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111화 (111/127)

< [57장] 오프라인 예선 (2) >

* * * *

오프라인 예선 참가 통보를 받은 상혁은 쓴웃음을 지었다. 사실 원래 상혁은 독고불패 이름으로 대회에 참가하려고 했었다.

상혁은 정체를 숨기고 일반 유저들을 학살하면서 쾌감을 느끼는 변태가 아니었다. 그는 독고불패 아이디로 톱 시드를 받아서 편하게 대회에 참여할 생각이었었다.

하지만 온라인이 아닌 오프라인 대회에선 그게 불가능하단 걸 최근에 알게 되었다. 기본적으로 오프라인 대회는 자신의 진짜 아이디를 공개할 수밖에 없었다.

라온 소프트는 대회를 위한 특별 서버를 만들 때 본 서버의 유저 정보를 복사해서 특별 서버에 덧씌우는 방식으로 제작했기 때문에 무조건 본 서버의 진짜 아이디를 알아야 했다.

그렇다 보니 상혁은 불멸이란 자신의 본래 아이디로 참여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 이미 독고불패란 이름으로 등록된 검투와 필멸의 전당에 불멸이란 이름으로 다시 재등록하는 건 불가능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태클이 걸린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독고불패로 참여하는 걸 포기했다.

이쯤 되자 상혁도 오기가 생겨서 그냥 바닥부터 정상까지 실력만으로 기어 올라가자는 생각이 들었고 그래서 길드 이름이나 자기소개 같은 걸 적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의 이름은 몰라도 모습은 유료 동영상을 공개하면서 확실히 공개되었기 때문에 숨길 이유도 없었다.

‘그래, 차라리 이게 잘 된 거다. 나중에 준 프로게이머로 활동하더라도 결국은 불멸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어. 독고불패는 정체가 밝혀질 때까진 온라인에서만 활동하는 특이한 인물 정도로만 만족해야겠네.’

포지션을 확실히 정한 상혁은 더는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오프라인 예선은 물론이고 본서까지 무패(無敗)로 우승해 로열로더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줄 생각이었다.

대회까진 대략 열흘 정도가 남았기 때문에 상혁은 그동안 히드라 사냥을 준비하며 검투와 필멸의 전당을 꾸준히 돌았다. 물론 따로 연습하지 않아도 될 정도의 능력을 지닌 상혁이었지만 그는 티끌만큼의 방심도 하지 않았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가 오프라인 예선이 열리는 날이 되었다. 상혁은 편안한 복장으로 차려입고 방송국에서 섭외한 초대형 DN 센터로 가기 위해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편안한 복장이라고 해도 백화점에서 산 고급 브랜드였고 나름대로 감각 있게 코디했기 때문에 전혀 촌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거기에 벤츠 S클래스는 화룡정점이었다.

상혁은 차를 몰고 1시간 거리에 있는 DN센터로 이동했다. 다행히 차가 막히지 않아 생각보다 일찍 도착할 수가 있었다. 와 달라고 한 시간보다 20분 정도 일찍 도착했는데 이미 DN센터엔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상혁은 한쪽 창가에 자리를 잡고 서서 한창 대회 준비를 하는 LGN측 직원들을 바라보았다.

‘이 대회가······ 성공을 했었지? 내가 기억하기엔 정식으로 프로리그가 출범하고 나서도 몇 번은 더 열렸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7회 정도까지 했던가?’

전생에 EL 천하제일투는 5개월 정도의 간격을 두고 꾸준히개최되었었다. 특히 1회가 제법 성공을 하면서 대략 3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제법 인기를 얻었었다.

1회 같은 경우는 너무 오래되기도 했고 당시 상혁이 이런 거에 관심을 가질만한 상황이 아니었었기 때문에 알고 있는 게 별로 없었다.

심지어 우승자가 누군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뭔가 이슈가 되는 일이 있어서 그걸 통해 제법 인기를 끌었던 거 같은데······ 정확히는 기억이 안 나네.’

상혁은 다시 한 번 기억을 떠올려보려고 했지만 떠오르는 게 없었다.

경기 규칙은 아직 정확하게 확립이 되지 않았을 때라 상혁이 알고 있는 로컬 룰과는 조금 다른 룰이긴 했다.

하지만 기본 뼈대 자체는 비슷해서 크게 위화감이 느껴지진 않았다.

여러 게임 리그를 개최해본 경험이 있는 LGN이었기 때문에 상당히 세세하게 규칙을 정해놓긴 했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건 네 가지였다.

첫째, 마갑은 사용할 수 없음.

둘째, 랜덤 환경 설정이 아닌 다섯 가지의 지정된 환경 설정을 놓고 양 팀이 각각 하나씩 밴을 한 후 남은 설정 중 하나를 무작위로 선택해 경기함.

셋째, 이번 대회에서는 검투의 전당에선 ‘증명의 길(1:1)’과 ‘그림자 숲(3:3)’ 경기만 하고 필멸의 전당에선 ‘해골섬 섬멸 타임 어택’만 진행됨.

넷째, 자기 자신에게 혹은 팀원에게 걸 수 있는 강화 효과를 4개로 제한함.

일단 마갑은 대부분의 유저가 가지고 있지 못한 아이템이었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게 하는 게 맞았다.

그리고 환경 설정 부분은 나중에 되면 더 다양하고 자세하게 확립이 되겠지만 큰 그림은 지금 규칙과 비슷했다.

제일 재미있는 규칙은 네 번째였는데 이건 나중엔 강화 효과뿐만 여러 가지 것들이 다양하게 제한되거나 혹은 강제되었다.

하지만 결국 결론은 재미를 위해서였다.

시청자들은 단순히 아이템 몇 개나, 스킬 몇 개 차이 때문에 실력 여부를 무시하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유리해지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EL 게임의 특성상 완벽하게 동등한 조건에서 대결할 순 없었지만 적어도 최소한의 틀은 존재할 수밖에 없었다.

‘강화 효과 4개 제한이라면 그나마 제한이 거의 없는 수준이네.’

상혁은 전생에 최고의 감독이라 불렸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누구보다 이런 것들을 잘 알고 있었다.

‘중복 신청 제한도 없고 경기도 증명의 길 예선이 모두 끝나고 그림자 숲 예선이 치러지니까 둘 다 출전해도 되겠네.’

마음 같아선 필멸의 전당에도 출전하고 싶었지만 그건 예선 시간이 살짝 겹쳐서 포기했다.

* * * *

“상렬아. 진짜 이게 맞는 건지 모르겠다. 너라면 분명 천랭, 아니 백랭 안에도 들어갈 실력인데 왜 굳이 만랭까지만 순위를 올려놓고 이런 쓸데없는 예선에 참여한 건지 이해가 안 된다.”

최상렬의 친구인 이정환은 여전히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었다. 그는 자신도 천랭 안에 들어가 예선을 면제받았는데 자신보다 훨씬 실력이 좋은 최상렬이 왜 가장 밑바닥엔 오프라인 예선부터 시작하려는 건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정환아 내가 몇 번이나 얘기해줬자. 임팩트! 후발 주자라 할 수 있는 나 같은 신인에겐 강렬한 임팩트가 필요해. 드라마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차이는 엄청나게 커. 특히 프로 레벨에서의 인기는 단순히 실력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야.”

최상렬은 이제 겨우 18살이었는데 생각하는 게 또래의 아이들과는 전혀 달랐다. 그는 벌써 아주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사실 그의 판단은 너무나도 정확했다. 프로게이머의 세계는 단순히 실력만으로 모든 게 결정되는 곳이 아니었다.

그걸 잘 알고 있던 상렬은 자신을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만들려고 일부러 가장 밑바닥이라 할 수 있는 오프라인 예선부터 시작할 생각을 한 것이었다.

“휴, 나보다 훨씬 똑똑한 너니까 알아서 잘하겠지. 어쨌든 미리 우승 축하하마.”

“당사자인 나도 아직 김칫국을 안 마셨는데 네가 먼저 마시면 어떻게 해? 오프라인 대회라고 방심했다간 정체를 숨긴 은거 고수한테 박살 날 수도 있어. 조심해야 해.”

최상렬은 성격마저 꼼꼼했기 때문에 그 나이 또래들과 다르게 매우 신중하고 조심스러웠다.

“정체를 숨긴 은거 고수는 너잖아.”

정황은 상렬이 이런 오프라인 대회에서 패배할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알고 있는 상렬은 당장 랭커에 도전해도 무조건 10위권에 가까이 올라갈 수 있을 만큼 대단한 실력자였다.

컨트롤, 장비, 레벨, 스킬······ 어느 것 하나 빠지는 게 없었다.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건너는 게 최고다.”

상렬은 슬쩍 웃으며 대답했고 정환은 그런 상열을 못 말린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며 고개를 흔들었다.

사실, 상렬도 말은 이렇게 했지만, 자신이 오프라인 예선전에서 우승을 못 할 것이라곤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오프라인 예선전의 수준은 솔직히 많이 떨어지는 편이었다.

참가자의 99% 이상이 만랭 수준의 유저들이었는데 상렬에게 그들은 흔히 말하는 양민이었다.

‘우승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어떻게 우승을 하느냐겠지? 확실하게 내 이름 석 자를 사람들에게 각인시켜야 한다. 그래야 녹화방송이지만 나중에 방송을 탔을 때 시청자들에게 나란 녀석을 호소할 수가 있다.’

상렬은 많은 걸 생각하고 있었다. 정말 나이와 너무나도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었다.

그런데 이 순간 상렬을 매우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고 있는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상렬과 마찬가지로 우승을 노리고 있는 남자.

그는 바로 상혁이었다.

‘최상렬! 저 새끼가 이 대회에 나왔었구나. 아! 맞다. 이제야 기억이 나네. 저 새끼가 1회 천하제일투의 제일 큰 흥행 요소였었어.’

상렬은 전생에 이번 대회에서 밑바닥부터 정상까지 드라마틱하게 기어오르며 시청자들의 관심을 독차지했었다. 그리고 그 결과 상당한 팬층을 확보한 후 곧바로 전문 프로게이머가 되어 큰 인기를 끌게 된다.

‘그리고 몇 년 후 나와 만났지.’

아직은 앳돼 보이긴 하지만 확실히 어릴 때부터 곱상한 외모는 그대로였었다.

‘생긴 건 저래도 속엔 능구렁이를 한 열 마리 정도는 품고 있는 녀석이었지.’

상렬은 상혁한테 천룡패법을 배워서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기 전까진 철저히 말 잘 듣고 착한 동생 역할을 했었다. 하지만 빼먹을 게 없어지니까 안면을 싹 바꾼 뒤 상혁의 뒤통수를 제대로 쳐버렸다.

상렬은 바로 그런 인간이었다.

‘이거 생각지도 못한 인연, 아니 악연을 만나게 되어서 뭔가 더 즐거워지는 기분인걸?’

상혁은 최상렬을 보고 계속 웃고 있었다.

만약 이 자리에 상혁이 없었다면 현생은 전생과 거의 비슷하게 진행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혁이 끼어든 이상 전생과 현생은 완벽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요맘때 최상렬이라면 실력에 자부심이 대단하겠지? 후후, 오늘 네 자부심이 얼마나 부질없는 건지 확실히 깨닫게 해주마.’

상혁은 언젠간 전생에 최상렬에게 받은 과분한 대접을 돌려줄 생각이긴 했었는데 그 기회가 이렇게 일찍 올 줄은 모르고 있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찾아온 오프라인 예선이었는데 뜻밖의 선물이 상혁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선물은 당연히······ 감사한 마음으로 받는 게 맞았다.

오프라인 예선이 시작되었다.

최상렬의 말처럼 99%의 예선 참가자는 실력이 많이 부족한 일반 유저들이었다.

그렇기에 상혁이나 최상렬 같은 실력자들은 너무나도 쉽게 그 양민들을 쓰러트리며 위로 올라왔다.

이번 오프라인 예선전에 참여한 1,000명의 유저 중 단 16명만 본선에 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경쟁은 매우 치열했다.

하지만 경쟁이 치열하다고 해서 경기 내용도 치열한 건 절대 아니었다.

실력자들은 누가 봐도 눈에 확 띄었고 LGN은 그 실력자들을 위주로 촬영하기 시작했다.

1,000여 명의 오프라인 예선참여자 중 940명가량이 탈락하고 64명만 남아 있는 현재······.

가장 눈에 띄는 참가자는 다섯 명이었다.

일단 최고로 보이는 이는 ‘크래쉬(Crash) 최상열’이었다. 모든 상대를 말 그대로 압살하고 심지어 우승 후보로 거론되었던 실력자도 확실히 박살을 내버렸다.

누가봐도 크래쉬 최상열의 실력은 진짜였다.

그리고 그 뒤로는 더블캐논 전창민이나 블랙아콘 엔제이, 무상검 양지량, 모모노케 카오루 정도가 뒤를 이었다.

LGN은 이 다섯 명 중 한 명이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물론 가장 가능성이 큰 건 최상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최상열을 집중적으로 촬영했다.

LGN이 뽑은 우승 후보 5인방은 예선 경기에서 강력한, 아니 강력함을 넘는 파괴적인 힘을 보여주었다.

이 정도라면 천랭은 물론이고 백랭 안쪽으로 진입하는 것도 가능해 보이는 실력이었다.

“우승은 최상열이 하겠지?”

급하게 해결해야 할 일이 있어서 뒤늦게 오프라인 예선 경기가 열리고 있는 DN센터에 찾아온 김종우는 지금까지의 예선 결과와 부하 직원들의 간단한 코멘트를 쭉 살펴보곤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그럴 거 같습니다.”

“그럼 최상열 위주로 그림을 잘 만들어봐. 어쩌면 우리가 원하던 한 방이 등장할 수도 있겠다.”

“네, 그렇지 않아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좋아, 역시 따로 말을 하지 않아도 잘하네. 성균아 형만 믿고 따라와라. 형이 제대로 끌어줄게.”

김종우는 신성균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이며 웃었다.

“근데······ 최상열이 64강에서 만나는 상대가 좀 특이합니다.”

“응? 64강?”

신성균의 말을 들은 김종우는 손에 들고 있던 대전표를 다시 들여다보았다.

“불멸? 불멸······ 어디서 본 아이디인데······. 아, 레벨이 무척 높았던 유저. 얘가 왜?”

김종우는 불멸이 자신이 직접 합격시켰던 유저란 걸 기억해냈다.

“지금까지 열 경기를 치웠는데 한 번도 죽질 않았어요.”

“노 데스라고? 그럼 얘도 우승 후보 중 하나란 거야?”

“아, 근데······ 그게 좀 미묘해요. 얘한테 진 유저들은 죄다 얘 모습을 보지도 못했어요. 심지어 제가 나중에 따로 간단하게 모니터링을 해봤는데 우리 쪽 카메라에도 아주 희미하게만 모습이 잡혔더라고요. 무슨 암살자 계열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거 같은데 문제는 얘한테 진 유저들이 죄다 한 방에 죽었다는 거예요.”

“한 방? 아무리 암살자 유저라고 해도 그게 가능해? 그리고 그 정도라면 무조건 우승 후보에 넣어야 하는 거 아냐?”

“당연히 이게 정상적인 실력이라면 그렇겠죠. 근데 얘가 상대한 유저들이 죄다 레벨이 별로 높지 않더라고요. 분석팀 쪽에서도 기습 능력에 특화된 유저가 재수가 좋게 계속 저 레벨 유저들을 상대로 만나서 쉽게 연승을 이어온 것 같다고 결론을 내려서······ 일단은 우승후보에서 제외해 놨습니다.”

“흐음······ 운이 좋은 암살자 유저라······. 그래도 모르는 거잖아. 일단 우승 후보는 아니더라도 관심 대상엔 넣어놓아 봐. 아! 근데 생각해보니 어차피 64강에서 최상열을 만나는 거잖아? 그럼 운빨도 여기서 끝이겠네.”

“네, 실력이 제대로 들통나겠죠. 그래서 더 우승 후보에 넣지 않았습니다.”

“그래, 어차피 소모품이 될 녀석인데 굳이 인력 낭비를 해가며 쫓아다닐 필요는 없겠지.”

신성균의 보고에 김종우도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이건 마치 너무나 거대해 세상 전체를 가릴 정도의 나무가 앞을 가로막으면 그것이 나무란 것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였다.

그들은 상혁의 거대하고 무시무시한 능력을 힘으로 인지한 게 아니라 그냥 운으로만 생각했다.

그들이 조금만 더 꼼꼼히 플레이 영상을 살펴서 상혁, 아니 불멸의 모습을 확인했다면 누군가는 분명 불멸과 얼마 전 모습이 공개된 원 길드의 길드마스터가 동일인이란 걸 찾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고 그 결과 불멸은 운이 좋아 64강에 진출한 일반 유저가 되었다.

< [57장] 오프라인 예선 (2) > 끝

ⓒ 성진(成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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