 앗! 기습번트!]
따악-!
살짝 공중으로 떠오른 뒤 떨어져 데구르르 구르는 타구.
하지만 해준의 스파이크 끝은 이미 잔디를 박찬 지 오래였다.
[아, 강해준, 강해준 선수! 도대체 언제부터 대쉬를 하고 있었죠!]
굴러오는 공을 그대로 집어 2루로 송구하는 해준.
[2루, 1루! 더블 플레이! 5-4-3으로 이어지는 병살! 3루수 강해준, 세오레즈의 야수가 돌아왔습니다!]
[UNLIKELY LEVEL CATCHING!]
[....]
[..]
[Fielding Matrics 수치가 보상 판정에 관여합니다.]
[First Step –0.2초]
[ARM Strength 122.8km/h]
[기존 보상 4포인트 -> 조정 보상 19.2P]
[현재 보유 포인트는 162.2P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복귀를 알리듯 시작과 동시에 게임을 지배하기 시작한 강해준.
그때, 레나프의 응원석 측인 3루에서 강해준의 이름을 부르는 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1루 내야석이 홈 응원석임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강해준이 3루라는 이유로 3루에 자리를 잡은 몇몇 골수팬들.
"아아아아아악! 난 이걸 보고 싶었어. 해준이 형, 사랑해요!"
"다른 돌글러브들 다 꺼져버려라. 빠따만 지 꼴릴 때 잘 치면 뭐하냐, 강해준처럼 기본부터 잘해야지!"
그 모습에 몇몇 레나프 팬들이 인상을 찌푸리긴 했지만, 그들도 강해준의 호수비에 하나같이 감탄을 터트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타격 고자였다지만 저런 놈을 내려보냈다고? 세오레즈는 제정신인 거야?"
"아니니까 연패하겠지. 오늘도 추가해서 7연패 가즈아!"
그 사이 1사 1루 상황에서 번트로 더블플레이를 자초한 박상재는 혀를 차며 더그아웃에 들어서고 있었다.
"쯔, 저번에는 잘 먹혔는데."
레나프의 타격코치 정기호도 고개를 끄덕였다.
"타격은 몰라도 수비만큼은 강해준이 세오레즈의 핵이니까. 저놈이 돌아온 만큼 예전처럼 흔들기는 힘들 것 같다. 이제부터는 강공으로 가자."
"네, 알겠습니다. 다행히 우리 타자들도 이런 잔수보다는 강공이 나을 것 같습니다. 타격 싸이클이 올라올 때로 올라왔어요."
아직은 상황을 낙관하는 레나프 측.
하지만 세오레즈의 공격 차례가 돌아오자.
---텅-!
시작부터 이변이 일어났다.
+++
경쾌한 타구음과 함께 펜스를 때리는 공.
[...아. 레나프의 신정율 선발투수. 오늘 2군에서 복귀한 강해준 선수에게 선두 타자 2루타를 허용합니다.]
[2군에서 맹타를 휘둘렀다더니 정말인가 보네요. 제가 선수 출신이라 잘 아는데 저런 경우는...]
그 강해준이 떠오르는 신성 신정율의 초구 포심 패스트볼을 받아쳐 펜스를 맞추는 2루타를 기록했다.
모두가 입이 떡 벌어지는 상황 속에서도, 본인만 여유롭게 2루 베이스로 들어가는 모습에 레나프 측의 감독 오정태는 얼이 빠진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저거 강해준이 맞아?"
자세부터가 확 바뀌어있어서 처음에는 다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을 정도였다. 거기에 더해 공을 쪼개버릴 듯 휘두르는 저 배트스피드.
멀리서 보고 있어도 모공이 송연해질 정도였다.
"...막아, 어떻게든 막아."
호수비에 처음부터 공격이 막히더니 이제는 공격의 물꼬가 틀어지려는 기미를 보였다.
야구는 분위기가 전부다. 평소의 야구 신념대로 오정태 감독은 분위기를 휘어잡기 위해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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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레나프 2선발 신정율.
18경기 등판 101.1이닝 3.76 8승 6패를 기록 중인 레나프의 프렌차이즈 스타인 그는 어이없다는 듯이 2루에 서 있는 강해준을 한차례 바라보았다.
'그걸 쳤다고?'
전광판에는 150km/h이라는 숫자가 떠올라있었다. 그것도 몸쪽 아래쪽에 정확히 제구된 공.
하지만 강해준은 배트를 끄집어내 그 공을 그대로 라인드라이브 타구로 만들어냈다.
'저 강해준이?'
물론 150km/h 넘어서 160km/h를 던져도 맞을 수 있는 것이 야구다. 하지만 그것도 대상이 어느 정도여야 했다.
초등학생이 150km/h짜리 공을 쳐 낼 거라고 예상하는 사람이 없으니까.
말로 하진 않아도 강해준에 대한 신정율의 인식은 그 정도였다.
믿기지 않는 현실에 잠시 어벙한 표정을 짓던 신정율은 벤치에서 보내오는 사인을 확인했다.
'투구 수 좀 늘더라도 전력투구로 삼진을 잡아라?'
강해준의 진루를 허용하지 말라는 소리다. 투구판을 밟은 신정율은 2루를 힐끔 바라보고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타석에서는 2번 타자 장건우가 호흡을 가다듬으며 들어오고 있었다.
'내가 언제 안 그런 적 있습니까 감독님.'
까득-
이를 악무는 신정율.
그리고는 곧 어마어마한 기세로 공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이 게임. 절대 내줄 생각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