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수에서 타자까지-16화 (16/137)

16. 특명, 포인트를 모아라! (5)

7월 5일 구리 레나프 파크.

때는 한창 경기가 진행되고 있을 5회.

어느 순간부터 경기장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조금씩 늘어나고 있었다. 일찌감치 아이를 데리고 자리를 잡았던 부부는 주변에서 서서히 웅성거림이 늘어나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디서 이렇게 몰려오는 거야?"

"주말이잖아. 유니폼 보니까 다들 주변 경기장에서 사회인야구 하는 사람들일걸? 광나루랑 구리 한강 변에 야구장이 좀 몰려있거든."

"그런데?"

"허, 답답하다... 여보야. 왜긴 왜겠어. 당연히 경기 보러 왔겠지."

"내가 답답해? 집에 갈까? 안 그래도 더운데 잘됐네. 가자, 진수야. 어서 일어나. 지금 가면 우리 진수가 좋아하는 헤이즐넛 아이스크림 사줄게."

"진짜?"

"아, 아니. 여보. 내 말은 그게 아니라.."

부인이 아이 손을 잡고 일어나려는 기미를 보이자 남편이 쩔쩔거리고 있을 때. 몇몇 야구 동호회와 사회인 야구인들은 그 광경을 보며 낄낄거리면서 뜨거운 햇빛를 피해 양산 아래로 모여들었다.

"이야~ 2군 선수들도 좀 불쌍하다 야. 우리는 힘들면 하지 않으면 그만인데 저 사람들은 계속해야 하잖아."

"직업이잖아, 직업."

"아직 고양 세오레즈 공격 이닝인가? 어서 강해준 나오는 거 보고 싶은데."

"강해준이 타격하는 걸 보고 싶다고? 확실히 날씨가 덥긴 덥나봐."

"아니, 당연히 수비 말하는 거지 수비. 보고 배워야 할 점이 한두가지가 아니라고. 실제로 보면 그냐앙~ 아크로바틱! 그 자체라니까?"

그들은 하나둘씩 모여앉아 자리를 잡으면서도 야구에 대한 이야기로 여념이 없었다.

"야구의 기본기는 수비라고, 수비. 우리 팀만 해도 봐봐. 땅볼 하나도 처리 못 하니까 수비 이닝만 질질 늘어지다가..."

"야,야. 그만. 알았으니까. 저기 니가 좋아하는 강해준이다."

"어, 정말? 어디. 지금 고양 공격 이닝인데."

"그러니까. 저기 저봐. 2루에 서 있네."

세오레즈 유니폼을 입고있던 남자는 눈을 가늘게 뜨며 2루 베이스를 바라보았다. 직관을 수도 없이 갔지만, 그는 해준이 베이스를 밟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진짜네. 뭐지, 강해준이 출루를 했다고?"

심지어 스텝까지 밟으며 투수의 신경을 교란하고 있었다. 도루에 능숙한 쌕쌕이형 주자들이나 보여줄 법한 광경. 게다가 당장이라도 3루 베이스를 향해 뛰어갈 기세가 그대로 전해져왔다. 그 모습에 남자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데 강해준이 도루를 잘했던가?"

+++

"...이건 생각도 못 했는데."

레나프의 2군 감독, 우재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동안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 같던 정한평의 문제점이 이번 경기에서 제대로 터져버린 탓이었다. 물론 언젠가 문제가 될 것이라고는 예상하기는 했다. 그게 한 선수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거르면 뛰고, 승부하면 홈런을 때려버린다. 투수인 정한평은 이미 노이로제에 걸린 것 같은 표정이었다.

우재필 감독은 그 모습이 마냥 한심하면서도, 욱- 하는 감정이 터져나왔다.

"한평이 저거, 내가 퀵모션이랑 견제 연습 좀 하라고. 그게 투수의 기본이라고. 누누이 말하지 않았던가?"

투수코치 김준봉은 순간 말문이 막혀 최대한 머리를 쥐어짜 냈다. 말은 정한평을 질책하는 것 같아도, 이건 순전히 자신에게 하는 말임이 분명했다.

"...한다고 한게...."

"저거라고?"

김준봉 코치의 대답에 우재필 감독은 고개를 뒤로 젖혔다. 혈압, 고혈압을 조심해야 한다. 그 모습에 김준봉 코치는 열심히 변명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사실 한평이 정도의 실력이라면 여태껏 그렇게 큰 문제가 되진 않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등한시한 모양입니다만.. 오늘 경기로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을 테니 앞으로는 많이 달라질 겁니다."

우재필 감독은 그 말이 화가 나서면서도 일부는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김준봉 코치의 말처럼 그동안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투수로 전향한 지 1년도 되지 않은 정한평의 체인지업은 2군에서 마구나 다름없었고, 출루 자체를 억제하는 능력이 뛰어났기 때문에 스텝, 견제 같은 자잘한 문제는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으니까.

'내 탓이지. 내 탓이야.'

결국 이 눈 뜨고 보기 힘든 참사는 제대로 감독하지 않은 자신의 탓이다. 책임을 자신에게로 돌린 우재필 감독은 2루 베이스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생각지도 못한 플레이야. 강해준... 전 경기에서는 장타로 마운드를 폭격했다더니 이번엔 주루? 도대체 이해하기가 힘들어.'

우재필 감독에게 지금의 해준은 불가사의함 그 자체였다.

2루 베이스 근처를 배회하고 있는 해준. 그를 바라보는 우재필 감독의 눈빛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도대체 강해준이 언제부터 저렇게 뛰어난 주자였을까.'

1군에 붙어있는 시간이 길긴 했지만, 해준은 지금처럼 간간이 2군으로 내려오곤 하는 선수였다. 세오레즈 타자진의 뎁스는 풍부하기로 유명했으니까.

당연하게도 우재필 감독은 해준의 플레이를 코앞에서 수도 없이 봐왔다. 하지만 저런 적극적인 주루 플레이는 처음 보는 것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발은 빨랐지만 굳이 도루를 즐겨하진 않아 하는 모습이었지. 오늘은 도대체 무슨 심경의 변화가 있길래 저리 저돌적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는 것이 없다. 의미 없는 추측을 내던져버린 우재필 감독은 정한평의 현재까지 투구 기록을 확인했다.

'..어찌됐든 아직 2실점. 이 정도면 잘 막아내고 있어. 공이 조금 뜨는 것 같긴 하지만... 1이닝 정도는 더 던질 수 있겠지.'

우재필 감독은 김준봉 코치에게 말했다.

"도루는 신경 쓰지 말라고 해."

"하지만.."

"3루는 그냥 내줘. 괜히 주자 신경 쓰다가 제구만 더 흔들려. 어차피 신경 쓴다고 막을 수 있어 보이지도 않는데 뭘."

"네, 알겠습니다."

곧바로 투수에게 사인을 보내는 김준봉 코치. 그 모습을 바라보던 우재필 감독은 순간 등골이 서늘해지며 한 가지 불길한 가능성을 떠올렸다.

'...설마 홈스틸까지 하려고 하지는 않겠지?'

+++

이제는 견제구조차 날아오질 않는다.

"세이프!"

3루심이 양팔을 크게 1자로 뻗어 보였다. 투수가 견제를 포기하자, 해준은 망설이지 않고 3루 베이스를 훔쳐냈다.

[Stolen Third Base!]

[리드폭 2.7m]

[최대속도 32.55km/h]

[보상으로 1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소속 리그에서 가장 빠른 최대속도로 도루에 성공하였습니다.]

[추가로 1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현재 보유한 아웃라이어 포인트: 20P]

"후읍... 후읍.."

하지만 추가 포인트가 걸려있는 만큼 전력으로 뜀박질을 한 덕분에 숨이 가빠왔다.

'좋아, 이대로 가자.'

5회 초, 무사 3루.

시간은 2시를 넘기며 뜨거운 햇볕이 최고조에 달한 상황. 땀이 턱선을 따라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해준은 연속 도루로 다소 가빠진 호흡을 가다듬었다. 가만히 서 있어도 더위가 체력을 갉아먹는 날씨. 하지만 머릿속에서 아드레날린이 치솟아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눈앞에 황금의 엘도라도가 있다면 그것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할 탐험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팔다리가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을 쟁취하는 것이 오히려 정상.

'벌써 20포인트.'

목표까지 고작 10포인트를 남긴 상황이었다. 하지만 해준은 자신에게 한 치의 여유도 허락하지 않고 있었다.

프로로서 살아온 6년간의 세월. 수비에서 제아무리 경악스러운 모습을 보여주어도 타석에만 들어서면 쏟아지는 조롱과 비아냥, 무시도 6년.

그것을 털어버릴 기회 앞에서 여유를 부린다는 것은 침팬지도 하지 않을 멍청한 짓이니까.

오히려 독기와 지독함을 더욱 끌어내어 사냥감의 목덜미를 물고 놓지 말아야 한다.

해준은 이번에도 3루 베이스에서 조금씩 멀어지며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우투수인 만큼 자연스럽게 그 모습은 시야에 정한평의 시야에 걸려들었고, 그의 눈에서 파지직- 스파크가 튀었다.

'저 새끼가 끝까지?'

벤치 사인에 3루를 내주자 이제는 홈까지 바라본다. 아무리 자신이 퀵모션이 좋지 않다지만, 이건 자존심의 문제였다. 하지만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린 정한평은 빠르게 흥분을 가라앉혔다.

'그래, 뛰어봐라. 그래 봤자 사람이 공보다 빠르겠냐.'

오히려 뛰어주면 고마울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것은 경기장은 메운 관중들이라고 다르지 않았다.

'설마.'

'에이, 아무리 그래도 이번에도?'

'못 뛸 거야. 설마 홈스틸을?'

'갈 수 있을까?'

하지만 해준에게서 전해지는 열기는 그들의 생각을 부정하고 있었다. 뛴다. 저 주자는 분명 뛸 것이다. 그 광경을 보자 손아귀가 절로 땀에 축축하게 젖어 들어갔다.

서서히 고조되는 긴장감. 그라운드 밖의 스카우트와 전력분석원, 그라운드 안의 내야수, 외야수, 그리고 투·포수까지. 모든 사람의 신경이 해준에게로 쏠리기 시작했다.

꿀걱-

그리고 누군가 크게 목울대를 울렁였을 때.

"뛴다!"

"포수- 홈스틸!"

"이것도 못 잡으면 나가 뒈져 새끼들아!"

이미 해준은 홈플레이트를 향해 질주하고 있었다.

----오오오오!

--뛰었어!

200명이 채 되지 않는 관중들. 그러나 제대로 불이 붙은 분위기만큼은 1군 경기에 밀리지 않을 정도였다.

그 순간, 수많은 사람들의 예측이 해준이 달리는 누상 위로 겹쳐갔다.

'아웃? 세이프?'

'애매해. 들어갈 수 있을까?'

'세이프다!'

'아웃이야!'

투수가 던지는 공의 목적지를 향해 달려야 한다는 홈스틸의 특성상, 그 성공 확률은 매우 낮다.

그렇기에 몇몇 스카우트와 전력분석원 등의 관계자들은 반신반의했고.

'잡았다!'

당사자 중 한 명인 포수 이훈은 해준의 아웃을 확신했다.

하지만 현재를 바라보며 모습을 드러내는 그 모든 의문과 확신 속.

정작 그라운드를 질주하는 해준만큼은 과거를 돌아보고 있었다.

'공이 뜨고 있었어.'

경기가 진행되는 동안 투수 정한평은 볼넷과 삼진을 넘나드는 극단적 피칭 스타일을 선보였다. 덕분에 투구 수는 비정상적으로 폭등했고, 본래 투수 출신이 아닌 만큼 갑작스러운 구위 저하는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그 과정에서 낮게 깔려오던 로케이션이 사라지며, 조금씩 붕 뜨기 시작했던 정한평의 공.

체인지업의 각이 살아있는 덕분에 버텨내고 있었지만, 문제는 해준이 루상에서 그 모든 것을 관찰하고 있었다.

그리고 정한평의 포심 패스트볼이 2구 연속으로 포수 머리 높이보다 높게 들어가는 것을 확인한 순간. 해준은 망설임 없이 땅을 박찼다.

'공 끝은 아직 살아있지만...'

높은 공은 충분히 문제가 된다. 그렇기에 해준은 일부러 도루를 시도할 것이라는 뉘앙스를 팍팍 풍겼다.

홈스틸을 경계한 상대가 체인지업을 던지지 않고,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도록.

그리고 그 공을 잡기 위해 포수의 미트가 하늘 높이 향하는 그 순간을 노리기 위해.

어느새 해준의 몸은 허공을 날아오르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한편, 포수 이훈은 해준의 노림수를 뒤늦게 알아차렸다. 타자의 머리 높이로 날아오는 포심.

퍼엉-!

다행히 팔을 높게 뻗어 잡아내기는 했지만.

"세이프-! 세이프-!"

난공불락일 것만 같았던 홈플레이트는 이미 해준의 손에 떨어진 뒤였다.

+++

레나프 파크에서의 경기가 막을 내리고 있을 무렵.

인천 공항 제2 국제터미널.

국제항공 프랑스 스카이라인을 타고 입국한 한 남성이 있었다.

필드의 쟁쟁한 스타들을 제치며 다저스의 보물이라 불리는 남자, 국제 스카우트 크리스 배그웰.

유명 아이비리그 대학 중 하나인 MIT를 졸업한 그는 특이하게도 오피스 업무가 아닌 현장을 돌아다니는 스카우트, 그것도 국제 스카우트를 자원했는데 그 결과가 드러나는 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각각 멕시코, 이탈리아, 네덜란드에서 뽑아온 유망주들이 2021, 2022, 2023시즌 3년 연속으로 메이저리그 신인왕을 수상한 것.

그 뒤에도 야구 오지로 알려진 지역에서 뛰어난 유망주들을 연이어 발굴하며 다저스의 프런티어 정신을 가장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는 남자였다.

[다저스 국제 스카우트 크리스 배그웰 입국!]

스카우트치고는 상당한 유명세를 얻고있는 그였고,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입국했을 때 그 앞에 기자가 나타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반갑습니다, 크리스 배그웰 씨."

"음?"

크리스 배그웰의 회색빛 홍채에 작은 놀라움이 드러났다.

"절 아십니까?"

그는 한국에 온 경험이 처음이었고, 그렇기에 자신의 유명세를 실감하지 못하는 모습이었다. 주로 남미, 유럽이 주 활동무대였던 그였기에 더더욱 그랬다.

"알다마다요. 일단 한 가지만 먼저 묻겠습니다. 목표는 역시 세오레즈의 유격수 유장천. 맞죠?"

다짜고짜 결론을 내리고는 질문을 던지는 기자. 예의라곤 없는 모습에 크리스 배그웰은 불쾌함이 훅- 치고 올라왔지만 무언가를 떠올리고 이내 미소를 지었다.

"아... 미스터 유. 노코멘트.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그 대답에도 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단 이름을 알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대답은 된 것이나 마찬가지였으니까.

그 뒤에도 기자는 이것저것 물었지만, 크리스 배그웰의 대답은 일관됐다.

"세오레즈? 좋은 팀입니다."

"세오레즈의 타선진은 올 시즌이 끝나고 2명의 선수가 FA입니다. 다른 2명은 포스팅 자격을 얻고요."

"아, 알죠. 알다마다요."

"그 선수들에게도 관심이 있다는 뜻입니까?"

"노코멘트."

그때마다 마치 중요한 기밀을 지키는 것처럼 대답을 거부하는 크리스 배그웰. 하지만 정작 나는 그들에게 관심이 있다는 뉘앙스를 팍팍 풍겼다.

물론 알고 대답한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예의라곤 밥 말아 먹은 기자를 놀리기 위한 것뿐이었으니까.

'겸사겸사 연막도 치고. 그런데 도대체 유가 도대체 누구야?'

그런 그가 고개를 갸웃거릴 무렵.

만족했다는 듯이 돌아간 기자는 단독이라는 타이틀을 걸고는 기사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세오레즈 유격수 유장천, 유명 스카우트 크리스 배그웰이 주목한다!]

[미다스의 레이더망에 걸려든 세오레즈 타선진]

[이미 드러난 크리스 배그웰의 천재성, 목표는 유장천?]

[세오레즈 측, 선수들의 의사가 있다면 포스팅 수용할 것.]

하지만 정작 크리스 배그웰의 목적지는 경기도 구리시.

다음 날에도 세오레즈와 레나프의 2차전이 예정되어있는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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