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장] 현실도 게임처럼 (2) >
* * * *
상혁은 회귀를 했을 당시 혹시 몰라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중요한 사실들을 기록해놨었다. 원래는 게임에 관련된 것만 기록하려고 했었지만, 기억을 정리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게임에 관련된 일뿐만 아니라 자신이 살아온 인생 전체의 중요한 일들을 모두 정리하게 되었었다.
상혁은 그 기록을 다시 한 번 살펴보면서 조심스럽게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상혁의 전생은 게임을 중심으로 펼쳐져 있었기 때문에 쓸만한 정보가 적은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도움이 안 되는 건 절대 아니었다.
아무리 그가 게이머의 삶을 살았다고 해도 보고 들은 큰 사건들은 존재했다. 그리고 그런 큰 사건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었다.
상혁은 자신이 적어놓은 정보 중 가장 가까운 시일 내에 발생할 큰 사건들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그중에 그나마 활용할만한 정보 하나를 찾아냈다.
‘슈퍼태풍 탈라스, 이 녀석이 일본에 상륙해 엄청난 피해를 준다는 정보.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이 정보는 지금도 또렷하게 기억이 나는 정보였다. 그가 이 정보를 또렷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당시 태풍의 간접적인 영향으로 한국에 아주 큰 비가 내렸고 그 결과 그가 일하던 작업장이 침수되었었다.
그 일로 지하실에 있던 작업장이 다른 건물 3층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상혁은 오히려 슈퍼태풍 탈라스에게 고마워했었다.
현재 상혁이 보고 있는 뉴스에 따르면 10호 태풍 탈라스가 필리핀 남부에서 발생했다고 나와 있었다. 적어도 지금 시점에선 예상 경로나 태풍의 세력도 모두 별로 위험하지 않아 보였다.
‘당시 기사에서 이놈이 슈퍼태풍이 되어서 일본을 관통한 건 예상을 한참 벗어난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었지? 그렇다면 이 정보를 통해 뭔가를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상혁은 현재 태풍 탈라스의 정보까지 확실히 확인한 후 이 정보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아무래도 상혁이 가진 지식으론 적정한 방법을 찾는 게 힘들었다. 결국, 상혁은 어쩔 수 없이 전문가의 도움을 빌리기로 했다.
투자 전문가는 돈만 있으면 얼마든지 만날 수 있었다.
상혁은 그날 바로 적당한 수준의 상담료를 내고 가장 신뢰할 수 있는 투자 전문가와 미팅을 잡을 수가 있었다.
물론 상혁은 그 전문가를 통해 투자할 생각은 없었다. 상혁이 원하는 건 그저 몇 가지 팁뿐이었다.
확실히 돈을 내고 하는 상담이라 그런지 전문가는 아주 친절하게 상혁에게 이런저런 얘길 해주었다.
상혁은 일부로 아무것도 모르는 척 여러 가지 질문을 하며 자연스럽게 질문과 답변을 주고받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리곤 어느 정도 분위기가 무르익자 아무것도 아닌 듯 질문 하나를 툭 던졌다.
“주식 투자라는 게 제가 생각한 것보다 더 다양한 방식으로 할 수 있는 거였군요. 아, 그럼 혹시 어느 지역에 큰 재해가 일어날 걸 안다면 이걸 이용해서도 투자를 할 수 있을까요?”
“하하, 당연히 투자할 수 있죠. 재해를 예측한다는 건 말이 되질 않긴 하지만 만약 예측할 수만 있다면 엄청나게 큰돈을 벌 수가 있을 겁니다.”
“어떤 방법들로 큰돈을 벌 수 있을까요?”
“그런데 왜 이런 게 궁금하시죠? 솔직히 여윳돈이 있으시고 그 돈을 굴리고 싶으신 거라면 직접 투자는 별로 권해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제가 아니더라도 믿을만한 다른 투자 전문가에게 투자를 맡기세요. 그게 가장 좋습니다.”
“아, 투자는 아니고 개인적인 호기심 때문에 물어보는 겁니다. 제가 평소에 궁금한 걸 못 찾는 편인데 요즘 흥미를 느끼고 있는 분야가 이쪽이라 아무래도 전문가를 모시고 얘길 듣고 싶었습니다.”
‘역시 투자자가 아니라 그냥 돈 많은 부잣집 도련님이었던 건가?’
상혁의 말을 들은 전문가는 살짝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어떻게든 말을 잘해서 투자를 받아보려던 생각을 접었다. 대신 그는 상담료를 두둑이 받은 만큼 원하는 건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줄 생각으로 다시 입을 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재해가 일어날 것을 알고 있다고 가정하고 최대한 자세히 설명해 드리죠. 재해의 규모에 따라 다르겠지만······ 예를 들어 만약 미국 캘리포니아에 큰 지진이 일어날 것이라고 가정을 하면 그 정보를 이용해 할 수 있는 건 무궁무진합니다. 그럴 리가 없지만, 만약 지진이 일어나기 전에 지진이 일어날 것을 알았다면 제일 먼저 주식시장을 ······.”
전문가는 상혁에게 여러 가지 투자 방법을 얘기해주었다. 상혁은 그의 아예 녹음기로 그의 말을 녹음하면서 모르는 부분은 꼼꼼하게 계속 질문했다.
어차피 전생의 기억을 이용해 하는 투자는 다른 사람에게 맡길 수 있는 부분이 아니었다. 그렇기에 상혁은 최대한 자세히 방법을 알아낸 후 직접 투자를 할 생각이었다.
상혁은 첫 번째 투자 전문가를 만난 후 바로 이어서 네 명의 투자 전문가를 더 만났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비슷한 방법으로 질문했고 궁금한 건 바로바로 물어서 답변을 들었다.
그렇게 다섯 명 정도의 투자 전문가를 만나자 대략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왔다.
상혁은 전문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장 알기 쉽고 빠르게 결과가 나올 수 있는 투자 방법들을 골라냈다.
중요한 건 쉽고 빠른 것이었다. 상혁에겐 이 정보 말고도 다른 정보들이 많았기 때문에 여기서 괜히 장기적인 안목으로 투자할 필요는 없었다.
물론 실제 투자를 하기까지는 많은 상혁의 노력이 필요했다. 꼬박 하루 동안 상혁은 잠도 자지 않고 열심히 해외투자를 공부했다. 해외투자의 경우 그냥 돈이 있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공부는 필수였다.
태풍 탈라스가 태평양에서 점점 세력을 키워가고 있었기 때문에 투자는 조금이라도 빨리 이뤄지는 게 좋았다. 아직은 예상 경로가 일본을 향하고 있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이 가장 적기였다.
상혁은 모든 준비를 끝내고 대략 20억 원의 돈을 과감히 투자했다. 이 투자의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는 지켜봐야 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적어도 몇 주 안에는 결과가 나온다는 점이었다.
‘못 벌어도 3배는 벌겠지.’
전생의 기억을 이용한 확실한 투자였다. 그렇기에 이번 투자의 실패 가능성은 0%였다. 상혁은 그렇게 투자를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모든 게 마치 게임처럼 느껴졌었다. 그래서일까? 그는 20억이란 큰돈을 투자하면서도 조금도 망설이지 않을 수가 있었다.
‘그나저나 슈퍼태풍의 위험성을 알려주고 싶어도 알려줄 수가 없네.’
상혁의 기억으론 이 슈퍼태풍 탈라스로 인해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었다. 그렇기에 상혁은 이 정보를 이용하긴 했지만 찜찜한 마음이 남아 있는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혁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자신이 아무리 태풍 탈라스가 위험하다고 외쳐봤자 그걸 믿어줄 사람은 없었다.
오히려 미친놈 취급을 할 게 분명했다.
그리고 실제로 탈라스가 슈퍼태풍이 되어 일본을 관통한 후에는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었다.
상혁은 어떻게 태풍 탈라스가 위험하다는 걸 알게 되었는지 설명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에 굉장히 곤란해질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그냥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휴, 그냥 나중에 성금이나 좀 많이 내자.’
상혁은 이건 도저히 자신이 막을 수 없다는 걸 인정했다. 씁쓸했지만 이게 현실이었다.
투자를 끝낸 상혁은 투자 때문에 며칠 동안 접속조차 하지 못한 게임에 접속해 밀린 일들을 처리했다.
‘히드라 사냥은 이주 뒤에 현실에서의 일이 모두 끝나면 시작하자.’
사실 히드라 공략을 위한 모든 준비는 다 끝난 상태였지만 당장은 결행할 생각이 없었다.
현실에서 앞으로 3년 정도 동안 해야 할 투자 계획을 대략적이라도 짜봐야겠기 때문에 적어도 이 주 정도는 가상현실보다 현실에서 시간을 더 보내야 할 것 같았다.
* * * *
모든 건 상혁이 알고 있던 그대로 진행되었다.
전생에서 그랬던 것처럼 태풍 탈라스는 슈퍼태풍이 되었고 갑자기 진로를 동쪽이 아닌 북쪽으로 틀어서 일본 열도 한가운데를 관통해버렸다.
상혁은 그 모습을 실시간으로 지켜보았다. 솔직히 일본을 그리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슈퍼태풍 앞에 수많은 이들이 고통받는 걸 보며 즐거워할 정도는 아니었다.
물론 일본이 태풍에 상처를 입으면 입을수록 상혁의 수익률은 계속 올라갔다. 솔직히 큰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수익률을 보고 상혁은 정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제 겨우 태풍이 지나가고 피해 상황이 속속 집게 되고 있었을 뿐인데 이미 20억의 투자금은 90억 수준까지 불어나 있었다.
‘이게 이렇게까지 불어날 수가 있는 거였어?’
상혁은 솔직히 아직은 믿기지 않았다. 아무래도 상혁이 확인할 수 있는 건 그저 숫자일 뿐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실감이 나질 않았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상혁이 대박을 쳤다는 점이었다.
그 대박이 얼마나 커질지는 좀 더 지켜봐야겠지만 상혁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큰돈을 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249억.
정확히 14일 만에 상혁의 20억은 249억이 되어 있었다. 물론 이 돈이 모두 상혁의 것이 되는 건 아니었다. 만약 당장 이 돈을 상혁이 가져오려면 세금도 내야 했고 이것저것 떼야 할 돈들이 좀 있었다. 하지만 상혁의 재산이 20억에서 200억 수준까지 불어난 것만큼은 확실했다.
그나마 상혁이 아직 초짜라 단순하고 빠른 투자 쪽에만 돈을 집어넣어서 이 정도인 것이었다. 만약 제대로 된 투자자가 상혁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이용해 투자했다면 정말 어마어마한 수익률을 기록했을 수도 있었다.
아니, 지금 상태에서 조금만 더 계속 투자금을 유지해도 돈은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갈 수 있었다. 2주가 흘렀지만, 여전히 일본은 슈퍼태풍 탈라스가 남겨놓은 데미지에서 전혀 회복하지 못하고 있었다.
슈퍼태풍이 도쿄를 직격하며 관통했기 때문에 정말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고 피해 금액은 매일매일 계속 늘어나기만 했다.
전문가들은 아무리 일본이라고 해도 이번 피해를 떨치고 다시 일어나려면 시간이 꽤 필요할 것이라고 얘기했었다.
‘이게 정보의 힘인가?’
게임 속에서도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던 정보의 힘은 현실에서도 똑같이 위력을 발휘했다.
아는 자와 알지 못하는 자의 차이는 대단히 컸다.
하지만 상혁은 이 시점에서 투자금 회수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여기까진 내가 확실히 알고 있던 정보······. 하지만 난 일본이 언제까지 계속 흔들릴지는 모르고 있다. 그러니까 아쉽더라도 이쯤에서 손을 털어야 해.’
진짜 투자 전문가들이 들었다면 미쳤냐고 반문했겠지만, 상혁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한계를 너무나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어차피 앞으로도 계속 기회는 많다. 그러니 안전한 게 최고야.’
만약 여기서 전력을 다해 굴려놓은 눈덩이를 놓쳐버리면 다음엔 아예 눈덩이를 굴릴 기회조차 없어질 수가 있었다.
그렇기에 상혁은 깔끔하게 추가 이득을 포기하고 투자금 회수를 결정했다.
상혁은 바로 다음 날 투자금을 모두 회수했다.
겨우 하루만 더 놔뒀을 뿐인데 249억은 거의 300억이 다 되어 있었다. 너무 무시무시할 정도로 빠르게 돈이 불어나서 투자금을 회수하는 그 순간까지 ‘하루만 더 놔둘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상혁은 애써 그런 생각을 털어버리며 모든 투자금을 회수했다. 이게 무조건 맞았다.
여기서 더 욕심을 내면 그건 무조건 과욕이었다.
투자금을 회수하자 상혁은 20억대의 조촐한(?) 부자에서 몇백억 원의 재산을 지닌 능력 좋은 재력가가 되었다. 상혁은 이미 투자단계 때 때부터 ‘SH종합투자’라는 개인 법인을 만들어 투자했기 때문에 돈은 법인에 쌓였다.
물론 법인 이름으로 10억 원의 태풍 탈라스 성금까지 내며 제법 좋은 이미지의 법인을 만들어놓은 상태였다.
상혁은 법인 계좌에 쌓여 있는 돈을 그냥 놔둘 인물이 아니었다. 특히 현실 투자의 재미를 알게 된 그는 절대 눈덩이 굴리기를 멈출 생각이 없었다.
‘당분간 슈퍼태풍 탈라스와 같은 대박 정보는 없다. 하지만 대박은 아니더라도 확실한 정보는 하나 있지.’
슈퍼태풍 탈라스와 같은 대박 정보는 한정적이었다. 특히 상혁이 기억은 게임 밖의 일들에 대해서는 매우 빈약한 편이었기 때문에 적어도 당분간 몇 달 동안은 활용할만한 외부 정보가 없었다.
대신 한 가지 확실한 정보가 있었다.
그건 바로······.
‘앞으로 두 달 안에 GL사에서 향후 몇 년간 최고의 캡슐형 VR 기기이라 불리게 될 G-900 시리즈가 출시된다. 그리고 그게 출시되면 GL사는 반년 안에 만년 이인자 자리를 벗어나 업계 1위가 된다.’
이 정보는 상혁과 직접 연관이 있는 것이었기 때문에 너무나 자세히 알고 있었다.
솔직히 이건 아주 큰 대박 정보는 아니었다. 그리고 슈퍼태풍 때처럼 단기간에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대신 이건 무조건 이득을 볼 수 있는 정보였기 때문에 한동안 돈을 묻어두기엔 딱 좋았다.
그날부터 상혁은 GL사의 주식을 매입하기 시작했다. 물론 GL사는 이 시점에선 업계 2위였기 때문에 주식의 가격이 업계 1위인 KH사에 비해 많이 싼 편이었다.
< [60장] 현실도 게임처럼 (2) > 끝
ⓒ 성진(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