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장] 하늘 고래 (1) >
@ 하늘 고래.
상혁은 저 머나먼 세상의 꼭대기에서 자신을 두고 무슨 대화가 오고 갔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아니, 알아서는 안 됐다.
사실 일개 유저가 절대자와 창조주를 힘들게 하고 있다는 사실이 웃기긴 했지만, 정확히 얘기하자면 상혁은 일개 유저가 아닌 회귀자였다.
회귀자였기 때문에 수많은 우연을 필연으로 만들었고 그 결과 그는 한 명의 유저가 가지기엔 너무나 큰 힘을 보유했다. 그는 회귀라는 말도 안 되는 힘으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꿨고 그 결과 무시무시한 존재가 되었다.
절대자와 창조주는 그가 회귀했다는 사실을 알 수 없었기에 계속 뒷수습만 하며 최대한 게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정작 이 모든 뒤틀림의 원흉이라 할 수 있는 상혁은 유유자적 자신이 해야 할 일들을 하나씩 처리했다.
상혁은 회귀를 하고 이터널 라이프를 시작할 때부터 이미 자신이 평범한 유저가 되진 않을 것이란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단 하나만 가지고 있어도 감탄이 절로 나올 것 같은 ‘능력’들을 혼자 모두 독식할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나중엔 결국 어떤 식으로라도 눈에 띌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상혁은 이 부분과 관련되어서는 조금도 걱정하질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상혁은 EL을 관리하는 ‘카오스’의 존재를 아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고 그 카오스가 가지고 있는 힘과 한계 또한 그 누구보다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상혁이 뻔히 카오스의 관심을 독차지할 것이란 걸 알면서도 눈치를 보지 않고 모든 걸 독식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이 아무리 모든 걸 독식하고 또 독식해도 카오스는 절대 자신을 터치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카오스뿐만 아니라 EL을 서비스하고 있는 라온소프트에서도 건드릴 수가 없었다.
이건 DN특별법에 분명하게 명시된 부분이었기 때문에 게임 서비스를 곧바로 중단하기 싫다면 무조건 지켜야 하는 부분이었다.
특히 카오스는 이런 부분에서 매우 철저한 관리를 하기로 유명했던 최고의 인공 지능이었다.
상혁의 전생에선 카오스가 무려 10년 연속 최고의 인공지능으로 선정되기도 했었다.
상혁은 이런 사실을 매우 자세히 알고 있었기 때문에 운영진의 개입 같은 건 전혀 겁내질 않았다. 애초에 개입할 수 없는데 그걸 겁내는 게 더 웃긴 일이었다.
만약 그런 걸 겁냈다면 지금 만들고 있는 하늘 배도 훨씬 천천히 만들었어야 했다.
이미 상혁은 아공간 도크를 완성했을 뿐만 아니라 추가로 아다만티움도 300kg 정도를 더 모은 상태였다. 작정하고 금산상단을 이용해 긁어모으니 생각보다 아다만티움을 많이 모을 수가 있었다.
이 정도라면 100% 아다만티움만으로 이루어진 말도 안 되는 하늘 배를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나중엔 돈이 있어도 아다만티움을 구하는 게 힘들 지경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은 시도조차 할 수가 없었다.
아공간 도크도 완성되었고 재료도 다 준비가 되었으니 이제 남은 건 하늘 배를 제작만 하면 되었다.
하늘 배 제작의 핵심은 동력원이자 시동키가 될 마갑이었다. 일단 동력원이 될 마갑을 도크에 등록하면 간단한 설정 창이 뜨는데 그 설정 창을 통해 원하는 하늘 배의 형태나 특성을 결정할 수 있었다.
참고로 마갑이 지닌 속성에 따라 고를 수 있는 형태나 설정도 제한되었기 때문에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마갑이었다.
이렇듯 마갑은 하늘 배의 제작부터 깊숙이 관여가 되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마갑이 없으면 제대로 된 하늘 배를 만들 수가 없었다.
등급이 낮은 1등급 이하의 마갑으로 하늘 배를 제작하면 사실상 중간계 항해가 불가능할 정도로 허술한 하늘 배가 만들어졌다.
그래서 상혁의 전생엔 최소 2등급 이상의 마갑을 가진 이들만 하늘 배를 제작했다.
사실 냉정하게 따지면 2등급도 많이 부족했다.
실제로 상혁의 전생에서도 2등급 마갑을 기본으로 만들어진 하늘 배들은 대부분 중간계를 뚫지 못했었다. 정확한 통계가 나온 건 아니었지만 2등급 마갑을 기본으로 만든 하늘 배들의 생환율은 대략 10% 정도라고 알려졌었다.
3등급 마갑을 기본으로 만들어진 하늘 배가 50% 정도였던 것과 비교하면 많은 차이가 있었다.
마갑이 구리면 하늘 배도 구리다.
나중엔 결국 이 말이 정설이 될 것이고 많은 이들이 중간계라는 무시무시한 영역을 건너기 위해서 더 좋은 마갑과 하늘 배를 만들게 되었다.
‘아공간 도크 소환.’
상혁이 아공간 도크를 소환하자 상혁의 눈앞에 커다란 화면이 하나 나타났다.
아직은 텅 비어 있는 반투명한 화면······. 상혁은 그 화면에 자신의 손바닥을 가져다 댔다.
[마갑 ‘칠흑의 암흑 날개’가 감지되었습니다. 등록하시겠습니까? Y/N]
비어 있는 아공간 도크는 단번에 상혁의 마갑을 감지했다.
“등록한다.”
상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Y를 선택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반투명 화면에 칠흑의 암흑 날개가 등록되었다.
마갑이 등록되자 본격적으로 하늘 배를 제작하는 데 필요한 여러 가지 설정 창들이 생성되었다.
‘기본 형태는 쾌속선(快速船)으로 하고 크기는 최대한 작게······ 함포(艦砲)는 한 개와 작살포 한 개. 이러면 아슬아슬하게 부스터까진 장착할 수 있으려나?’
4등급 마갑을 등록했기 때문에 상혁이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는 700이었다. 700포인트라면 더 큰 배를 만들 수도 있었지만, 상혁은 크기를 최대한 줄여서 포인트를 아낀 후 쾌속선 특성과 부스터를 선택했다.
다행히 칠흑의 암흑 날개의 성능이 워낙 좋다 보니 어지간한 특성은 전부 고를 수가 있었다.
사실 쾌속선 특성과 부스터 특성은 둘 다 포인트를 엄청나게 잡아먹는 특성이었기 때문에 동시에 선택하는 게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상혁은 함포와 작살포를 한 개로 줄이면서까지 이 두 가지 특성을 동시에 선택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이 두 가지 특성이 조합되었을 때 발휘되는 시너지가 얼마나 강력한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상혁은 전생에 이 조합을 처음 활용했던 ‘불꽃해적단’이 얼마나 오랫동안 수많은 유저들을 괴롭혔는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일단 상혁은 생각한 설정들을 모두 선택하며 견적을 뽑아보았다.
쾌속선 특성이 250포인트. 부스터 특성이 300포인트. 그리고 함포 하나가 50포인트 작살포 하나가 40포인트였다.
‘오, 오히려 60포인트가 남네? 흐음······ 함포 강화를 선택할까? 아니면 잠행(潛行)을 장착할까?’
함포 강화나 잠행 모드를 장착하려면 60포인트가 필요했기 때문에 딱 700포인트를 다 채울 수가 있었다.
잠시 고민하던 상혁은 잠행를 선택했다.
어차피 함포는 주력으로 사용하려고 장착한 게 아니었기 때문에 굳이 강화까지 해서 사용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고 더욱이 잠행은 매우 희귀한 특성이었기 때문에 무조건 선택하는 게 이득이었다.
모든 설정이 끝나자 반투명 창에 희미한 선들이 그어지며 한 대의 배가 나타났다.
이로써 하늘 배의 설계가 끝났다. 이젠 진짜 필요한 재료들을 계속 공급하면서 제작을 시작하면 되었다.
상혁은 자신의 모든 재력과 능력을 활용해 하늘 배 제작에 필요한 재료들을 계속 채워 넣을 생각이었다.
제작 완료까진 27일 4시간 16분이 필요했다. 제작 시간이 생각보다 더 길게 설정되었다는 건 그만큼 하늘 배의 구조가 복잡하단 뜻이었다.
예상보단 제작 시간이 길어졌지만, 이번에도 상혁은 서두르지 않았다.
이제부턴 재료만 꾸준히 채워주면 되는 것이었기 때문에 별로 신경 쓸 게 없었다. 여유가 생긴 상혁은 꾸준히 아이언 골렘을 사냥하며 아주 약간 모자란 아다만티움을 마저 모았다.
그러면서 그는 조용히 일이 터지길 기다렸다.
사실 그 일은 이 세상을 마구 뒤흔들 아주 큰 일이었지만 그 일의 시작과 끝을 모두 알고 있는 상혁에겐 그냥 하늘길을 열기 위한 이벤트 정도로만 생각되었다.
‘시기는 확 당겨지겠지만, 장소는 그대로겠지?’
장소만 그대로라면 시기는 언제가 돼도 별로 상관이 없었다. 이미 상혁은 사실상 모든 준비를 끝내놓고 있었기 때문에 언제라도 즉시 반응할 수가 있었다.
그렇게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 * * *
“이게 마지막인가?”
상혁은 마지막 재료들을 확인한 후 아다만티움 50kg과 히드라 가죽 15장 그리고 중급 강화석 5개를 채워넣었다.
돈 먹는 하마처럼 지금까지 온갖 재료를 마구 집어삼킨 아공간 도크는 이 재료들을 마지막으로 집어삼키자 드디어 마지막 제작 완료 카운트를 출력하기 시작했다.
[하늘 배 제작을 마무리합니다. 0%, 1%, 2%······.]
%가 올라가면서 조금씩 아공간 도크에 선명한 이미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칠흑과 같이 검은 선체는 날렵하게 뻗어있었는데 한눈에 봐도 굉장히 빠를 것처럼 보였다. 크기는 듀얼 등급치고는 조금 작아 보이긴 했지만 상혁이 보기엔 딱 좋아 보였다.
상혁에게 중요한 건 크기가 아니라 성능이었다.
그는 어떤 하늘 배로 따라올 수 없는 가장 빠른 쾌속선을 만들 생각이었다.
‘생각한 대로 잘 뽑힌 거 같긴 한데······.’
점점 완성되어가는 하늘 배의 이미지를 바라보며 상혁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정확한 건 완성인 된 후 상세정보를 확인해 봐야 했다.
몇 분의 시간이 흐르자 %는 드디어 100에 근접해 있었다.
······97%, 98%, 99%······ 100%!
%가 100이 되는 순간 상혁이 그토록 정성을 쏟아 제작한 하늘 배가 완성되었다.
천(天) 급 하늘 배[듀얼 등급]를 완성했습니다.
최초로 천 급 하늘 배를 제작하며 누구보다 먼저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갈 준비를 끝냈습니다. 모든 이들의 이정표가 되어 세상을 이끌어 나가는 당신의 행보는 칭송받아 마땅합니다.
전설 등급 타이틀 ‘하늘 바다의 왕’을 얻었습니다.
하늘 배의 이름은 직접 설정하실 수 있습니다.
아공간 도크를 영혼에 각인시키면 ‘영혼의 아공간’을 획득하며 자동으로 하늘 배는 그 공간에 정박 됩니다.
최초 제작이었기 때문에 당연히 뭔가 근사한 걸 줄 것이란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상혁은 전설 등급 타이틀을 받고도 그리 놀라지 않았다.
상혁은 보통 사람들은 EL을 15년 동안 플레이해도 한 개도 얻기 힘든 전설 등급 타이틀을 벌써 몇 개나 얻었다. 덕분에 그는 남들 같으면 환호성을 내지르며 난리를 칠 수도 있는 상황에서 조용히 고개만 끄덕일 수가 있었다.
고개만 살짝 끄덕인 상혁은 곧장 아공간 도크를 자신의 영혼에 각인시켰다.
이로써 하늘 배 제작은 완벽하게 끝났다.
이제 남은 건 하늘 배에 이름을 붙이는 정도였는데 그건 언제든지 할 수 있었다.
상혁은 하늘 배의 상세 정보를 확인하려다가 잠시 멈추었다.
‘아······ 생각해보니 제대로 성능을 테스트하려면 상세 정보가 아니라 직접 배를 띄워봐야 하는데······ 하늘길이 아직 열리지 않아 그게 불가능하구나.’
아이템도 직접 사용해봐야 진짜 성능을 알 수 있듯이 하늘 배도 직접 시험 운전을 해봐야 제대로 된 성능을 알 수가 있었다.
문제는 역시 하늘길이었다.
여전히 하늘길은 막혀 있었다.
더 정확히 얘기하자면 아직 그 일이 터지질 않고 있었다.
솔직히 상혁도 그 일이 언제 터질 것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었다.
전생과 똑같이 진행된다면야 1년 이상의 시간이 지난 후에 터지겠지만 이미 시간의 흐름은 많이 빨라진 상태였기 때문에 그럴 일은 없었다.
상혁은 최근 돌아가는 분위기를 봐서는 이제 진짜 터질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상혁이 하늘 배 제작에 집중하고 있던 50일 정도 동안 EL 세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유저들은 이제 완벽하게 마갑에 적응을 했다.
당연히 마갑도 많이 풀렸다.
2등급 마갑도 길드 단위로 많이 제작되었고 개인 유저들도 슬슬 1등급 마갑을 소유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유저들이 드디어 마도공학이 뭔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점이었다.
이게 가장 중요했다.
상혁의 기억에 의하면 전생에도 정확히 이런 시점에 그 일이 터졌었다.
하삼계를 단번에 뒤집어 놓을 그 일······.
그것은 바로 한 마리의 하늘 고래가 하삼계로 떨어지는 일이었다.
하늘 고래······.
이름이 고래라고 진짜 고래를 생각하면 안 되었다.
하늘 고래는 그냥 명칭이었다.
바로 중간계에 사는 ‘거대 비행 마물(魔物)’을 통칭 하늘 고래라고 불렀다.
< [64장] 하늘 고래 (1) > 끝
ⓒ 성진(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