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야수에서 타자까지-14화 (14/137)

14. 특명, 포인트를 모아라! (3)

내야 관중석에 앉아있던 게이머즈의 스카우트 이재민은 자신도 모르게 한차례 어깨가 들썩였다.

"번트?"

해준이 기습적으로 번트를 대어 공의 반발력을 효과적으로 죽였고 3루 선상을 따라 흘러가도록 만든 것. 덕분에 허를 찔린 레나프의 투·포수와 3루수는 그에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못했다.

우연이라고 볼 수 없는 번트의 정석 같은 플레이.

그 옆에 함께 앉아있던 시갈스의 스카우트 최진식 또한 침음성을 흘렸다. 그의 노회한 눈빛에는 놀라움이 서려 있었다.

잠시 무언가를 생각하던 그가 입을 열었다.

"...이거, 아무래도 맞는 거 같지?"

"그런 것 같습니다."

이재민 또한 최진식의 생각을 알아챘다. 그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으니까.

"혹시나 하고 달려왔더니 역시나군요. 강해준 선수... 드디어 극복한 것 같습니다."

보통 선수라면 이렇게 놀랄만한 일이 아니다. 허를 찌른 기습 번트는 잘만 굴린다면 출루 확률이 매우 높았으니까. 오히려 기본 소양과 같은 것. 문제는 그 타자가 그 세오레즈의 강해준이라는 사실이었다.

"그놈의 트라우마 언제까지 가나 했다. 참 오래도 걸렸어."

이재민의 말에 최진식은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게 아니라면 말이 되질 않죠. 저런 번트는 공을 끝까지 보고 배트를 가져가야 하니까요."

6년 전, 당시 강해준의 소속팀이었던 대구 더히트가 암암리에 몇몇 팀과 접촉한 일이 있었다. 목적은 당시 초대형 유망주로 주목받던 해준에 대한 트레이드 제안.

베테랑 투수 한 명과 내야수 한 명이 끼어있긴 했지만, 그 제안의 핵심이 해준이라는 것은 바보가 아닌 이상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렇게 밀고 당기는 몇 번의 협상 끝에 서울 세오레즈와의 트레이드가 KBO에서 승인됐고, 이후에 그 이유가 암암리에 퍼져나갔다.

"그때 서울 세오레즈가 눈 뜨고 코 베였다고 생각했는데.. 그쪽 단장도 참 음흉했어. 그치?"

"당시 즉전감 선수를 3명이나 주고 데려갔으니까요. 그런데 양 쪽 모두 결함이 있었을 줄은.. 두 명은 도박으로 영구제명, 한 명은 음주운전으로 임탈인데 그 트레이드 대상은 공도 제대로 못 보는 반푼이 타자. KBO 역사에 길이 남을 트레이드 아니었겠습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세오레즈 단장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끌끌, 그래서 야구판 모른다는 거야. 남들이 보기엔 영 아닐 수 있어도 진짜 결과는 항상 시간이 지나봐야 드러나거든. 팀 기둥 뽑아서 반푼이 유망주 데려왔다고 욕먹던 세오레즈는 5년간 한국 역사상 최강의 야수를 쏠쏠하게 뽑아먹었지."

평소 더히트 측에 감정이 좋지 않던 최진식은 통쾌하다는 듯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리고는 1루에 서 있는 해준을 흥미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당장 가서 단장한테 트레이드하자고 말해볼까? 세오레즈 쪽 스카우트도 안 보이는데. 지금이라면 시도해볼 만할 것 같기도 하고."

공식적인 트레이드 마감 시한은 7월 31일. 아직 시간이 있었다. 하지만 이재민은 고개를 저었다.

"스카우트는 없어도 2군 감독은 있죠. 바로 윗선에 보고 될 겁니다. 아니, 이미 했을지도 모를 일이고요."

"허허, 그렇지."

그 뒤로 그들은 어떠한 말도 꺼내지 않은 채 해준을 바라보았다. 사실 이재민과 최진식은 서로에게는 드러내지 않았지만, 마음속은 이미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그들이라고 시간이 남아서 해준을 보러 온 것이 아니었으니까.

타선의 핵이 될만한 타자의 부재로 부진한 공격력에 허덕이는 게이머즈의 스카우트 이재민. 그는 테이블에 턱을 괸 채로 해준을 바라보았다.

'리틀 쿠바의 재림이라던 강해준이다. 수비는 말할 것도 없고. 아직 저평가되어있을 때 데려와야 한다. 2차 드래프트 시기? 그땐 이미 늦어. 지금 당장이다.'

주전 타자들이 부상으로 신음하며 간신히 상위권을 지키고 있는 시갈스의 최진식 또한 마찬가지였다.

'저놈만 있으면 시갈스가 우승이다. 그 전의 상태로만 돌아와도 최소 30홈런 유망주였어. 그런 거포가 전 수비 포지션을 소화한다고? 1군 뎁스에 어마어마한 유연성을 부여할 거다. 강해준이야말로 시갈스에 어울리는 인재야. 반드시 데려와야 해!'

그들의 눈빛에 강렬한 스파크가 튀기기 시작했다.

+++

포수 이훈.

레나프 2군의 주전 포수로 프로 9년 차에 접어든 올해, 그의 각오는 남달랐다.

'반드시 1군 엔트리에 정착한다.'

그도 분명 촉망받던 포수 유망주 시절이 있었지만, 그것도 오래전의 일. 이제는 경찰 야구단도, 상무도 사라진 덕에 현역으로 입대를 해야 하는 28세의 미필 선수에 불과했다.

'어떻게든 사람들 인식 속에 이름을 박아놔야 해.'

누구든 좋았다. 감독, 코치, 혹은 팬들. 어디서라도 이름이 언급된다면 군 복무를 마치고 나서도 자신을 불러줄 팀이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드시 1군 엔트리에 들어가 인상적인 활약을 남기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오늘, 생각치도 못한 기회가 찾아왔다.

'....어? 어디서 본 얼굴인데..'

스카우트와 전력분석원, 그 외 관계자들이 몰려든 것. 한두 명이라면 몰라도, 이렇게 사람들이 모인 경우는 드물었다.

'이 녀석 때문이구나..!'

그리고 곧바로 그 이유를 알아차렸다. 바로 타석에 서 있는 고양 세오레즈의 유격수, 강해준. 한가롭게 한담을 나누던 스카우트들의 시선이 해준이 타석에 들어서자 빠르게 경기장으로 쏠렸다.

아무리 전 경기에서 장타쇼를 펼쳤다지만 이해가 가지 않는 광경. 포수마스크 뒤에 숨겨진 이훈의 표정이 잔뜩 일그러졌다.

'누구는 3할 5푼을 쳐도 2군에서 빌빌거리는데... 고작 한 경기 잘했다는 이유로 이렇게까지 주목을 받는다고..?'

비단 그에게만 국한된 문제는 아니었다. 2군에는 3할 5푼을 넘기는 타자가 7명이고, 그중 2명이 4할 타자다. 30홈런 페이스로 순항하는 장타자도 4명이나 존재했다.

그런 타자들조차 1군 뎁스를 뚫어내지 못하고 2군에 머문다.

'보는 눈이 그렇게 없어서야..!'

이훈은 표현할 수 없는 답답함에 입술을 꽉 깨물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다독였다.

'그래, 그래도 이 인간 덕분에 이렇게 판이 깔렸다. 나도 한다면 하는 놈이야.'

그런 생각과 함께 정한평과 사인을 주고받았다.

'일단 초구는 몸쪽 깊숙이. 반응부터 살피자.'

반드시 보여주겠다. 포수 이훈이라는 선수를. 그렇기에 그는 가장 안전하면서도, 평소 해준이 건드리지 못하기로 유명한 코스로 미트를 옮겼다.

'철저하게 틀어막아 주겠어.'

그렇게 생각한 순간.

--퉁!

'..어?'

해준이 갑작스럽게 기습 번트를 성공시켰다.

이훈이 포수 미트에서 허전함을 느꼈을 때는, 이곳에 틀어박혀야 했을 공이 3루 선상을 따라 굴러가고 있었다.

'이런 제기랄!'

첫 시작부터 단추를 잘못 꿰매버린 이훈.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1루로 나선 해준이 달리기 시작한 순간, 그의 악몽 같은 하루가 시작되었다.

+++

야구는 기록의 스포츠다.

그리고 해준이 생각하기에 이 아웃라이어 포인트(Outlier Point)라는 놈은 그 기록과 반응하여 쌓이는 놈이었다.

현재까지 확인한 부분은 볼넷과 단타는 0.5점, 2루타는 1점, 홈런은 2점. 0.5점이 등차수열로 증가하는 방식이니 3루타는 1.5점일 것이 분명했다.

'그리고 소속 리그에서 기록을 세우면 추가 점수를 준다.'

그 예로서, 낮은 각도의 라인 드라이브 홈런을 기록했을 때 해준은 추가 점수를 획득했다.

'하지만 각도 같은 기록이야 내가 신경 쓸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니 제외. 그러니 단순 타격 성적만으로 계산해보자면...'

남은 19포인트를 벌어들이기 위해 9개의 홈런과 1개의 2루타를 기록해야 한다는 말이 된다. 해준은 고개를 흔들었다. 언뜻 생각해도 2경기에서 9개의 홈런을 쳐내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설사 모든 타석에서 홈런을 기록한다하더라도... 2경기라면 9타석이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어. 타격으로 목표를 달성하기에는 타석수 자체부터가 성립하지 않는다. 타격은 포인트를 벌어들이기에 너무 제한적인 경로야.'

더군다나 홈런을 몰아치기 시작하는 해준을 경계한 투수가 내보내기를 택한다면? 그 순간부터 해준이 벌어들일 수 있는 포인트는 볼넷 포인트인 0.5점뿐이다.

그렇기에 해준의 머릿속에 떠오른 또 다른 방법은 수비였다.

'평범한 타구 처리도 1점이나 주어진다. 간혹 어려웠던 것들은 3점이나 4점. 2점과 5점짜리도 있겠지.'

수비로 아웃라이어가 된 해준답게 타격에 비교한다면 매우 후한 점수 산정 방식이 적용됐다. 하지만 이마저도 문제가 존재했다.

'타구가 내 앞에 날아오는 건 순전히 운빨이잖아.'

재수가 없다면 경기 내내 손가락만 빨고 있는 경우가 드물지만 존재한다. 아무리 해준이라도 타자가 쳐내는 타구의 방향마저 조절할 수는 없으니까.

'그렇다면 가장 확실한 포인트 수급 방법이...'

하지만 해준은 포기하지 않고 생각을 이었다. 아직 남은 방법은 존재했다.

타자가 야구에서 하는 행동은 크게 3가지.

타격, 주루, 수비.

해준의 관심은 그중 남은 주루에 쏠렸다.

'타격은 슬럼프가 올지 몰라도, 주루는 꾸준하다.'

깊게 생각해본다면 오히려 부침이 많을 수밖에 없는 타격보다 꾸준한 주루가 상대적으로 많은 포인트를 벌어다 줄 창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사실을 떠올린 해준은,

촤아아아악-!

망설임 없이 실천했다.

"세이프!"

힘껏 뻗은 손이 베이스에 닿는 느낌과 함께, 이루심의 세이프 콜이 울려 퍼졌다.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으로 베이스를 태그했던 해준은 그라운드에 박고 있던 고개를 들었다.

[Stolen Second Base!]

[리드폭 3.6m]

[최대속도 32.2km/h]

[보상으로 1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소속 리그에서 가장 빠른 최대속도로 도루에 성공하였습니다.]

[추가로 1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현재 보유한 아웃라이어 포인트: 13.5P]

역시나 알림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후웁.. 역시."

추측이 맞아떨어졌음을 확인한 해준은 미소를 지었다.

'이대로만 가자.'

물론 주루로만 포인트를 벌어들일 생각은 아니었다.

'타격, 수비까지 어느 정도 받쳐준다면 19포인트를 모으는 일도 가능하다.'

포인트 수급 경로의 다각화. 이 방식이라면 남은 2경기에서 19포인트를 모으는 것도 마냥 불가능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해준은 흙이 묻은 유니폼을 탈탈 털며 일어났다.

상황은 1회 초, 무사 2루.

해준의 도루로 고양은 단숨에 스코어링 포지션에 주자를 내보낸 상태가 되었다. 덕분에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던 정한평은 죽을상을 지었다.

'이런 빌어먹을. 번트로 출루하더니 도루까지?'

너무 허무하게 2루에 주자를 허용해버렸다. 정한평은 슬쩍 레나프 측 더그아웃을 바라보았다. 투수코치의 표정이 이제는 아예 저승사자처럼 변해있었다.

'...후우. 진정하자. 그래, 어차피 막으면 된다.'

결국 투수는 결과로 평가받는다. 정한평은 무실점을 하면 된다며 스스로를 세뇌했다. 하지만 이제는 소리가 그의 신경을 긁어왔다.

슥-슥-

2루 주자 해준이 계속해서 스파이크로 땅을 비대며 투수의 의식을 분산시키고 있었던 것.

정한평은 흥분으로 거칠어오는 호흡을 애써 가다듬으며 와인드업에 들어갔다.

'진정하자. 진정하자. 어차피 못 뛸 거다.'

하지만 이미 흔들린 정신은, 그의 투구 리듬조차 흩트려놓았다.

'이런!'

손에서 다소 공이 빠졌다.

펑-!

"볼-"

타자 머리 높이로 들어간 공. 다행히 포수의 캐치로 와일드피치는 피했다. 안도의 한숨을 쉰 정한평은 신중하게 가기로 결심했다.

'일단 좀 베이스에 붙여놔야겠다.'

포수가 사인을 보내자, 2루수가 커버를 들어감과 동시에 정한평이 빠르게 뒤돌며 견제구를 던진다.

"세이프."

하지만 이미 눈치를 채고 귀루해있는 해준. 정한평은 그 행동을 2번 더 반복하며 해준의 리드폭을 줄여놨다.

'이제 됐다.'

그렇게 생각한 순간.

너무 2루 주자에게 신경을 쓴 탓에 흔들려버린 투구 밸런스가 문제가 되었다. 스트라이크존을 향해 던진 2구가 한복판에 몰려버렸다.

따아아악-!

당연하게도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던 2번 타자 장원진이 날카롭게 배트를 휘둘렀다.

쏜살같이 좌익수 앞으로 떨어지는 타구.

타격음과 동시에 2루에서 달리기 시작했던 해준은 타구를 확인하고는 서서히 속도를 줄이며 3루를 통과하고 있었다.

너무 타구가 너무 잘맞은 탓에 공은 이미 좌익수의 글러브에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홈으로 가기엔 애매해.'

3루에 서있는 코치조차 머물라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

하지만 그 순간, 해준의 시야에 좌익수가 공을 더듬는 모습이 잡혔다.

'어?'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코치의 신호는 아직 떨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해준의 발은 이미 미친 듯이 홈플레이트를 향해 내달리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고 있던 정한평은 다급히 소리를 질렀다.

"홈!"

해준이 그대로 3루 베이스를 지나쳤음을 인지한 좌익수도 이를 악물고는 재빨리 홈을 향해 공을 뿌렸다.

'무리야!'

홈플레이트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포수의 미트로 빠르게 빨려 들어가는 송구. 정한평은 아웃을 확신했다.

하지만 그 순간, 몸을 던진 해준이 슬라이딩 과정에서 교묘하게 몸을 틀었다. 몸을 최대한 오른쪽으로 뒤틀며 하체가 바깥쪽으로 빠져나간다.

포수 이훈이 이를 악물며 미트를 가져다대려보려 했지만, 해준의 몸은 간발의 차로 빗겨나갔다.

"....세이프!"

심판의 우렁찬 콜이 울려 퍼졌다. 정한평의 얼굴이 일그러지고 있었다.

'...와.'

반면, 세이프임을 확인한 해준은 홈플레이트에 올라가 있던 손을 떼며 몸을 일으켜세웠다.

'나도 모르게 달려버렸네.'

아무튼 번트로 0.5점, 도루로 2점. 벌써 2.5점이나 벌어들였다. 홈런도 2점짜리인 마당에 그 이상의 포인트를 벌어들인 해준은 자신의 선택이 옳았음을 확신했다.

'다음 타석에서도 시도는 해봐야겠는걸.'

이를 악물고 뛴다면 다시 한 번 최대 속도 기록을 갱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득점을 기록한 해준이 더그아웃으로 돌아가려는 순간.

눈앞에 예상치 못했던 메시지창이 떠올랐다.

[소속 리그의 평균 주자보다 효율적인 주루로 득점을 기록하셨습니다.]

[보상으로 1포인트를 획득하셨습니다.]

[현재 보유한 아웃라이어 포인트: 14.5P]

'어?'

주루란 놈은 생각보다 노다지 밭임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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