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장] 현실도 게임처럼 (1) >
@ 현실도 게임처럼.
박쥐떼를 쓰고도 한 방에 터졌다. 이 부분은 샤오팽도 살짝 억울할 순 있었다. 사실 버틸 수도 있었다. 지금이 밤이 아니었고, 불멸이 흑염룡까지 사용하지만 않았다면······ 샤오팽도 한 방 정도는 버틸 수 있었다.
물론 그 뒤에 이어지는 연계 공격에 곧바로 정리를 당했겠지만 어쨌든 그가 한 방에 터진 이유는 불멸이 작정하고 한 방에 보내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불멸은 샤오팽을 잘 알고 있었다.
잘 알 수밖에 없었다. 샤오팽은 전생에서도 한국 프로게이머들과 날카롭게 대립각을 세우며 국제 대회에서 치열하게 경쟁했던 인물이었다.
당시 실력은 누구나 인정해줄 만큼 괜찮았다.
다만 멘탈이 좀 약한 편이라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최정상급 한국 프로게이머들한테 이길 때보다 질 때가 많았던 유저였다.
어쨌든 샤오팽의 실력을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던 상혁은 그가 버티는 능력이 상당히 강력하다는 것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처음부터 아예 작정하고 가장 강력한 한 방을 날려주었다.
멘탈이 약한 유저들은 초반에 기선 제압을 강하게 해놓으면 알아서 무너지곤 했다.
역시나 샤오팽은 이 한 번의 죽음을 기점으로 스스로 와르르 무너졌다. 특히 그는 박쥐떼를 사용하며 뱀파이어 능력까지 사용하지 못하게 되었기 때문에 더욱 심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수많은 이들의 관심이 집중되었던 천하제일투 8강전은 샤오팽의 허무한 패배로 마무리되었다.
불멸은 샤오팽을 상대로 단 1킬도 내주지 않았다. 반면 샤오팽은 불멸에게 내리 10번을 죽으며 세트 스코어 2 : 0으로 처참히 박살 났다.
경기 시간도 불과 15분밖에 되지 않았다.
그마저 중간에 대기시간 8분을 정도를 빼면 실제론 단 7분 만에 박살이 난 것이었다.
너무 일방적인 경기였기 때문에 경기 반응도 별것이 없었다. 중국 유저들은 실망하고 탄식하며 역시나 샤오팽은 진정한 중국 대표가 아니었단 이상한 논리로 패배를 회피했고 한국 유저들은 ‘주모’를 외치며 축제 분위기가 되었다.
천하제일투의 8강엔 한국인 5명, 외국인 3명이 올라와 있었는데 8강전에서 외국인 3명이 모두 떨어지며 더더욱 한국 유저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아무리 차이가 줄어들었다고 해도 아직까진 최상위권 유저들의 숫자는 한국인이 제일 많았다.
불멸은 다음 날 열린 4강전에서도 상대를 압살하고 결승까지 너무나 쉽게 올라갔다.
샤오팽이 박살 나듯 4강 상대도 똑같이 박살이 났다. 4강 상대 역시 불멸을 한 번도 쓰러트리지 못했다. 심지어 노골적으로 불멸의 암습에 대비를 하고 왔음에도 결국은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쓰러졌다.
이런 모습을 보며 시청자들은 불멸을 ‘자연재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인간의 힘으론 막을 수 없는 자연재해······.
마찬가지로 유저들의 힘으론 막을 수 없는 불멸······.
둘은 묘하게 닮은 게 사실이었다.
“아쉽네. 넌 네가 올라올 줄 알았는데.”
결승전이 열리기 전날 상혁은 게임 속에서 계백을 만났다. 솔직히 말은 이렇게 했지만, 상혁은 자신과 반대편 사다리에 있었던 계백이 결승전에 올라오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 이유는 그쪽에 있던 한 유저 때문이었다.
“그러게. 나도 아쉽네. 근데 그 녀석 진짜 세더라······. 소문으론 많이 들었었는데 실제로 붙어보니까 상당하더라.”
“라이징 길드의 태풍······. 강하지.”
계백이 얘기하는 그 녀석은 바로 라이징 길드의 에이스 태풍이었다. 태풍은 검투의 전당을 거의 플레이하지 않는 유저였기 때문에 계백도 직접 붙어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물론 상혁도 태풍하곤 제대로 싸워본 적이 없었다. 다만 전생의 기억을 통해 태풍이 어떤 유저인지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영혼파괴자 태풍.
그는 아주 오랫동안 EL의 최강자로 군림했던 인물이었다. 상혁의 전생엔 거의 10년 동안 EL의 최강자로 불린 세 명의 인물이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영혼파괴자 태풍이었다.
태풍은 강했다. 비록 그의 활동영역이 PVP보단 PVE에 치우쳐져 있었고 정식으로 프로게이머 활동을 하진 않았지만, 가끔 준 프로게이머 신분으로 대회에 참가해 프로게이머들을 박살 내버리곤 했었다.
상혁이 감독 생활을 할 때 프로게임단에 영입하고 싶어서 개인적으로 연락까지 몇 번 해본 적이 있는 유저이기도 했다.
그렇기에 상혁은 태풍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편이었다.
‘계백이 강하긴 하지만 태풍도 강하지. 기본적인 게임 실력 측면에선 비슷할지 몰라도 라이징 길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태풍을 아무런 지원도 없이 혼자 플레이하고 있는 계백이 이기긴 힘들 수밖에 없다.’
동급의 실력을 가지고 있을 땐 당연히 아이템이 좋고, 스킬이 좋은 유저가 이길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계백이 4강전에서 태풍에게 패한 건 너무나 당연한 일 일지도 몰랐다.
계백은 비록 졌지만 그렇다고 그 패배로 크게 실망하거나 화를 내진 않았다. 그냥 ‘이기고 싶었는데 졌네.’ 정도의 반응만 보일 뿐이었다. 그는 누구 덕분에 패배와 관련돼서는 거의 달관의 경지에 올라 있었다.
“복수해줄 거지?”
계백은 웃으며 상혁을 바라보았다.
“지려고 대회에 참가한 건 아니니까 자연스럽게 복수도 해줄 수 있겠네.”
“아, 너라면 알아서 잘하겠지만, 그 녀석 이상한 기술을 사용하더라. 그 기술에 완전히 말렸어.”
“후후, 나도 방송 봤어.”
솔직히 할 게 많아서 방송은 대충 봤었다. 하지만 방송을 보지 않았다고 해도 계백이 말하는 이상한 기술이 뭔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태풍의 가지고 있는 히든급 고대의 지식······ 사이클론. 그건 진짜 진국이지.’
고대의 지식 사이클론은 상혁이 알기론 오로지 태풍만 가지고 있는 고대의 지식이었다. 그걸 어떻게 얻었는지는 상혁도 알지 못했다.
만약 알았다면 회귀를 한 후 가장 먼저 그것을 얻는 걸 고려해봤을지도 몰랐다. 그 정도로 좋은 고대의 지식이었다.
당장 16시간 정도 후에 결승전이 열릴 예정이었지만 상혁은 이 시간에도 게임에 접속해 있었다.
다른 유저들이었다면 컨디션 관리를 위해 잠을 자거나 혹은 상대를 분석하고 있었겠지만, 상혁은 전혀 그러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태풍은 분명 강했다. 하지만 그래 봤자 그는 규격안에서의 강자였다. 이미 규격을 벗어나 버린 상혁의 상대는 될 수가 없었다.
* * * *
“헉······ 헉······.”
태풍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앞을 바라보았다.
처음 결승전이 시작될 때만 해도 자신이 있었다. 특히 상혁과 같은 강력한 한 방으로 상대를 쓰러트리는 스트라이커 스타일의 유저를 상대로는 절대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그 이유는 그가 가진 한 가지 영혼 스킬 때문이었다.
고대의 지식 사이클론을 통해 얻을 수 있는 대표적인 영혼 스킬인 ‘바람의 방패’.
이것은 무조건 1회의 공격을 막아주는 절대 방어 기술이었다.
재사용대기시간이 길고 방어 면적이 매우 작다는 단점 같은 건 태풍에게 별로 문제가 되질 않았다. 어차피 한 방에 모든 걸 거는 스트라이커들의 공격은 그 한 번만 제대로 막으면 되었고 방어 면적이 작은 건 태풍의 탁월한 컨트롤 능력으로 얼마든지 커버가 가능했다.
그래서 태풍은 불멸이 강하긴 하지만 붙어볼 만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실제로 태풍은 불멸의 강력한 최초의 한 방을 바람의 방패로 막아내기까지 했다.
딱 거기까진 모든 게 태풍이 원하는 대로 흘러갔다.
하지만 그 이후론 모든 게 태풍의 예상을 빗나갔다.
‘시발······ 암습 능력을 극대화한 스트라이커 스타일의 유저라고?’
모든 전문가가 불멸을 그렇게 분석했었다. 하지만 태풍은 지금 이 순간 그 분석들이 얼마나 잘못되었는지 절실히 깨닫고 있었다.
‘암습은 그냥 그가 가지고 있는 공격 옵션 중 하나일 뿐이었어. 저 녀석은······ 분석을 하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는 괴물이야.’
태풍은 실력이 좋은 만큼 감도 좋았고 그렇기에 몇 번의 공방만으로도 상대가 얼마나 까마득한 곳에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저 괴물을 이기라고? 에라······ 차라리 정령의 숲을 솔로 클리어하는 게 쉽겠다.’
태풍은 EL을 플레이하며 처음으로 좌절을 느꼈다.
고개를 가로젓는 태풍. 그는 자신 역시 불멸이 8강전과 4강전에 쓰러트린 다른 유저들처럼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고 쓰러지게 될 것으로 생각했다.
물론 최대한 반항은 해보겠지만······ 전망은 매우 절망적이었다.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
불멸의 우승이 결정되는 순간 우레와 같은 함성이 LGN의 ‘DN’전용 경기장을 휩쓸었다.
결승전마저 일방적으로 상대를 두들겨서 간단히 끝내버린 불멸은 아주 잠시 전생의 기억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땐 무대 아래에서 지켜만 봤었는데······ 확실히 무대 위와 아랜 느낌이 다르네.’
여러 대회에서 우승을 해봤지만 전부 감독으로서만 경험했었다. 선수로 우승을 경험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래서일까?
기분이 상당히 묘했다.
‘우승이라······. 나쁘지 않네. 이 기분.’
상혁은 고개를 끄덕이며 캡슐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자신을 향해 끊임없이 환호성을 내질러주고 있는 관중들.
그들을 본 상혁은 가볍게 손을 들어 올려 자신의 우승자라는 걸 확인시켜주었다.
제1회 천하제일투 우승자 불멸.
그의 인기는 한국을 넘어 세계를 휩쓸기 시작했다.
* * * *
우승한 상혁은 우승 상금 2천만 원을 받았다. 아무래도 처음 열린 오프라인 대회라 상금이 그리 크진 않았었다.
하지만 정작 대박은 다른 곳에서 터졌다.
상혁이 라이브 채널 원에 올려놓은 유료 동영상.
그 영상은 제법 비싼 가격에 올라와 있는 유료 동영상이었는데······ 그게 미친 듯이 다운로드 되기 시작했다.
전 세계의 EL 유저들 숫자가 엄청나게 많은 건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해도 너무 과할 정도로 다운로드가 되었다.
특히 상혁이 천하제일투에서 우승하며 자신의 무지막지한 강함을 전 세계에 확실히 증명한 순간······ 그 영상의 다운로드 카운팅은 끝을 모르고 계속 올라갔다.
단 하나의 유료 동영상이 지금까지 벌어들인 매출은 무려 241만 달러······. 이건 원화로 거의 30억에 가까운 돈이었다.
특히 상혁은 LGN과 계약을 매우 잘했기 때문에 수수료로 20%밖에 때질 않았다.
즉, 24억 정도의 돈을 오로지 이 유료 동영상 하나만으로 불과 한 달도 안 돼서 벌었단 뜻이었다.
심지어 정산도 바로 되었다. 천하제일투에서 우승한 지 정확히 일주일 만에 상혁의 통장에 거액의 돈이 입금되었다. 세금도 확실하게 냈기 때문에 문제 될 게 전혀 없는 돈이었다.
가뜩이나 상혁의 통장엔 돈이 제법 쌓여 있었는데 이번 일을 통해 그냥 일반 저축예금통장에 20억 정도의 돈이 쌓이게 되었다.
“와, 이건 나도 전혀 예상을 못 한 수입인데······.”
상혁은 인터넷 뱅킹을 통해 통장에 쌓여 있는 돈을 확인하곤 살짝 상기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근데 이 정도 돈을 이렇게 쌓아놓는 건 좀 아닌 거 같은데······.’
돈을 많이 번 건 당연히 즐거운 일이었다. 너무 쉽게 벌려서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그래도 기분이 좋은 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상혁이 돈 관리에 무지하다고 해도 이런 거액의 돈을 평범한 예금통장에 쌓아만 놓는 건 매우 어리석은 짓이란 걸 알고 있었다.
‘관리를 좀 해야겠지?’
상혁은 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현생에서의 나이는 이제 겨우 20대 초반이긴 했지만, 전생의 삶까지 합치면 살 만큼 살아본 인물이었다.
그렇기에 돈이란 건 굴리면 굴릴수록 커진다는 사실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었다.
‘혹시 전생의 기억을 이용하면 큰돈을 벌 수도 있으려나? 문제는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점인데······.’
상혁은 가만히 생각을 정리해 보기 시작했다.
어차피 지금 당장 그는 몇억 정도만 가지고 있어도 생활하는 데 큰 문제가 없었다.
‘결국,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EL 안에서 거대 세력을 구축하는 녀석들은 전부 현실에서 상당한 재력을 가진 녀석들이었어······ 그런 걸 생각해보면 지금 당장은 내가 게임 속에서 최고라고 해도 결국은 현실의 재력을 통해 빠른 속도로 성장하는 그 녀석들에게 조금씩 따라잡힐 수도 있을 거야.’
상혁은 현실과 게임은 절대 따로 생각할 수가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현실에서 부자는 게임 속에서도 부자였고 현실에서 거지는 게임 속에서도 거지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은 너무나 강력한 힘이었다.
‘결론은 내가 재벌까진 되지 못해도 적어도 현실에서 최소한의 재력은 갖춰야 한다는 거야.’
생각을 이어가던 상혁은 결론을 내렸다.
이 부분은 최초 회귀를 했을 때부터 고민했던 문제였지만 당장 현실에서 가진 게 아무것도 없어서 일단 고민을 미뤄두었던 문제였다.
하지만 이제 작은(?) 눈덩이지만 굴릴 수 있는 눈덩이가 하나 생겼다. 그렇다면 이제부턴 진지하게 이 문제를 고민하는 게 맞았다.
‘이럴 줄 알았으면 전생에서도 이런 쪽에 관심을 좀 가질 걸······. 하긴 누가 자신이 회귀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살겠어.’
아쉬운 건 알고 있는 정보가 아주 적다는 점이었지만 그래도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집중해서 전생의 기억을 더듬자 몇 가지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기억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상혁은 일단 그런 것들을 모조리 적기 시작했다.
눈덩이 굴리기.
그 시작은 일단 전생의 기억을 통한 정보 모으기부터였다.
< [60장] 현실도 게임처럼 (1) > 끝
ⓒ 성진(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