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123화 (123/127)

< [63장] 하계, 중간계 그리고 천상계 (2) >

아직 유저들은 자신들이 있는 곳이 하삼계란 걸 모른다.

큰 이벤트성 사건이 하나 빵 터진 후 공식적으로 하늘길이 열리고 나서야 하삼계와 중간계 그리고 천상계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알려졌었다.

‘그나저나 그 사건이 언제 터지려나······ 아무래도 전생보단 훨씬 일찍 터지겠지?’

전생을 기준으로 보면 최소 1년하고도 4개월은 더 지나야 터질 일이었는데 모든 게 빨라진 지금은 몇 개월 안에 터질 것 같았다.

하늘길이 열리지 않아도 하늘 배는 미리 제작할 수 있었기 때문에 상혁은 그 사건이 터지기 전에 일단 하늘 배부터 완성할 생각이었다.

‘금산상단에서 최대한 아다만티움을 긁어모으고······ 그동안 난 아공간 도크(Dock)를 완성하자.’

아공간 도크는 하늘 배를 만드는 공간을 의미했다. 이걸 만들기 위해선 하늘 배를 만드는 것과는 별개도 또 다른 재료들과 시간이 필요했다.

아공간 도크에서 하늘 배를 완성한 후 그 아공간 도크를 통째로 영혼에 각인시키면 영혼의 아공간이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하늘 배의 소유권을 얻을 수 있었다.

당연히 하늘 배의 크기가 크면 클수록 더 큰 아공간 도크가 필요했다. 그리고 아공간 도크의 크기는 그것을 만들 때 들어가는 재료 중 하나인 공간확장 가방의 크기와 개수에 따라 결정되었다.

상혁이 알기론 듀얼 등급의 하늘 배를 만들기 위해 필요한아공간 도크를 만들려면 한계 중량이 1톤인 최상급 공간확장 가방이 최소 50개 정도는 필요했다.

참고로 최상급 공간확장 가방의 현 시세는 1만 골드였다.

즉, 50만 골드······ 현금으로 3천만 원이 넘는 돈을 쏟아부어야 겨우 아공간 도크를 만드는 데 필요한 한 가지 재료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뜻이었다.

다른 여러 가지 재료들까지 전부 합치면 아공간 도크(듀얼 등급)을 하나 만들기 위해서 최소 150만 골드 정도가 필요했다.

그냥 단순히 하늘 배를 만들고 정박시킬 ‘도구’를 만드는데 1억 단위의 돈이 필요하단 뜻이었다.

듀얼 등급이니까 이 정도였지 트리플 등급만 가도 200만 골드가 넘어갔고 쿼드라플 등급은 거의 300만 골드가 필요했었다.

이런 수준이다 보니 개인 유저는 하늘 배를 만드는 걸 거의 꿈도 꾸질 못했다. 흔히 말하는 갑부 유저들을 제외하곤 대부분 하늘 배는 길드 단위에서 제작되었다.

물론 상혁에겐 큰 문제가 될 게 없었다.

그는 개인이었지만 금산상단이라는 EL최고의 상단을 통해 어떤 길드보다 빵빵한 자금력을 보장받고 있었다.

요즘 씀씀이가 커져서 그동안 모아두었던 골드가 거의 바닥나고 있긴 했지만, 여전히 금산상단이라는 큰 틀에서 보면 골드는 계속 돌고 돌았고 그 흐름을 통해 얻는 골드의 여유분은 은행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공간확장 가방은 이미 다 사놨고······ 나머지 재료들도 거의 다 준비가 되었으니까 이제 제작만 하면 되나?’

재료는 오래전부터 모았기 때문에 이미 전부 준비가 끝난 상태였다. 이제 남은 건 ‘시간’을 투자하는 것뿐이었다.

아공간 도크(듀얼)의 제작 시간은 보름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하늘 배를 제작하려면 다시 보름 정도가 또 필요했다. 이건 아무리 상혁이라고 해도 줄일 수가 없었다.

시간이 많이 필요했지만 그렇다고 서두를 이유는 없었다.

아직 하늘길이 열린 건 아니었기 때문에 당장 하늘 배를 만든다고 해도 사용이 불가능했다.

한편 상혁이 열심히 하늘 배를 제작에 집중하고 있는 사이 다른 유저들은 여전히 마갑 삼매경에 빠져 있었다.

그나마 마갑의 제작 방법이 완벽하게 공개되며 수많은 유저들이 0등급 마갑을 쏟아낸 덕분에 마갑의 시세는 한풀 꺾여서 조금씩 내려오는 중이었다.

0등급 혹은 0.5등급 마갑이라도 가지고 있는 것과 없는 것은 분명한 차이가 있었기 때문에 유저들은 싸구려 재료를 사용해서라도 일단 마갑을 만들고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어떤 의미에선 마갑 열풍은 오히려 더 거세졌다고 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리고 덕분에 상혁은 그동안 열심히 모아두었던 모든 마갑 관련 재료 아이템을 아주 비싸게 처분할 수가 있었다.

상혁은 하늘 배를 띄우기 전에 최대한 금산상단의 사업을 단순화할 생각이었다. 아무래도 하늘 배를 띄우고 본격적인 중간계 항해를 시작하면 최소 반년 이상은 하삼계로 못 돌아올 가능성이 컸다.

그렇게 되면 금산상단이 제대로 관리가 안 될 수도 있었기 때문에 사업을 단순화해서 자신이 챙기지 않아도 아무런 문제가 없이 자금이 순환하게 할 생각이었다.

일단 비밀 던전 티켓을 파는 사업이나 각 지역의 지도를 파는 사업은 모두 접을 생각이었고 경매장에서 사재기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몇몇 아이템을 제외하곤 다 그만둘 생각이었다. 또한, 골드마운틴도 기준을 좀 더 엄격하게 바꿔서 상혁이 굳이 살펴보지 않아도 될 정도로 거래가 이뤄지게 바꿀 예정이었다.

이렇게 전부 바꾸면 분명 예전보다 훨씬 적게 돈을 벌겠지만 적어도 상혁이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또한 돈이 새는 구멍도 줄어들어서 여윳돈은 계속 쌓일 수밖에 없었다.

결국, 금산상단도 나중엔 중간계를 거쳐 천상계로 진출해야 했기 때문에 상혁은 지금은 사업을 단순화한 후 힘을 모을 때라고 판단했다.

단번에 도약해 저 하늘 꼭대기로 뛰어오르기 위해 몸을 잔뜩 웅크리는 상혁. 그는 먼 미래를 내다보고 열심히 움직이는 중이었다.

* * * *

우주(宇宙).

그들은 우주를 발밑에 두고 있었다. 그들의 발아래엔 정확히 4개의 차원 행성이 존재하고 있었는데 특이한 건 4개 중 3개는 암흑에 휩싸여 있었고 단 하나만 아주 밝게 빛나고 있다는 점이었다.

카오스는 이곳을 ‘천외비경(天外祕境)’이라 불렀고 서원태는 이곳을 ‘하늘 끝’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이곳을 뭐라 부르던 그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진정 중요한 건 이곳에 올 수 있는 이는 단 둘뿐이라는 점이었다.

서원태가 창조했지만 사실상 서원태의 통제를 스스로 벗어나 이터널 라이프(EL)라는 가상으로 만들어진 거대 차원의 절대자가 된 카오스.

그리고 그 카오스를 만들어낸 절대자의 창조주 서원태.

오로지 이 둘만 이곳에 들어올 수가 있었다.

서원태는 차원행성 트리나크를 발밑에 둔 상태로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변해 있는 카오스와 마주 보고 앉아 있었다.

“그래서 네 말은 결국 그게 자승자박(自繩自縛)이 될 것이란 거야?”

[네, 마스터께서 모든 편법을 동원해 하늘 도서관을 열고 그에게 변형된 라그나 블레이드라는 괴상한 족쇄를 채운 이유는 충분히 알고 있지만 결국 그 족쇄는 다시 감당하지 힘든 인과율로 바뀌어서 더욱 강력한 파장을 만들어낼 것입니다.]

사실 서원태와 카오스는 초창기 때만 해도 이곳에서 자주 대화를 했었다. 하지만 게임이 안정화 되고 카오스가 진정한 차원의 절대자로서 소임을 수행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모든 게 달라졌다. 서원태는 여러 가지 이유로 창조주의 권한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창조주의 권한을 최대한 축소하고 절대자인 카오스의 권한을 확 늘려주었다.

서원태는 자신이 생각해 온 새로운 개념의 가상현실 차원을 완성하려면 무조건 카오스가 유일신이 되어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어느 시점을 기점으로 카오스에게 모든 힘을 집중시켜준 것이었다.

그렇기에 지금에 이르러서는 창조주인 서원태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았다. 그런데도 서원태는 최근 자신이 가진 권한을 모두 동원해 한 가지······ 카오스가 반대했던 일을 결행에 옮겼었다.

“솔직히 너와 의견이 통일되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내가 손을 쓰긴 했지만······ 분명 큰 범위 안에선 인과율을 깨지 않았다. 그런데도 그게 나중에 문제가 된다는 거야?]

[저 역시 마스터께서 큰 범위 안에서의 인과율은 지켜주셨기 때문에 굳이 마스터를 막진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가 라그나 블레이드를 얻고 난 후 제가 따로 분석을 계속해본 결과······ 그는 마스터와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일찍 족쇄를 스스로 풀고 오히려 라그나 블레이드를 완벽하게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시스템 자체를 날려버릴 만한 힘을 지닐 수 있게 됩니다.]

“그건 아니지. 그가 족쇄를 풀고 라그나 블레이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면 라그나 블레이드에 서려 있던 신성(神性)도 급격히 줄어들어 라그나 블레이드에 필멸자(必滅者)의 굴레가 씌워질 텐데······ 그러면 라그나 블레이드는 기껏해야 필멸자의 굴레 안에 머무를 수밖에 없잖아.”

[그건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미 일개 유저가 가지기엔 너무나 큰 힘들을 수없이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그걸 생각하면 아무리 라그나 블레이드를 필멸자의 굴레 안에 억지로 밀어 넣어놨다고 해도 본래 그것이 지니고 있던 성질 자체를 완전히 없앨 순 없기 때문에 언제 힘이 굴레 밖으로 새어 나올지 알 수가 없습니다.]

“네가 걱정하는 게 뭔지는 알고 있어. 하지만 나로서는 그를 그냥 놔둘 순 없었어. 솔직히 그가 개인적으로 강해지는 건 전혀 상관이 없어. 하지만 그가 너무 말도 안 되게 빠른 속도로 강해지면서 자꾸 시간 가속을 발생시키는 게 문제야. 이건 너도 인정했잖아. 강제로라도 시간 가속을 막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어.”

[아까도 얘기했지만 전 마스터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합니다. 다만 전 최대한 시간 가속을 늦추려고 임시방편으로 행한 일이 결국 나중엔 더 큰 뒤틀림으로 차원을 흔들 수도 있다는 걸 말씀드리고 있는 겁니다.]

“흐음······.”

카오스의 말을 들은 서원태는 잠시 생각을 정리해 보았다. 솔직히 서원태 입장에선 현재 이터널 라이프의 시간 흐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시간 가속은 대규모 패치를 통해 새로운 차원 행성이 공개될 때나 나타나야 하는 현상이었다. 그런데 그게 패치도 없는데 수시로 나타났으니······ 당연히 서원태로서는 그냥 지켜만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결국, 서원태는 자신의 원칙을 깨고 창조주의 권한을 이용해 원인을 찾아보았다. 그리곤 결국 원인이라 생각되는 한 가지 특이점을 찾아냈다.

어처구니없게도 그 특이점은 한 명의 유저였다.

이때부터 서원태는 많은 고민을 했다. 그리고 카오스와도 많은 대화를 했다.

하지만 카오스는 원칙상 유저에게 직접 개입하는 건 절대 안 된다고 얘기했다. 물론 서원태도 직접 개입은 게임의 운영을 넘어 법적으로도 불가능하단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머리를 쥐어짜서 편법을 하나 찾아냈다.

너무 강력해서 문제가 되는 유저에게 더 강력한 힘을 연결해주고 그 더 강력한 힘을 통해 족쇄를 채운다.

이건 말 그대로 불법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편법이었다.

“좋아. 네 말대로 내가 실수한 게 확실하다고 하자. 그럼 이 시점에서 우리가 뭘 해야 할까?”

[실수를 되돌리긴 이미 늦었습니다. 다만 지금이라도 라그나 블레이드와 하늘 도서관의 연결 고리를 끊고 최대한 라그나 블레이드에 담겨 있는 신의 힘을 낮춰놓는다면 인과율의 폭발을 최대한 줄일 수 있을 겁니다.]

“근데 그렇게 되면 족쇄가 너무 빨리 풀릴 텐데? 가뜩이나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빨리 풀릴 수가 있다며? 그런데 그것보다 더 빠르게 풀릴 수 있도록 조치를 하는 건 위험하지 않을까?”

[폭탄이 쌓여서 나중에 감당할 수 없을 만큼 크게 터지는 것보다 차라리 지금 작게 터트리고 넘어가는 게 더 낫습니다. 어차피 작든 크든 터지는 건 막을 수 없으니 이렇게라도 해야 합니다.]

카오스는 가장 합리적인 대처 방안을 내놓았다.

“미치겠네······. 그나저나 괜찮겠어? 라그나 블레이드는 원래 네가 ‘초기화’를 할 때 사용하던 힘이잖아?”

[완벽하진 않지만 대체할 힘이 몇 가지 있습니다. 조금 귀찮고 복잡해지긴 하겠지만, 그 힘들을 활용하면 크게 문제가 될 건 없습니다.]

“어쨌든 미안하다. 괜히 나 때문에 일이 꼬여버렸네.”

[아닙니다. 마스터께서 왜 직접 나서실 수밖에 없었는지 충분히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처음에는 마스터가 동원한 방법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해서 방관했던 것입니다. 결국, 실수는 마스터뿐만 아니라 저도 똑같이 했습니다.]

“그래, 네가 말한 쪽으로 방향을 잡고 최대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손을 써보자. 특히 그가 조금이라도 이상한 점을 눈치채면 안 되는 거 알지?”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의 존재를 알고 있는 건 오로지 너와 나뿐이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 보안에 신경 쓰고······ 근데 혹시 그를 특별히 따로 관리할 순 없을까?”

[그건 DN특별법 1조 7항과 16항에 어긋나는 행위이기 때문에 불가능합니다. 그냥 지금처럼 주요 모니터링 대상 정도로 설정하는 게 한계입니다.]

“쩝, 알았다.”

이런 대답이 나올 것이란 걸 알면서도 괜히 한 번 물어본 것이었다. 그만큼 서원태는 이 상황이 골치가 아팠다.

자신이 만들었지만 이젠 자신의 손을 떠나 홀로 성장하고 있는 세상······.

그 세상의 창조주로서 서원태는 이 세상이 자신이 의도했던 대로 최대한 오랫동안 많은 사람의 사랑을 받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63장] 하계, 중간계 그리고 천상계 (2) > 끝

ⓒ 성진(成珍)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