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퀘스트 링크 (1)
7월 6일 오후.
잠실에 위치한 올림픽돔 경기장은 관중들로 가득 메워져 있었다.
고작 0.5게임 차로 각각 5, 6위에 랭크되어 있는 서울 세오레즈와 서울 레나프.
몸을 날리고, 펜스에 부딪히고, 그라운드 위를 뒹군다.
서로 양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공 하나하나에 몸을 던지는 선수들의 허슬플레이가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런. 이거 좀 그런데."
하지만 외야 수비 코치 유재운은 걱정스러운 눈길로 선수들을 바라보았다.
허슬 플레이는 팬들의 마음을 움직이지만, 선수의 부상 위험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시킨다. 특히나 지금처럼 과열된 분위기에서는 무언가 툭- 튀어나오곤 했다.
"선수들이 너무 무리하는 것 같습니다."
박이인 감독 또한 그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감독의 의무 중 하나는 선수들의 부상 리스크를 관리하는 것. 그런 면에서 지금의 모습은 화려해 보일지언정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었다.
"이번 이닝 끝나고 들어오면 호수비도 좋지만, 머리 좀 식히라고 해. 자기 몸은 자기가 챙겨야지."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그 순간.
-퍼어억!
외야에서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기어코 사달이 터지고야 만 것.
공을 잡기 위해 달려가던 외야수 서재필과 한민곤이 콜 미스로 인해 서로 충돌하고 말았다.
--오우우우..
퍼져나가는 관중들의 탄식. 선수들은 그라운드 위에 엎어진 채 고통에 신음하고 있었다.
"재필이 형!"
"민곤아!"
급히 앰뷸런스가 진입했고, 서재필과 한민곤은 병원으로 후송되었다. 박이인 감독은 경기 내내 초조한 마음으로 병원에서의 정밀검사 결과를 기다렸다.
그리고.
-재필이는 갈비뼈 골절, 민곤이는 어깨 탈구랍니다. 당분간 안정을 취해야..
"아이고 골이야.."
세오레즈는 주전 외야수 둘을 동시에 잃어버리고야 말았다.
+++
다음 날, 오전.
프런트에서 보내준 로스터 등록 현황을 받아든 박이인 감독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
채태오(21)
장태완(56)
......
2군에서 불러들인 선수 중, 그가 기대하던 이름이 없었다.
'내가 평소에 프런트 의견은 적극적으로 수용하지만..'
오래전부터 메이저리그 운영 방식을 받아들인 서울 세오레즈는 프런트의 영향력이 다른 구단에 비교해 매우 강한 편이었다.
심지어 로스터조차 감독이 관여할 수 없다.
하지만 이건 정말 아니었다. 박이인 감독은 급한 걸음으로 단장실을 찾아갔다.
"강해준을 불러들여야 합니다."
권병오 단장은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로스터는 내가 정하는 거 아니다. 알고 있잖아."
"단장.. 아니, 병오 형님. 이건 정말 아닙니다. 해준이 최근 3경기 경기 내용 들으셨습니까? 이젠 애물단지 타자가 아닐지도 모릅니다."
해준의 활약은 세오레즈 1군에서도 단연코 화제의 이슈였다.
하지만 권병오 단장은 단호한 어투로 말했다.
"불가."
"어째서요!"
의외의 상황에 박이인 감독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현재 세오레즈의 전력 누수를 효율적으로 막을 수 있는 선수는 강해준뿐이었으니까.
부상이란 놈이 그렇다. 한 번 터지기 시작하면 전염병처럼 급속도로 퍼져나가 팀 전력을 갉아먹는다. 그런 면에서 모든 포지션 수비가 가능한 강해준은 최상의 대책이었다.
그는 항변하듯 말했다.
"애초에 타선진의 폭발력만 믿고 내린 거 아닙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닙니다. 갑작스럽게 타격이 확 죽어버렸어요. 1, 2점 차이로 승부를 가르는 게임에서는 수비의 힘이 절대적이란 말입니다. 반드시 해준이를 등록해야 합니다. 그러니 제가 누누이 말했잖습니까! 타격은 언제 침체될지 모른다. 그럴 때 필요한 게 꾸준하게 실점을 줄여줄 야수뿐이..."
박이인 감독의 말이 길어질 기미를 보이자 권병오 단장은 양손을 들어 책상을 내리쳤다.
쿵-!
그 모습에 박이인 감독이 움찔하고 나서야 권병오 단장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그만. 너만 프로 출신이냐? 나도 프로 출신이야 인마. 나라고 해준이 안 올리고 싶겠냐? 그런데 지금은 안돼."
"이유가 뭡니까."
착 가라앉은 박이인 감독의 어투. 듣고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면 멱살을 쥐어 잡고서라도 드잡이질 할 생각이었다.
"1군 엔트리에서 한번 말소된다면 10일이 지나야 재등록이 가능하니까."
그리고 그 대답을 듣는 순간, 박이인 감독은 목소리를 높였던 자신이 부끄러워져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마음이 급하다 보니 규정은 생각도 못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너무 성급했습니다."
"..아니다. 애초에 그놈의 세이버메트릭스인지 뭔지. 너무 믿었어. 강해준 같은 선수는 애초에 내리는 게 아닌데.. 그래도 내 입장도 있다. 사장이 주도하는 변화이니 거부할 수가 있나. 아무튼 로스터도 너보다 먼저 보고 넌지시 물어봤지. 해준이는 안된다더라."
권병오 단장의 말에 박이인 감독이 물었다.
"그쪽에서 뭐라고 했습니까?"
여기서 그쪽이란 이운요 사장이 직접 관리하는 전력분석팀을 뜻했다.
"잠깐의 활약은 샘플이 적어 신뢰할만한 통계가 안 된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러더라고."
권병오 단장은 책상 위 달력을 들여다보며 대답했다.
"그래도 다시 한번 말은 해보지. 어디보자.. 10일이 지나면 7월 12일? 아무튼 이때 올려보도록 노력해볼게. 됐지?"
"...잘 부탁드립니다."
+++
고양 세오레즈는 최근 플레인즈 2군과 레나프 2군을 연이어 격파하며 3연승을 내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 수훈 선수를 꼽으라면 단연 강해준이었다.
3경기 합계.
11타수 9안타 2개의 2루타와 3홈런 3볼넷 4도루 7득점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타자라는 조롱 섞인 별명과는 어울리지 않은 모습에 경기장에 모인 팬들은 경악했고, 스카우트들은 황급히 리포트를 작성하기 시작했으며, 전력분석원들은 그 이유에 대해 타격폼의 변화다, 아니다 어프로치의 변화다라며 토론을 벌였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경계의 대상으로 떠올랐다.
하지만 정작 가장 기뻐해야 할 사람, 강해준은 지금 이 순간 안도의 한숨을 내뱉고 있었다.
'아슬아슬했네.'
[현재 보유한 포인트는 30p입니다.]
레나프 2군과의 1차전. 5회 초까지 21포인트를 모았을 때는 사실 여유가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생각치도 못한 문제가 발생했다.
'이래서 수비는 점수를 크게 줘도 안정적인 수급처가 되기 힘든 거야.'
우익수로 출전을 했는데, 안타를 제외하고는 정말로 잡을 수 있는 타구가 단 하나도 오질 않은 것.
그 뒤에도 볼넷과 안타를 하나씩 추가하긴 했지만, 고작해야 1점이었고, 노다지 역할을 톡톡히 했던 선발투수 정한평이 내려가고 노련한 불펜 투수가 올라오며 도루도 막혀버렸다.
2차전에서는 6회까지 단타 2개를 추가했지만 총 24포인트. 정말 큰일 나는 줄 알았다.
'7회랑 9회에 3점짜리 수비가 연이어 안 터졌으면 진짜 1군행은 세이 굿바이였지.'
슬슬 레나프 측에서도 해준이 변화구에 약점을 드러낸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고, 실제로 단타 2개를 허용한 뒤에 철저한 변화구 싸움을 걸어와 무안타에 그쳤다.
그렇게 절벽 끝에 선 기분으로 모으게 된 30포인트.
[00:19:38]
해준이 야간 훈련까지 끝마치고 샤워를 한 뒤 숙소로 돌아오자 남은 시간은 20분도 채 되지 않은 상태였다.
'좋아, 이제 사야지.'
마음의 준비를 끝마친 해준이 허공을 노려보았다.
그러자 기다리기라도 한 듯 메시지창이 스르르- 떠올랐다.
[링크 활성화율을 증가시키시겠습니까?]
그 내용에 해준은 인상을 구겼다.
'얘가 뭔 헛소리야. 그거 말고 체인지업 내놓으라고, 체인지업.'
그제야 제대로 된 메시지를 띄우는 시스템.
['BA(below-average)레벨 체인지업' - 타이밍 모듈(Timing Module) 를 구매합니다.]
[30P가 소모됩니다.]
[현재 보유한 아웃라이어 포인트는 0P입니다.]
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중에는 네모난 USB모양의 홀로그램이 떠올라있었다.
'사용.'
[플레이어 소켓에 모듈을 결합합니다.]
'소켓?'
하지만 이해할 수 없는 내용. 잠시 고민하던 해준은 오랜만에 자신의 상태창을 띄웠다. 그곳에서 새로운 내용을 발견할 수 있었다.
[연결된 아웃라이어(Linked Outlier)]
-토니 디에고 블랑코 (Double A)
-BA급 체인지업, 파트 타이밍 모듈(0/10)
아웃라이어와의 링크 리스트에 새로운 내용이 추가되어있었다.
'...이건 뭐 어쩌라는 거지.'
블랑코와 링크가 발생했을 때처럼 눈앞이 암전되거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지도 않았다. 미간을 좁힌 해준은 손가락을 들어 글자를 건드려보았다.
그러자 주르르- 설명이 떠올랐다.
[모듈은 일회성 링크 생성 아이템입니다.]
[모듈은 해당 구종과 관련된 이벤트를 감지할 시 작동합니다.]
[모듈의 사용 횟수는 10회입니다.]
[링크 퀘스트 클리어에 성공할 시, 고정 링크가 생성됩니다.]
[모듈의 사용 횟수가 모두 소모되면 더 이상 링크를 획득할 수 없게 됩니다.]
"으음.."
해준은 그 메시지들을 입안에서 되새김질하며 몇 번이고 읽어보았다.
'...그래서 관련된 이벤트가 뭐야. 나보고 체인지업이라도 던지라고?'
하지만 여기저기 클릭해보아도 더 이상의 설명은 나타나지 않았다.
'...뭐야. 뭐 어쩌라고.'
+++
다음 날, 레나프 2군과의 경기.
해준은 뜬눈으로 밤을 보낸 채 타석에 들어섰다.
'역시 그것밖에 없겠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 결과, 결론은 한가지. 해준은 타격 자세를 잡았다.
"플레이볼!"
경기 시작을 알리는 구심의 우렁찬 음성.
그와 함께, 레나프의 선발투수는 확신에 찬 팔 스윙으로 공을 던져왔다.
부우우웅-!
"스윙- 스트라이크."
첫 구부터 바깥쪽 스트라이크존으로 들어오는 좌완 투수의 써클 체인지업.
'...와씨. 역시나.'
해준은 슬쩍 투수를 바라보았다.
어제 경기의 후반 이닝부터 느꼈지만, 드디어 레나프 측의 배터리가 자신의 약점에 대해 완전히 파악했다는 것이 분명했다.
철저히 체인지업 승부. 당연하게도 패스트볼을 던질 생각은 없어 보인다.
다만 해준은 당황한 기색을 내보이지 않았다.
'..여태까지 운이 좋은 편이긴 했지.'
올 것이 온 것뿐이었으니까.
플레인즈의 이정한은 자존심이 상한다고 포심 패스트볼만 던져대는 변태였으며, 레나프의 정한평은 포심 패스트볼만 스트라이크존에 쑤셔 넣을 수 있는 미완성의 투수였다.
당연하게도 포심 패스트볼에 대해서는 악마나 다름없는 해준이 이득을 취할 수밖에 없는 구조.
하지만 일반적인 투수의 경우는 달랐다.
그들에게는 이정한 같은 무모함이 없었고, 정한평 같이 덜 다듬어지지도 않았다.
비록 피지컬이 부족하다던가 기타 사정의 이유로 1군에 올라가지 못하고 있었지만, 상대가 패스트볼만 골라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부담 없이 스트라이크존을 향해 변화구를 던질 각오가 되어있는 투수.
그런데도 해준은 평소와는 다르게 별다른 대처 방법을 궁리하지 않았다.
그저, 체인지업이 날아오면 풀스윙을 해댈 뿐.
누가 보아도 마구잡이로 휘두른 배트에 포심 패스트볼이 하나라도 걸리길 바라는 것 같았다.
하지만.
'체인지업. 체인지업. 제발 체인지업!'
해준의 속내는 정반대였다.
'관련된 이벤트라면 이게 확실해. 아무리 생각해도 타자인 나보고 마운드에 올라서 체인지업을 던지라는 건 말이 안 되니까.'
사실 오전에 슬쩍 올라서 던져보기도 했다. 당연히 별다른 변화는 없었고, 그 순간 해준은 확신했다.
"스윙- 스트라이크!"
"스윙- 스트라이크! 배터 아웃!"
이거, 체인지업에 아웃당하라는 이야기구나.
'체인지업을 못 쳐서 사용한 모듈인데 체인지업을 쳐야 발동이 된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
그렇게 3번의 헛스윙이 홈플레이트 위를 허무하게 가르고.
[이벤트 트리거 감지]
['더 체인지업 드릴러The Changeup Driller', 브랜드 맥케이와 연결됩니다.]
'왔다!'
해준은 일이 자신의 예상대로 풀렸음을 깨달았다.
동시에 의식이 어둠 속으로 가라앉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