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107화 (107/127)

< [55장] 영웅의 비선(2) >

보상들을 확인한 상혁은 다시 한 번 뿌듯한 표정으로 웃을 수 있었다.

‘캬아, 진짜 내가 해낸 일이지만 대단하다.’

자아도취에 빠진 게 아니라 정말 아무리 객관적으로 보려고 해도 이번 일은 정말 모든 게 완벽했다.

상혁도 자신의 한계를 뛰어넘어 120% 활약을 했고 거기에 운도 무척 좋았다.

이런 것들이 하나로 합쳐져 이런 기적과도 같은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이제 쉴 만큼 쉬었으니까 영웅의 비선도 마저 완료해서 끝내버리자.’

메인 퀘스트 ‘그림자 왕의 길’의 연계 퀘스트인 영웅의 비선을 완료하면 진짜 모든 걸 완전히 마무리 짓는 게 되었다.

* * * *

‘모두가 기억하지 못하는 영웅의 무덤’은 상혁이 알고 있는 곳이었다. 모르고 있는 곳이었다면 이걸 찾는다고 또 시간을 소비했겠지만 다행히 상혁이 잘 알고 있는 곳이었다.

그가 이곳을 알고 있는 이유는 이곳이 전생에 아주 유명한 작업장 사냥터였기 때문이었다.

이곳에 등장하는 ‘이름을 잊어버린’ 시리즈의 몬스터들은 모두 유령 계열 몬스터였다.

종류도 기사, 전사, 마법사, 사제, 병사 등등 다양했는데 놈들을 잡으면 상당히 비싼 연금술 재료인 ‘유령 수정’을 얻을 수 있었다.

그래서 수많은 작업장이 이곳을 선점하려고 꽤 치열하게 싸웠었다.

물론 이건 나중에 유저들이 이곳까지 진출하고 나서도 한참이 지난 뒤 일어날 일이었다.

‘내가 여기서 유령을 학살한 시간을 합치면 최소 4개월은 넘을 텐데······ 이곳에 이런 비밀 공간이 숨겨져 있는 걸 전혀 몰랐네.’

철컥, 그그그그그긍.

상혁이 완성된 광휘의 별을 이용해 기관을 작동시키자 무덤 깊숙한 곳에 덩그러니 놓여 있던 커다란 석관이 천천히 옆으로 움직였다.

석관 아래는 끝이 보이지 않는 계단이 지하로 쭉 뻗어 있었다. 상혁은 완성된 광휘의 별을 뽑은 후 아래로 내려갔다.

몬스터나 함정 같은 건 없었다.

그저······ 굉장히 길기만 했다.

그렇게 20분 정도를 걸어 내려오자 드디어 뭔가가 나타났다.

조명 같은 건 없었다. 매우 어두웠다. 보통 유저라면 휴대용 발광석(發光石) 같은 것을 꺼냈겠지만, 상혁은 어둠이 익숙했다.

그는 어둠을 꿰뚫어 보는 시야를 지니고 있어서 어차피 발광석을 꺼내지 않아도 잘 보였다.

‘여기가 진짜 무덤이군.’

상혁은 이곳이 진짜 ‘모두가 기억하지 못하는 영웅의 무덤’이란 걸 알 수 있었다.

‘여기서 광휘의 사도 네 명을 모두 소환하라고 했지?’

퀘스트 내용대로라면 진짜 무덤을 찾은 후 그곳에서 광휘의 사도 네 명을 모두 소환하라고 되어 있었기 때문에 상혁은 망설이지 않고 완성된 광휘의 별을 사용해 네 명의 사도들을 모두 소환했다.

파아앗! 파파팟!

소환된 광휘의 사도들은 마치 자신의 자리를 찾아가듯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묘하게 생긴 기둥을 붙잡았다.

바로 그 순간.

이벤트가 시작되었다.

번쩍!

하얀빛과 함께 상혁은 한편의 생생한 현실 같은 영화를 볼 수, 아니 경험할 수가 있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수없이 많은 차원.

그중에서도 어둠의 밑바닥에 존재하는 마계(魔界)와 명계(冥界)는 살아가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운 매우 척박한 땅이었다. 그래서일까? 마계와 명계에서 태어난 존재들은 살아남기 위해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철저한 약육강식(弱肉强食)의 법칙이 적용되었기 때문에 애초에 약한 존재들은 살아남기가 힘들었다.

그런 마계와 명계에는 7명의 왕이 존재했다.

마계에 넷, 명계에 셋.

이들은 사실상 이 두 세계를 지배하는 절대자들이라 할 수 있었다.

이 7명의 왕이 추구하는 건 모두 달랐지만 두 가지에 한해서는 7명의 의견이 일치되었다.

그 두 가지는 바로 ‘지긋지긋한 마계와 명계를 벗어나 새로운 땅의 지배자가 되는 것’과 ‘다른 여섯 왕을 굴복시켜 진정한 한 명의 왕이 되는 것’.

이렇게 두 개였다.

사실 두 가지 모두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들이었다. 마계와 명계의 일곱 왕은 한세상의 왕이 되면서 영생(永生)의 권능을 획득했기 때문에 단순히 시간이 오래된다고 해서 사라질 존재들이 아니었다.

결국, 방법은 그들을 힘으로 소멸시키는 것밖에 없었는데 그랜드 마스터의 경지를 넘어 초월자의 경지(250레벨)에 올라 있는 그들을 소멸시키는 건 매우 힘들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치명적이란 걸 아는 일곱 왕은 부하들이 싸우는 건 막지 않았지만 정작 자신들끼리는 거의 충돌하지 않았다.

이런 점 때문에 마계와 명계는 전투와 전쟁은 끊임없이 발생했는데 정작 바뀌는 건 하나도 없었다.

그러던 세상이 단번에 바뀐 건 갑자기 만들어진 차원의 틈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일곱 왕 중 한 명인 ‘악몽의 왕’이 다른 차원의 존재가 꾸는 악몽(惡夢)을 극대화해 그것을 통해 차원과 차원을 잇는 작은 통로를 만드는 방법을 찾은 것부터 모든 일이 시작되었다.

원래 악몽의 왕은 다른 왕들이 그렇듯 이 사실을 발견한 후 이걸 이용해 어떻게 해서라도 다른 차원에 건너가 그 차원을 자신의 영토로 만들려고 했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통로를 만들긴 했는데······ 통로가 너무 작았다.

자신은 고사하고 하급 마졸 하나를 보내기도 힘든 너무나도 작은 통로였다.

결국, 악몽의 왕은 오랜 시간 고민을 한 끝에 한 가지 결단을 내렸다. 그는 또 다른 왕 중 하나인 ‘타락의 왕’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타락의 왕이 가진 힘과 자신이 가진 힘을 합치면 분명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의 생각은 옳았다.

두 왕이 만나자 정말 답이 나왔다.

타락의 왕은 악몽의 왕이 만든 통로를 이용해 수많은 이들을 타락시켰다. 그렇게 해서 그들로 하여금 거대한 세력을 만들게 했다.

그게 바로 ‘검은 날개’라 불리는 악의 근원이었다.

검은 날개의 시작은 미약했지만, 그들은 수십 년 만에 거대한 조직이 되었고 그 뒤로 다시 수십 년이 지났을 땐 트리나크의 어둠을 모두 장악했다.

결론부터 얘기하자면 그들은 결국 악몽의 왕이 만든 작은 연결점을 더욱 넓혔고 그 결과 그것은 차원의 틈이 되었다.

틈이 완성되자 악몽의 왕은 그동안 열심히 모은 자신의 권세들을 이끌고 틈을 통해 트리나크 행성으로 넘어왔다.

그 뒤는 모두가 알고 있는 그대로였다.

트리나크 행성은 멸망 직전까지 몰렸다가 영웅들이 출현해 판을 뒤집고 악몽의 왕을 쓰러트렸다. 이 부분은 현재 EL을 즐기고 있는 유저들도 전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영상은 그런 뻔한 사실이 아닌 또 다른 진실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빠르게 줄거리를 보여주듯 흘러가던 영상의 시점이 확 바뀌었고 상혁은 한 ‘영웅’의 몸에 스며들었다.

‘나는 태생이 영웅과는 어울리지 않는 힘을 지닌 인물이었다. 하지만 불만 같은 건 없었다. 어차피 누군가에게 영웅이라고 불리고 싶어서 시작한 일은 아니었다. 내가 스스로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지키기 위해 난 흔히 말하는 영웅들과 함께 열심히 노력했다.’

상혁은 ‘모두가 기억하지 못하는 영웅’의 독백을 들으며 그가 느끼는 여러 가지 감정을 그대로 느낄 수가 있었다.

‘남들과 조금 다른 능력을 지니고 있었던 나는 당연히 나만의 방식으로 세상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래서일까? 난 다른 영웅들과는 다른 것을 느낄 수가 있었다. 악몽의 왕. 놈은 분명 쓰러졌다. 하지만 난 놈이 쓰러질 때 아주 어렴풋이 놈의 감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녀석은 분명 억울해했다. 그리고 분노하고 있었다. 난 녀석의 감정을 느끼는 순간 녀석이 누군가에게 이용당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상혁의 눈앞에선 다시 한 번 악몽의 왕이 쓰러졌고 상혁은 그가 얘기한 것들을 모두 고스란히 느낄 수가 있었다. 그리고 독백은 계속되었다.

‘그때 난 본능적으로 이게 끝이 아니란 걸 느꼈다. 모든 영웅이 환호하고 있던 그때······ 난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난 그 자리에서 모든 영웅에게 경고했다. 하지만······ 내 말에 귀를 기울이는 영웅은 거의 없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내 말이기 때문에 더더욱 무시당했다. 애초에 그들은 날 자신들과 같은 영웅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내 말을 쓸데없는 기우 정도로 치부했다.’

이번엔 억울한 감정과 함께 묘한 열기(熱氣)가 느껴졌다.

‘그래서 나도 굳이 그들을 설득하려고 노력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들과 난 걷는 길이 달랐기에······ 난 내 방식대로 위기에 대비할 생각이었다. 아, 그래도 황금룡(黃金龍) 디칸과 하이엘프 스텔라 마지막으로 불의왕 토츈까지 이 세 사람은 네 말에 귀를 기울여주었다.

그래서 난 그들과 함께 조직 하나를 만들었다. 물론 그 조직과는 별개로 난 나만의 대비도 만들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듣는 순간 상혁의 머릿속에 하나의 조직이 떠올랐다. 자신이 꼭 한 자리를 차지하려고 했던 그 조직······. 그 조직이 분명했다.

‘이제 영웅들은 마왕을 쓰러트린 대가로 얻은 승천(昇天)의 보주(寶珠)를 삼키고 그들만의 땅으로 떠날 것이다. 하지만 난 그들과 같이 갈 생각이 없었다. 난 아직 이 땅에서 준비할 것들이 많다. 그들이 그 땅에 올라 또다시 자신들만의 영웅놀이에 심취하겠지만······

언젠간 그게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었는지 깨닫게 될 것이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여전히 틈은 존재한다. 가짜 마왕이 아닌 진짜 마왕을 쓰러트리기 전까지 이 싸움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

독백이 끝나는 순간 눈앞에서 수많은 영웅들이 승천의 보주를 이용해 하늘 위로 솟구치기 시작했다.

‘저들이 태양의 대륙에 존재하는 태양인(太陽人)들의 선조인 건가? 그리고 진짜 마왕은 타락의 왕이고······. 타락의 왕이 심어놓은 흑익(黑翼)들은 지금쯤 태양인들의 절반을 타락시켰겠군.’

사실 상혁은 트리나크 행성에서 일어났던 모든 일은 물론이고 앞으로 일어날 일들까지 전부 알고 있었다.

물론 지금 독백을 한 ‘모두가 기억하지 못하는 영웅’과 그가 만든 특별한 조직, 사방수호좌(四方守護座)에 대해선 아는 것보단 모르는 게 더 많긴 했었다.

‘이제야 대충 모든 조각이 다 맞춰지는구나.’

하지만 이번에 이 영상을 직접 경험하면서 그의 머릿속에 흩어져 있던 여러 정보의 조각들이 하나로 맞춰졌다.

이제 상혁은 트리나크 행성의 비밀을 완벽하게 알 수가 있었다.

‘우리는 오랜 세월 틈을 연구했고 그 결과 틈의 힘을 이용하는 법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래서 우린 또 다른 차원의 틈을 만들었다. 그 틈은 마계와는 전혀 다른 차원과 우리 차원을 연결해줄 것이고 황금룡 디칸이 준비한 안배에 따라 우리를 도와줄 불멸의 군단이 되어줄 것이다. 난 이들을 차원여행자라 부르자고 했다.

자, 나의 기억을 이어받을 이를 모를 여행자여. 수많은 나의 숨겨진 안배를 전부 찾아내어 해결한 너라면······ 나의 자리를 이어받을 자격이 있다!’

마지막 말과 함께 독백이 완전히 끝났다.

그리고 마지막 말을 듣는 순간 상혁은 제일 첫 퍼즐 조각이었던 차원여행자가 탄생한 비밀도 알 수가 있었다.

모두가 기억하지 못했지만, 그 누구보다 진정한 영웅이었던 ‘그림자 왕’의 유지(遺志)를 이어받았습니다.

퀘스트 ‘영웅의 비선’을 클리어했습니다.

그림자 왕이 남긴 모든 안배를 해결했습니다. 축하합니다. 모든 자격 증명이 끝나고 ‘진정한 비선주(秘線主)’가 되셨습니다. 특수 타이틀 ‘트리나크의 그림자 왕’을 얻으셨습니다.

팔콘의 비선, 사막의 비선 그리고 영웅의 비선이 하나로 합쳐지며 ‘그림자 비선’이 되었습니다.

모든 비선에 소속된 NPC들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일리아와의 인연의 고리가 3단계 상승해 5단계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당신에게 절대 충성의 맹세를 했습니다.

일리아의 모든 비밀이 공개되며 능력 제한이 사라집니다.

그림자 왕의 대검의 숨겨진 효과인 ‘그림자 공작의 권능(S)’이 성장하여 ‘그림자 왕의 권능(S+)’으로 바뀌었습니다.

승천(昇天)의 마법진이 발동하며 모두가 기억하지 못한 영웅의 무덤을 떠돌던 모든 이름을 잊은 존재들이 태양의 대륙으로 승천하기 시작합니다.

이들은 아직 끝나지 않은 ‘그림자 왕의 길’의 이정표가 되어줄 것입니다.

< [55장] 영웅의 비선(2) > 끝

ⓒ 성진(成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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