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장] 불멸, 등장! (2) >
* * * *
“몇 번을 비교해서 확인했는데 확실합니다.”
확실히 확인을 끝낸 신성균은 김종우에게 최종 보고를 했다. 굉장히 충격적인 사실이었지만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허어······ 이거 지금 우리 대박 난 거 맞지? 이 정도라면 거의 로또 1등 수준인 건가?”
김종우는 눈앞에 떠 있는 결과창을 바라보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그들이 이번 오프라인 대회에서 우승하는 건 물론이고 본선에서도 상당히 유력한 우승 후보로 손꼽았던 최상열.
그가 졌다.
그것도 다섯 번을 내리 죽으며 졌다. 전투 과정이 치열했던 것도 아니었다. 최상열은 그냥 일방적으로 짓밟혔다.
최상열이 어떤 식으로 나와도 그의 상대인 불멸은 너무나 쉽게 받아쳤다.
그 결과 최상열이 다섯 번을 내리 죽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4분 정도밖에 되지 않았다.
순수하게 전투 시간만 따지면 1분도 되지 않을 정도였다.
실력 차이가 너무나 크게 났다.
처음엔 김종우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떻게 우승 후보로 손꼽히며 상당한 실력자라고 알려진 최상열이 이렇게 심하게 짓밟히는 건지 당최 이해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불멸의 정체를 부하 직원에게 듣는 순간 모든 게 이해가 되었다.
원 길드의 길드마스터.
이 말은 마치 마법의 단어처럼 김종우의 고개를 끄덕이게 하였다.
다른 설명은 필요 없었다.
그냥 불멸이 원 길드의 길드마스터라는 것만 확실히 확인하면 되었다. 그리고 지금······ 그걸 명확하게 확인했다.
“이제부터 모든 방송의 초점은 불멸에게 맞춘다. 다른 유저들은 간단하게 언급할 수 있는 수준으로만 촬영해.”
“하지만 이제 겨우 32강전인데 너무 일찍 결론을 내리는 거 아닐까요?”
조심스러운 의견도 있었다. 하지만 김종우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이미 너무 늦었어. 그냥 유저가 아니야. EL 세상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길드인 원 길드의 길드마스터야. 공식적인 정보는 아니지만 원 길드의 길드마스터는 원 길드 최강이라는 평이 많아. 모두 지금 이 순간 검투의 전당과 필멸의 전당을 씹어먹고 있는 게 누군지 잊은 건 아니지? 그리고 그가 자신이 속한 길드의 길드마스터에 대해 어떤 코멘트를 남겼는지도 잊지 않았지?”
김종우의 말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기존의 경기 영상도 확보할 수 있는 건 최대한 확보해서 베스트를 뽑아내겠습니다.”
그나마 김종우의 말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신성균이 재빨리 대답하자 김종우도 그제야 마음에 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일단 영상들부터 확보하고 기회가 되면 인터뷰 좀 따봐.”
“거부할 수도 있습니다.”
본선은 의무적으로 인터뷰 시간이 정해져 있었지만, 오프라인 예선은 의무가 아니었다.
“정중하게 부탁을 하든지 불쌍하게 보이든지 무슨 짓을 해서라도 인터뷰를 따와.”
또 쓸데없는 얘기가 나오자 김종우는 인상을 살짝 찡그리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왜 자꾸 부정적인 얘기만 하는 거야? 이제부터 말대답은 그만하고 시키는 대로 움직여.”
김종우는 더 이상의 이견 제시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감이 좋은 사람이었기 때문에 불멸이 얼마나 큰 한 방인지 확실히 눈치채고 있었다.
‘이것만 확실히 붙잡으면 무조건 대박, 아니 초대박이다!’
그는 원 길드의 길드마스터인 불멸이 등장한 이상 이번 대회는 무조건 그를 중심으로 풀어가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한편 최상열은 지금 이 현실이 도저히 믿기지 않았다.
오프라인 예선전 64강전에서 패한 것도 믿기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믿기지 않은 건 경기 내용이었다.
‘불가능해. 저런 강함은······ 절대 일개 유저가 가질 수 있는 강함이 아니야.’
누구나 그렇듯 최상열의 첫 번째 반응은 ‘현실 부정’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버그 유저가 대회에 참가할 수 있을 만큼 LGN이 허술한 곳이 아니었다.
이런 일련의 생각들을 통해 최상열은 상대의 실력이 진짜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상대의 실력을 인정할 수 있게 되자 이제 다음은 단계는 ‘자아비판’이었다.
‘난 우물 안 개구리였어. 우물이 세상 전부인 줄 알고 까불다가 제대로 당한 거지······.’
힐난하게 자아비판을 하던 최상열은 자신의 상대가 원 길드의 길드마스터인 불멸이란 정보를 전해 들었다. 그러자 그는 다음 단계로 넘어갔다.
최상열이 선택한 마지막 단계······. 그것은 바로 ‘매달리기’였다.
“절 원 길드의 길드원으로 받아만 주신다면 충성을 다해 모시겠습니다. 거둬주세요.”
무릎을 꿇고 고개를 바닥까지 숙인 최상열. 상혁 앞에 갑자기 나타난 그는 무조건 자신을 거둬달라고 매달리기 시작했다.
상혁은 그런 최상열을 보며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내가 원 길드의 길드마스터란 사실이 알고 있는 이들은 LGN 직원들밖에 없을 텐데······ 그리고 내가 분명 아까 직원을 통해 이 사실을 일반 유저들에게 공개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까지 했는데······ 아, 맞다. 이 녀석 예전부터 LGN 쪽 하곤 끈이 많았었지.’
원래 대로라면 최상열은 상혁을 찾아올 수가 없었다. 오프라인 예선 경기는 경기 화면 자체를 LGN 측에서밖에 볼 수가 없었고 또 현실에서 플레이하는 참가자의 신원은 철저히 보안을 유지해줬기 때문에 아무리 상혁의 상대였다고 해도 현실에서 최상열이 상혁을 찾아오는 건 말이 되질 않았다.
하지만 상혁은 조금만 생각을 해보니 어떻게 최상열이 자신을 찾아왔는지 알 수가 있었다. 결국, LGN 직원 중 누가 최상열에게 정보를 전한 게 확실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영혼까지 내놓을 것 같은 표정을 짓는 건 똑같네.’
상혁은 최상열을 내려다보며 전생의 기억을 떠올렸다.
술을 먹다가 갑자기 바닥에 무릎을 꿇으며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사정했던 최상열······. 그때 그 최상열과 지금의 최상열이 자연스럽게 겹쳐졌다.
그 순간 최상열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꿈틀거리고 있을 진심이 확연히 보였다.
‘충성을 다하겠다고? 새끼······ 좆 까고 있네.’
전생에 그토록 당했는데 현생에서 또 당해주면 그건 진짜 병신 인증을 제대로 하는 것이었다.
“꺼져.”
상혁은 최상열을 슬쩍 보며 또렷한 목소리로 얘기했다.
“네? 제가 마음에 들지 않······.”
“한국말 몰라? 꺼지라고.”
최상열의 말을 중간에 끊으며 다시 한 번 단호하게 얘기하는 상혁. 이쯤 되자 최상열도 매달려서 될 분위기가 아니란 걸 깨달았다.
“말씀이 너무 심하신······.”
또 최상열이 주절주절 얘길 시작하자 상혁은 피식 웃으며 다시 그의 말을 끊었다.
“억울하고 화가 나면 강해져. 너 그 말 알지. ‘약자는 할 말이 많고 강자는 할 말이 없다.’ 그러니까 주절주절 그만 떠들고 꺼져.”
‘약자는 할 말이 많고 강자는 할 말이 없다.’라는 말은 전생에 최상열이 주문처럼 외우고 다니던 말이었다. 상혁은 그의 말을 그대로 그에게 다시 돌려주었다.
결국, 최상열은 더는 입을 열지 못하고 물러났다.
자존심에 엄청난 타격을 입은 동시에 상혁에게 큰 원한이 생겼지만 정작 상혁은 전혀 신경 쓰질 않았다.
그에게 최상열은 귀찮은 하루살이 수준밖에 되질 않았다. 자꾸 알짱거리면 그냥 밟아버리면 그만이었다.
오히려 가끔 나타나서 스트레스 해소에 도움을 줬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특히 상혁은 단순히 오프라인 예선에서 그를 떨어트리는 수준만으로 전생의 복수를 끝내기가 싫었기 때문에 일부러 더 그를 심하게 긁어서 나중에 게임 속에서 다시 덤빌 여지를 만들어놓았다.
이런 걸 보통 큰 그림이라고 불렀다.
* * * *
깔끔하게 똥 덩어리 최상열을 털어버린 상혁은 이어진 경기에서도 자신의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하며 상대를 박살 냈다.
거칠 게 없었다.
상혁은 그대로 32강부터 4강까지 단 한 번도 죽지 않으면 완벽한 승리를 거뒀고 너무나도 당연하게 결승에 진출했다.
그 사이 LGN은 불멸을 따라다니며 최대한 그의 영상을 촬영했다. 상혁은 몇 가지 약속을 받아낸 후 인터뷰까지 허용해주었다.
오프라인 예선 결승은 특별히 긴급 편성까지 해서 LGN 공식 1번 라이브채널에서 방송까지 하기로 했다.
덕분에 결승전 시간이 조금 뒤로 밀렸고 그사이 상혁은 간단하게 인터뷰를 했다.
물론 인터뷰는 현실에서가 아닌 게임 속에서 진행되었기 때문에 현실의 상혁은 노출되질 않았다.
인터뷰는 짧게 끝났다. 애초에 상혁은 질문할 수 있는 범위를 제한했기 때문에 길게 갈 게 없었다.
상혁은 원론적인 몇 가지 질문에만 대답하고 민감한 질문은 협의를 통해 빼버렸다.
인터뷰는 조금 부실했지만 대신 LGN은 결승전 생중계를 얻어냈다.
예정에도 없던 경기 중계를 위해 급하게 베테랑 게임캐스터인 전용민이 투입되고 나름 EL 전문가라 할 수 있는 장민호가 해설가로 섭외되었다.
완벽한 중계진은 아니었지만, 이 정도라면 구색은 갖췄다고 할 수 있었다.
상혁의 결승전 상대는 블랙아콘 엔제이였다.
블랙아콘 엔제이는 실력으로 따지면 간신히 백랭에 턱걸이할 수 있는 수준의 유저였다. 원래대로라면 본선에 직행할 수 있는 실력을 지닌 유저였지만 한국에 거주 중인 미국인이라 서류 접수 요령을 잘 몰라서 실수로 오프라인 예선에 접수를 한 인물이었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오프라인 예선전에서 우승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그런 유저였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상대가 좋지 않았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울창한 밀림 환경이 눈앞에 펼쳐지는 순간 엔제이는 걱정부터 하기 시작했다.
‘후우, 젠장 정말 기권하고 싶다.’
그는 오래전부터 라이브채널 ‘원’의 애청자이자 원 길드의 골수 팬이었다.
어떻게 보면 원 길드의 길드마스터인 불멸은 자신의 우상이라 할 수 있었다.
갑자기 결승전이 중계될 예정이란 얘기와 함께 상대가 원 길드의 길드마스터인 불멸이란 말을 듣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그는 계속 기권을 고민했다.
그에게 이건 신성모독과 같은 짓이었다.
진짜 LGN 측에서 계속해서 만류하지 않았다면 벌써 기권을 했을 게 분명했다.
‘휴, 그냥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자.’
엔제이는 속편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어차피 중계까지 결정된 경기를 진짜 기권할 수도 없는 법이었다.
[비가 살짝 내리고 밀림이 울창한 환경이네요. 이런 환경이라면 아무래도 불멸 선수가 유리하겠죠?]
조심스러운 전용민의 말. 하지만 옆에 앉아 있던 장민호는 전혀 조심스럽지가 않았다.
[솔직히 전 환경 같은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죠?]
[시청자분들이 들으면 다소 김이 빠질 수도 있겠지만 솔직한 제 개인적인 견해론 엔제이 선수는 절대 불멸 선수를 이길, 아니 쓰러트릴 수가 없습니다.]
[그 정도로 격차가 큰 건가요?]
[불멸 선수가 누군지는 이 방송을 시청하는 분들이라면 누구라도 아시겠죠? 원 길드의 길드마스터이자 현존 최강의 유저라 불리는 유저가 바로 불멸 선수입니다. 이 선수는 혼자서 초대형 라인 하나를 쓸어버렸습니다. 그 증거가 되는 유료 동영상은 라이브채널 원에 가면 올라와 있죠. 그냥 말이 안 나오는 선수입니다. 그냥 이 경기는 엔제이 선수가 얼마나 빨리 다섯 번을 쓰러지는지 시간 체크 정도만 하면 될 겁니다.]
장민호는 평소보다 훨씬 말이 많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장민호 역시 불멸의 열렬한 팬이었다.
[저도 불멸 선수가 대단한 선수라는 건 알고 있지만 아무리 그래도······.]
전용민이 말을 이어가려는 순간.
엔제이가 쓰러졌다.
웃긴 건 그가 어떻게 쓰러졌는지 아무도 제대로 보질 못했다는 점이었다.
[첫 번째 죽음이네요. 은신도 풀리지 않았고요. 보셨죠? 지금 제가 옆에 보조 화면을 통해 조금 전 엔제이 선수가 쓰러지는 장면을 느리게 돌려보는 중인데······ 느린 화면으로도 제대로 확인하기가 힘드네요. 그냥 희미하게 확인이 되긴 하는데 칼질 한 방에 당했습니다. 와, 정말 이건 그냥 반칙처럼 느껴지는 공격이네요.]
장민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느린 화면을 시청자들에게도 보여주었다.
[아마도 오늘 중계는 짧게 끝날 겁니다. 하지만 실망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천하제일투는 이제 막 시작되었습니다. 진짜는 본선 중계를 통해 확인하시면 됩니다.]
김종우에게 부탁받은 대로 천하제일투의 본선 광고까지 해준 장민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중계는 경기가 끝날 때까지 계속하겠지만, 장민호가 보기엔 앞으로 2~3분 안에 경기가 끝날 것 같아서 할 말도 별로 없을 것 같았다.
불멸의 우승.
어차피 이것은 이미 그가 오프라인 예선전에 참가 신청서를 넣을 때부터 결정되어 있던 사실이었다.
< [58장] 불멸, 등장! (2) > 끝
ⓒ 성진(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