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수에서 타자까지-19화 (19/137)

19. 퀘스트 링크 (3)

7월 7일, 레나프 2군과의 3차전 5회 초.

해준은 벤치에 앉아 고양 세오레즈의 공격을 바라보고 있었다.

딱-!

홈플레이트 앞에서 세차게 튕기며 공중으로 떠오르는 볼.

8번 타자 서규필은 인플레이가 선언되자 1루를 향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포수 김동수는 그런 공을 잡아 침착하게 2루로 송구. 2루수는 간결한 스텝으로 2루 베이스를 찍은 뒤 1루를 향해 공을 뿌렸다.

촤아아아악-!

그 사이 서규필 또한 몸을 날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까지 감행했지만 한치가 모자랐다. 주먹을 쥔채 오른팔을 들어보이는 1루심.

"...-아웃!"

더블플레이.

전광판에 아웃 카운트 두 개가 동시에 올라갔다. 이어 9번 타자 박대현이 타석에 들어서자 강해준은 배트를 들고 대기 타석으로 향하며 생각을 정리했다.

'아웃이긴 해도 다들 악착같다.'

1군의 외야수 서재필과 한민곤이 부상 소식이 전해진 전날 밤.

외야수 채태오와 장태완은 급하게 짐을 싸 1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본 몇몇 베테랑 선수는 직감했다.

이건 기회다. 1년에 몇 번 찾아오지 않은 그 빌어먹을 기회.

평소 타자진의 뎁스가 두텁기로 유명했던 서울 세오레즈. 그동안 그 사실은 2군 타자들에게 불행이나 다름없었다.

200안타 페이스 우익수 서재필, FA를 앞두고 펄펄 날아다니는 중견수 한민곤과 좌익수 정이수, 60홈런 홈런왕 조병민. 2루수 장건우는 리그 최고의 수위타자였고 타율이 낮긴 해도 지명타자 이완석과 1루수 김지훈의 장타력 또한 무시무시한 수준.

그 상황에서 백업들까지 3할을 쳐대며 2군 선수들에게는 난공불락과 같던 타선이 바로 서울 세오레즈 1군이었다.

공격력이 바닥이긴 해도 역대 최고의 야수라 불리는 해준조차 밀려났으니 말을 다 했을 정도.

그 상황에서 서재필과 한민곤이 부상으로 이탈했고, 유력한 콜업 후보인 강해준은 엔트리 재등록 제한 기간에 걸려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고 콜업으로 올라간 채태오와 장태완이 오래 버티리라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냉정하게 느껴지긴 해도 그 사람들은 1군용이 아니야.'

어디까지나 '급하게' 올라갔을 뿐이다. 당장 오늘 경기가 끝나고 다시 내려온다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상황.

게다가 외야수에 공백이 생겼다고 꼭 외야수만 콜하리라는 법도 없었다. 1군에도 외야 수비가 가능한 백업들이 있었고, 그렇게 되면 외야 백업을 얕게 안고 가는 대신 다른 공격력이 좋은 자원을 콜업할 수 있는 상황. 다른 포지션이라고 백업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으니까.

그렇기에 아무것도 모르는 신인들은 과열된 분위기에 눈치만 보고 있고, 베테랑들은 이를 악물고 뛰는 현상이 벌어졌다.

'나 같은 경우는 5일 뒤.'

7월 12일. 서울 레나프와의 고척돔 경기부터 출전이 가능하다. 해준은 그때까지 남은 경기수와 타석을 계산해보고, 자신이 보여줘야할 모습을 떠올렸다.

'내게 지금 필요한 건 성적.'

그것도 다른 2군 선수들을 압도하는 성적. 해준은 1군에서 밀려나던 순간을 떠올리며 배트 그립을 있는 힘껏 잡아쥐었다.

--끼이익.

'프런트고 전력분석원이고 입을 다물게 만들 타격 성적이 필요해.'

[대응 가능 구종]

*포심 패스트볼 55

*써클 체인지업 25

4회 초, 1루 땅볼을 기록하며 접속한 퀘스트 링크.

그곳에서 해준은 아웃라이어 브랜드 맥케이 상대로 안타를 기록하여 다시 한번 써클 체인지업에 대한 감각을 발전시켰다.

'더 이상 퀘스트 링크를 사용할 필요는 없어.'

모든 것은 적재적소라는게 있는 법이니까.

'실력으로 아웃을 당한다면 모르겠지만..'

2군 레벨에서는 이 정도로도 충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해준은 배트를 들어 눈앞에 들어 보였다.

쳐낼 수 없는 공이라면 모를까, 대응 구종에 써클 체인지업이 추가되는 순간부터 일부러 당할래야 당하기도 힘들었다.

2군 선수들이 던지는 체인지업이란 대체로 그런 레벨이 많았다.

브레이킹도 밋밋하고, 제구도 불안한, 20-80스케일로 평가하자면 딱 20에서 25에 걸치는 그런 수준.

이제 필요한 것은 체인지업에 대한 대응능력 향상보다는 성적.

1군에서는 또 이야기가 달라지겠지만 지금을 물불 가릴 때가 아니었다.

'일단 1군부터 올라가고 본다.'

생각을 정리하는 사이 9번 타자 박대현이 볼넷으로 출루했다.

타석에 들어선 해준은 슥슥- 소리와 함께 스파이크로 땅을 고르며 슬쩍 포수를 바라보았다.

'포수 김동수. 이 사람도 자신에게 책임이 돌아올 행동을 할 사람은 아니지.'

이기적이고 투수를 배려할 줄 모르는 타입. 공격력이 뛰어나 팀에서는 공격형 포수로 키울 모양이었지만 이래서야 투수의 능력까지 깎아먹는 암덩어리일뿐이었다.

1군에서 김동수와 몇번 마주친 해준은 그 사실을 꿰뚫고 있었다.

'전 타석에서 파울을 몇 번 만들어냈지만 그대로 올거다.'

해준이 타격 자세를 잡자 투수와 포수가 사인을 교환하기 시작했다. 고개를 몇번 젓는 투수. 하지만 선배 김동수의 강권에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는 기색이 역력했다.

'역시.'

벤치에서 해준의 기록을 토대로 코치와 상의하여 만들어낸 볼배합. 애초에 김동수에게는 그것에서 벗어나 다른 구종을 요구할 배짱이 없었다.

얻어맞게된다면 자신의 책임이니까.

'일단.. 가볍게 시작해볼까.'

투수는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하체가 중심이동을 시작하며 허리, 팔 스윙, 손목의 움직임 하나하나가 눈에 박히듯 확연히 들어온다.

그리고 포심 패스트볼과 비슷한 움직임으로 뿌려지는 볼.

그렇게 공중에서 미미한 브레이킹이 걸리는가 싶더니, 바깥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공이 날아오는 결에 따라.'

해준은 망설임 없이 배트를 휘둘렀다.

'부드럽게 밀어낸다.'

---터엉!

우측 펜스 상단을 맞추고 그라운드로 떨어지는 타구.

[Double!]

[타구질 분류 hard 판명]

[속도 149.58km/h]

[발사 각도 23.4˚]

[캐치 확률 9%]

[1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체인지업이라는 약점에 노출되며 공략당하는 모습을 보여주던 해준.

다시 폭주의 기미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

그 뒤로 해준의 폭주는 계속됐다.

이어진 코쿤스와의 3연전. 그곳에서도 13타석 7타수 6안타 2 2루타 1 3루타 1홈런 3볼넷을 기록.

체인지업으로 파고들어오는 공략법은 완전히 깨부수어버렸다.

2군에 내려온 뒤 AVG 0.772, 출루율 0.821, 장타율 2.181.

고작 몇 경기 치르지 않았다고 해도 괴력적인 파괴력을 뽐내고 있었다.

'..코쿤스 2군은 투수 코치를 바꿔야 하겠는데.'

본인조차 얼떨떨한 성적일 정도. 마지막 코쿤스와의 3연전에서 투수들이 패스트볼과 체인지업만 던져댄 탓이 매우 컸다.

'슬라이더랑 스플리터는 팔꿈치와 어깨에 무리가 가니까 변화구 종류는 체인지업만 던지라 했다고?'

리틀 리그에서나 들을 법한 말을 프로에서 하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지만, 철밥통과 깡통 이론으로 유명한 그 코쿤스라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홈런 타자에게 다운스윙을 강요하며 따르지 않으면 싸대기를 날리는 코치가 1군에 있었던 곳이 바로 이 야구판이었으니까.

'..나만 좋았지 뭐.'

해준은 홀로그램을 띄웠다.

[현재 보유 포인트는 27p입니다.]

덕분에 포인트를 쓸어모으다 시피했으니까.

'그나저나 이 정도까지 했는데 설마 안면몰수하지는 않겠지. 콜업.. 되겠지? 뭐, 이 정도 했으면 내 손은 떠났다.'

이제 기다리는 일만이 남았다는 것을 해준은 잘 알고있었다.

그 사이, 두텁고 안정된 타선을 구축했던 서울 세오레즈에서는 이변이 불어 닥치고 있었다.

[1군 콜업 채태욱, 3경기 연속 무안타.]

[외야수 장태완 손목 부상으로 또 다시 2군행.]

[부상에 부상.. 부상 지옥에 빠진 세오레즈 1군.]

[홈런왕 조병민, 어깨 통증으로 10일 경기 결장]

[박이인 감독 '부상은 전염병 같다. 부상이 염려되는 선수들에게 관리차원에서 휴식을 줄 것.']

[서울 세오레즈. 대규모 로스터, 라인업 변화 암시?]

[부상병동 세오레즈, 그 돌파구를 찾아라.]

서재필과 한민곤의 부상 이후, 기다리기라도 한듯 주전 선수들의 잔부상과 1군으로 콜업됐던 외야수들의 부진, 이탈이 줄을 이었다.

지난 2년 간 큰 부상 없이 운영되었던 라인업이 삐걱거리기 시작하며 연패에 빠지기 시작한 세오레즈.

박이인 감독이 1군 로스터에 변화를 줄 것을 넌지시 내비치자,당연하게도 언론은 2군을 주목했다.

그리고 곧, 경악할 수 밖에 없었다.

[7할 타율, 8할 출루율, 20할 장타율. 세오레즈의 가을 야구 마지막 희망은 강해준?]

[야수가 괴수가 되었다. 180도 변해버린 강해준!]

[2군에서의 8일. 강해준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분노한 야수의 폭주! 2군 초토화]

그와 함께 팬들의 성화가 쏟아졌다.

-강해준 내릴 때부터 알아봤다. 애초에 굳이 강해준 내려서 이렇게 된 거 아니냐. 꼴 좋다 ㅋㅋㅋㅋㅋ

-그동안 해준이가 멀티 백업으로 수비 받쳐준 게 셀 수도 없음. 덕분에 선수들도 적절하게 지타로 나서면서 체력 관리했던 거지. 없으니까 이 꼴 나는 건 당연한 거.

-백한타 어지간히 빡쳤나보네 ㅋㅋㅋㅋ 장타율 20할 실화?

-ㅉㅉ. 현장도 모르는 샌님들이 로스터 짜니까 이 꼴 난거다. 수비가 얼마나 중요한지도 모르는 야알못들.

-지금 타선 삽 들고 땅 파는 꼴 보면 공격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지도 않은데?

-...제발 강해준 콜업 좀 해라. 방망이도 망해가는데 수비가 똥망이라 이닝이 안끝나... 안 그래도 더운데 선수들 체력 쭉쭉 빨리더라.

언론과 팬들의 성화에 여기저기서 압박감을 느끼는 세오레즈의 프런트.

결국, 결정을 내리게 된다.

[(단독)서울 세오레즈, 12일 경기에서 강해준 콜업 예정]

그렇게 코쿤스과의 3연전을 마치고 경기가 없던 7월 11일 오후.

드디어 조대욱 감독의 입에서 해준이 기다리던 말이 떨어졌다.

"이 문디 자슥, 콜업이다."

'드디어..'

해준은 고개를 깊게 숙였다.

"함께 해서 힘들었고, 다시는 보지 맙시다, 영감님!"

조대욱 감독은 그런 그를 보며 끌끌 웃어보일 뿐이였다.

"미친자슥... 그래 평생 1군으로 꺼져버려라."

그 말에 해준이 중얼거렸다.

"...와, 시발."

"...뭔 발?"

황당해진 조대욱 감독.

자신이 무슨 말을 중얼거렸는지 깨달은 해준은 황급히 손사래를 치며 변명했다.

"아, 아니. 영감님한테 한 말이 아니에요. 아, 진짜라니까요!"

해준의 눈앞에는 콜업 확정 소식과 함께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라있었다.

[플레이어의 소속 리그 레벨 변동 감지]

[2군 보상 체계가 더이상 적용되지 않습니다.]

[1군 보상 체계가 업데이트 됩니다.]

[경기 상황에 따라 획득할 수 있는 포인트가 변동됩니다.]

[2군 성적을 결산합니다.]

[....]

[2군 성적 결산 S+, 50P가 지급되었습니다.]

[1군 진입 보상, 50P가 지급되었습니다.]

[현재 보유 포인트는 127p입니다.]

[아웃라이어 스토어가 재개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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