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103화 (103/127)

< [53장] 광휘의 사도들 (2) >

포킨은 이그레이보다 정보를 얻기가 좀 더 쉬웠다. 하지만 대신 동선 예측은 더 어려웠다. 아무래도 무작위로 영웅의 대지를 돌아다녔기 때문에 그녀가 어디로 움직일지 정확히 예측하는 건 불가능했다.

다만 대도시보단 작고 외진 마을 위주로 돌아다니는 걸 고려해 대략적인 동선을 예측할 순 있었다.

포킨은 전형적인 사제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녀를 무시하고 함부로 덤볐다간 엄청난 장기전 끝에 결국은 지쳐 쓰러질 수가 있었다.

포킨은 무조건 이그레이보다 훨씬 더 빠르게 쓰러트려야 하는 상대였다. 조금이라도 기회를 주면 그녀는 특유의 치유능력으로 좀비처럼 다시 일어날 것이고 그러면 상혁이 이길 가능성은 희박해졌다.

처음 한 방, 그리고 이어진 연계 공격으로 1분 안에 승부를 내야 했다. 그녀가 절대 한 번이라도 회복 능력을 사용하게 하면 안 됐다.

회복하는 순간 끝이었다.

그래서 상혁은 이그레이 때 얻은 교훈을 바탕으로 더 강력한 최초의 한 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마침 ‘불가능은 없다!’ 타이틀 덕분에 이그레이 때와는 또 다른 최초의 한 방을 날릴 수 있게 되었다.

상혁은 이것에 만족하지 않고 아예 흑염룡까지 아끼지 않고 처음부터 사용할 작정이었다.

물론 이 모든 건 포킨의 근처에서 하면 안 되었다. 보통 사제들은 기본적으로 ‘위기 포착’ 계열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에 아무리 은신 상태라고 해도 레벨도 높은 전설 등급 NPC 사제 앞에서 함부로 도핑하다간 은신을 발각당할 수가 있었다.

정확한 예측은 거의 불가능하지만 일단 최대한 정확하게 동선을 예측한 후 그걸 토대로 미리 모든 준비를 끝내고 매복을 해야 했다.

만약 동선 예측에 실패하면 습격을 접고 모든 강화 기술의 재사용 대기시간을 기다렸다가 다시 매복해야 했다.

이게 상혁이 준비한 최선이었다.

매복에 활용되는 각종 조합카드의 가격을 생각하면 한 번 준비하는데 대략 5만 골드 정도가 들어갔지만, 지금은 그 돈을 아까워할 때가 아니었다.

모든 걸 확실히 결정 내린 상혁은 바로 ‘포킨 기습 작전’을 실행에 옮겼다.

* * * *

제일 빌어먹을 것은 역시나 포킨의 동선이었다. 나름대로 가장 높은 확률을 계산해 그쪽에 매복했었는데 이게 연속 4번이나 실패를 해버렸다.

시간은 사흘, 돈은 20만 골드 정도를 날려버렸다.

현재는 다시 부랴부랴 다섯 번째 매복 지점을 결정한 후 그곳에서 모든 준비를 끝내고 매복을 한 상태였는데 이번에도 포킨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면 상혁은 계획을 다시 한 번 검토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제발 좀 와라.’

상혁이 자신에게 스스로 건 강화 효과는 무려 다섯 개였다. 보통 레벨에 따라 받을 수 있는 강화 효과의 개수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56레벨인 상혁은 다섯 개가 한계였다.

물론 아주 강력한 것으로 골라서 걸었기 때문에 상혁의 몸속엔 강력한 힘들이 꿈틀거리고 있었다.

이 다섯 개의 유지 시간은 제일 짧은 게 15분이었기 때문에 15분 안엔 무조건 포킨이 이쪽으로 와야 했다.

적어도 상혁의 계산대로라면 10분 안에 포킨이 이곳을 지나가게 되어 있었다. 10분이 지나도 지나가지 않는 건 다른 길로 갔단 뜻이었다.

‘9분······. 젠장 또 실패인가?’

상혁이 오른 손바닥으로 오른쪽 눈을 손으로 가리자 그의 왼쪽 눈앞에 현재 걸려 있는 강화 효과들의 표식과 유지 시간이 나타났다.

그걸 통해 상혁은 몇 분이 지났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상혁이 그렇게도 기다리던 포킨이 나타났다.

‘왔구나!’

포킨이 나타난 순간 상혁은 어둠 속에 더욱 웅크리며 ‘그림자 왕의 대검’을 꽉 잡았다.

이그레이 때처럼 연계 공격이 매우 수월한 만년금골편을 사용할까도 생각해봤었지만, 상대가 사제라는 점 때문에 ‘그림자 왕의 대검’이 훨씬 좋다는 결론을 내렸다.

어차피 만년금골편이 아무리 주력 무기 효과를 받는다고 해도 그림자 왕의 대검이 워낙 등급이 높은 무기였기 때문에 최초의 한 방으로 날릴 수 있는 데미지 자체는 비슷한 수준이었다. 아니, 오히려 그림자 왕의 대검 쪽이 조금 높았다.

그리고 그림자 왕의 대검의 특수 효과인 ‘칠흑의 검’은 치유 효과를 20% 감소시키기 때문에 만에 하나 포킨이 회복 주문을 사용하더라도 그 효과를 최대한 억제할 수가 있었다.

‘한 방! 이 한 방에 모든 걸 건다.’

상혁은 숨을 죽이고 계속 포킨을 바라보았다.

그 사이 포킨은 점점 상혁이 은신해 있는 쪽으로 걸어왔다. 포킨 입장에선 이 길은 다음 마을로 가는 평범한 길일 뿐이었다.

솔직히 그녀는 누군가 자신을 노린다는 것 자체를 상상하지 못했다.

5년 전 대사제의 자리를 내놓고 광휘의 뜻대로 ‘만인(萬人)’을 위한 삶을 살겠다고 선언한 이후 누구도 그녀를 귀찮게 하지 않았다.

그녀는 영웅의 대지에서 성녀(聖女)라고 불릴 정도로 많은 존경을 받는 인물이었다. 심지어 그녀의 성스러운 기운은 몬스터들의 본능마저 억누를 정도로 강력했다.

그래서 그녀는 마치 산보(散步)를 하듯 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상혁과 포킨의 거리는 대략 40m 정도로 좁혀졌다. 상혁은 거리가 10m 안으로 들어오면 곧바로 ‘최초의 한 방’을 날릴 생각이었다.

가장 확실한 건 3m 안에서 상대방의 뒤를 노리는 것이었지만 전설 등급 NPC 사제인 포킨을 상대로 그렇게까지 타이밍을 늦췄다간 오히려 은신이 풀리며 죽도 밥도 안 될 수가 있었다.

스으으으으.

그런데 포킨이 상혁의 사정거리 안이라 할 수 있는 40m 안으로 들어온 순간 상혁의 몸속 깊은 곳에서 뭔가 신비로운 힘이 솟아나기 시작했다.

무한도전(SS+)이 발동되어 당신의 레벨을 비롯한 모든 능력을 상승시킵니다. 적과 당신의 차이가 절반으로 줄어들었습니다.

그 순간 상혁은 엄청난 기운이 자신의 몸 전체를 휘감는 걸 느낄 수가 있었다. 이건 단순하게 강화 효과라고 부를 수 없었다.

단순하게 레벨로만 따져도 상혁은 순식간에 70 정도가 되어버렸다. 56레벨과 70레벨은 말로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차이가 났다.

물론 기본 능력만 상승한 것이고 고대의 지식이나 일반 스킬 같은 것들은 그대로 이긴 했지만, 그 기본 능력 자체가 무시무시했다.

‘이 정도라면······ 무조건 가능하다!’

자신의 몸을 휘감은 미증유의 거력을 또렷하게 느낀 상혁은 확실한 자신감을 얻을 수 있었다.

상혁은 오히려 자신의 몸에 모인 힘이 너무 커져서 은신이 발각될 것을 걱정하게 되었다.

포킨과의 거리는 이제 30m.

‘10m도 위험하다. 20m! 그 안에 들어오면 바로 날린다!’

상혁은 계획을 수정했다.

처음으로 무한도전 효과를 받아본 것이라 아직은 그 힘을 능숙하게 다루질 못했다. 그렇기에 힘의 발현이 조금 거칠 수밖에 없었고 그건 곧 포킨의 감각에 걸릴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상혁은 아예 걸리기 전에 먼저 선공(先攻)을 날리기로 했다.

다시 거리는 더 줄어들었다.

이제 20m. 드디어 상혁이 생각한 순간이 찾아왔다.

‘하압!’

상혁은 그림자 왕의 대검의 손잡이를 잡은 상태로 그림자 밖으로 도약했다.

그가 사용한 기술은 섀도우 나이트의 특화 기술인 ‘섀도우 블레이드’였다. 그림자 속에서 뛰쳐나가 적을 기습하는 이 기술은 은신이 유지된 상태에서 공격에 성공하면 데미지가 10%가 상승하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파아아아앗, 찌지지지직!

그림자 속에서 뛰쳐나온 상혁이 순식간에 20m의 거리를 가르며 그림자 왕의 대검을 뽑는 순간 대검은 눈앞의 공간마저 가르며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내뿜었다.

바로 그 순간.

하늘 도서관에 묶여 있던 몇 가지 락(Lock)이 풀리며 숨겨진 조건들이 클리어 되었다.

그 결과 원래는 지금 등장할 수가 없는 한 가지 초월(超越) 스킬이 등장했다.

클리어! 클리어! 수많은 잠금이 해제되며 하늘 도서관의 지식이 스며듭니다.

기적의 연속! 모든 잠금을 자신의 힘으로 뚫고 초월 스킬 ‘라그나 블레이드(Ragna Blade)’의 비밀을 획득했습니다.

모든 조건이 충족되었기 때문에 이벤트 스킬로 등록된 ‘라그나 블레이드’가 발동됩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콰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과광!

그림자 왕의 대검에서 뿜어져 나온 ‘신(神)’의 힘은 전방에 있던 포킨을 집어삼켰다. 정확히는 포킨을 포함한 그 지역을 통째로 집어삼켰다.

‘초, 초월 스킬?’

라그나 블레이드를 발동시킨 건 상혁이었지만 그조차 믿을 수 없단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연히 그는 초월 스킬이 뭔지 알고 있었다.

그것은 훗날 세 번째 행성이 ‘마룡군단(魔龍軍團)’을 앞세운 ‘암흑신선(暗黑神仙)들에 의해 멸망의 위기에 빠져 있을 때 마지막 순간 하늘 도서관이 열리며 몇몇 특별한 소수의 차원여행자에게 신기(神技)가 지급되었다.

바로 이 신의 기술이 초월 스킬이었다.

여러 제한이 붙긴 하지만 순수한 위력 자체는 신화등급의 스킬마저 뛰어넘는 위력을 지닌 초월 스킬.

당시 몇억 명이 유저들 중 이 특별한 스킬을 얻은 이들은 100명도 되질 않았다.

그만큼 특별한 기술이란 뜻이었다.

그런 대단한 게 지금 등장했다. 아무리 EL이 출시할 때부터 이미 모든 게 완성된 게임이었다고 해도 이건 너무 정도가 심했다.

그나마 균형을 맞춘다고 원래 특수 스킬로 등록되어야 했던 초월 스킬을 이벤트 스킬로 등록시켜 발동 조건을 더 까다롭게 한 것 같긴 했지만 그렇다고 해도 진짜 대단한 일이었다.

‘내가 만들어낸 결과지만······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이거 나중에 버그 플레이라고 제재받는 거 아냐?’

이쯤 되자 상혁도 걱정이란 걸 하게 되었다.

하지만 걱정을 한다고 달라지는 건 없었다. 어차피 상혁은 버그 같은 걸 사용하지 않았다.

그는 그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최대한 활용해 다소 말이 되지 않는 짓을 감행했을 뿐이었다.

고오오오오오.

그 말도 안 되는 짓의 결과가 바로 이것이었다.

바닥에 생긴 거대한 폭발의 흔적. 상혁이 뻗은 그림자 왕의 대검 앞엔 거대한 에너지 충격파가 사방을 휩쓸고 지나간 흔적이 또렷하게 남아 있었다.

이건 마치 신이 손을 뻗어 공간 자체에 커다란 구멍을 뚫어놓은 것 같은 모습이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포킨이 무릎을 꿇고 하얀빛을 토하고 있었다.

포킨은 이그레이와 마찬가지로 강력한 방어 마법이 걸린 전설 등급 장신구를 가지고 있었다.

당연히 위기의 순간 그녀의 장신구가 만들어낸 ‘광휘의 빛’은 그녀를 꽁꽁 휘감았다.

이 빛은 최대 생명력을 2배로 대폭 상승시키고 모든 데미지를 30% 감소시키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라그나 블레이드 앞에선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라그나 블레이드는 광휘의 빛을 한순간에 집어삼켰다.

포킨이 대단하다고 해도 겨우 트리나크 행성에서 먹어주는 수준일 뿐이었다.

반면 라그나 블레이드는 트리나크 행성을 넘어 3차 행성에서도 최후의 기술로 활용되던 스킬이었다. 심지어 상혁이 경험한 마지막 행성인 4차 행성에서도 초월 스킬은 여전히 강력한 위력을 자랑했었다.

이러니 견디지 못하는 게 너무나 당연했다.

그나마 ‘퀘스트’를 위해 소멸하여서는 안 되는 존재였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 EL의 세상에서 가장 절대적인 힘인 ‘시스템’이 관여를 했다.

라그나 블레이드가 아무리 대단해도 ‘시스템’은 뛰어넘을 수 없었다.

그래서 결국 포킨은 소멸은 피할 수가 있었다.

광휘의 사제 포킨을 제압했습니다. 포킨의 공략률이 100%로 상승하며 퀘스트 ‘광휘의 사도’의 네 가지 클리어 조건 중 하나를 만족했습니다.

포킨과 강제로 인연(인연)의 고리를 생성하며 그녀를 복종 상태로 만들었습니다.

숨겨진 조건을 모두 만족하며 S등급 히든 퀘스트 ‘광휘의 사제’를 완료했습니다.

SS등급 히든 퀘스트 ‘광휘의 사도들’의 두 번째 클리어 조건을 충족했습니다.

초월 스킬 ‘라그나 블레이드’는 가로막는 모든 걸 소멸시키는 극대소멸기술(極大消滅技術)입니다.

그 결과 보상으로 받아야 했던 모든 카르마마저 모두 소멸하여 S등급 히든 퀘스트 ‘광휘의 사제’의 보상은 얻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또한, 포킨을 제압하고 얻을 예정이던 카르마도 소멸했습니다.

“뭐, 뭐야?”

앞쪽 시스템 메시지는 좋았다. 그런데 뒤쪽 메시지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카르마까지 지워버리는 기술이라니······ 전생에 상혁은 초월 기술을 몇 개 구경한 적이 있었는데 적어도 그가 봤던 초월 기술은 이 정도까진 아니었었다.

어쨌든 라그나 블레이드 덕분에 상혁의 보상은 전부 날아가 버렸다.

‘와, 이건 진짜 억울하네.’

당연히 얻어야 할 걸 얻지 못했다. 그 순간 상혁은 초월 스킬 라그나 블레이드의 페널티가 뭔지 확실히 깨달을 수가 있었다.

초월 스킬은 이런 식으로 대부분 강력한 페널티와 발동 조건이 붙어있었는데······ 라그나 블레이드의 페널티는 ‘모든 종류의 보상 획득 불가’였다.

< [53장] 광휘의 사도들 (2) > 끝

ⓒ 성진(成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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