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장] 미다스(Midas) (1) >
@ 미다스(Midas).
불멸이 흑기사와 계백에게 드레이크 킹 사냥에서 활약을 해줘야 한다고 한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드레이크 킹 사냥에서 흑기사와 계백이 맡은 역할을 매우 중요했다. 일단 흑기사는 메인 탱커로서 드레이크 킹의 어그로를 꽉 잡고 있어줘야 했다.
물론 힐러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정상적인 탱킹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불멸과 흑기사는 정확히 계산된 도발 연계 탱킹을 통해 흑기사가 거의 100% 방어해낼 수 있는 일반 평타 공격일 때만 흑기사가 어그로를 유지하도록 했다.
그리고 드레이크 킹이 흑기사가 견딜 수 없을 정도로 강력한 기술을 내뿜으려고 하면 불멸이 재빨리 도발을 걸어 어그로를 인계받았다
불멸 입장에선 작정하고 순간 회피 능력을 올리면 놈의 강력한 공격을 피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평상시 흑기사가 어그로를 잡고 있을 땐 극딜을 하다가 위험한 순간이 오면 재빨리 포지션을 공격에서 방어로 바꾸며 회피탱킹을 했다
두 사람의 이런 도발 연계 태킹은 누구 한 명이 조금만 실수를 해도 사정없이 일그러질 수 있었다.
둘의 호흡이 아주 잘 맞아야지만 가능한 콤비네이션이었는데 불멸과 흑기사는 별다른 연습도 없이 이걸 아주 능숙하게 해냈다.
둘 다 기본적으로 감각이 매우 뛰어난 이들이었기 때문에 이런 결과가 나온 것이었다.
흑기사가 메인 탱커 역할을 하는 동안 계백은 이보단 단순하지만 어떻게 보면 중요하기는 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는 열심히 땅을 얼리고 있었다.
그냥 지표면만 얼리는 게 아니라 땅속까지 꽁꽁 얼려서 절대 드레이크 킹이 땅속으로 파고들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사실 드레이크 킹이 땅속으로 파고들지 못하게 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었다. 그 여러 가지 중 계백이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바로 땅을 얼리는 것이었다.
드레이크 킹은 땅속으로 들어가면 곧장 은신 상태가 되면서 생명력 회복 능력이 900%나 증가했다. 아무리 땅 밖에서 열심히 생명력을 깎아놔도 땅속에 한 번 들어갔다 오면 말짱 꽝이 되는 것이었다.
그렇기에 놈이 땅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건 공략의 핵심 중 하나였다.
흑기사와 계백은 이것만 잘해줘도 자기 몫을 충분히 했다고 할 수 있었다. 나머지 것들은 오롯이 불멸의 몫이었다.
어떻게 보면 불공평하게 보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불멸은 두 사람의 도움 덕분에 큰 고생을 하지 않고 생각보다 훨씬 쉽게 드레이크 킹을 사냥할 수 있다는 걸 더 중요하게 생각했다.
크어어어어어어어어어어엉.
쿠쿠쿠쿠쿵.
정확히 네 번째 도전 만에 드레이크 킹이 혀를 길게 내밀고 천천히 옆으로 쓰러졌다.
흑기사와 계백은 암흑달 신전에서 추방된 달의 거인을 쓰러트릴 때만큼은 아니었지만, 이 순간 상당히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물론 이번에도 불멸과의 약속 때문에 드레이크 킹이 떨어트린 유일 등급 세트 아이템은 모두 포기해야 했지만 그런 건 전혀 상관없었다.
그들은 이번에도 ‘최초의 드레이크 사냥꾼’이란 유일 등급 타이틀을 얻었고 레벨도 1씩 더 올랐다.
흑기사와 계백은 거의 동시에 ‘이렇게 쉽게 게임을 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불멸이 그들의 도움을 칭찬해도 그들 입장에선 여전히 고속버스를 타고 있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아이템을 모두 챙긴 후 이번 드레이크 사냥의 최종 정산은 코트니에서 가서 하도록 하죠.”
불멸은 말과 함께 바닥에 떨어진 57개의 아이템을 전부 거둬들였다.
세 사람은 코트니로 귀환한 후 ‘밤을 잊은 손님’이란 이름을 지닌 숙소에 작은 방 하나를 잡고 모였다.
“약속했던 대로 이번 사냥에서 나온 유일 등급 세트 아이템과 드레이크 블러드는 모두 제가 가져가도록 하겠습니다.”
드레이크 계곡에서 얻을 수 있는 유일 등급 세트 아이템이란 바로 ‘특급 드레이크 가죽 방어구 세트’였다.
이것은 가슴과 다리, 신발, 장갑 그리고 어깨 갑옷으로 이루어진 총 5세트의 가죽 방어구 세트였는데 신발과 장갑은 일반 드레이크에게서 낮은 확률로 얻을 수 있었고 나머지 가슴과 다리 그리고 어깨 갑옷은 드레이크 킹에게서만 얻을 수 있었다.
다행히 일반 드레이크를 174마리를 사냥하면서 신발이 두 개 그리고 장갑이 하나가 나왔기 때문에 드레이크 킹이 떨어트린 가슴과 다리, 어깨 갑옷과 합쳐서 5세트를 완성할 수가 있었다.
“아, 신발이 하나 남는데······ 이건 두 분이 상의해서 알아서 나눠 가지세요.”
불멸은 어차피 한 세트만 완성하면 되었기 때문에 신발 하나는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나머지 아이템도 전부 나눠 가지세요.”
원랜 나머지 아이템도 ‘4(흑기사) : 4(계백) : 2(불멸)’로 나누게 되어 있었지만, 불멸은 그냥 자기 몫을 포기했다. 솔직히 별로 탐나는 물건도 없었고 암흑달 신전부터 드레이크 계곡까지 흑기사와 계백이 고생해준 것도 있었기 때문에 과감히 양보해준 것이었다.
“하지만······.”
계백은 뭐라 말을 하려고 했지만, 불멸은 그의 말을 끊으며 다시 입을 열었다.
“그냥 받아주세요. 어차피 이번 한 번만 보고 안 볼 것도 아니잖아요.”
불멸이 웃으며 이렇게까지 얘기하는데 계속 거절하기는 힘들 것 같았다.
“그럼 감사히 받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계백도 그리고 흑기사도 결국 더는 말을 하지 못하고 불멸의 선물(?)을 받았다.
“자, 그럼 다음에 또 봅시다.”
스윽, 불멸은 자리에서 일어나면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있었다. 비록 두 사람을 길드에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고 또 계속 그들과 레이드를 할 생각 역시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들과 이대로 인연을 끝낼 생각은 전혀 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흑기사와 계백도 마찬가지였다.
* * * *
호칭 - ‘최초의 드레이크 사냥꾼’
등급 – 유일(唯一)
설명 – 드레이크류 네임드 몬스터를 최초로 쓰러트렸습니다. 용(龍)의 피를 이어받은 드레이크들을 쓰러트리는 건 매우 힘겨운 일입니다.
효과 - [접두: 물리 방어력이 20% 증가합니다. ] [접미: 마법 방어력이 20% 증가합니다.] [상시지속 효과: 초보 용 사냥꾼(A) : 용종(龍種)을 사냥할 때 모든 능력치가 5% 상승한다.]
안타깝게도 이번에 얻은 유일 등급 타이틀은 상혁에게 별로 쓸모가 없는 것이었다. 상혁은 이미 트윈 문 블레이드에 달린 특수 효과로 용 사냥꾼(S)을 확보했기 때문에 초보 용 사냥꾼(A) 효과는 적용받질 못했다.
같은 타이틀 효과로 등급만 달랐기 때문에 중복 적용이 안 되는 것이었다. 거기다 접두와 접미 효과도 % 증가이긴 했지만 엄청나게 좋게 느껴지진 않았다.
물론 흑기사와 계백에겐 굉장히 좋은 타이틀이었겠지만 상혁은 그들처럼 배고픈 유저가 아니었다.
대신 드레이크 가죽 방어구 세트는 아주 마음에 들었다.
특급 드레이크 가죽 튜닉 [유일(Unique) ++]
- 드레이크의 가죽 중 가장 질긴 머리 가죽만 모아 몇 겹으로 덧대어 만든 가죽 갑옷.
[기본 능력치] 민첩 +40(+8), 방어력 +5(+1)%
[특수 능력치] 이동 속도 +10(+2)%
[세트 효과] 2세트 - 민첩 +20
3세트 - 이동속도 +15%
4세트 - 치명타 데미지 +50%
5세트 - 민첩 +15%
[특수 효과] <용린갑(A) : 용의 비닐이 강력한 물리 방어력을 제공합니다. 물리방어력 +10%>
[보너스 효과] 활력 +10, 매력 +15
특급 드레이크 가죽 바지 [유일(Unique) +]
- 드레이크의 가죽 중 가장 질긴 머리 가죽만 모아 몇 겹으로 덧대어 만든 가죽 바지.
[기본 능력치] 민첩 +40(+4), 방어력 +5(+0.5)%
[특수 능력치] 치명타 확률 +5%(+0.5%)
[세트 효과] 2세트 - 민첩 +20
3세트 - 이동속도 +15%
4세트 - 치명타 데미지 +50%
5세트 - 민첩 +15%
[특수 효과] <바람처럼(A) : 워낙 갑옷이 가벼워서 이동속도가 10% 증가합니다.>
[보너스 효과] 힘+10
특급 드레이크 가죽 어깨 갑옷 [유일(Unique) +]
- 드레이크의 가죽 중 가장 질긴 머리 가죽만 모아 몇 겹으로 덧대어 만든 가죽 어깨 갑옷.
[기본 능력치] 민첩 +40(+4), 방어력 +5(+0.5)%
[특수 능력치] 치명타 데미지 +20%(+2)%
[세트 효과] 2세트 - 민첩 +20
3세트 - 이동속도 +15%
4세트 - 치명타 데미지 +50%
5세트 - 민첩 +15%
[특수 효과] <가시 갑옷(A) : 용린이 가시처럼 솟아올라 물리 데미지를 반사합니다. 자신이 받은 물리 데미지의 10%를 상대에게 되돌려 줍니다.>
[보너스 효과] 힘+10
특급 드레이크 가죽 갑옷은 기본 능력치는 모두 같았지만, 특수 능력치와 특수 효과는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따지고보면 결국 셋 중 하나가 랜덤하게 붙는 것이었다.
특수 능력치는 이동속도, 치명타 확률, 치명타 데미지 중 하나가 붙어 나왔고 특수 효과는 바람처럼, 용린갑, 가시 갑옷이 붙어 나왔다.
상혁이 얻은 신발과 장갑 같은 경우는 둘 다 이동 속도와 바람처럼이 붙어 있었다.
덕분에 특급 드레이크 갑옷 5세트를 모두 착용한 순간 이동속도가 엄청나게 상승했다.
이동속도 옵션은 상혁이 매우 좋아하는 옵션이었다. 기본적으로 상혁은 매우 뛰어난 감각을 지닌 유저였기 때문에 이동속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화려한 컨트롤을 보여줄 수가 있었다.
평범한 유저들은 이동속도보다 다른 능력치를 더 중요하게 여겼지만, 최상급 유저들일수록 이동속도를 선호하는 경우가 더 많아지는 것도 같은 맥락의 얘기였다.
‘좋다. 좋아. 확실히 유일 등급 세트 아이템은 거의 전설 등급 아이템이나 마찬가지네.’
특히 지금처럼 세트가 다섯 개나 되는 경우는 더더욱 귀하게 취급받았다.
‘아무래도 형상 변화 주문서를 충분히 구해서 상황마다 형상을 변화하며 계속 이 방어구를 사용해야겠다.’
원랜 갑옷 자체를 몇 종류 더 구할 생각이었는데 특급 드레이크 가죽 갑옷 세트가 워낙 마음에 든 상혁은 돈이 꾸준히 나가더라도 형상 변화 주문서를 넉넉히 가지고 다니면서 상황에 맞춰 사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검과 단검 그리고 갑옷까지 풀세트로 구했다.
비록 비밀 던전인 ‘별 무리 성흔’을 찾지 못해 원했던 장신구 하나는 구하지 못했지만 그래도 기본 세팅은 다 끝낼 수가 있었다.
‘별 무리 성흔은 꾸준히 계속 찾아보자.’
그렇다고 별 무리 성흔을 포기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꾸준히 비선을 이용해 찾아볼 생각이었다.
‘그러고 보니 영웅의 대지에 존재하는 비선도 접수해야 하는데······ 전처럼 돈으로도 안 되는 거 같고······ 결국은 바닥부터 차분히 풀어가야 하나?’
여전히 상혁이 해야 할 일은 많았다.
‘아! 그러고 보니 지금 가장 급한 일은 그게 아니구나.’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상혁은 바로 어제 커뮤니티에서 본 글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그 글은 일종의 길드원 모집 글이었다.
근데 길드원을 모집하는 길드가 그냥 단순한 길드가 아니었다.
‘미다스(Midas)! 드디어 미다스 길드가 등장했다.’
미다스 길드는 상혁이 아주 잘 알고 있는 길드였다. 그리고 기다리고 있던 길드이기도 했다.
솔직히 상혁은 아예 미다스 길드의 설립에도 한 발을 걸치고 싶었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할 수 있을 정도로 정보가 많진 않았다.
그래서 상혁은 설립에 한 발 걸치는 건 포기하고 대신 미다스가 만들어진 후 등장을 하면 최대한 빨리 그들과 매우 우호적인 관계를 맺을 생각을 했다.
금산상단과 미다스가 서로 협력하게 된다면 그건 서로에게 매우 좋은 일이 될 수 있었다.
상혁은 일단 대금산으로 모습을 바꾼 후 곧장 게시글에 적혀 있던 ‘미다스’의 연락처로 연락했다.
“진짜 금산상단의 상단주가 맞나요?”
대금산의 연락을 받은 미다스 측은 바로 자신들의 길드마스터인 ‘외길인생’에게 보고를 했고 그 결과 대금산과 외길인생은 곧장 만날 수가 있었다.
아직 미다스는 소형 길드라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EL에서 가장 유명한 상단인 금산상단의 마스터가 직접 자신들을 찾아왔다는 걸 믿지 않는 표정이었다.
“맞습니다. 제가 금산상단의 마스터인 대금산입니다.”
대금산이 정식으로 자신을 소개하자 진짜 대금산의 머리 위엔 ‘대금산’이란 이름이 나타났다.
“허어······ 죄송합니다. 금산상단의 명성이 워낙 높아서 그곳의 마스터인 분이 왜 저희 같은 별 볼 일 없는 곳에 연락을 하고 이렇게 찾아오기까지 하신 지 이해가 잘 안 돼서 그랬습니다.”
외길인생은 미다스를 별 볼 일 없는 곳이라고 얘기했다. 물론 그의 말이 틀린 건 아니었다.
적어도 지금의 미다스는 규모 면에선 겨우 50명 정도의 유저가 모여 있는 소형 길드가 맞았다. 하지만 상혁은 규모를 보고 미다스를 찾아온 게 아니었다.
“하하, 전 뼛속까지 상인의 기질을 가지고 있는 놈입니다. 그런 제가 왜 외길인생님을, 아니 미다스를 찾아왔겠습니까?”
대금산은 기분 좋게 웃으며 외길인생을 바라보았다. 그리곤 다시 입을 열었다.
“전 거래를 하고 싶습니다. 미다스에 모인 수많은 장인분이 만든 물건들을 저희 금산상단이 팔 수 있게 해주신다면······ 전 여러분이 집중하고 있는 생산 기술의 끝을 볼 수 있게 도와드리겠습니다.”
대금산은 쓸데없이 말을 돌리지 않고 바로 본론을 말했다.
그가 찾아온 미다스.
이곳은 바로 오로지 생산 콘텐츠에만 올인을 하고 있는 유저들의 모임이었다.
이들은 적어도 지금까진 큰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지만, 시간이 조금만 더 흐른다면 미다스는 그 어떤 세력도 무시할 수 없는 거대한 생산 카르텔로 성장할 예정이었다.
한 가지에 미쳤다는 건 그들의 집중력이 엄청나다는 점이었고 그것은 곧 그들이 보통의 유저와는 다른 방식으로 최상급 유저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뜻이었다.
그렇기에 대금산은 그들이 저평가를 받고 있는 지금 그들과 단단한 인연의 고리를 만들어놓을 생각이었다.
특히 대금산은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들은 단순히 돈을 벌거나 레벨을 올리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그들의 목적은 자신이 집중하고 있는 생산 콘텐츠의 끝을 보고 싶어했다.
미다스의 길드원들이 원하는 걸 정확하게 제시한 대금산.
그래서일까? 외길인생의 표정이 묘하게 변해 있었다.
< [50장] 미다스(Midas) (1) > 끝
ⓒ 성진(成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