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100화 (100/127)

< [52장] 불가능은 없다 (1) >

@ 불가능은 없다.

워낙 난이도가 높은 퀘스트였기 때문에 상혁도 쉽사리 움직이진 않았다. 그는 충분히 조사하고 고민했다.

네 명의 사도는 모두 활동 영역은 물론이고 성향도 제각각 달랐다. 하지만 한 가지만큼은 모두 같았다.

그건 바로······ 무지막지하게 강하다는 점이었다.

그들의 직업은 모두 달랐지만 정말 하나같이 강했다. 상혁이 좀 더 자세히 조사해본 결과 그들은 대략 85레벨 수준이었다.

마스터의 경지라는 100레벨은 아니었지만 85레벨만 해도 굉장히 높은 레벨이었다.

특히 이들은 레전드 등급의 NPC답게 인공지능도 뛰어나고 심지어 지니고 있는 장비도 대단했기 때문에 유저들이 거의 75레벨 정도는 되어야 상대가 가능한 NPC들이었다.

즉, 최상급 유저들이라고 해봤자 50레벨 초반대밖에 되지 않은 지금은 거의 절대자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강력한 NPC들이란 뜻이었다.

상혁은 그런 이들을 공략해야 했다.

‘공략이란 말은 다양하게 해석을 할 수가 있지······. 그렇다는 건 결국 어떤 식으로라도 그들과 엮이라는 건데. 전설 등급 NPC들이라 내 타이틀 효과도 적용되지 않아서 당장은 대화조차 제대로 할 수 없는 이들인데······. 결국 방법은 둘 중 하나야. 오래 걸리겠지만, 최대한 안전하게 가는 방법과 순식간에 끝낼 수 있지만, 너무나 위험한 도박과도 같은 방법. 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해.’

오래 걸리는 방법은 퀘스트의 사이즈로 봤을 땐 최소 두 달에서 최대 넉 달은 매달려야 할 것 같았고 순식간에 끝내는 건 성공이든 실패든 며칠 안에 결판을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길고 가늘게, 짧고 굵게 인가?”

상혁은 작게 중얼거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선택을 미루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수 있었지만 할 일을 눈앞에 두고 다른 걸 하는 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 인생은 어차피 한 방! 짧고 굵게 가자.’

고민을 계속하던 상혁은 드디어 결정을 내렸다.

길고 가늘게 가기엔 시간이 너무 부족했다. 가뜩이나 해야 할 일이 많은 상혁이었기에 이 퀘스트에만 몇 달을 매달려 있을 순 없었다.

짧고 굵게 가는 길을 선택한 이상 복잡하게 생각할 건 없었다. 하지만 복잡하지 않다고 해서 난이도가 더 쉬운 걸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이쪽이 길고 가늘게 가는 것보다 훨씬 더 난이도가 높았다.

‘휴우, 85레벨 NPC라······. 생각해보니 미쳤네.’

선택은 했지만, 여전히 확신이 서진 않았다.

상대는 어지간한 레이드 보스는 통째로 씹어먹을 수 있는 수준의 NPC였다. 아무리 상혁이라고 해도 이런 적을 상대하며 확신을 가질 순 없었다.

‘첫 번째는 광휘의 마법사 이그레이. 그부터 시작하자.’

상혁이 선택한 짧고 굵은 방법. 그것은 바로······ 네 명의 사도와 싸우는 것이었다.

그 어떤 다른 수단도 동원하지 않고 오로지 힘만으로 답을 찾으려는 상혁.

사실 어떤 의미에선 말이 안 되는 도전이었다. 상식적으로 레벨 85의 전설급 NPC와 싸우려면 무조건 ‘마갑’과 ‘강화 고대의 지식’ 그리고 ‘각성 스킬’은 필수였다.

이것들을 전부 가지고 최소 레벨이 70은 넘어야 간신히 비벼볼 만했다. 하지만 상혁은 세 가지 모두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정확히는 세 가지 모두 아직 등장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레벨도 이제 겨우 55였다.

그런데도 상혁은 도전을 준비하고 있었다.

무모하다고밖에 생각되지 않는 도전이었지만 상혁은 묘하게 자신이 있는 표정이었다.

‘힘들겠지만 적어도 재미는 있겠네.’

어차피 궁극적으론 즐기기 위해 하는 게임이었다. 그런 게임에서 스트레스를 받아가며 답답하게 플레이하는 건 상혁이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나마 나하고 상극이라 할 수 있는 마법사를 상대하며 견적을 내보자. 그러고 나서 남은 세 사도를 어떻게 상대할지 다시 생각해보면 되는 거잖아.’

보통의 유저라면 당연히 안 되는 이유를 먼저 찾았겠지만, 상혁은 되는 이유부터 찾았다.

시작점이 다르다 보니 결과 역시 당연히 달랐다.

‘일단 놈의 모든 것을 파악하자.’

상대는 전설 등급 NPC였다. 그런 상대와 싸우려면 알아내야 할 게 많았다.

싸우는 것이야 퀘스트가 있어서 별다른 어려움 없이 가능할 것 같았지만 중요한 건 아무 곳에서나 싸울 수도 없다는 점이었다.

놈이 혼자가 되었을 때, 그리고 놈이 별로 유리하지 않은 장소에서 싸우는 게 중요했다.

혹시 가능만 하다면 놈이 사용하는 주력 마법의 계열과 같은 직접적인 정보도 알아내는 게 좋았다.

‘이쪽 정보망을 영웅의 비선이 꽉 잡고 있을 테니 결국 내가 발품을 팔아서 알아내야겠네.’

정보 길드 같은 곳에 어설프게 의뢰를 했다간 바로 비선의 감시망에 걸릴 수가 있었다. 그러면 말짱 꽝이었기 때문에 모든 건 철저히 상혁이 혼자 해결해야 했다.

상혁은 곧바로 광휘의 마법사 이그레이가 은거하고 있던 작은 마을로 이동해 은밀하게 그에 대한 모든 정보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렇게 대략 사흘 정도를 꼼꼼하게 조사한 결과 이그레이가 어떤 인물인지 상당히 자세히 알 수가 있었다.

이그레이는 과거 ‘화염의 대마법사’로 불릴 때만 해도 굉장히 왕성하게 활동하던 인물이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고 여러 가지 이유가 생기며 그는 은퇴하게 되었고 그 뒤엔 이 마을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건 그가 굉장히 독실하게 ‘광휘의 증명’을 믿고 있다는 점이었다.

다행인 건 은퇴를 하며 모든 권력을 내려놓았기 때문에 그는 철저히 혼자였다. 즉, 상혁이 원하면 언제라도 그와 싸울 수 있다는 뜻이었다.

당연히 특기는 화염 마법이었고 한때 최강의 ‘워 메이지’로 이름을 날렸었기 때문에 전투 실력도 굉장히 뛰어날 것으로 예상되었다.

그나마 기대를 해볼 만한 건 그가 은퇴한 지 10년이 넘었다는 점이었다.

10년 동안은 실전(實戰)에서 멀어져 있었기 때문에 적어도 현역 때의 전투 실력이 100% 나오진 않을 것 같았다.

털 수 있는 정보는 거의 다 털었으니 이제 남은 건 전장과 습격 시간을 선택하는 일뿐이었다.

‘실력 좋은 화염 마법사. 그렇다면······ 태양이 뜨지 않은 어두운 새벽녘의 호숫가. 딱 좋네!’

이그레이의 동선은 이미 완벽하게 파악해놓았었기 때문에 상혁의 머릿속에 딱 알맞은 전장이 떠올랐다. 이그레이는 매일 아침 해가 뜨기 전 일찌감치 집에서 나와 산책을 즐겼다.

늙으면 아침잠이 없어지는 건 현실이나 게임이나 마찬가지인 느낌이었다. 전장과 습격 시간까지 결정되자 사실상 준비는 모두 끝났다.

준비를 끝낸 상혁은 호숫가 근처에 있는 커다란 나무 그늘 뒤에 깊숙이 몸을 숨기고 이그레이가 오길 기다렸다.

상혁의 은신능력은 각종 타이틀 효과와 아이템 효과가 겹쳐지면서 진짜 새로운 경지에 다다라 있었다. 그가 작정하고 숨으면 마스터 경지에 오른 이가 와도 그를 찾을 수 없을 정도였다.

당연히 이 은신능력을 활용해서 이그레이의 동선을 파악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그레이는 자신의 은신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걸 알아냈다.

실력 좋은 워 메이지는 전쟁의 판도를 바꿀 수 있을 정도로 굉장히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동급의 전사와 기사는 할 수 없는 일도 종종 해내곤 했다.

하지만 이건 전쟁에서의 얘기였다.

전쟁과 1:1 대결은 전혀 달랐다. 보호만 잘 받으면 막강한 공격력을 내뿜는 워 메이지였지만 결국은 낮은 방어력과 생명력을 지닌 존재였다.

EL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생명력이 0이 되면 쓰러졌다. 당연히 이그레이도 똑같았다.

‘쉽지 않은 상대인 건 맞지만 그렇다고 걱정부터 할 필요는 없겠지. 어차피 칼로 찌르면 박히는 건 똑같잖아.’

그림자 속에 깊숙이 숨어서 이그레이를 기다리는 상혁은 양손으로 만년금골편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다. 늘 그렇듯 상혁의 전투에서 가장 중요한 건 최초의 한 방이었다.

그것만 제대로 들어가면 이그레이를 순간적으로 녹여버릴 수도 있을 것만 같았다.

‘최초의 한 방만 제대로 걸리면 바로 연계 스킬을 쏟아부어 끝장을 내버린다!’

물론 확신할 순 없었다. 레벨이 깡패라고 85레벨 정도가 되면 아무리 마법사라고 해도 생명력이 상당히 높았다. 그리고 또 무슨 변수가 있을지는 아무도 몰랐다.

상혁이 그림자 속에서 숨을 죽이고 조용히 기다린 지 20분 만에 드디어 이그레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여느 때처럼 호숫가를 걸으며 상쾌한 새벽 공기를 마시고 있었다.

일개 NPC가 마치 진짜 살아있는 인간처럼 행동하는 게 좀 웃기긴 했지만 원래 인공지능이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게 이런 리얼리티였다.

특히 전설 등급 NPC 정도라면 이런 여유를 부리는 게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었다.

이그레이가 좀 더 가까이 오자 상혁은 그의 머리 위에 떠 있는 회색 물음표를 다시 한 번 또렷하게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물음표의 뜻을 요약하자면 ‘퀘스트와 관련이 있는 NPC이고 자유 전투가 가능함.’이었다.

물론 자유 전투가 가능하단 건 굳이 전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만약 상혁이 ‘길고 가늘게’ 이번 퀘스트를 해결하려고 했다면 우선 이그레이와 대화를 시도해봤을 가능성이 컸다. 대화를 받아줄지는 몰랐지만 일단 시도를 해보는 건 나쁜 선택이 아니었다.

하지만 ‘짧고 굵게’를 선택한 이상 대화 시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쓰러트린다!’

상혁은 강렬한 눈빛으로 이그레이를 바라보며 만년금골편을 더욱 강하게 쥐었다.

이미 10분 전에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강화 효과도 사용한 상태였기 때문에 현재 상혁의 상태는 거의 터지기 직전의 핵폭탄이라고 할 수 있었다.

이게 터지는 순간 하늘과 땅을 뒤흔드는 무시무시한 최초의 한 방이 완성되었다.

상혁은 철저히 사냥꾼이 되어 먹잇감이 자신이 생각한 범위 안으로 들어오길 기다렸다. 먹잇감이 장신의 영역의 안으로 들어온 순간 번개같이 달려들어 곧장 목을 물어뜯을 예정이었다.

‘넷, 셋, 둘······.’

그는 이그레이가 가까이 오자 차분히 그의 걸음 속도에 맞춰 머릿속으로 카운트까지 했다. 그리고 이그레이가 정확히 자신이 생각한 곳에 걸음을 내딛는 순간!

망설이지 않고 만년금골편을 날렸다.

피잉! 촤르르르르르륵!

한 줄기의 섬전(閃電)이 허공을 꿰뚫고 날아가 이그레이의 머리에 꽂혔다. 상혁은 이 한 방으로 최소 이그레이의 생명력을 70% 정도를 날려버릴 생각이었다.

그러기 위해 거의 모든 강화 효과를 이 한 방에 몰빵했다.

상혁의 의도대로라면 놈의 머리를 꿰뚫진 못해도 최소한 심대한 데미지를 입히며 최소 5초 정도는 제정신을 차리진 못하게 되어야 했다.

쩌정! 꽈과과과과과과광!

공격은 제대로 꽂혔다. 심지어 치명타까지 터지며 완벽한 핵폭발(?)을 일으켰다. 만년금골편을 타고 상혁의 손에 전해진 감각도 공격이 완벽하게 적중했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그런데······ 소리가 좀 이상했다.

‘변수가 끼어들었다!’

그 순간 상혁은 뭔가 심각한 변수가 나타났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어둠의 축복 발동! 은신이 유지됩니다!

이 와중에도 운은 좋아서 어둠의 축복이 발동해주었다. 하지만 어둠의 축복이 발동해 은신이 유지되어도 상대방이 명확하게 상혁을 인지하면 전투 상태는 계속 유지되었기 때문에 치명적인 최초의 한 방을 다시 날릴 순 없었다.

상혁은 원래 핵폭탄과 같은 최초의 한 방을 터트린 다음 상대가 제대로 몸을 가누지 못할 때 은신을 유지하지 않고 바로 그림자 밖으로 튀어나가 연달아 연계 공격을 쏟아부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변수가 나타났다는 걸 직감적으로 느낀 순간 상혁은 모든 계획을 날려버렸다. 지금은 뭔가 다른 수가 필요했다.

상혁이 이런 판단을 하게 된 근거인 소리.

그 소리는 바로 이그레이가 가지고 있던 전설 등급 목걸이의 발동 효과였다.

‘화염의 가호(S+) : 이글거리는 화염의 기운이 보호막을 형성해 인지하지 못한 공격을 막아줍니다. 이 보호막은 자신의 최대 생명력의 50%까지 데미지를 흡수해줍니다. 보호막은 1회만 발동됩니다. 이 효과의 발동 주기는 24시간입니다.’

이게 결정적이었다. 상혁은 당연히 이그레이가 이런 아이템을 지니고 있다는 걸 알지 못했었고 그 결과 상혁이 날린 핵폭탄은 위력이 확 줄어버렸다.

원래는 이그레이의 생명력을 거의 70%까지 날려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한 방이었는데 지금은 겨우 20%만 날려버렸다.

물론 어떤 의미에선 20%로 많을 것일 수가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상혁에겐 처참한 실패였다. 20%의 생명력을 한 방에 날렸지만 이그레이는 머리가 뒤로 확 젖혀지며 겨우 1초 정도만 비틀거렸을 뿐이었다.

그리고 이 얘긴 이그레이가 반격을 할 기회를 얻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이그레이는 자신이 왜 한때 최강의 워 메이지라 불렸는지를 증명하듯 기습을 당한 순간 이미 머릿속으론 대응 마법을 준비하고 있었다.

화르르르르륵!

정확히 1초 만에 그의 손에서 커다란 불새가 만들어졌고 그 불새는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와 재빨리 뒤로 물러나던 상혁을 향해 날아갔다.

꺄아아아아아아아아아! 화르르륵!

화염의 대마법사 이그레이가 자랑하던 ‘플레임 이글’이 지닌 가장 큰 특징은 ‘회피 불가’와 ‘자동 대상 추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상혁은 그 공격을 피할 수가 없었다.

콰과과과과과과과광!

상혁을 집어삼키며 폭발한 플레임 이글.

이 정도라면 시작부터 완벽하게 망해버린 것으로 보였다.

< [52장] 불가능은 없다 (1) > 끝

ⓒ 성진(成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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