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고척의 밤하늘 (1)
파이어리츠의 국제 스카우트 담당 존 배쉬.
그를 매우 언짢은 표정을 지으며 눈앞의 남자를 바라보았다.
"크리스 배그웰."
"존, 오랜만입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만남. 일본이라면 모르겠지만, 한국에서, 그것도 2군 구장에서 그를 만나게 될지는 정말 몰랐다.
존 배쉬는 날카로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여긴 또 어쩐 일이지? 아, 빈대처럼 들러붙을 생각은 하지 말게. 그건 일본에서 충분은 경험했으니까."
2022년을 기준으로 새롭게 개정된 CBA에서 삭제된 국제 유망주 계약금 상한선. 덕분에 존 배쉬는 자신이 보아두었던 유망주를 막판에 끼어든 다저스에 뺏기고 말았다.
그 주동자가 바로 눈앞의 크리스 배그웰. 다저스의 막강한 자금력을 뒤에 엎은 스카우트만큼 무서운 존재도 없었다.
"계약금을 높게 부르는 곳을 선택하는 건 비즈니스의 기본입니다, 존."
존 배쉬는 그 말에 입을 다물었다. 그도 당연히 인정하는 사실이었으니까. 그저 막판에 뺏긴 유망주에 대한 분이 남아있었을 뿐이다.
존 배쉬가 대답을 하지 않자 크리스 배그웰은 그라운드로 시선을 돌렸다.
그곳에 강해준이 있었다. 크리스 배그웰의 회색빛 홍채에 흥미로움이 서렸다.
"저 친구가 미스터 강이군요."
놀라기라도 한 듯 움찔- 어깨는 떠는 존 배쉬. 역시 이 남자는 다 알고 온 것이다.
"...어떻게 알고 왔나?"
단장 보조 앤더슨도 그렇고, 크리스 배그웰도 그렇고. 어떻게 아무도 모르던 이 선수의 존재 여부를 알았을까?
존 배쉬의 의문에 크리스 배그웰은 의아한 기색으로 되물었다.
"당신도 그 글을 보고 온 것 아닙니까?"
"무슨 글?"
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존 배쉬의 표정. 크리스 배그웰은 존 배쉬가 이곳에 있는 배후에 다른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굳이 오래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제가 맞춰보죠. 앤더슨이 보낸 거로군요."
덕분에 존 배쉬는 다시 침묵하길 택했다. 이 남자의 페이스에 휘말리는 것은 이 이상 사양이다.
"그나저나 스카우팅 리포트는 작성하지 않으셔도 됩니까?"
크리스 배그웰은 존 배쉬의 여기저기를 슬쩍 훑어보았지만 이렇다 할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빈손. 리포트지라던가 캠코더 등 이것저것을 챙겨온 그와는 상반된 모습이었다.
존 배쉬는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할 수가 없으니 하지 않는 거지. 나를 뭐로 보는 건가?"
"...리포트 하나 작성 못 하는 아마추어?"
존 배쉬의 얼굴이 종이짝처럼 구겨졌다. 그 표정을 본 크리스 배그웰은 웃으며 이어 말했다.
"농담입니다, 농담. 아무튼 저 선수를 영입하고 싶다면 파이어리츠는 올해 허리띠 좀 졸라매야 할 겁니다."
그리고는 재빠르게 화제를 돌렸다. 그 말에 존 배쉬는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또 다저스에서 채가겠다는 소리인가? 제발 그런 소리는 하지 말게. 이젠 지긋지긋해."
"그게 아니라 다른 스카우트들도 비행기를 타기 시작했다는 소리입니다."
"...다른 놈들이?"
존 배쉬는 눈썹 한쪽을 꿈틀거렸다. 앤더슨과 이 남자는 그렇다 치더라도 다른 스카우트들은 어떻게 알고?
"자네가 소문낸 건 아니....겠지."
"제가 그런 멍청한 짓을 왜 하겠습니까?"
"..."
얄밉긴 해도 그런 멍청한 일을 할 작자는 아니다. 존 배쉬는 잠시 침묵 끝에 입을 열었다.
정보를 받았으니 돌려주지 않으면 영 찝찝할 것 같았으니까. 이 남자는 그 무엇도 공짜로 주는 법이 없었다. 빚은 기회가 있을 때 청산해야 한다.
"그렇다면 나도 한가지 알려주지."
"스카우팅 리포트를 작성하기 힘든 이유. 그걸 듣고 싶었죠."
존 배쉬는 기분 나쁜 표정을 지었다. 이래서 이 남자가 싫은 것이다. 하지만 이내 포기한 듯 한숨을 쉬고는 강해준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선수의 단점을 알고 있나?"
"아무래도 타격 아니겠습니까. 솔직히 제 조카가 더 프로다운 스윙을 하더군요. 아, 이번 리틀리그에서 4할을 기록했습니다. 어마어마하죠? 4할이라니!"
"자네 조카 자랑은 다른 사람에게나 하게나. 그 멍청한 마크 녀석이나 들어주겠지. 리틀리그 4할 그게 뭐 대수라고... 아무튼, 단점이 있다면 적어야겠지. 그런데 적질 못하겠어."
크리스 배그웰의 얼굴에 흥미로운 표정이 떠올랐다.
"어째서죠?"
"사라졌으니까."
따아아악-!
그때 울려 퍼지는 날카로운 타구음.
존 배쉬는 1루를 돌아 2루 베이스에 들어가는 해준을 바라보며 담담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2군 첫 경기. 타격 자세가 완전히 달라져 있었어. 그 전의 일본스러운... 지금은 일본도 많이 달라졌지만 말이야. 아무튼 동양 스타일의 올드스쿨스러운 타격자세였다면 갑작스럽게 메이저리그식 타격자세와 풀스윙을 지향하더군."
"..그럴 수 있지 않습니까? 사실 어떻게 뜯어고쳐도 그 이상 떨어질 성적은 없으니 위험 부담도 없을 텐데요."
"뭐 그렇지. 그리고 성적도 좋아졌으니 결과적으로 최고의 선택이었어. 특히 포심 패스트볼에 한해서는 정말 악마 같지."
그들이 대화를 나누는 사이 해준은 후속 타자의 안타에 홈플레이트를 밟았다.
"..흠, 주루플레이도 상당하군요. 그런데, 사라졌다는 단점이 뭐죠?"
"자네가 말해보게. 포심 패스트볼을 기가 막히게 잘 치는 타자. 그런 타자에게 있을 만한 단점이 뭐겠나?"
존 배쉬의 물음에 크리스 배그웰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오프스피드 피칭."
패스트볼에 강점을 드러내는 선수들은 오프스피드 피칭에 약점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았다.
타이밍이란 그런 것이다. 한쪽에 맞추기 시작하면 다른 한쪽이 삐걱거린다.
물론 메이저리그 쯤 가면 그런 것들이 무의미한 괴물들이 있긴 하지만 이곳은 한국이었다.
더블A 수준의 리그.
존 배쉬는 고개를 저었다.
"반만 맞았네. 오프스피드 피칭, 거기에 브레이킹볼을 추가하지. 내가 보기엔 둘 모두야."
"그렇다면 적으시면 되잖습니까?"
"나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사라졌어."
"단점이 말입니까?"
존 배쉬는 곤란한 기색으로 대답했다.
"그러니까 말이야.. 내 착각인지 배트 스피드도 점점 빨라지는 것 같고. 어쨌든 지금은 체인지업도 패스트볼처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걷어내고 있네. 안타도 나오고 있고."
크리스 배그웰은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야 리포트를 작성하기 힘들다던 존 배쉬의 말이 이해가 간 탓이다.
스카우팅 리포트란 그저 보이는 대로 끄적이는 것이 아니다. 그 선수의 가치를 최대한 객관적으로 평가하며 그 서류를 보는 모든 이들로 하여금 그 선수의 플레이 모습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런 리포트 대상이 계속해서 변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보고서를 작성할 수 있을 리 없다.
기준점이 없을 테니까.
'타격 자세를 바꾸면서 오는 적응 시기일 수도 있고.. 이거 생각보다 상당히 오래 관찰해야겠는걸.'
생각을 정리한 크리스 배그웰은 존 배쉬에게 말했다.
"130km/h의 공도 못 치던 타자가 어느 순간 포심 패스트볼 때려내더니 이제는 체인지업.. 그다음에는 뭐가 있을지 짐작이 가십니까?"
"글쎄. 이 리그의 수준은 너무 낮아서 뭐라 말하기가 힘들군. 다른 변화구라도 던진다면 모르겠는데 변화도 밋밋하고 제구 영... 저런 공들은 때려내도 참고가 안 돼."
"그렇다면 몸값은 어느 정도로 보십니까? 아직 포텐셜을 다 드러내지 않은 타자. 앞으로도 발전할 것이라는 가정하에 말이죠."
크리스 배그웰의 기습적인 질문. 존 배쉬가 어이없다는 듯이 피식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
"그걸 말해줄 것 같은가?"
냉소적인 어조였지만 크리스 배그웰은 개의치 않고는 대답했다.
"전 말해드릴 수 있습니다."
존 배쉬는 그런 그를 경계 섞인 눈초리로 바라보았다.
기묘한 웃음을 짓기 시작한 크리스 배그웰.
"일단 제가 여기 있다는 것만으로..."
그는 그라운드에 머물던 시선을 돌리고는, 존 배쉬를 바라보았다.
"당신이 생각했던 금액에서 500만 달러가 올랐습니다."
+++
오후 1시. 고척동에 위치한 고척돔.
가양동에 위치한 선수단 숙소에서 나온 해준은 다른 선수들보다 이른 시간에 라커룸에 들어섰다.
그때 조곤조곤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해준이 형."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 임우주가 서있었다. 준수한 성적과 외모로 많은 여성 팬들을 보유한 세오레즈의 3선발.
그는 웬일인지 눈 밑에 다크 서클이 내려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본 해준은 오늘이 임우주의 선발 등판 일정임을 떠올렸다.
수비에 관련된 모든 자료를 살피는 버릇이 몸에 밴 탓에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기도 했다.
"오랜만이다. 근데 너 또 잠 못 잤냐?"
해준의 물음에 임우주는 고개를 끄덕였다.
"형 빠지고 나서 패만 2번이라.. 그것도 9실점에. 불안하니까 그라운드 상태라도 봐두려고요. 불규칙 바운드라도 일어나면 곤란하잖아요.."
140 후반에 이르는 패스트볼과 커터, 싱커를 구사하는 임우주. 땅볼을 유도하는 투구 패턴을 가져서인지는 몰라도 그라운드 상태에 병적으로 집착하는 면이 있었다. 선발 날 일찍 나오는 이유도 오직 그라운드를 살피고 패인 자국이 있으면 구장 관리인에게 보수를 요청하기 위해서였다.
'생긴 것만 봐서는 시원시원할 것 같으면 참 소심하단 말이야.'
투수란 놈들이 예민하긴 하지만, 임우주는 그냥 사람 자체가 예민했다. 물론 최근 성적을 고려하면 이해 못 할 일은 아니지만.
'내가 빠지고 나서 2경기에서 4와 2/3이닝 9실점 2패인가. 그중 자책은 3점뿐. 나머지는... 다 실책으로 나왔지.'
언론의 압박도 분명 존재했지만, 그것이 세오레즈 프런트가 급하게 해준을 콜업한 이유였다.
수비의 핵심이 빠지고 부상과 체력 문제로 한번 흔들린 수비진은 1, 2점을 내주는 수준에 그치지 않았으니까.
그렇기에 땅볼 유도형 투수인 임우주가 받은 타격은 막대했다.
그때 트레이닝 코치와 치료를 위해 일찍이 출근했던 1루수 김지훈이 라커룸에 들어섰다.
"어? 뭐야, 벌써 왔냐?"
"형도 일찍 오셨네요."
"뭐, 나이가 나이인지라. 여기저기 삐거덕거려."
허리를 툭툭 쳐 보인 김지훈은 임우주를 바라보았다.
"넌 또 일찍 나왔어? 그냥 수비 믿고 편하게 준비하라니까. 우리가 다 막아준다고 몇 번을 말하냐."
"...아, 뭐. 네."
김지훈은 본인의 라커를 뒤지며 특유의 심드렁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둥, 투수가 수비를 믿어야지 그라운드를 믿으면 어떡하느냐 등의 이야기. 그리고는 물품을 챙긴 채 곧바로 트레이닝실로 사라졌다.
임우주는 그 뒷모습을 얄밉다는 듯이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저 선배가 실책 요주인물 1순위에요. 올해 실책 5개를 기록 중인데, 그중 3개가 제가 선발 등판한 지난 2경기에서 나왔어요. 1루수가 2경기에서 실책 3개. 이건 좀 그렇지 않아요?"
"...어, 어. 그래, 그건 좀 그렇네."
해준이 대충 고개를 흔들어주자 임우주가 의심을 하듯 눈을 게슴츠레 뜨며 물어왔다.
"형은 제대로 막아줄 거죠..?"
해준은 흠칫- 놀라며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아, 그렇지. 그래, 내가 다 막아줄게."
"...형이 막아줬으면 막아줬지 실책 같은 걸 할 리가 없죠. 그에 비해 다른 선배님들은 그냥 아주... 어우, 그 돌 글러브들. 돌 원숭이야 뭐야.."
그때 해준의 눈앞에 홀로그램이 떠올랐다.
[선발투수 임우주의 정보를 수집합니다.]
[최근 3경기 표본을 수집합니다.]
[BABIP 0.562]
[SOFT% 23.5]
[MED% 4....]
[...]
'..우주가 허용한 타구 정보들이?'
홀로그램은 훈련을 위해 그라운드에 들어서고도 계속 이어졌다.
[거리 정보를 수집합니다.]
[홈플레이트 > 좌측 펜스 거리 110.5m]
[홈플레이트 > 우측 펜스 거리 110m]
[홈플레이트 > 센터....]
[지열, 바람 세기, 기압, 그라운드의 상태 등의 정보를 수집합니다.]
'이것 봐라?'
2군 구장에서는 단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던 정보들. 해준은 이 정보들이 콜업되며 바뀌었다는 보상 체계와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오후 4시 30분.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린 해준은 야수조 미팅에 참여했다.
옹기종기 모여 상대 선발투수의 비디오를 보고 있는 야수들.
김우경 타격 코치는 그들을 보며 간략한 브리핑을 읊고 있었다.
"평균 146.4km/h. 최고 150km/h. 주 구종은 138km/h까지 나오는 고속슬라이더. 컷패스트볼도 이따금 던지는데 이건 실투율이 좀 높아. 그래도 주자가 있는 상황에선..""
그러다 문득 생각을 바꿨는지 오히려 되묻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다들 알지. 그럼 이 투수가 3-1 카운트에서 가장 많이 던지는 구종이 뭔지 말해볼 사람 있나?"
"슬라이더입니다."
2루수 장건우의 대답에 김우경 타격 코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주자가 득점권에 출루한 상황에서 초구는 어떤 걸 가장 많이 구사하지?"
하지만 이번에는 누구에게서도 대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그런 세세한 데이터까지 외워야 한다는 것은 많은 선수들에게 부담이었으니까.
"니들은 명색이 프로 선수가 전력분석원들이 고생고생해서 만들어준 자료를.. 어휴, 됐다. 이런 건 항상 해준이만 읽지?"
김우경 투수 코치는 비디오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해준을 바라보았다.
"어때, 강해준. 자신 있어? 2군에서 좀 쳤다며?"
그 질문에 해준은 김우경 타격 코치를 바라보았다.
'150km/h? 그야 쉽지.'
그리고는 씨익- 웃어 보였다.
"오늘도 좀 칠 겁니다."
해준의 눈앞에는 수많은 메시지가 떠올라있었다.
[8포인트가 소모됩니다.]
[링크 활성화율이 증가합니다!]
*84% -> 85%
*145.15km/h -> 146.88km/h
[다음 링크 활성화율 증가를 위해서는 16포인트가...]
[16포인트가 소모됩...]
[.....]
[32포인트가 소모됩니다.]
*86% -> 87%
*148.61km/h -> 150.34km/h
[대응 구종에 대한 20-80스케일이 조정됩니다.]
*포심 패스트볼 55 -> 60
*써클 체인지업 25
준비는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