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장] 믿음의 결과 (1) >
@ 믿음의 결과.
불멸은 레이드를 시작하기 전에는 첫 번째 도전은 정말 경험을 얻는 정도로 만족하려고 했었다. 계백이 섬광포 조작에 익숙해지고 흑기사가 암흑달 정령을 막으며 수정을 모으는 요령을 터득하는 정도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경험일 뿐이라고 생각했던 첫 번째 도전에서 변수가 마구 폭발했다.
첫 번째 변수는 당연히 계백의 놀라운 사격 능력이었다.
계백은 놀라운 섬광포 적중률을 보여주었다. 10방을 쏘면 9방은 거의 무조건 맞추는 수준이었다.
사실 최초의 한 방을 맞추고 두 번째도 맞춘 후 세 번째는 빗나갔지만 이후로 연속 6방을 다시 맞췄다. 그런데 이제는 거의 120% 섬광포에 적응을 해서 아무리 봐도 앞으론 한 방도 빗나가지 않을 것 같았다.
말이 안 나오는 사격 능력이었다. 상혁의 전생에 섬광포 사격을 마스터했다고 자랑하는 이들의 평균 적중률이 70%도 되질 않았던 걸 고려하면 미친 적중률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두 번째 변수는 어둠의 축복이 두 번 연속해서 발동된 것이었다.
40% 확률로 발동되는 어둠의 축복이 두 번이나 연속으로 발동되었다. 특히 계백은 첫 번째에 이어 두 번째 섬광포도 거인의 몸에 맞췄다.
이 두 가지 사실이 합쳐지자 상혁은 무지막지한 위력을 지닌 최초의 한 방을 무려 세 번이나 날릴 수가 있었다.
아무 추방된 달의 거인이 보스 네임드 몬스터이고 엄청나게 많은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모든 방어 효과가 사라진 무방비 상태에서 상혁이 날린 최초의 한 방을 세 번이나 연속해서 맞은 건 우습게 볼 일이 아니었다.
그 세 방은 진짜 세상을 반쪽 낼 수도 있을 만큼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당연히 그걸 견뎌내는 건 매우 힘든 일이었다.
75%.
대략 75%의 생명력이 이 세 방으로 날아갔다.
누가 봤다면 당장 버그 플레이로 신고부터 했을 것 같은 정신 나간 화력이었다.
상혁은 그렇게 75% 생명력을 날려버린 순간 어쩌면 원 트라이 클리어라는 기적 같은 결과를 만들 수도 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남은 생명력은 25%. 하지만 상대는 레이드 몬스터였기 때문에 방심을 할 순 없었다.
바로 이 타이밍에 세 번째 변수가 나타났다.
세 번째 변수는 앞선 두 변수만큼 큰 변수는 아니었다. 하지만 확실한 건 이 변수가 아주 살짝 부족했던 2%를 채워줬다는 점이었다.
흑기사. 계백과 불멸에 이어 그가 자신의 포텐을 폭발시키며 몰이사냥이 어떤 건지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섬광포를 향해 끝없이 몰려드는 암흑달 정령들의 광역 어그로를 꽉 붙잡고 궁극의 돌진방패술을 보여주었다.
그는 방패를 이리저리 돌리며 암흑달 정령들을 모조리 찍어 눌러버렸다. 그는 마치 계백과 불멸에게 뒤처질 수 없다고 얘기하는 것처럼 마음껏 능력을 폭발시켰다. 덕분에 일리아가 할 일이 별로 없어졌을 정도였다.
이 세 가지 변수가 합쳐지자 기적과도 같은 첫 트라이 클리어라는 위업이 눈앞에 보이기 시작했다.
추방된 달의 거인은 쓰러지지 않으려고 계속 몸부림 쳤지만 이미 승기는 상혁 일행에게 넘어온 상태였다.
촤르르르륵, 드드드드드득!
불멸은 거인의 목에 만년금골편을 휘감고 있는 힘껏 당겼다. 벌써 11번째 섬광포에 적중된 놈은 무방비 상태에서 불멸의 공격에 모든 약점을 노출했기 때문에 불멸은 그저 있는 힘껏 놈을 공격만 하면 되었다.
계백과 흑기사가 워낙 잘해줬기 때문에 불멸은 싸우기가 너무 편했다.
‘이제 좀 끝내자!’
이젠 슬슬 마무리를 지어야 했다. 여기서 조금 더 시간이 흘러가면 자칫 광폭화를 허용할 수도 있었다. 물론 거인의 광폭화는 섬광포로 끊을 수 있긴 했지만 재수가 없어서 섬광포가 빗나간다거나 혹은 섬광포의 재사용대기시간인 10초와 광폭화 타이밍이 딱 맞물린다
거나 하면 광폭화를 허용하며 지금까지 쌓아올린 걸 모조리 날려버릴 수가 있었다.
“으아아아!”
드드드드, 두둑! 우드드드드득!
불멸이 모든 힘을 쥐어짜서 만년금골편을 당기자 드디어 거인의 목이 꺾였다.
목이 꺾였다는 건 곧 놈의 생명령이 0%가 되었다는 뜻이었다.
끄르르르르르르르르륵.
고오오오, 콰과과과과과광!
목이 기괴하게 꺾인 거인의 거대한 몸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 불멸과 계백, 흑기사가 기다리던 메시지가 나타났다.
암흑달 신전의 최종 보스 네임드 몬스터인 ‘추방된 달의 거인’을 쓰러트렸습니다.
최초로 추방된 달의 거인을 쓰러트렸습니다. 그것도 무려 첫 도전에!! 단 한 번만의 도전으로 레이드 보스 네임드 몬스터를 쓰러트린 건 대단한 업적입니다. 당신들의 이 업적은 영원히 기억될 것입니다.
유일 등급 타이틀인 [재도전은 없다.]을 획득했습니다.
추방된 달의 거인을 최초로 쓰러트렸기 때문에 최초 처치보너스가 적용되어 놈에게서 얻을 수 있는 34종류의 아이템을 모두 획득하셨습니다.
“우어어어어어어!”
계백이 가장 먼저 포효했다.
“와아아아.”
그리고 감정표현을 거의 하지 않는 흑기사도 주먹을 불끈 쥐며 소리를 질렀다.
가장 평온한 건 불멸이었다. 그는 이런 경험이 워낙 많았기 때문에 별다른 가볍게 고개만 끄덕이며 거칠어진 호흡을 정리했다.
“후우······.”
75%의 생명력을 날리고 전투를 시작했음에도 상당히 힘든 전투를 치렀다. 그만큼 추방된 달의 거인이 강력한 몬스터란 뜻이기도 했다.
‘이번 기회를 놓쳤으면 자칫 도전이 길어졌을 수도 있었겠네.’
매우 좋은 기회를 잡았고 그 기회를 제대로 잘 살렸다. 이보다 좋은 결과는 있을 수가 없었다.
[와, 우리가 진짜 해낸 거 맞아요? 레이드 보스 몬스터를 그것도 영웅의 대지에 있는 미공개 레이드 보스 몬스터를 우리 셋이 잡은 거 맞죠? 이게 정말······.]
계백은 흔히 말하는 레이드 뽕맛에 잔뜩 취한 것 같았다.
[······대단하네요.]
심지어 흑기사도 성취감에 휩싸여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얘길 했다.
거인이 쓰러진 후 자연스럽게 통제실 아래쪽에 반투명한 계단이 생겨나며 중앙 광장과 연결이 되었기 때문에 불멸은 온 몸으로 기쁨을 표현하고 있는 두 사람을 직접 볼 수 있었다.
‘이들이 없었으면 절대 성공하지 못했다.’
물론 실질적으로 추방된 달의 거인을 잡은 건 불멸이었다. 딜도 탱도 심지어 힐도 불멸이 혼자 알아서 해결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멸은 이번 레이드의 공은 세 사람이 모두 똑같다고 생각했다.
미친 섬광포 적중률을 보여준 계백이 없었다면 불멸은 절대 폭딜을 넣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흑기사의 돌진무쌍이 없었다면 계백은 지금처럼 섬광포를 마음껏 쏠 수가 없었다.
세 사람은 서로 맞물려서 톱니바퀴처럼 돌아갔기 때문에 누구 하나라도 빠지면 전체가 멈추게 되는 구조였다,
‘누군가를 믿는 거······ 진짜 오랜만이네.’
불멸은 기분 좋게 웃으며 계단을 내려온 계백과 흑기사를 향해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모두 고생하셨습니다.”
처음엔 무모하게만 보였던 세 유저의 레이드는 이렇게 대성공으로 마무리 되었다.
* * * *
아이템 분배는 약속대로 상혁이 전설 등급 아이템인 ‘트윈문 블레이드’만 가져가고 나머지 아이템은 흑기사와 계백이 공정하게 나눠가졌다.
이건 최초에 용병 계약을 맺을 때부터 맹약의 서에 적어놓기까지도 한 내용이었기 때문에 흑기사와 계백은 전혀 불만이 없었다.
물론 불만은 없었지만 대신 궁금증은 더욱 커졌다. 두 사람 모두 네임드 몬스터를 최초로 쓰러트리면 얻을 수 있는최초킬 보너스가 존재한단 사실은 이미 알고 있었지만 문제는 상혁이 어떻게 이 네임드 몬스터에서 전설등급 아이템을 얻을 수 있다는 걸 알았는지 그게 궁금했다.
‘혹시 라온 개발진에 친한 지인이라도 있나? 근데 거기 보안이 완벽해서 절대 내부 정보를 알아낼 수 없다고 하던데.’
계백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흑기사도 비슷한 생각을 했지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조용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일단 의문은 뒤로 하고 아이템 분배를 끝냈다.
비록 핵심 아이템인 트윈 문 블레이드는 상혁이 가져갔지만 남은 아이템들도 계백과 흑기사에겐 눈이 번쩍 뜨일 만큼 좋은 것들이었다.
모든 분배가 끝난 후 세 사람은 영웅의 대지에서 가장 큰 대도시인 코트니의 한 술집에서 다시 만났다.
원래대로라면 추방된 달의 거인을 쓰러트리며 계약이 종료되었기 때문에 레이드가 끝난 후 쿨하게 헤어졌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관계였지만 계백의 뒤풀이 제안을 흑기사도 그리고 불멸도 거절하지 않으며 이런 자리가 마련되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흑기사는 물론이고 불멸도 이런 제안은 단칼에 거절을 했을 것이지만 지금은 보통의 경우가 아니었다.
“그래서 제가 몇 달 동안 증명의 길에서 폐관수련을 하면서 독고불패님한테 미친 듯이 깨지고 있는 겁니다,”
얘기는 주로 계백이 거의 다했고 흑기사와 불멸은 거의 들어주는 역할만 했다. 대신 두 사람은 맛 좋기로 소문난 코트니의 구름 맥주를 실컷 마시며 오랜만에 취기를 느끼는 중이었다.
“불멸님 진짜 독고불패님한테 살살 좀 해달라고 해주세요. 매번 죽겠습니다.”
계백은 잔뜩 앓는 소리를 하며 상혁을 바라보았다.
“정말 독고불패가 살살해주길 원하세요?”
상혁은 그런 계백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물었다.
“으음······ 방금 말은 없던 걸로 해주세요.”
상혁의 물음에 계백은 고개를 흔들며 대답했다. 상혁은 계백이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독고불패는 계백님을 두고 절대 포기를 하지 않을 사람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절대 살살 할 수가 없다고 합니다.”
“쳇, 두고두고 등골을 뽑아먹으려고 그러나보네요.”
투덜거리긴 했지만 계백도 은근히 독고불패가 자신을 인정해줬다고 생각해서인지 표정은 상당히 밝았다.
“어쨌든 다시 한 번 얘기하는 거지만 오늘 레이드······ 두 분 모두 정말 고생이 많으셨습니다.”
상혁은 앞에 있던 구름 맥주를 전부 마신 후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감사는 우리가 해야죠. 사실상 버스를 탄 건데.”
[감사합니다. 전 오늘 새로운 세상을 본 것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합니다.]
계백과 흑기사 역시 고개를 숙이며 감사해했다.
점점더 훈훈해지는 분위기. 그 순간 상혁은 이들이라면 좀 더 함께 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두 분한테 한 가지 제안을 또 드리고 싶은데······ 들어보시겠습니까?”
“뭐, 전 듣지 않고도 콜이긴 한데. 일단 들어는 보죠.”
[말씀하세요.]
계백과 흑기사는 귀를 열고 상혁의 말을 경청했다.
“사실 전 또 하나의 레이드를 계획하고 있습니다. 이번엔 던전 레이드가 아닌 필드 레이드이고 난이도는 오히려 암흑달 신전보다 더 높을 수도 있습니다.”
필드 레이드는 기본적으로 던전 레이드보다 순수한 공략 난이도는 무조건 낮았다. 그 이유는 레이드에 동원할 수 있는 인원의 차이 때문이었다.
던전 레이드는 아무리 많아서 42명을 넘길 수가 없었지만 필드 레이드는 마음만 먹으면 수천 명도 동원할 수가 있었다.
물론 다른 외적인 요소 때문에 무작정 필드 레이드가 쉽다고 볼 순 없었다. 인원은 얼마든지 많이 동원할 수 있었지만 그 대신 불청객도 마음대로 난입을 할 수가 있었다.
즉, 함부로 대규모 레이드를 계획했다간 소수의 난장꾼들에게 제대로 난장을 당하고 전리품까지 스틸을 당할 수가 있었다.
결국 모든 걸 다 고려하면 던전 레이드나 필드 레이드나 어렵긴 마찬가지였다.
“그걸 두 분과 함께 하고 싶습니다.”
상혁은 말을 돌리지 않고 바로 본론을 얘기했다.
그는 드레이크 계곡 사냥을 계백과 흑기사와 함께 할 생각이었다.
“전 아까도 말했지만 무조건 콜입니다.”
이미 계백은 상혁, 아니 불멸과 함께 사냥하는 ‘맛’을 알아버린 것 같았다.
[저도······ 함께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조금 다른 의미로 불멸과 사냥하는 것에 빠져버린 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로써 두 사람의 용병 계약 연장이 확정되었다.
물론 이 용병 계약이 언제까지 이어질지는 아무도 몰랐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지금 모여 있는 세 사람이 서로 믿음을 차곡차곡 쌓고 있다는 점이었다.
< [49장] 믿음의 결과 (1) > 끝
ⓒ 성진(成珍)