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장] 리버스 원(Reverse One) (1) >
@ 하늘길이 열리고······.
2등급 거대 비행 마물 ‘크라콘’이 하계에 떨어졌습니다.
추락의 여파로 놈의 생명력은 30%밖에 남지 않았고 지니고 있던 모든 능력도 40% 수준밖에 발휘할 수 없는 상태입니다.
이 상태는 유지되는 동안 놈을 쓰러트리지 못한다면 정말 절망적인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습니다.
참고로 크라콘은 모든 종류의 도발 기술에 면역력을 지니고 있으니 주의 바랍니다.
폭발과 함께 대도시 튠이 더는 도시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초토화되는 순간 추가적인 이벤트 알림이 전해졌다.
‘아, 크라콘! 맞아, 크라콘이었어.’
상혁의 전생에 이 크라콘은 무려 12시간 만에 쓰러졌었다.
12시간 동안 무수히 많은 유저들이 놈에게 달려들었지만, 대부분이 죽었었다.
아무리 크라콘이 치명적인 데미지를 입고 제 능력을 전부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기본적으로 2등급 하늘 고래인 놈은 무지막지하게 강했다.
사실 놈을 상대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멀리서 원거리 공격만 계속 날리는 것이었다.
아무리 크라콘이 모든 종류의 원거리 공격에 강력한 내성을 지니고 있어서 원거리에서 날린 공격의 데미지가 80%가 감소한다고 해도 가까이 붙었다가 괜히 1초 순삭을 당하는 것보단 멀리서 안전하게 조금씩, 조금씩 공적 포인트를 쌓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이었다.
전생에서도 이런 방식으로 오랜 시간 동안 활약한 원거리 딜러들이 꽤 높은 공적 포인트를 얻었었다. 하지만 상혁이 선택하기엔 너무 조잡한 방법인 것도 사실이었다.
‘마음 같아선 라그나 블레이드를 한 방 날려주고 싶지만······ 불확실한 게 너무 많으니 참자.’
두 가지만 확실하면 지금 상황에선 라그나 블레이드 최강이자 최고인 한 수가 될 수 있었다. 특히 라그나 블레이드는 모든 종류의 데미지 감소 효과를 무시하기 때문에 크라콘의 강력한 원거리 공격 내성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만약 크라콘이 라그나 블레이드를 맞고 소멸하지 않을 것이란 사실과 또 라그나 블레이드의 데미지가 공적 포인트 계산에 적용된다는 사실만 확실하게 확인할 수 있다면 라그나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게 맞았다.
하지만 둘 다 확신이 불가능한 사안들이었다.
특히 라그나 블레이드의 데미지는 공적 포인트를 계산할 때 전혀 적용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 만약 그렇게 되면 죽 쒀서 남 주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그래서 상혁은 이번 이벤트에선 라그나 블레이드를 철저히 봉인할 생각이었다.
어차피 라그나 블레이드가 없다고 해서 문제가 될 건 하나도 없었다.
‘목표는 하나. 압도적인 공적 포인트 1위가 되는 것이다!’
폭발의 여파가 아직 가라앉지도 않았지만 상혁은 상관없다는 듯이 눈앞에 생겨난 거대한 크레이터를 향해 뛰어내렸다.
* * * *
‘이게 다 뭔 일이야?’
아담은 고단했던 새벽 레이드를 성공적으로 끝내고 튠으로 복귀해 잠시 쉬고 있었다. 그는 프랑스 최고의 EL길드 중 하나인 ‘메르’의 메인탱커이자 길드마스터였다.
그는 갑작스러운 이벤트 알림을 보는 순간 직감적으로 뭔가 엄청난 일이 일어났다는 걸 알아차렸다.
뭔가 거대한 괴물이 튠으로 추락한다는 말에 일단 튠을 빠르게 벗어나 괴물의 추락을 지켜보았다.
괴물의 추락과 함께 폭발이 일어났고 그 결과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 그리고 그 구덩이 안에선 몸길이만 거의 몇백 미터는 될 것 같은 엄청나게 큰 몬스터 한 마리가 서서히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그그그그그그그그.
‘저걸 잡으라고? 그게 가능은 한 일일까?’
아담이 보기에 크라콘은 정상적인 방법으론 절대 잡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저걸 잡는 방법은 오로지 하나뿐이겠네.’
그는 크라콘을 향해 달려가는 수천 명의 유저를 바라보며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시체 끌기 공략······. 그것뿐이네.”
시체 끌기 공략은 간단했다. 그냥 계속 유저들이 끝없이 달려들며 전투를 이어가는 것이었다.
당연히 달려든 유저들은 순식간에 죽어버릴 것이다. 하지만 어차피 놈에게 달려들 유저들은 넘쳐났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마어마한’ 보상이란 떡밥에 홀린 무수히 많은 유저들이 이곳으로 날아오고 있었다.
그렇게 날아온 이들이 계속 괴물에게 달려들면 자연스럽게 시체 끌기 공략이 완성되었다.
‘도발이 면역이라는 얘긴 순수하게 탱커의 능력만으로 어그로를 잡으란 건데······ 말도 안 되는 일이잖아? 수천 명의 유저들이 아무 계획도 없이 동시에 공격을 쏟아내는 순간 어그로가 사방으로 튀며 어그로를 다시 잡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질 텐데 어떻게 하라는 걸까? 아니, 그건 둘째로 치고 혹시라도 기적적으로 어그로를 잡았다고 해도 저 무시무시해 보이는 괴물을 상대로 1초나 탱킹을 할 수 있을까? 젠장, 여러 의미로 이번 이벤트는 탱커들한테 불리한 이벤트가 되겠네.’
아담은 최상급 랭커 유저답게 단번에 견적을 뽑아냈다.
‘일단 좀 더 지켜볼까?’
아담은 섣불리 달려들지 않았다. 어차피 탱킹을 할 수가 없는 존재라면 굳이 무리해서 달려들기보다는 분위기를 살펴보다가 적당히 자신이 활약할 곳을 찾을 생각이었다.
그는 최소한 크라콘의 기본적인 공격 패턴이라도 알아낸 후 움직일 생각이었다.
콰과과과과과광!
아담이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 크라콘은 거대한 꼬리를 휘둘러 그나마 조금 멀쩡했던 튠의 나머지 반쪽 지역을 쓸어버렸다.
그냥 가볍게 꼬리를 휘둘렀을 뿐인데 수십 명의 유저가 비명을 지르며 사라졌다.
이벤트 알림에 따르면 현재 크라콘의 능력은 본래의 40%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놈의 공격은 한 방, 한 방이 전멸 기술처럼 보였다.
‘에휴, 저런 괴물은 도대체 어떻게 잡으라는 거야? 탱킹 자체가 아예 불가능할······.’
아담은 튠에 추락한 이 거대한 괴물은 이벤트에만 등장하는 몬스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바로 그때 아담은 말도 안 되는 장면 하나를 목격했다.
어디서 튀어나온 건진 모르겠지만, 갑자기 검은색 인영(人影) 하나가 등장했고 그 인영의 손에서 뭔가 길쭉한 끈 같은 게 튀어나와 크라콘의 몸에 꽂혔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순간 크라콘의 몸이 휘청했다.
“으음?”
아담은 단지 우연의 일치였을 뿐이라고 상각했다. 아무리 봐도 한 유저의 공격 때문에 거대한 크라콘이 휘청일 리는 없었다. 하지만 곧이어 들려온 외침들은 그의 생각을 단번에 깨버렸다.
“어, 어그로가 잡혔다!”
“검은색 마갑을 입은 탱커! 저 사람이 어그로를 잡았어!”
‘어그로를 잡았다고? 도발 기술도 먹히지 않는 괴물의 어그로를 어떻게 한 방에 잡은 거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들이 연속해서 일어나자 아담의 눈빛은 급격하게 흔들렸다.
“어? 버틴다!”
“와, 대박! 힐러들 뭐해? 모두 저 유저한테 힐을 쏟아부어!!”
“힐 샤워! 힐 샤워!”
심지어 검은색 마갑을 입은 유저는 크라콘의 공격을 버텨내고 있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야?’
아담은 반쯤 입을 벌리고 크라콘의 어그로를 꽉 잡고 탱킹을 하는 검은색 마갑을 입은 유저를 바라보았다.
“우리 딜을 해도 되는 거 맞아?”
“아무리 그래도 도발도 안 되는 데 어그로가 튀지 않을까?”
“어이! 거기 공격 좀 멈추라고!”
크라콘 근처로 모여든 딜러 유저들은 두 분류로 나뉘었다. 그나마 개념이 좀 있는 딜러들은 어그로 문제 때문에 잠시 딜링을 중지했고 개념이 없는 딜러들은 아무 생각 없이 계속 딜을 꽂아넣었다.
개념이 없는 딜러들은 생각보다 훨씬 많았다. 수백 명의 유저들이 어그로 따윈 신경도 쓰지 않고 전력을 다해 공격을 쏟아냈다.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어그로가 전혀 튀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어그로는 너무나 안정적으로 유지가 되고 있었다.
“뭐야? 어그로 수치가 왜 이래? 이 괴물 도발 면역이라고 하지 않았어?”
“면역이야. 이미 많은 유저들이 도발 기술을 사용해 봤는데 전혀 반응이 없었어.”
“근데 어떻게 이렇게 어그로가 안정적이야? 지금 못해도 300명 정도는 마구 딜을 꽂아 넣는 거 같은데······.”
“그건 나도 모르지. 그나저나 계속 구경만 하고 있을 거야? 이대로라면 공적 포인트를 다른 유저들이 다 가져가게 생겼어.”
“쳇, 어쩔 수 없네.”
원래대로라면 개념이 없는 이들이 개념이 있는 이들을 따라와야 했는데 상황이 묘하게 흘러가자 어쩔 수 없이 개념이 있는 이들이 개념이 없는 이들을 따라가게 되었다.
딜링을 중지했었던 개념 있는 유저들도 하나둘 딜링을 다시 시작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천 명도 넘는 딜러들이 크라콘에게 공격을 쏟아붓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어그로는 전혀 튀지 않았다.
오히려 아까보다 더 안정적이게 변했다.
이 상황을 처음부터 상세히 지켜보고 있었던 아담은 믿을 수가 없단 표정을 지으며 재앙 그 자체라 불리는 2등급 거대 비행 마물의 시선을 붙잡고 완벽하게 탱킹하고 있는 유저를 바라보았다.
‘딜이야······. 저 미친 유저는 지금 자신의 딜로 어그로를 유지하고 있는 거야!’
아담은 이번에도 누구보다 빠르게 지금 상황이 정확히 어떤 상황인지를 파악해냈다.
‘저게 가능한 일일까? 레이드 몬스터들을 몇 마리는 합쳐놓은 것만큼 강력해 보이는 괴물의 공격을 견뎌낼 정도로 탱킹 능력이 뛰어나면서 동시에 수천 명의 딜러가 동시에 쏟아내는 강력한 딜링의 어그로를 홀로 감당해 낼 정도로 강력한 딜도 뿜어낼 수가 있다? 말로 설명해도 이렇게 황당한 일을 실제로 해내다니······.’
만약 그가 마갑을 입지 않았다면 유저가 아니라 NPC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마갑을 입고 있었다.
참고로 마갑은 유저들만 착용할 수 있는 아이템이었다. 적어도 하삼계에선 그러했다.
그렇기에 아담은 그가 유저란 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 사실이 도저히 믿기진 않았다. 아무리 회피 탱킹을 한다고 해도 회피율이 100%가 아닌 이상 크라콘을 탱킹하는 건 불가능했다.
회피율은 30% 때부터 점감 효과가 적용되기 시작해서 70% 정도가 되면 아무리 회피율 관련 아이템을 착용해도 회피율은 거의 오르지 않았다.
즉, 현실적으로 올릴 수 있는 최대 회피율이 70% 정도란 뜻이었다. 사실 등급이 최소 유일 등급 이상인 회피율 관련 아이템으로 전신을 도배해도 회피율은 겨우 50%밖에 나오질 않았다.
그렇기에 탱커 유저들 사이에서 회피 탱킹은 그냥 빛 좋은 개살구 같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아담은 골수 탱커 유저였기 때문에 이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더더욱 지금 크라콘을 탱킹하고 있는 검은색 마갑을 입은 남자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괴물을 막는 괴물인가?”
아담은 검은색 마갑을 입은 유저를 바라보며 작게 중얼거렸다. 벌써 10분째 크라콘을 탱킹하며 어그로까지 확실히 유지하고 있는 검은색 마갑을 입은 유저······ 아담의 눈에는 하늘에서 추락한 거대한 괴물만큼이나 그 역시 어마어마한 괴물로 보였다.
* * * *
상혁이 어그로를 자신의 것으로 가져오는 데 필요했던 공격은 단 한 방이었다.
물론 평범한 한 방이 아니라 최초의 공격 한 방이긴 했다.
라그나 블레이드가 터지지 않을 정도까지만 살짝(?) 뻥튀기한 최초의 공격 한 방이 크라콘의 몸에 꽂히는 순간 어그로는 확실히 상혁에게 넘어왔다.
그 이후엔 어려울 게 없었다. 상혁은 자신의 높은 회피 능력과 수많은 데미지 감소 기술을 사용해서 크라콘의 공격을 버텨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무지막지한 공격력으로 다른 딜러들은 상상도 하지 못할 수준의 딜링을 계속해서 놈에게 꽂아넣었다.
애초에 상혁에게서 어그로를 빼앗아가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무리 수천 명의 딜러가 동시에 공격을 쏟아내며 어그로 수치를 어지럽힌다고 해도 독보적인 딜량을 자랑하는 상혁의 어그로 수치를 넘볼 순 없었다.
이건 수천 명이 수만 명으로 바뀌어도 변하지 않을 사실이었다.
물론 상혁이 아무리 치밀하고 완벽하게 회피 능력과 데미지감소 스킬을 배분해서 사용한다고 해도 간혹 위험한 수준까지 생명력이 떨어지긴 했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쓰러지지 않는 것이었다. 쓰러지지만 않으면 수백 명의 힐러들이 상혁에게 오버힐 같은 건 신경 쓰지 않고 마구 힐을 쏟아붓고 있었기 때문에 1초 만에 생명력을 모두 회복할 수 있었다.
어떻게든 놈의 무지막지한 한 방을 버틸 수만 있다면 버티는 건 그리 어렵지가 않았다.
< [65장] 리버스 원(Reverse One) (1) > 끝
ⓒ 성진(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