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일인군단-97화 (97/127)

< [50장] 미다스(Midas) (2) >

“어떻게 도와주시겠다는 거죠?”

“미다스의 장인분들이 원하는 재료들을 최대한 빨리 그리고 정확하게 구해다 드리는 건 물론이고 여러 루트를 통해 다양한 생산 기술 관련 정보들도 얻어다 드리겠습니다. 물론 공짜는 아닙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걸로 돈을 벌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이득을 남기는 건 장인분들이 만든 물건을 팔 때뿐일 겁니다.”

대금산은 자신만만하게 얘기했다. 그리고 당연히 외길인생은 그의 제안에 관심이 확 쏠렸다.

‘정확한 정보가 공개된 적은 없지만, 소문에 의하면 금산상단이 바로 경매장의 큰 손이란 얘기가 많아. 아니, 그게 아니라도 EL에 세 개밖에 존재하지 않는 유저가 만든 상단 중 하나인 금산상단은 절대 무시할 수 있는 곳이 아니겠지. 그런 곳에서 우릴 적극 돕는다면······ 나쁠 게 전혀 없겠네.’

외길인생을 열심히 계산기를 두들겨보았다.

그리곤 결국 지금 제안이 절대 미다스에게 손해가 아니란 결론을 내렸다.

“원하시면 제가 얘기한 모든 제안을 문서화 해서 맹약의 서로 작성을 해드릴 수 있습니다. 동맹 관계도 좋고, 계약 관계도 좋고······ 전 미다스와 최대한 우호적인 관계를 맺고 싶은 것뿐입니다.”

대금산은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전부 얘기했다.

거짓말을 할 것도 없었고 과장을 할 것도 없었다. 실제로 대금산이 원하는 건 미다스와의 명확한 우호 관계였다.

오히려 대금산은 내심 맹약의 서를 통한 계약 관계로 묶이는 걸 원했다.

그게 서로 깔끔했다. 사람의 마음은 변할 수 있을지 몰라도 맹약의 서로 묶인 계약은 절대 변할 리가 없었다.

“서로 상부상조하는 관계를 원하시는 것이군요?”

“전 미다스가 필요로 하는 모든 재료 아이템을 최대한 싸게 공급해드리고 대신 미다스 측에서 제작된 아이템을 저를 통해 팔아달라는 것이죠.”

“독점권을 원하시는 건가요?”

“모든 걸 독점하게 해주시면 가장 좋겠지만 그렇게 해주실 생각은 없잖아요?”

“흐음, 아무래도 그건 좀······.”

대금산은 슬쩍 돌려서 원하는 걸 말해보았지만 역시나 외길인생은 100% 독점권은 내줄 생각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네, 그래서 전 조건을 걸고 그 조건에 맞는 아이템을 독점하고 싶습니다.”

“조건이요?”

“네, 여러 가지를 생각 중이긴 한데······ 그중 몇 개를 말씀드리자면 예를 들어 더블 플러스 이상이 유일 등급 아이템이나 혹은 제가 구해다 드린 ‘제작법’을 통해 만든 물건은 무조건 우릴 통해서만 판매하셔야 한다는 식의 조건이죠.”

“고급 아이템 쪽을 독점하고 싶어 하시는군요?”

“네, 수량은 얼마 되지 않을지 몰라도 고급 아이템은 잘 포장을 해서 팔면 큰 이문을 남길 수 있죠.”

“그렇긴 하죠.”

외길인생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듯 얘기했지만 사실 머릿속으론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더블 플러스? 그게 쉽게 나오는 게 아닌데······ 이 사람 생각보다 생산 콘텐츠를 잘 모르고 있나 보네. 그리고 제작법을 구해다 주겠다고? 그걸 쉽게 구할 수 있었으면 우리가 매일 새로운 제작법의 작은 힌트라도 하나 발견하려고 미친 듯이 고생하고 있지도 않았겠지.

생산과 관련된 고대의 지식도 가지지 않은 상태에서 무슨 제작법을 구해다 주겠다고 그러는 건지······. 분명한 건 생각보다 생산 콘텐츠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것 같다는 점이야······ 잘하면 이득은 이득대로 챙기고 손해는 절대 보지 않는 계약도 할 수 있겠는걸?’

외길인생은 좋은 기회가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상대가 생산 콘텐츠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걸 이용해 최대한 미다스 쪽에 이득이 될 만한 계약만 체결할 수 있으면 앞으로 재료 걱정은 하지 않고 제작에만 몰두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대금산은 그런 그를 보며 마음속으로 실컷 웃고 있었다.

‘아마도 날 호구로 생각하고 있겠지? 원 플러스 아이템도 잘 안 뜨는데 갑자기 투 플러스 얘길 하고······ 너무나 구하기 힘든 제작법을 마치 스킬북을 사는 것처럼 쉽게 얘기하고······ 딱 봐도 생산 콘텐츠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는 호구처럼 보이겠지.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엔 내가 호구일지 몰라도 두세 달만 지나면 호구는 제가 아니라 그쪽이 될 겁니다.’

대금산이 제시한 조건들은 지금 이 순간엔 분명 말도 안 되는 조건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이 조건들이 말이 되게 바뀌었다.

장인들의 경지가 올라 그들이 명장이 되면 슬슬 플러스가 잘 붙기 시작한다. 중급 명장만 되어도 10개를 만들면 한, 두 개가 더블 플러스가 붙기 시작하고 상급 명장이 되면 거의 10개 중 7개가 더블 플러스 이상이 붙어 나왔다.

지금은 미다스에서 가장 등급이 높은 이들이라고 해봤자 명장의 초입에 걸친 이들밖에 없었기 때문에 플러스가 붙어봤자 대부분 원 플러스만 붙고 있겠지만, 시간이 조금만 더 흘러도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었다.

그리고 제작법 같은 경우는 이미 상혁이 여러 경로로 확보해 놓은 ‘제작법’들이 상당히 많았다. 상혁은 특별히 비선을 통해 할 일이 없을 땐 늘 ‘생산계열 제작’과 관련된 정보를 모으게 시켰고 그 결과 이미 상당히 많은 제작법을 완성해 놓을 수가 있었다.

어차피 제작법이란 건 정보의 모음이었다. 거의 모든 유저들은 직접 재료를 만지며 깨달음을 통해 정보를 모아 제작법을 완성해야 한다고 알고 있었지만 사실 그건 그들의 착각이었다. 굳이 생산계열 지식이 없어도 확실하게 제작과 관련된 정보의 조각을 잘 맞추기만 하면 제작법을 만들 수 있었다.

‘정말 재수가 좋았어. 조금만 더 시간이 흘렀어도 내가 제시하는 조건이 호구의 조건이 아니란 걸 눈치챌 수 있었는데······ 어쩌다 보니 딱, 정확한 타이밍에 찾아온 것 같네.’

대금산은 어제부터 계속 먼저 연락을 하며 서두른 보람이 있다고 생각했다.

“좋습니다. 그 조건이란 거 자세히 들어보고 길드원들과 상의를 한 후 맹약의 서를 통해 계약하도록 하죠. 제가 볼 때 방금 말씀하신 조건 정도라면 다들 무난히 찬성할 것 같습니다.”

“아마 조건 때문에 문제가 생기진 않을 겁니다.”

대금산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지만, 외길인생이 그의 미소에 담긴 속뜻을 알 수는 없었다.

* * * *

계약은 불과 하루 만에 번갯불에 콩을 구워 먹듯 성사되었다. 재미있는 건 계약을 서두른 게 금산상단이 아니라 미다스라는 점이었다.

그들이 계약을 서두른 이유는 간단했다.

계약 조건이 너무 좋았다. 적어도 그들이 보기엔 이보다 좋은 계약 조건이 없을 것 같았다.

트리플 플러스 이상의 희귀(레어) 등급 아이템

더블 플러스 이상의 유일(유니크) 등급 아이템.

원 플러스 이상의 전설(레전드) 등급 아이템.

제작법을 구해다 준 경우는 그 제작법으로 만든 모든 아이템.

대금산이 내건 조건은 이러했다.

이 조건들은 미다스의 길드원들로선 너무나 후한 조건이었다. 미다스에서 제일 실력이 좋은 유저들이 아주 간혹 만드는 게 유일 등급 아이템(더블 플러스)였다.

트리플 플러스 희귀등급 아이템은 더블 플러스 유일 등급 아이템과 비슷한 수준으로 만들어졌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을 넘기며 얻는 대가는 무려 모든 종류의 재료 아이템을 대신 구해 주는 것이었다.

생산 유저들에게 재료 아이템을 구하는 것만큼 중요하면서 또 귀찮은 일은 없었다.

당연히 미다스의 유저들은 만장일치로 이번 계약에 찬성했다. 그런데 그들이 맹약의 서를 작성하며 실수를 한 부분이 하나 있었다.

그건 바로 계약 기간이었는데 대금산은 일부러 계약 기간에 관한 얘기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질 않았다. 그래서일까? 미다스 쪽에서도 계약 기간에 대해선 별다른 얘기가 나오질 않았다.

덕분에 맹약의 서에는 계약 기간과 관련된 그 어떤 내용도 적히질 않았다.

대금산이 노린 게 바로 이것이었다.

맹약의 서는 기본적으로 ‘기간’을 언급하지 않으면 맹약의 유지 기간을 ‘영원’으로 했다. 이 사실은 맹약의 서를 자주 사용하는 이들도 잘 모르는 것이었다.

미다스의 유저들은 맹약의 서를 사용할 일이 거의 없었다. 특히 미다스의 길드 마스터인 외길인생은 한 번도 맹약의 서를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대금산이 고의로 기간에 관한 내용을 누락시켰음에도 그걸 전혀 알아차리질 못했다.

당연히 대금산은 이렇게 되면 맹약이 영원히 유지된다는 걸 알고 철저히 계산적으로 기간과 관련된 말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이었다.

더욱히 대금산은 철두철미하게 계약의 주체를 길드 미다스가 아닌 미다스 길드에 속해 있는 모든 유저로 했다.

이렇게 되면 설사 미다스 길드가 해체되더라도 미다스에 속해 있던 모든 유저는 여전히 맹약의 서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

외길인생이 맹약의 서에 사인할 때 모든 미다스의 길드원들에게 찬성과 반대를 묻는 메시지가 전달되었었고 모두 찬성을 눌렀기 때문에 그들은 절대 이 맹약의 서를 부정하지 못했다.

심지어 새로운 길드원이 들어올 때도 이와 관련된 내용이 고지되고 찬성과 반대를 묻게 되었기 때문에 새로 가입하는 길드원도 맹약의 서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맹약의 서를 거부하면 너무나 편하고 좋아 보이는 권리도 잃는 것이었기 때문에 거의 모든 이들이 찬성하고 길드에 가입할 게 분명했다.

어쨌든 이걸로 대금산은 미다스와 확실한 계약 관계를 성립할 수 있었다.

앞으로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되어줄 미다스였기에 대금산은 기분 좋게 웃을 수 있었다. 그런데 대금산의 기분을 좋게 만드는 건 이게 끝이 아니었다.

“반갑습니다. 대금산이라고 합니다.”

놀랍게도 미다스의 길드 마스터인 외길인생은 대금산에게 보석세공 명인을 소개해주었다. 외길인생이 소개해준 보석세공 명인은 미다스에서 가장 실력이 좋은 다섯 명의 장인 중 한 명이었다.

그의 등급은 명인 초급.

이제 갓 명인이 된 따끈따끈한 유저였지만 명인이 되었다는 건 곧 ‘섬광(閃光)의 흑안(黑眼)’을 세공해 섬광 세트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었다.

“금강석(金剛石)입니다.”

그 유저의 이름은 금강석. 그는 자신의 이름처럼 매우 단단해 보이는 몸과 눈빛을 지닌 덩치 좋은 남자였다.

“이름만 들어도 보석세공을 하시는 분이란 걸 알 수 있겠네요.”

대금산은 가볍게 분위기를 풀며 금강석을 바라보았다.

“제가 지금 집중해서 만들고 있는 게 있어서 그런데······ 용건만 간단히 얘기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생산 유저들은 외골수 같은 성격을 지닌 경우가 많았는데 금강석도 딱 그런 성격인 것 같았다.

한 곳만 바라보고 우직하게 나아가는 스타일.

보통 이런 스타일이 생산 유저로서 크게 성공할 가능성이 컸다.

“아, 그렇군요. 그럼 바로 본론만 얘기하겠습니다. 아마······ 얘길 다 듣고 나시면 절대 시간을 빼서 절 만나주신 걸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대금산은 고개를 끄덕이며 계속 말을 이어나갔다.

“저에게 명인 등급 이상의 보석세공 전문가만 다룰 수 있는 최고급 보석세공 제작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걸 금강석님에게 드리고 물건 하나를 만들고 싶은데······ 어떠세요. 관심이 생기지 않나요?”

대금산의 말이 끝나자 금강석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최고급 보석세공 제작법! 그런 게 있나요?”

지금까지 금강석은 오로지 자신의 노력만으로 제작 레시피를 알아냈었다.

단 한 번도 제작 레시피를 다른 곳에서 구할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당연히 있으니까 하는 말이죠. 저도 바쁘신 분을 붙잡고 농담을 하고 있을 정도로 한가한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지금 볼 수 있나요?”

확실히 금강석은 보석세공에 미쳐 있었다. 최고급 보석세공 제작법이라는 한 마디에 그는 이미 집중하고 있었던 일은 머릿속에서 지워버린 것 같았다.

“아, 그전에 한 가지 약속을 해주셔야 합니다. 이 제작법은 오로지 저와 금강산님만의 비밀입니다. 그 누구에게도 이 제작법에 관해 얘기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그 제작법을 통해 만든 물건에 대해서도 절대 얘기하면 안 되고 그 물건을 다른 사람에게 만들어주셔도 안 됩니다. 이 모든 걸 지켜주신다면 제작법은 물론이고 그것을 만드는 데 필요한 모든 재료를 드리겠습니다. 거기에 추가로 제작 의뢰 비용으로 100만 골드를 드리겠습니다.”

대금산은 골드를 쓸 땐 확실히 써야 한다고 생각했다. 100만 골드는 분명 큰 금액이었지만 ‘섬광 세트’를 확실히 얻을 수 있고, 또 그것의 비밀을 지킬 수만 있다면 얼마든지 쓸 수 있는 돈이었다.

당연히 이 약속은 구두로 하는 게 아니라 맹약의 서를 동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 정도의 골드는 안겨줘야 상대방이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가 있었다.

“네, 모두 수용할 테니 일단 제작법부터 보여주세요.”

그런데 금강석은 대금산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보석세공에 미쳐 있는 것 같았다.

1초도 고민하지 않고 대답하는 금강석.

이 정도라면 100만 골드가 아니라 그냥 골드는 언급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것 같은 분위기였다.

‘좀 아깝긴 하네.’

순간 아깝단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었다. 하지만 결국 확실하게 족쇄를 채우려면 제작 의뢰 비용은 주는 게 맞았다.

다행히 대금산은 보름 전에 간신히 ‘섬광 세트’의 제작법을 완성할 수 있었고 그 결과 이런 제안도 할 수 있었다.

이것은 미다스와의 계약만큼이나 기분 좋은 일이었다.

< [50장] 미다스(Midas) (2) > 끝

ⓒ 성진(成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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